만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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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의 쓸모" <무직백수>

무기력함을 탈출해 보자!

2024-04-12 이용건



| (개)백수

 백수는 두 글자만으로 침울한 분위기를 환기하는 몇 안 되는 단어일 것이다. 백수는 모두가 통과하거나 머물러야 하는 과정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시장에 내놓아 쓸모를 증명해야 하는 시대의 대표적인 탈락자로 여겨진다. 단어만으로도 열정이 느껴지는 취업준비생, 작가지망생 등과 달리 백수는 미래에 대한 욕망을 잃은 자들인 것처럼 여겨진다. 「무직백수 계백순」의 주인공 ‘계백순’은 그 이름에서부터 ‘개백수’를 상기시킨다. 백수의 ‘무쓸모’함을 보다 강조하는 ‘개백수’는 취업, 작가 등단 등과 같은 미래를 대비하는 자가 아님은 분명하고, 이루고자 하는 의지 자체가 결여되어 있는 자처럼 여겨진다. 하이데거(M.Heidegger)가 근대인에게 남긴 말처럼 개백수에게 남은 열정이란 ‘열정의 소멸에 대한 열정’ 뿐이다. 

 동시에 ‘개백수’는 누구나 통과해야 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겪게되는 긴 취업 준비 기간 동안 무직 상태에 머무른다. 물론 취업준비생, 작가지망생 등은 표면상 ‘개백수’가 아닌 것처럼 보인다. 구직을 위해 노력하고, 자신의 꿈을 위해 끊임없이 글을 쓰는 사람들과 모든 것을 포기한 채로 현재만을 반복하는 자들의 사정은 다를 수 밖에 없다는 예상되는 반론에도 불구하고, 양자를 구별하는 것은 어려울 뿐만 아니라, 지극히 미묘한 지점에 머무른다는 바를 말하고 싶다. 계백순이 언제부터 가능성 있는 작가 지망생에서 ‘개백수’로 전락한 것인가? 이를 엄밀히 구별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사실상 무의미하다. 

 자신의 쓸모를 끊임없이 증명해야 하는 시장에서 ‘가능성’은 그 자체로 매력적인 자본이다. 각종 SNS에서 ‘입시’ 컨텐츠가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대학을 가기 위한 과정으로 여겨졌던 수능점수가 실물적인 힘을 발휘하고 있는 작금의 상황을 고려해보자. 무엇인가 될 가능성이 남아있다는 사실은 미래를 위한 담보로 현재를 무한히 반복하도록 만든다. 아직 직장에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에 누구보다 좋은 직장에 들어갈 가능성이 남아있으며, 아직 등단하지 않았기에 등단할 가능성이 남아있다. 즉 현재의 유보적인 가능성은, 확실한 미래보다 더 매력적인 것처럼 여겨져, 무엇인가 될 가능성이 남아있는 존재로만 머무르게 만든다. 가능성에 대한 환상은 도래하지 않을 미래에 대한 환상으로부터 무한히 현재만을 반복시킨다.

 더불어 계백순의 과거 또한 현실의 ‘백수’들과 많은 부분 겹쳐진다. 직장 상사의 부당한 괴롭힘으로부터 퇴사를 결정하고, ‘고졸 무스펙’도 할 수 있다는 웹소설 작가를 꿈꾸게 되는 계백순의 과거는 계백순의 현재를 충분히 이해하도록 만든다. 계백순이 작가의 가능성에 대해 놓지 않는 것은 과거 회사에서 당했던 부당한 일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현재를 회피하고 있는 것이라는 설명도 충분히 납득된다. 「무직백수 계백순」의 독자들은 계백순으로부터 과거의 자신을, 현재의 자신을, 그리고 미래의 자신을 보고 있다.


 한편 계백순이 이웃집에 사는 차여진에 의해 PC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길거리에서 만난 아픈 고양이를 보호하고 ‘딱콩’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양육하는 과정을 통해 계백순은 책임져야 할 일이 늘어나고 있다. 사회의 건전한 시민으로 복귀하는 과정을 구체적으로 그려내는 「무직백수 계백순」은 그 과정에 험난함이 있음을 부인하지 않는다. 구질구질함을 반복하는 계백순과 ‘백수 만화 그려 백수를 탈출했다.’는 작가의 말에서 알 수 있듯이, 「무직백수 계백순」은 백수의 지극히 현실적인 과정을 그려낸다는 점에서, 계백순을 비롯한 수 많은 백수들은 (적어도 웹툰 속에서만큼은) ‘쓸모’를 증명할 필요가 없어진다. 

 「무직백수 계백순」의 서사 구조는 ‘무쓸모’ 인간에서 탈출해 자신의 쓸모를 증명하여 건전한 시민으로 복귀하는 과정이라기 보다는, 백수가 필연적으로 겪게 되는 무기력함에서 탈출하고자 하는 과정으로 이해하는 것이 보다 타당한 해석이지 않을까? 그렇게 누워있다가는 평생 쓸모 없는 인간이 될 것이라고 협박을 자행하는 세상에 적응해야 한다는 논리에서 벗어나, 책임져야 하는 관계가 확장되어 가고 그 과정에서 확장되는 계백순의 ‘열정’에 집중하는 것이 「무직백수 계백순」를 정당하게 읽는 방법에 가까울 것이라는 비약을 독자들이 부디 납득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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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건

만화평론가
2023 대한민국 만화평론공모전 대상 수상
2022 대한민국 만화평론공모전 최우수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