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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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일그러진 사랑꾼

장풍전 (글, 그림 신영우 / 네이버웹툰 연재) 리뷰

2024-05-28 신경진

우리들의 일그러진 사랑꾼

1. 장풍과 블랙 코미디의 향연

  웹툰 <장풍전>은 어느 날 우연히 내공수련이 담긴 고문서가 발견된 후그 고문서대로 수련하여 공력을 갖게 된 이들의 호승심과 욕망을 그린 현대판 퓨전 개그 무협물로, <키드갱>과 <도망자>로 이미 작품성을 인정받은 신영우 작가의 신작이다.

  작품의 주된 내용은 공권고수의 모범경찰이었던 강무호가 은둔 고수의 장풍을 경험하고 에 대한 갈증을 주체하지 못해 비급으로 알려진 사승곤초려심법강아침구술을 익혀 현대 무림을 정벌해 나가는 이야기다. 그리고 그의 곁엔 꿈틀대기만 하는 지렁신공의 해룡이와 쇠처럼 단단해지기만 하는 쇠신체를 보유한 진용이가 깃털만큼 가벼운 의리로 강무호와 같이 온갖 개그를 유발하며 약방의 감초처럼 장풍전의 조연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특히 해룡이와 진용이는 <키드갱>의 씬 스틸러 더리아트를 연상시킬 정도로 그들과 비슷한 격투 방식을 보여주는데, ‘강함에 중점을 두기보단 기술 이름을 정확하게 재현하는 것에 목적을 두고 있어, 작가의 이전 작품들을 탐독했던 독자들은 오랜만에 고향의 향수 같은 정겨운 블랙 코미디를 음미할 수 있다.

  제목 ‘장풍’의 내력은 ‘통배권’과 ‘발경’이란 무예로부터 그 흔적을 조금이나마 발견할 수 있는데, 중국무술 황금시대의 마지막 증인 이중헌 선생은 자신의 구술서인 <흘러간 무림>에서 “조만상이란 사람은 통배권을 수련하여 절정에 이르러 돌로 만든 비석을 타격하여 윙윙 소리가 울려나게 할 수 있었다.”고 증언하였으며 훗날 그러한 통배권을 증명이라도 하듯, 절권도의 창시자 ‘아뵤! 이소룡’ 선생이 전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무적의 발경을 펼침으로써 장풍에 대한 ‘염원’은 지금까지 이어지게 된다.

  물론 통배권과 발경은 상대방 신체에 직접 타격을 가하는 무술이기에, 무협만화 <해와 달>에서처럼 괴인 만무득이 빗물로 시전한 장풍의 보다 근원적 형태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하지만 격조 높은 한국 전통 무예인 본국검법수박,’등을 총망라한 무예도보통지에도 를 이용한 검기 수련이나 장풍 수련법은 오늘날까지 전해진 바가 없어, 지금으로선 장풍에 가장 근접한 무예로 통배권과 발경 외엔 전무하다.

2.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장풍전엔 세 부류의 집단이 대립한다. 표면상 좋은 놈들인 정부산하기관의 초월팀과 무극신권 장 회장을 필두로 한 나쁜 놈들의 흑룡회, 그리고 강무호, 해룡이, 진용이, 망치, 정철완으로 구성된 이상한 놈들이 있다. 회를 거듭할수록 세 집단 간의 얽히고설킨 실타래를 풀어가는 치밀함은 안개에 가려진 일망무제를 바라보는 만큼이나 흥미롭다. 초월팀과 흑룡회 간의 선과 악의 단순한 이분법적 대립으로 치우칠 수 있었던 상황에 이상한 놈들을 끌어들여 선악의 경계선을 무너트린 의도 역시 가히 독보적이다.

  이 중에서 가장 눈여겨볼 집단은 단언컨대 강무호가 있는 이상한 놈들이다. 전동기전을 익힌 망치 정수현은 어떤 과거의 악연으로 흑룡회와 싸우는지 정확히 밝혀진 바가 없으며, 최강을 꿈꾸며 후학을 기르지 않는 금력공의 대가 정철완도 무슨 변덕으로 해룡이와 진용이를 수련시키는지 속내를 가늠할 수가 없다. 강무호는 그저 존재 자체가 일그러져있어 이상한 놈들과 어울려도 큰 무리가 없지만, 작품의 흐름상 끝내 속을 알 수 없는 이 이상한 놈들이 장풍전의 판도를 크게 뒤흔들 것은 분명하다. 또한, 중반으로 접어든 지금 소위 싸움 좀 하는 놈들만 작중 남아 있어서 작품 초반에 그려진 무극신권의 장 회장과 금력공 정철완의 공력 싸움이 촌극에 불과할 정도의 거대한 전투가 예상되는 바다.

  그리고 아직 등장하지 않은 배우들도 몇이 더 있다. 대표적으로 자하신권의 달인으로 예상되는 초월팀의 대장과, 비급 수라수를 익힌 그 누군가. 어느 시점에 나타나 장풍전을 어지럽게 수놓을지 아직은 알 수 없으나, 늦게나마 등장해 진정한 무의 우열을 가릴 수 있다면, 오오, ‘그거슨그것대로 즐겁지 아니한가.

 3. 일그러진 사랑꾼, 강무호

  그러나 한 가지 우열을 가릴 수 없는 것이 있으니, 바로 블랙 코미디다. 강무호는 난무하는 개그 속에 무소의 뿔처럼 악마의 혀를 놀리는 것도 마다치 않는 뼛속까지 일그러진블랙 코미디의 대가로, 진정 해룡이와 진용이의 개그를 능가한다. 일례로, 유쾌, 상쾌, 통쾌 권법을 보유한 망치파 행동대장 삼쾌장 쾌민수를 처리하고 마주친 정수현과의 첫 만남에서 그는 대화를 통해 해결하겠다며 다짐해 놓곤 참수하겠다’, ‘내장을 뽑아버리겠다는 등의 막말을 내뱉어 수현이는 어안이 벙벙해져 미간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는데, 강무호의 일그러짐에 광기가 서려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장면이다.

  무엇보다 이 첫 만남은 수현이와 의 시작을 알리는 속뜻도 담겨 있어 꽤 주요한 부분이다. 이때부터 둘은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란 속담처럼 대련을 핑계로 매일 피 터지는 사랑(?)싸움을 시작하기 때문이다. 재밌는 점은 강무호의 전직 신분은 경찰이고 망치는 전직 건달인데 전직 경찰의 일그러진 입담과 행동이 나올 때면 전직 건달이 다정하게 뚜까패며 거하게 사랑을 키워간다는 점이다. 장풍전은 내내 이러한 아이러니를 캐릭터에 몰아붙여 블랙 코미디의 정수를 만들어낸다. 어떻게 보면 가장 일그러져 있는 건 사실 작가일지도.

  어쨌든, 장풍전의 결말과 더불어 둘의 결말도 초미의 관심사가 되었지만, 독자들은 너무 걱정하지 마시라. 우리들의 일그러진 사랑꾼, 강무호가 궁극의 통배권, ‘장풍을 발동해 수현이의 삶을 구원할 테니 말이다. 그리고 그 장풍은 멀리 날아가, 수현이의 근심 어린 미간마저 펴줄 것이다. 결국, 모든 무협지는 사랑 이야기에 불과하니깐.

필진이미지

신경진

만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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