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골동품, <마음의 소리(였던 것)>
웹툰 시장의 성장을 이끈 일상툰
웹툰의 발전사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장르를 단 하나만 뽑아야 한다면 높은 확률로 일상툰을 뽑을 수 있을 것이다. 일상툰은 스마트폰이 등장하기 이전부터 웹툰 시장의 기둥으로써 그 역할을 해왔다. 2001년 정철연 작가가 개인 홈페이지를 통해 연재하기 시작한 <마린블루스>가 흥행하며 일상툰의 역량을 증명한 데 이어, 2004년 박종원 심윤수 작가가 네이버 웹툰에 <골방환상곡>을 연재하며 일상툰이 포털 사이트의 트래픽을 담당할 수 있을만큼 강력한 파급력을 지닌 서비스라는 점을 입증했다. 그리고 2006년 네이버 웹툰에서 연재된 조석 작가의 <마음의 소리>는 네이버 웹툰을 단순한 포털 서비스가 아닌 하나의 브랜드로 만들며 일상툰의 지위에 쇄기를 박았다. <마음의 소리>는 2006년부터 2020년까지 14년 동안 1238화가 연재되었으며, 문자 그대로 한 세대를 풍미했다.
<마음의 소리>는 일상툰이 가진 파급력과 특징을 모범적으로 계승한 사례 중 하나였다. 패러디를 중심으로 구성된 가볍고 빠른 흐름의 유머와 사회 이슈들을 적절히 버무린 캐주얼한 서사는 스마트폰의 보급과 함께 가볍게 짚고 내려놓을 수 있는 스낵컬처로서 웹툰의 위상을 공고히 다졌다. 이는 웹툰이라는 매체로 카테고리화 되는 일상툰과 만화라는 매체로 카테고리화 되는 에세이툰의 결정적인 차이였다. 가령, 1997년부터 2002년까지 조선일보에서 연재된 박광수 작가의 <광수생각>과 1998년 개인 홈페이지를 연재되었으나 일상툰으로 넘어가지 못한 권윤주 작가의 과도기적 에세이툰 <스노우캣>이 문학적인 톤앤무드로 무게감을 덜어내지 않았던 것과는 큰 차이가 있었다.
유산으로 재소환된 <마음의 소리>
그러나 14년이라는 시간의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듯이, <마음의 소리> 역시 웹툰이라는 매체를 대표하는 아이콘이자 일상툰의 상징으로서 무게감을 더해갔다. 특히 웹툰을 진지하게 연구 대상으로 바라보는 콘텐츠 및 문화연구자들과 만화애호가들에게 <마음의 소리>가 완결 이후 보인 행보는 흥미로운 주제이자 관점을 제공했다. <마음의 소리 시즌2 : 너는 그냥 개그만화나 그려라>(이하 ‘<마음의 소리 시즌 2>’)는 작가의 가벼운 회고이자 추억으로 소셜미디어에 등장했던 회고적 창작물이 독자들의 반응을 경유하여 소셜미디어 매체에서 다시 플랫폼에 안착하는 모습은 뉴미디어 시기에 태어난 창작물이 독자들에 의해 권위를 얻어 특정한 시대의 유산으로 다시 소환되는 광경이었다.
올해 2월 20일부터 네이버 웹툰에서 연재되고 있는 <마음의 소리(였던 것)> 역시 <마음의 소리 시즌 2>의 연장선에서 그 출현의 의의를 고민해볼 수 있다. <마음의 소리(였던 것)>을 특별하게 만드는 요인 역시 작품의 중심이 <마음의 소리>를 연재하던 시절에 대한 작가의 회고에 있다는 점이다. 특정한 웹툰에 대한 회고와 추억이 플랫폼에 의해 공인되는 경우가 적은만큼 <마음의 소리(였던 것)>은 <마음의 소리>가 얼마나 강한 임팩트를 가지고 있었는지 증언하는 또 하나의 사례로 이해할 수도 있다.
진정성에 대한 노스탤지어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마음이 소리(였던 것)>을 지나간 과거의 흔적을 자양분 삼은 오늘날의 파편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이러한 유산이 지속적으로 재소환하는 것은 어째서일까. 가장 간단하게는 지그문트 바우만이 지적했던 ‘레트로토피아’(레트로와 유토피아의 합성어로 과거를 유토피아 삼으려는 사회적 경향을 일컫는다)와 같은 현상의 일부라고 생각해보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폭발적으로 성장하던 시기를 지나, 더 이상 웹툰 산업 역시 과거와 같은 성장세를 보이기 어려워진 시대에 대한 전조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있었던 것에 대한 확신을 통해 진심을 확인하고자 하는 미디어 소비자들의 소비 형태 혹은 진정성에 대한 향수처럼 생각되기도 한다. 웹툰의 산업화와 함께 이윤 창출을 목적으로 창작활동을 하는 시도들도 일반화 되었으며, 노력에 대한 보상을 이윤을 치환하는 것 외의 긍정적인 가능성을 따져보기 어려운 때라는 점은 부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14년이라는 시간 동안 끊임없이 창작을 지속적으로 일궈왔던 모습에서 이윤 창출 이상의 것을 상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그만큼 <마음의 소리>가 꾸준히 재소환되는 것은 아이콘에 대한 소비 혹은 향수를 넘어 만화가가 쏟아넣은 시간에 대해 진정성을 파편으로나마 소비해보려는 시도일 수도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