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젊은 만화 속 눈에 띄는 백미(白眉)
웹툰은 모바일환경에 익숙한 젊은 세대를 타깃으로 기획된다. 젊은이가 공감하는 주인공, 선호하는 장르, 소재 등 이야기의 외피는 ‘백종원 레시피’처럼 젊은 대중의 입맛에 맞춰 표준화되었다. 어쩌다 노인이 주인공이라면 ‘회춘’이나 ‘회귀’ 키워드를 조합해 주인공을 젊게 만들어 그마저도 표준화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웹툰제작을 위한 안내서처럼 소위 ‘젊은 만화’가 당연하게 여겨지며 모 출판사의 ‘젊은 만화가’ 시리즈도 꽤 주목받는 요즘, 눈에 띄는 만화가 있다. 지난 10월부터 네이버웹툰에 연재 중인 림스 작가의 만화 <새동네>다. ‘오갈 데 없는 노인들이 산간벽지를 개간해 작은 마을 공동체를 이루며 사는’ 이곳에 신도시 재개발이 끼어들며 으레 짐작되는 갈등을 예상한다면 어느 정도 맞지만, 뜻밖에도 신파 없는 범죄느와르를 표방한다. 그렇다고 죽기 전 마지막으로 일탈하고 폭주하는 노인이 아니다. 불의를 지나치지 않고 악에 분노하는 강호의 영웅을 닮았다. 화려하게 반짝이는 젊고 멋진 주인공들 틈에서 익살스런 노인을 내세우는 자신감이 클릭을 유도한다. 이 리뷰는 독자들을 ‘새동네’로 부르는 초대장이다.
이혈치혈(以血治血) – 피는 피로 다스린다.
버스 한 대가 몇 시간에 한 번씩 승객들을 나르는 오지, 새동네. 이곳에 사는 노인들은 서로를 의지해 살아가는 운명공동체다. 현란한 몸빼바지, 촌스러운 파마머리에 사투리를 쓰며 과격한 말과 행동을 서슴지 않는, 미디어에서 종종 등장하는 희화화된 시골 노인과 비슷하다. 마을의 리더 격인 신기우 할아버지, 옥 삼총사 자옥, 강옥, 순옥 할머니들과 기우의 손녀 공주, 물리치료사 민기 등 외관상 평범하고 순박한 이들이 새동네 주민이다. 노인들은 새동네에 흘러들어오는 이방인과 맞서다 정체를 드러낸다. 젊은 적 신기우를 필두로 컴퍼니를 만들어 킬러들의 킬러로 활동했던 것. 각자 가공할만한 살상 기술로 어둠의 세계에서 이름을 날렸던 이들은 자타공인 인간 살수들이다. 이제 험한 과거는 묻어두고 새동네에서 평화로운 노년을 보내는데, 땅을 빼앗을 목적으로 전방위로 위협하는 깡패들을 몰려든다. 복수는 복수를 부르며 예상밖에 비극을 낳고, 이는 더 큰 복수의 동기이자 이야기의 원동력이 된다. 특히 전성기에 필적하는 기술과 지략으로 펼치는 자비 없는 무정한 혈투는 적대자를 향한 동정심을 일으킬 정도다. 노인이라고 우습게 봤다간 훼손되거나 손실된 육체를 회복시키기 바쁠 것이다. 꼭대기 층에서 내려다보는 최종 보스의 돈이 마르지 않는 한 불나방들은 세동네로 몰려올 것이다. 다행인 건 무법지대라서 공권력이 끼어들 틈이 없으므로 주인공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저 마음 편히 액션을 즐기면 된다.
| 만화적인 만화
만화 <새동네> 댓글 창엔 영상화될 것 같다거나 됐으면 좋겠다는 독자들의 의견이 종종 올라온다. 이젠 인기 있는 만화가 영상으로 제작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지만, 한편으론 이야기의 흥행성을 웹툰이라는 매체를 통해 검증받는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러나 이런 댓글은 이야기 산업에서 웹툰의 위상이 높아진 현 세태를 반영한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만화 <새동네>는 만화적인 연출과 묘사가 최적화된, 만화 자체로 즐기기 좋은 작품이다. 가령, 15세 이용가로 잔혹한 장면이 제법 등장하는데, 만약 친근한 그림체가 아닌 극화였다면 어땠을까? 선혈이 낭자 하는 장면을 너무 디테일하게 묘사하면 거부감이 들 텐데 이를 적당히 희석하면서 개그 + 범죄느와르 균형을 유지하며, 리얼리티를 조금 덜어낸 펑키한 묘사 덕분에 노인의 몸으로 전달되는 액션을 수긍하게 한다. 젊은 육체에서 뿜어내는 에너지와는 다르지만 노인 특유의 꼿꼿함과 노련함, 쌓인 분노가 터뜨리는 폭발력이 가슴을 찡하게 만든다. 만화 <새동네>는 이제 막 시작했다. ‘젊은 만화’는 아니지만 매 에피소드마다 밀도 높은 감정과 신박한 액션을 선보이며 독자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만화 <새동네>는 ‘새 만화’임엔 틀림없다. 노인들의 서사는 장기화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