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천적 얼간이들
2012년, 한 웹툰이 네이버웹툰에 데뷔했다. 제목은 <선천적 얼간이들> 작가는 가스파드였다. 원래 도전만화 때 제목은 <Natural born Idiots> 였으나 한글화됐다. 당시로썬 수가 적어지던 장르인 일상물이었고, 독자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특유의 과장된 표현과 원본과 상황을 잘 어울리게 섞어낸 패러디, 그리고 세밀하고 섬세한 작화로 네이버웹툰 대표 일상물로, <마린 블루스>와 <낢이 사는 이야기>, <생활의 참견>, <마음의 소리>를 잇는 대한민국 대표 일상물로 자리잡았다.
이 작품의 또 한 가지 특징은, 등장인물, 그리고 그들과 얽힌 일이 흔치는 않았다는 점이다. 일상물은 제목답게 일상을 다루는 웹툰이고, 따라서 다른 장르의 웹툰이 그려낼 에피소드를 상상할 때, 일상물은 그려낼 에피소드를 기억해 내야 한다. 상황에 따라선 평범한 에피소드에 과장을 섞어서 웃기는 경우도 많다. 반면에 선천적 얼간이들은 남들이 겪기 힘든 독특한 일을 다룬 에피소드가 많았다. 물론 평범하게 주변 사람들의 독특한 습관, 일하면서 만난 독특한 손님 이야기 등을 다루기도 했지만, TV에 나오고 싶어 생중계 중인 야구장에서 대형 깃발을 계속해서 흔든다거나, 영화 보고 자극받아 자전거로 전국일주를 도전하고, 일부러 조촐한 컨셉으로 찍은 UCC 영상이 공모전에서 2등을 하고, 이상한 노숙자에게 걸려 고생하고, 어릴 적 목욕탕을 가다가 불량배에게 돈을 강탈당했는데 마침 집에 휴가 온 큰형이 있어 불량배에게서 돈을 되찾았다거나, 원고 작업 도중 친한 형들에게 납치(?)당해 부산에서 강원도로 강제로 놀러 가는 등 흔치 않을 일을 겪었다. 이러한 에피소드들을 재미있게 풀어냈고, 독자들은 “아니 이런 일을 겪는 일이 있다니!” 하며 재밌어했다.
거기다 선천적 얼간이들이 잘 살린 재미는 이뿐만 아니다. 일상물에서 가장 중요한 ‘공감’ 도 잘 살렸다. 한 사람이 실제 겪은 일을 보여주는 만큼, 우리는 그런 비슷한 일 또는 상황에서 상상한 것을 떠올리면서 등장인물에게 공감하는 재미를 준다. 선천적 얼간이들은 뉴스 기사로 찾을 수 있는 사건을 다룬 경우가 잦다. 가령 문 닫기 전의 성지곡유원지, 상황이 안 좋던 부산 어린이대공원, 붉은 악마에 열광하던 2002년 월드컵, 밀물 때문에 도중 취소된 부산 국제 록 페스티벌 등 사람들이 관련 기사를 쉽게 찾아볼 수 있고, 당시 비슷한 일을 겪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가 있어 사람들의 공감을 더 자아낸다. 여기에 더해 단행본에서는 당시 찍은 사진들까지 전해줘서 “저 사람들은 정말 재미있는 삶을 살았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스크롤을 내리면서 한 번 더 웃음을 뽑아내는 작가의 말은 덤이다. 29살이라는 다소 늦은 나이에 웹툰 작가로 데뷔한 가스파드 작가는 이렇게 대한민국의 유명 일상물 웹툰 작가로 이름을 날렸다.
아쉽게도, 일상물 대부분이 그렇듯이 선천적 얼간이들은 소재의 한계에 부딪혔다. 연재를 시작한 지 약 1년 4개월 만에 선천적 얼간이들은 완결됐다. 이후 작가는 또 다른 명작인 <전자오락 수호대>로 복귀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일상물이 아닌 코메디와 판타지 드라마 장르였다. 과거와 달리 SNS가 발달하면서 일상에서 겪은 일을 단순히 말로 풀어내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일상에서 겪은 재밌는 일들이 계속해서 올라오자, 가스파드 작가가 겪었던 일들을 떠올리며 새로 재밌는 일을 겪어보지 않았을까 하며 새 에피소드가 올라오길 바란 사람들도 많았다. 가스파드 작가가 은근슬쩍 시즌 2에 대한 복선을 몇 번씩 던지기도 해 사람들이 더 기대했다.
그러다 원작이 끝난지 거의 10년 만인 2023년 8월, 가스파드 작가는 마침내 시즌 2로 복귀했다. 시즌 2 프롤로그부터 ‘이전과 달리 나이를 먹어 재밌는 에피소드가 부족하다.’ 말했으나, 결혼식을 위한 특별 공연 연습 도중 결혼식장에 소리가 은은하게 울려 퍼지는 걸 발견하고 공연 연습은 내버려두고 메탈을 연주했다거나, 장롱면허로만 살아서 다시 운전을 배우면서 겪은 일들, 아이스크림 호떡을 먹고 싶다는 이유로 부산에서 강원도까지 운전해서 가고, 홧김에 세명이서 영덕으로 놀러갔다가 발견한 낡은 야구 배트로 신나게 노는 등 재밌는 에피소드로 가득했고, 등장인물들의 과거 얘기 중 시즌 1에선 미처 다루지 못했던 얘기, 새로운 등장인물 등 재밌는 이야기로 가득했다. 패러디도 여전했고, 새로운 독자들에게 맞춰 최신 컨텐츠를 패러디 한 경우도 많았다. 한가지 또 재밌는 점은, 등장인물들이 10년간 나이를 먹으면서 겪는 일들이 여행, 군대, 여흥 등의 이야기에서 회사일, 운전, 연애 등으로 옮겨갔는데, 독자들도 같이 10년간 나이를 먹었기에 여전히 공감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이렇게 또 다시 제 2의 전성기를 이끌던 선천적 얼간이들은 아쉽게도, 30화 만에 완결을 맞이했다. 시즌 1의 절반도 안되는 분량이었다. 작가와 주변 인물들이 나이를 먹었고, 회사와 집을 반복하는 삶을 살다보니 재밌는 에피소드들을 뽑아낼 수 없었다고 한다. 그렇게 뽑아낸 30화의 에피소드들도 여전히 시즌 1 만큼 재밌었으나, 독자들은 네이버 대표 일상 웹툰이 다시 한번 우리 곁을 떠난다는 것에 안타까워 했다.
선천적 얼간이들 시즌 3가 나올 수 있을까? 어쩌면 시즌 1과 2에서 다루지 않았던 또 다른 이야기를 다루거나, 연재를 쉬는 중인 작가가 다른 일을 하면서 겪은 일을 다룬 시즌 3가 나올수도 있는 일이다. 하지만 나올 것인가에 대해선 가스파드 작가만이 알 것이다. 가스파드 작가는 현재 연재를 쉬는 중이다. 작가가 선천적 얼간이들 시즌 3로 복귀할지, 아예 새로운 웹툰으로 복귀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개인적으로는 선천적 얼간이들을 일상물, 개그 만화 중에서 가장 재밌게 본 만큼, 언젠간 시즌 3로 다시 복귀해주길 바란다. 언젠가 복귀하게 될 그 날을 기다리며, 나는 오늘도 선천적 얼간이들을 1화부터 다시 정주행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