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로 세상을 살아가는 여성 이야기
세상을 살아가는 데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누군가는 돈이라 말한다. 누군가는 능력이라 말한다. 하지만 대다수 사람은 ‘지혜’를 선택할 것이다. 길거리 쓰레기를 주워 먹고 사는 생쥐부터 시작해 만물의 영장이라 불리는 우리 사람에 이르기까지, 생물은 지혜를 통해서 해도 될 것, 해선 안 될 것을 구분해 나가고, 어떤 상황이 닥치더라도 대비할 수 있게 된다. 우리는 그런 것을 ‘공부’ 라 부른다.
다소 독특한 필명인 작가, 토마토 수프 작가의 작품 <천막의 자두가르>에선 아직 어리지만 배운 것이 많은 무함마드의 입을 빌려 “공부해서 현명해지면 아무리 큰 일이 일어나도 무엇을 하면 좋은지 알 수 있어.”라며 지혜의 중요성에 대해 작가 자신의 생각을 풀었다.
천막의 자두가르는 노예 출신 여성 ‘시타라’ 의 이야기를 다룬다. 노예 출신이라 뭣도 모르고 살던 시타라는 파티마라는 여성의 집에 팔려가 교육을 받게 된다. 처음엔 돌아가셨던 어머니와 같이 있던 집이 그립다며, 공부해서 머리가 좋아지면 노예로서 자신의 가치가 높아질테고, 그러면 엄마와 살았던 곳에서 더 먼 곳으로 팔려갈 수 있단 이유로 공부를 거절한다. 그러나 위에서 말한 무함마드의 말을 통해 공부의 중요성을 느끼고, 책을 읽으며 수많은 사람이 쌓아 온 삶의 지혜를 배워가게 된다.
토마토 수프 작가는 전작인 <댐피어의 맛있는 모험>부터 일반적인 일본 만화, 흔히들 말하는 망가와는 다소 다른 길을 걸어왔다. 흔히 말하는 망가 그림체와 다른 서양의 카툰 비슷한 그림체, 그리고 ‘역사’라는 다루기 힘든 소재로 만화를 그렸다. 또 한 가지 특징은, 댐피어의 맛있는 모험과 천막의 자두가르, 두 작품 속 주인공이 공부를 통해 세상의 지혜를 배워간다는 공통점이 있다. 댐피어의 맛있는 모험의 댐피어는 샤락선 선원으로 활동하면서 세상을 돌아다니며, 천막의 자두가르의 시타라는 무함마드가의 노예로서 공부받다 몽골족의 침략 이후엔 몽골족의 노예로써 공부하게 된다. 이중 댐피어의 맛있는 모험은 제목에서 보여주듯이,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여러 먹거리를 보여주고 관리하는 법을 보여줘 그때 당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갔나를 보여준다면, 천막의 자두가르는 페르시아와 몽골의 생활 차이, 그리고 그 속에서 적응하고, 응용해 나가는 시타라를 보여준다.
천막의 자두가르는 두 문화의 차이를 보여주면서 어느 쪽이 우월하다, 어느 쪽이 열등하다 같은 것을 언급하지 않는다. 일단 작품 스토리상 주인공을 납치해 노예로 삼은 몽골족이 권력욕과 정복욕에 대한 야심을 계속해서 악역으로 나오긴 한다. 하지만 그들의 문화가 안좋게 드러나진 않는다.
가령 페르시아에서는 고기를 만드는 과정에서 짐승의 머리를 메카 쪽으로 향하게 한 후, 신께 기도를 올린 뒤 짐승의 목을 베어 피를 빼내 도축한다. 하지만 몽골에선 피가 있는 고기를 더 선호하고, 땅에 피를 버리면 땅이 오염되기도 하니 배를 가른 뒤 폐동맥을 눌러서 짐승을 죽여 고기를 얻는다. 또 동물의 몸에서 종종 발견되는 위석을 페르시아에선 베조아르석, 몽골에선 자다석이라 부르는데, 이슬람에선 베조아르석에 해독 작용이 있다고 생각해서 안좋은 물질을 흡입한 이에게 베조아르석을 조금씩 깎아 물에 타 마시게 한 반면에, 몽골에선 자다석에 주술, 특히 날씨를 바꾸는 주술에 사용했다. 두 나라는 같은 대륙에 있으면서도 서로 다른 문화를 보여준다. 하지만 이는 그저 문화적 차이일 뿐, 어느 쪽이 우월하고 열등한지에 대해 나오지 않는다. 시타라는 처음엔 야만인의 문화라 부른, 자신이 모르던 문화에는 적응하고, 자신이 더 잘 아는 문화는 현지에서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활용하는 모습을 보여주어 어떤 문화도 모두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단순히 책을 읽는 것뿐만 아니라 직접 겪으면서 그들의 문화를 배우는 장면 또한 나온다. 가령 몽골은 유목민 특성상 정착은 짧게 하고, 여러 지역을 돌아다닌다. 그리고 규칙적인 생활을 한다. 그렇기에 가장 중요한 것이 시간이다. 이를 천막을 세울 때, 천막 자체를 해시계로 활용해 천장에서 빛이 들어오는 방향으로 시간을 판단하는 것을 시타라가 직접 보면서 확인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 외에 문화를 설명하면서 내레이션을 덧붙여 설명해주고, 만화 끝자락에는 자투리로 당시 세력들의 지도와 이동 방향, 그들의 문화 방식을 보여준다.
이처럼 작가의 방대한 자료조사를 통해 각 나라의 문화를 보여주고, 또 역사를 다루는 만큼 역사적 인물들의 행적을 다루기도 한다. 책 내에서 시타라가 공부하며 지혜를 얻어나갈 때, 이를 읽는 독자들도 책을 통해 공부하게 된다. 이 때문인지 천막의 자두가르는 장편의 학습만화를 보는 느낌과 배우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다른 특징으로는 캐릭터 서사가 있다. 역사물은 기본적으로 이미 있었던 일을 다룬다. 여기서 작가가 새로운 설정, 특히 자기만의 설정이나 캐릭터를 넣기는 쉽지가 않다. 때문에 다른 만화에서 독자들을 이입하기 위해 자신만의 방대한 설정과 세계관 등을 선보일 때, 역사물에선 실제 있었던 인물을 주인공으로 다루고, 이에 더 집중해 독자들을 이입하게 해야 한다.
독자들이 작품에 이입하게 만드는데 가장 좋은 수단은 캐릭터의 목표다. 이게 주인공의 목표를 이루는 것에 대한 이입이 되기도 하고, 반대로 악역의 목표를 막는 것에 대한 이입이 되기도 한다. 천막의 자두가르는 전자를 택했다.
우선 주인공 시타라가 공부에 흥미를 갖게 되는 계기를 보여주고, 그러면서 자연스레 책도 좋아하게 되는 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몽골군의 침략과 함께 책(에우클레이데스으 ‘원론’)을 빼앗기고, 그 과정에서 시타라에게 친절하게 대해주며 어머니나 다름없었던, 시타라의 주인이었던 파티마를 잃는다. 시타라는 몽골군을 증오하게 되고, 책을 되찾는 것을 목표로 하고, 독자들은 이런 장면을 보면서 시타라가 책을 되찾게 되기를 바라게 된다.
거기다 몽골군의 행패에 당한 것은 시타라 뿐만이 아니다. 몽골군은 수많은 이들을 포로로 잡았고, 동맹을 명목으로 타 민족 사람들과 결혼한 경우 또한 많았다. 시타라는 자신과 비슷하게 몽골군에게 잡혀 오거나 억지로 결혼한 이들에게 공감하고 그들의 힘이 되어주고, 그들을 응원하면서도 그들이 시타라 몰래 행하는 일들은 모르기에, 시타라는 그런 일들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왜 일으켰는지를 조사한다. 그러면서 자신이 그동안 쌓아온 지혜를 활용하고, 이게 주변에 도움이 되면서 점차 시타라는 더 높은 신분의 사람들과 연을 맺으며 그들과 친해져, 자리는 여전히 노예이나 점점 더 다양한 기회를 얻을 수 있는 자리에 오르게 되고, 그러면서 주변에서 일어나는 각종 정치적인 일들과 얽히게 된다. 그러면서 시타라는 정치적 갈등 속에서 살아남는 다른 목표가 생긴다. 접근하는 이들이 시타라에게 좋은 의도로 접근하는지, 나쁜 의도로 접근하는지는 모르기에 독자들은 이 알 수 없는 불안감 속에서 작품에 더 몰입하게 된다.
천막의 자두가르는 읽으면서 역사와 문화에 대해 배우게 되는 학습만화 같은 재미, 그리고 당시 역사적 인물들 사이에 벌어지는 정치적 갈등 사이에서 살아남는 역사물로서의 재미, 그리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캐릭터를 보는 재미를 준다. 데뷔작 댐피어의 맛있는 모험부터 일본에서 뽑는 <이 만화가 대단하다!> 2021년에서 남성편 6위를 한 토마토 수프 작가는 이번 작품 천막의 자두가르로 이 만화가 대단하다! 2023년에서 여성편 1위, 2023년 일본 만화 대상에서 5위, 2024년 일본 만화 대상에서 5위, 그리고 이번 2024년 부천만화대상에서 해외상을 수상했다. 아직 시타라의 실제 역사를 다 다루지 않은 만큼 책은 더 나올 것이다. 더 나오는 분량에서 어떠한 재미를 또 선보일지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