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래곤볼>의 추억
<드래곤볼> 80~90년대를 풍미한 최고의 인기 만화. 완결된 지 30년이 지난 지금도 다양한 스핀오프 작품들이 연재되고 있고 만화. 설사, <드래곤볼>은 잘 몰라도 ‘원기옥’, ‘에네르기파‘ 정도는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하거니와 심지어 ‘드볼하다’ -몽땅 다 모으다- 라는 신조어까지 탄생시킨 만화. 얼마 전 외부 매체로부터 담당 편집자라는 이유만으로 이런 대작을 간단히 소개해달라는 요청받았을 때의 그 난감함이란…!
<드래곤볼>은 어렸을 적, 정확히 말하면 만화를 보기 시작하던 때부터 좋아하던 만화였다.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프리저 편’까지만 읽었다가 전권을 정독하게 된 것은 서울미디어코믹스에 입사한 후였다. 운 좋게도 <드래곤볼 신장판>이 발매되고 있던 시기여서 새 번역과 판본으로 전권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 있었던 것이다.
고백하건대, 처음부터 <드래곤볼>을 꼭 정독하리라 마음먹은 것은 아니었다. 완결된 지 24년이나 지났고 무엇보다 42권이나 되는 볼륨에 압도당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얼마 후, <드래곤볼>을 손에 쥐고 놓을 수 없었던 이유가 생겼는데, 그것은 바로 단 하나의 캐릭터! <드래곤볼 신장판> 마지막 7세트(37~42권) 출간을 남겨두던 시점에 본문 교정 교열 작업을 진행하던 중, ‘오천크스’를 ‘트랭크스’로 전부 체크해 버렸던 것이 출발점이었다.
계속해서 등장하는 ‘오천크스’에 혹시 내가 무언가를 놓치고 있나 싶어 앞 권들을 부리나케 읽어보았다. 이 캐릭터는 최후 반 부에 등장하는 ‘퓨전’이라는 기술로 마찬가지로 후반부에 등장한 ‘오천’이라는 캐릭터와 이름만 알고 있던 ‘트랭크스’가 융합한 것. 뿐만 아니라, 내가 미처 읽지 못한 부분에서 등장한 캐릭터들의 간단하게는 이름과 모습, 더 나아가서는 서사와 활약을 알지 못해 생기는 간극이 커 최대한 빨리 <드래곤볼>을 봐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게 해주는 경험이었다.
그렇게 읽기 시작한 <드래곤볼>은 완결이 난지 30여 년 지났음에도 설정은 신선했고 캐릭터는 생동감이 넘쳤으며 스토리는 흡입력이 강했다. 그뿐이랴, 액션은 화끈하고, 연출은 무서울 정도로 세련되고 압도적이었다. 이미 알고 있던 부분에서는 무릎을 '탁' 치며 ‘아, 이런 장면, 이런 변신이 있었지!’라는 추억여행은 덤! 총 42권이나 되는 엄청난 분량을 지치지도 않고 한 번에 읽어나가면서 어째서 더 일찍 읽지 않았는지 아쉬울 뿐이었다. 아니, 늦게나마 <드래곤볼> 전권을 만났다는 게 기쁘면서도 부끄러울 따름이었다.
<드래곤볼>은 꺼지지 않는 인기와 생명력이 증명하듯 여러 판본이 다양하게 나와 있다. 정발 된 판형만 ‘완전판’, ‘풀컬러판’, ‘총집편’, ‘신장판’이 있고 각 판마다 개성이 확실해 어느 것을 보아도 <드래곤볼>의 참맛을 즐길 수 있다. 하지만 만약 누군가 내게 이 수많은 판본 중 가장 인상 깊게 본 판본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나는 주저 없이 <드래곤볼 초오공전 ~총집편~>를 꼽을 것이다. 잡지 크기의 사이즈와 엄청난 페이지에서 나오는 압도적인 박력이 남다르기 때문이다.
토리야마 선생이라 하면 <드래곤볼>이 가장 먼저 떠오를 것이다. 그러나 <만한전석>, <네코마인>, <카지카>, <카츠라 아키라> 등 <드래곤볼>의 세계와 간접적으로 이어지는 이야기, 또는 ‘드래곤 월드’가 본격적으로 태동하기 전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걸작 단편집도 빠뜨릴 수 없다. 이외에도 <드래곤볼>을 좋아하는 소년이 <드래곤볼> 비운의 캐릭터 야무치에게 빙의한 <전생했더니 야무치였던 건>이나 <드래곤볼 슈퍼>의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주고 있는 쟈코가 주인공인 <은하패트롤 쟈코>, 귀여움과 코믹함을 살려 <드래곤볼> 시리즈의 또 하나의 즐거움을 주는 <드래곤볼 SD> 등의 공식 스핀오프 작품들도 <드래곤볼>을 보다 폭넓게 즐길 수 있게 한다.
현재 <드래곤볼>의 세계는 공식 후속작인 <드래곤볼 슈퍼>로 이어지고 있다. <드래곤볼 슈퍼>는 <드래곤볼>에서 미처 볼 수 없었던 캐릭터들의 다양한 면모가 등장해 익숙한 캐릭터에서 새로운 모습을 보는 즐거움이 새롭다. 박진감 넘치는 호쾌한 액션과 <드래곤볼 슈퍼>에서 첫 등장한 캐릭터들의 활약도 신선하다. 이른 연차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의 담당 편집자란 중책이 맡겨졌을 때의 놀람과 두려움에 휩싸여 한동안 불안했던 나날들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담당이 되고 난 후, 첫 잡지 연재분이나 단행본 출간을 진행할 때 훌륭한 작품에 누를 끼치지 않을까 안절부절못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드래곤볼>이 오랜 세월이 흘러도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는 건 좋은 작품에 걸맞은 열정적인 독자님들 덕분일 것이다. 그들이 보내준 열정적이고 변함없는 애정에 토리야마 아키라 선생님도 그 어디선가 감사하는 마음으로 지켜보시리라. 앞으로도 <드래곤볼>은 새로운 모습, 다양한 감동으로 우리 앞에 나타날 것이라 기대한다. <드래곤볼>이란 큰 선물을 우리에게 남기고 떠나신 토리야마 아키라 선생님께 깊은 감사와 경의를 보낸다. 그리고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