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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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니발 닫힌 사회에 나타난 다크히어로

간니발 (작가 니노미야 미사아키/레진코믹스 출판) 리뷰

2024-07-12 이상민

간니발 닫힌 사회에 나타난 다크히어로

  닫힌 사회는 독자적인 규율을 갖고 외부에 대한 배타적인 태도를 고집하는 작은 공동체를 지칭하는 말이다. 닫힌 사회는 특유의 폐쇄성이 주는 기이함 때문에 수많은 창작자들의 영감이 되어주었다. 그들이 공유하는 이질적인 상식은 우리가 오래전에 문명화 되면서 잊어버린 인간의 폭력적인 모습을 떠오르게 한다. 그렇기에 매력적이고 한 편으로는 소름끼친다. 하지만 빌런 으로서의 닫힌 사회의 주민들은 명확한 한계를 가지고 있다. 바로 이들은 어디까지나 작은 공동체의 주민들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자기들의 공동체로 주인공을 끌어들여 목적을 이루려 하거나 혹은 자신들만의 비밀이 외부로 폭로되지 않도록 주인공을 배척한다. 하지만 이들은 초자연적인 능력도 없고 경찰이나 군대 같은 공권력을 상대할 물리력도 없다. 오직 닫힌 사회 내부에서만 초법적인 권력을 휘두르며 그 비밀을 지키는 능력만 갖고 있는 평범한 인간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주인공은 이들에게 물리적으로, 혹은 사회적으로 내몰려야만 하는 약자로 설정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야 우리는 주인공이 위기에 쳐했을 때 함께 공포를 느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줄다리기가 중요하다. 닫힌 사회의 빌런들이 법을 넘어서는 초법적인 행동을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를 경우 독자들은 그 세계관에 대한 신뢰가 깨지면서 흥미를 잃어버릴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주인공에게 그다지 위험한 해를 끼치지 않으면 그것 역시 작품의 재미를 떨어뜨린다. 독자들이 그럴 법 하다고 여기면서도 기이하고 끔찍한 공동체를 유지하는 것이 이 장르의 핵심이다. 그런 의미에서 <간니발>은 상당히 흥미로운 작품이다닫힌 사회를 그리는 작품들이 선택하기 어려운 주인공을 데리고 이야기를풀어가기 때문이다. 주인공 아가와는 폭력경찰이다. 나쁜 놈은 제 손으로 패버려야 속이 풀리는 인간이다. 그는 이 마을에 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사냥꾼 집안인 고토가문의 사람들과 트러블을 일으킨다. 고토가문은 말하자면 이 마을의 골칫거리다. 이들은 총기 규제가 한국만큼 엄격한 일본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엽총을 들고 다니며, 마을의 부와 권력을 손에 쥐고 있지만 마을 사람들은 딱히 이들을 존경하거나 숭배하진 않는다. 마치 다른 세계의 사람들처럼, 한 마을에 살면서도 언급을 꺼린다. 일반적인 닫힌 사회를 그리는 작품들이 철저한 상하관계를 강조하는 것에 비해 이 설정은 확실히 독특하다.

  아가와는 시종일관 고토가문과 부딪히며 마을의 진실을 알아내기 위해 노력한다. 만화 초반까지는 굳이 왜 주인공을 형사로 설정했을까 내심 의문이 생겼다. 이 만화의 이야기를 전개하는 데 있어서 경찰은 너무나도 쉽게 마을의 비밀을 폭로해버릴 수 있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가와가 처음으로 고토가문에 쳐들어가 자신에게 총구를 들이대는 사냥꾼들을 제압하는 장면을 보면서 이 작품이 그리고자 하는 방향과 주인공의 특성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듯 한 쾌감을 느꼈다. 이 작품은 닫힌 사회 장르를 빙자한 다크히어로물 이었다. 아가와는 투철한 정의감을 가진 나머지 범인을 사살한 적이 있는 인물이다. 하지만 그의 살해 동기에는 개인적인 원한과 함께, 나쁜 놈들을 제 손으로 묵사발 내고 싶다는 폭력적인 욕망이 섞여 있었다. 사실 그는 폭력을 좋아하고 그것에 쾌감을 느끼는 악인에 가깝다. 그 순간 이 작품 속에서 주인공과 빌런들 사이의 줄다리기가 균형을 이루기 시작했다. 아가와는 딱히 이들의 비밀을 세상에 폭로하는 것에 관심이 없다. 그는 필요하다면 경찰 조직에서 벗어나서라도 이들을 제 손으로 처벌하는 것이 중요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는 따지고 보자면 마을의 주민들이나 희생자들 보다는 고토가문의 인간들에 더 가까운 인물인 것이다. 그렇기에 다크히어로물에서 흔히 묘사되는, 빌런이 주인공에게 동질감을 느끼는 장면이 이 작품에서도 나타난다. 마치 <다크나이트>에서 조커가 배트맨에게 네가 날 완성시킨다.’는 말을 했듯이, 이 작품에서는 고토가문의 당주 케이스케가 아가와에게 신뢰감에 가까운 감정을 표현한다. 이 때문에 케이스케는 닫힌 사회의 이해할 수 없는 풍습을 주도하는 기이한 인간으로 타자화되지 않고 또 한명의 매력적인 인물로 와 닿게 된다.

  다크 히어로를 주인공으로 내세움으로서 이 장르가 갖는 가장 큰 단점이 사라졌다. 바로 독자들의 답답함이 시원하게 해소된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닫힌 사회 장르의 빌런들은 평범한 인간들에 가깝다. 이들은 약자를 괴롭히며 악랄함을 드러낸다. 이는 보는 이들로 하여금 답답함을 느끼게 만든다. 다른 곳에서 있었더라면 아무것도 아니었을 인간들이 자신들이 만든 계급 내에서 횡포를 부리는 것을 무력하게 바라만 볼 수밖에 없으니까. 하지만 본작은 폭력경찰이 주인공이기 때문에 시원시원하게 빌런들을 때려잡는 모습이 자주 나오며 독자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동시에 자칫하면 이 장르의 본질을 해칠 수도 있는 단점 역시 생겼다. 본래 이런 이야기는 닫힌 사회가 공유하는 비밀을 알아내는 것이 가장 중요한 동력이 된다. 독자들은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며 이들은 왜 이런 짓을 저지르는지를 알아내고 싶어 한다. 하지만 <간니발>은 아가와가 거친 행동을 보이는 만큼 고토 가문도 강하게 맞서야 했기에 닫힌 사회 장르 특유의 비밀을 유지시켜주는 긴장감이 쉽게 훼손된다. 쉽게 말하자면 너무 큰 사건들이 벌어진다는 것이다. 이 때부터 독자들은 도대체 이 마을의 비밀이 무엇인지가 궁금 하다기 보다는 이 주인공이 언제 나타나서 이 나쁜 놈들을 물리쳐 줄까가 더 궁금해지게 된다. 또한 빌런이 주인공을 위협하기 위해 선을 넘으면 넘을수록, 마을의 비밀을 유지하기 위한 무리수가 늘어나게 된다. 이것은 닫힌 사회에 대한 신비로움을 떨어뜨리고 더 나아가서는 본질적으로 호러 장르의 만화로서 반드시 챙겨야 할 공포가 옅어진다는 치명적인 단점으로까지 이어진다.

  그럼에도 간니발은 매력적인 만화다. 작가는 팽팽하게 대립하는 이야기뿐만 아니라 거친 선과 극단적인 표정묘사를 통해 섬뜩함과 긴장감을 충실하게 전달해 준다. 또한 식인이라는 핵심적인 비밀은 빠르게 공개했지만 이들이 왜 식인을 시작했는지, 그 사연은 끝까지 비밀로 유지한 채 독자들을 따라오게 만들고 있으니 누구든 한 번 읽기 시작하면 끝까지 손을 놓을 수 없는 만화임은 분명하다.

필진이미지

이상민

영화감독 
- 2019 <둘이> 연출 
- 2021 <돌림총> 연출 
- 2021 충무로영화제 감독주간 심사위원특별상, 관객상 수상
- 2021 대한민국 대학영화제 대상 수상
- 2022 울산단편영화제 대상 수상
- 2023 <함진아비> 연출 
- 2023 수려한합천영화제 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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