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격한 자의 설명
0. 조커와 「불합격 인간」
△ 불합격 인간 1화 中 출처 : 카카오웹툰
Sepia 작가의 「불합격 인간」은 (적어도 초반부는) 완벽한 ‘디씨감성’이다. ‘디씨감성’은 ‘이 글을 쓰는 나도, 이 글을 읽는 너도 사회에서 탈락한 인간일 뿐이다.’라는 남초 커뮤니티(특히 디씨인 사이드)에서 공유되는 신념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현존하는 한국 최대의 남초 커뮤니티에서 공유되는 신념이 자조인 것과, 이에 대한 상반된 평가는 토드 필립스 감독의 「조커」로부터 촉발된 ‘인셀남(involuntary celibate, 비자발적 독신주의자)’ 논쟁을 떠오르게 만든다. 각종 혐오를 일삼는 ‘인셀남’의 구차한 자조를 듣고 싶어 하지 않은 마음은 김혜리 영화평론가가 가장 잘 요약하고 있는 듯 싶다. 김혜리는 (http://www.cine21.com/news/view/?mag_id=94097 -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웃는 남자 ) “아서가 파괴적 인물이 되어가는 과정의 불가피성을 설득하기 위해 지나치게 열심”이라는 평가와 더불어, “아서 플렉을 변명하려고 시도할 때마다 구차”해진다고 일축한다. 「조커」를 두고 ‘찬반 논쟁’까지 펼친(무엇을 찬성하고 반대한다는 것일까? 조커의 영화적 성공에 대해? 혹은 ‘인셀남’의 정당성에 대해?) 김병규 영화평론가 또한 「조커」가 ‘파렴치하게 반동적’이라거나, (http://cine21.com/news/view/?mag_id=94059 - 김병규 : <조커>의 폭력, 엉성한 난장) ‘광기에 물든 세계의 폭력이라는 기획의 실패를 찍는 것조차 실패한 사례’라는 평가로 일축한다.
「불합격 인간」의 주인공인 ‘&&’는 아서 플렉과 같은 극적이고 폭력적인 인셀남이 아니라, 「조커」를 인생 영화로 뽑을 것 같은, (비록 직접적으로 그러한 묘사는 등장하지 않았지만) 지극히 한국적인 ‘인셀남’이다. ‘&&’는 각종 커뮤니티를 전전하고 게임에만 몰두한다. Sepia 작가의 전작인 [9급 공무원]의 주인공도 상황은 비슷하다. 유일한 차이점은 이현재 평론가가 (https://www.kmas.or.kr/webzine/review/2022120071 - 이현재 : <불합격인간> - 공포를 버리고 메이저로 올라온 ‘엠생도살기’) 지적했듯이 비극적 결말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 뿐이며, 카카오 웹툰에 정식 연재 기회를 부여받은 것은 그 비극적 결말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Sepia 작가가 공식적인 플랫폼에 연재하기 이전에 그린 만화의 주인공들은 결말 부분에서 대부분 자살한다.) 불행보다는 희망적인 결론으로 나아가거나 주인공의 성장을 택한 「불합격 인간」의 결말은 과잉적 낙관이라는 점에서 오히려 독자들이 무엇을 두려워하는 지를 선명하게 제시한다. 모든 독자들은 ‘&&’이 처해질 현실적인(또는 비극적인) 결말을 보고 싶어하지 않는다. 모든 독자들은 사회에서 탈락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실소가 터져나올만큼 끔찍한 만화의 세계가 독자들의 현실일 리 없다. …… 「불합격 인간」은 악인에게 서사를 부여하지 말라는 시대적 요구에 의문을 던지며, 악인조차 될 ‘능력’이 없는 한심하고 쓸모 없는 ‘&&’의 서사를 통해 쓸모있는 인간에서 탈락하는 것의 두려움뿐만 아니라 탈락한 인간의 자기-자신에 대한 말하기가 얼마나 끔찍한 일이면서 쾌락적인지 증명한다. 「불합격 인간」이 ‘불쾌하다’고 말하는 자는 쉽게 찾아볼 수 있어도, ‘재미없다.’고는 말하는 자는 드물다.
1. ‘소수자 정체성’ 없는 소수자
어떠한 외부적 요인도 없이 자기 자신의 무능력함과 의지박약에 의해서 실패한 구제불능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필요한 이유는 ‘불편한 공감’, ‘동기부여’와 같은 도구적 쓰임새에 있지 않다. 한 연극 작가가 말했듯 그들은 언제나 거기에 있음에도 ([우리는 농담이(아니)야 – 이은용 희곡집], 제철소, 머리말) “아무도 내 이야기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적어도 내가 이해하기에 소수자 이론의 가장 주요한 테제는 “누구라도 소수자적인 경험을 할 수 있고, 그 경험을 보편화하는 것”이다. 즉, 누군가가 ‘한국 남성’이더라도 소수자적인 경험은 언제든 할 수 있고 소수자적인 경험을 보편화시킬 수 있다. 더불어 나는 소수자적인 경험을 실패, 수동성, 우울, 불안으로 이해한다. 자긍심과 긍지를 야기하는 언어보다, 모욕과 욕설을 수반하는 언어가 ‘소수자’를 그리는 데 가장 정확하다고 믿고있다. 그런 의미에서 「불합격 인간」을 소수자 웹툰으로 분류하는 것까지는 무리더라도, 유사-소수자적인 웹툰으로는 분류할 수 있지 않을까?
2. 만화 아마추어리즘
△ ‘광후는 추석이 싫다’ 中 출처 : DCinside
더불어, (정식 연재한 만화는 아니지만) ‘덕광후’ 시리즈에 대해 짧게 언급하고 싶다. Sepia 작가의 만화와 비슷한 장르로서, ‘광후는 추석이 싫다.’와 ‘광후는 설날도 싫다.’ 시리즈에서 보여주는 ‘덕광후’의 모습은 소수자적인 경험, 즉 가족들과의 관계에서 완벽히 소외된 인물을 가장 현실적으로 그려낸다. 백수에서 비롯하는 무력함과, 그 무력함을 정당하게 해소할 능력도 없는 인물이 스스로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유는, 어디론가 나아가기 위해서가 아니다. 오직 그것만이 스스로를 위해 생산할 수 있는 쾌락이기 때문이다.
한편 Sepia 작가의 작품들과 ‘덕광후’ 작품들의 작화는 분명히 일반적인 만화들의 작화에 비해 부족하다. 능력의 부재 또는 결여는 최근 논의되고 있는 ‘아마추어리즘’과 관련된다. 예술에 일정한 형식 또는 자격을 부여하고, 그 자격에 부합하지 않는 작품들에게 ‘공식적 승인’을 부여하지 않는다면, 그 ‘공식적 승인’을 부여받지 않은 자들은 예술에서 탈락하는 것일까? 우리에게 시급한 것은 (비록 인기는 없지만) 예술을 인식하는 기본적 단위를 확장하는 일에 있지 않을까? 그것은 이여로 작가의 말처럼 ([시급하지만 인기는 없는 문제: 예술·언어·이론], 이동휘·이여로, 미디어버스, 2022, 129p) “가장 약탈적인 방식, 도둑질, 경박함, 가벼움, 정확하지 않음”에 의해서 가능할 것이며, 예술이론과 마찬가지로 만화 또한 언제나 ([시급하지만 인기는 없는 문제: 예술·언어·이론], 이동휘·이여로, 미디어버스, 2022, 112p) ‘자기 자신에 대해 말하고’ 있음을 알 때 가능할 것이다.
우리는 (한국) 사회에서 불화하는 자가 스스로를 위한 쾌락을 생산할 때 어떤 이야기가 가능한지를 「불합격 인간」과 ‘덕광후 시리즈’로 보고 있다. 그것은 「조커」에서 등장한 극적인 폭력의 ‘이후’이며, 따라서 지금 여기서 반복되고 있는 현재다. ([헤테로토피아] 미셸 푸코, 문학과지성사) “하는 일 없는 삶 자체가 지속적인 일탈”이 된 시대에서, 끊임없이 사회에서 밀려지거나, 밀려나거나, 바깥으로 나가는 삶은 언제나 있고, 그 삶들이 우리에게 끊임없이 유출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