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두 존엄한 가문이 있으니…
(※ 셰익스피어의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 1막 1장의 코러스 부분.)
주어지지 않은 성별을 연기함으로써 자유를 얻는 얘기 자체는 드물지 않다. 거슬러 올라가면 홍계월전이나 방한림전과 같은 고전 소설이 있고, 네이버 웹툰인 <녹두전>은 과부로 위장한 남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하지만 그들은 대개 성별에 따른 사회적 제약을 극복하는 일에 관심이 있지, 다른 성별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별다른 정체성의 혼란을 경험하지는 않는 것 같다.
하지만 개인의 수행과 정체성을 칼로 베듯이 분리한다는 게 항상 가능한 일일까? 내가 나라고 믿지 않는 어떤 모습을 연기하면서 나는 언제까지고 나에 대한 일관된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을까?
△ <비밀 줄리엣> 15화
<비밀 줄리엣>의 주인공인 줄리엣은 셰익스피어의 원작에서와 달리 남자아이다. 모종의 이유로 캐퓰렛 가의 가주이자 줄리엣의 어머니 레이디 캐퓰렛은 딸을 원하지만, 계속해서 남자아이가 태어나자 줄리엣을 딸로 둔갑시키고 사람들의 눈이 닿지 않는 외딴 탑에 가둔다. 자신이 남자라는 걸 들키지 않기 위해 없는 사람처럼 지내던 중 줄리엣은 특별한 능력을 지닌 시종 로잘린을 만나고, 그의 도움으로 줄리엣은 자신의 신체를 여성의 그것으로 바꿔 자유로워지고자 한다.
어디까지나 자유를 위한 수단에 불과했던 줄리엣의 여성-되기 프로젝트가 붕괴하는 건, 여성의 신체를 얻지 않고도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새로운 선택지가 등장하면서부터이다. 이제 줄리엣을 괴롭히는 건 자신이 생물학적인 여성에 속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아니다. 자신이 생물학적으로 남성이되 사회적으로 여성이라는, 그 자신의 표현을 빌리자면 여자도 남자도 아닌 상태라는 어중간한 사실이다.
△ <비밀 줄리엣> 21화
그렇게 한쪽에서 우리에게 익숙한 로미오와 줄리엣의 이야기가 진행되는 한편, 로미오가 모르는 곳에서는 줄리엣과 그의 시종이자 마녀인 로잘린, 그리고 마찬가지로 마법사인 벤볼리오 세 사람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로미오에게 줄리엣은 캐퓰렛 가문의 예쁜 여자아이다. 로미오는 좋아하는 여자애의 관심을 끌기 위함이라며 티볼트와 검술 결투를 벌이고, 거리낌 없이 줄리엣의 침실로 들어와 낯간지러운 말을 지껄인다. 하지만 로잘린과 함께 있는 줄리엣은 어디까지나 그 나이대의 서툰 남자아이의 모습을 한다. 시종이자 마녀 로잘린을 좋아하는 모습을 보이며, 로잘린이 신뢰하는 벤볼리오를 질투하는 식으로 말이다. 이렇듯 줄리엣은 로미오와 로잘린으로 대변되는 두 갈래의 서사를 오가며 자신의 성 정체성을 탐색한다.
하지만 이 기약 없는 탐색이 언제까지고 허용되는 건 아니다. 개인의 내적인 성장과는 무관하게 사회라는 존재가 모든 구성원에 대해 언제나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 <비밀 줄리엣> 6화
작품의 초반부가 줄리엣이 경험하는 정체성의 혼란을 집중적으로 그려낸다면, 중반부터는 이야기의 무게중심이 줄리엣에서 뉴베로나 시(市)를 지배하는 저주의 정체로 옮겨간다. 이 저주는 뉴베로나의 두 고명한 가문 캐퓰렛과 몬태규의 사이를 멀어지게 하고, 어머니가 아들을 딸로 둔갑시키고 탑에 가두게 하며, 특정 가문의 소년들이 갖가지 방식으로 죽음을 맞이하게끔 한다. 대체 어떤 저주이길래?
결국, 몬태규는 마녀를 유인하고, 캐퓰렛은 검으로 마녀의 심장을 찔러 그녀를 살해했다.
두 사람이 차지한 마녀의 땅은 뉴 베로나라고 불리며 빠르게 발전했다.
허나, 캐퓰렛에 아들이 태어나면 채 한 살을 넘기지 못했으며
몬태규의 아들들은 스무 살이 되기 전에 죽었다.
사람들은 그들이 마녀의 저주를 받았다고 떠들어댔고,
두 가문은 자식을 잃은 슬픔에 서로를 원망하였다.’(<비밀 줄리엣> 23화)
하지만 이상하다. 분명히 캐퓰렛의 아들인 줄리엣은 지금까지 살아있기 때문이다. 마녀가 내린 저주는 특별해서 사회적인 남성성을 지닌 이의 목숨만 앗아가고 여자다운 남자는 살려 주기라도 한단 말인가? 어떤 명제가 후광을 잃는 경우는 하나뿐이다. 예외적인 존재의 등장으로 명제가 절대적이지 않다는 게 드러났을 때. 그리하여 하늘이 내린 신성한 법칙이 아니라 한낱 인간의 어설픈 촌극임이 밝혀졌을 때.
마녀가 캐퓰렛과 몬태규에 내린 저주가 사실은 축복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줄리엣은 전에 없이 과감해진다. 발목을 묶던 족쇄가 사라지면서 자신을 숨길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줄리엣은 애써 자신을 무엇으로 정의하는 대신 로잘린을 향한 마음을 고백하고, 자신처럼 거짓된 명제에 묶인 채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친구 로미오에게 진실을 알리고자 한다.
원작이 해묵은 감정에 희생당한 젊은이들의 아름다운 사랑을 그린다면, <비밀 줄리엣>은 무가치한 당위 아래 정체성을 희생당한 비주류들을 호명한다. 반평생을 여자로 살아온 남자 줄리엣만 아니라 언젠가부터 자신이 남들과 다르다는 걸 알게 된 마녀 로잘린과 마법사 벤볼리오, 넓게 보면 양자인 티볼트 또한 여기에 속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풍경 안에서 발견되지 못했던 비주류의 가능성에 주목하기에, 십 년 전 레진코믹스에서 연재되었던 작품이 지금까지도 리메이크를 통해 사랑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