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 속 캐릭터 MBTI 심리
- ‘현실적인 경험주의자, <그녀의 심청>의 캐릭터 심청
MBTI로 사람들의 성격을 유추하는 일이 언제부턴가 유행이 된 지 오래다. 마이어 - 브릭스 성격 진단 또는 성격유형지표라고 불리는 MBTI는 개인의 성격을 외향성과 내향성, 감각과 직관, 사고와 감정, 판단과 인식의 4가지 기본 차원에 따라 16가지 유형으로 분류하고 있다. MBTI는 사람들이 모두 서로 다른 재능을 갖고 있다는 것에 주목한다. 사람마다, 삶을 바라보는 ‘독특한 선호’가 있다는 말이다. 독특한 선호가 서로 어우러져 독특한 성격을 만들어낸다는 것. 그래서 MBTI는 나와는 다른 누군가를 이해할 수 있는 좋은 매개체가 아닐 수 없다. 칼럼 <웹툰 속 캐릭터 MBTIi 심리>에서 MBTI라는 렌즈를 통해 웹툰 속 캐릭터의 심리를 흥미롭게 들여다보고자 하는 이유다.
웹툰 <그녀의 심청>은 우리가 알고 있던 ‘효녀 심청’을 완전히 새로운 캐릭터로 변화시켰다. 원전 <심청전>에서 눈먼 아버지를 위해 인당수 제물로 바다에 빠져 죽은 효성 지극한 심청이가 웹툰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대물림되는 가난을 시니컬하게 비관하는 소녀가 있을 뿐이다. 그는 누덕누덕 기운 옷을 입고, 제비집처럼 헝클어진 머리를 한 채, 사람들의 냉대 속에서 눈먼 아버지를 대신해 구걸을 한다.
심청전에서 심청을 수양딸로 삼고 공양미 삼백 석을 대신 내주겠다며 선의를 베푸는 승상 부인이, 웹툰 <그녀의 심청>에서는 오빠의 출세를 위해 늙은 승상의 후처로 시집가는 젊은 여성인 점도 새롭다. 그런데 승상 부인이 시집오자, 남편 승상이 병이 들고 인당수에서 배가 침몰하는 일이 빈번해지고, 승상 부인은 하루아침에 마을의 재앙을 몰고 오는 재수 없는 여자로 낙인이 찍혀 버린다.
서로 죽기를 간절히 원하던 그 순간, 같은 장소에서 우연히 마주치게 되는 심청과 승상 부인. 이 둘이 운명적으로 맺어지게 되는 장면은, 앞으로 이 둘이 신분을 초월해 희생양으로 내몰려진 자신의 신세를 어떻게 헤쳐 나갈까, 기대하게 만든다. 그렇다, <그녀의 심청>은 심청과 승상 부인, 이 두 여성이 그들을 옥죄고 있는 사회의 벽과 틀을 벗어나, 자신의 정체성을 새롭게 발견해 가는 이야기다.
여성을 수동적인 존재로만 한계 짓는 시선을, 그래서 <그녀의 심청>에서는 관심 있게 바라보고 있다. 승상 부인의 혼례 날 마을 여자들이 모여 새 신부의 몸을 꽃으로 치장해 주는 의식의 이름이 ‘꽃꽂이’인 것은 그 얼마나 풍자적이며 상징적인가? 뿌리가 없는 채 장식되는 꽃들이 금세 말라서 사라진다는 진실을 그저 눈 감은 채, 꽃꽂이에 몰두하는 여성들을 바라보며 심청은 일갈하듯 직설적으로 말한다.
“대가리를 잘라 놓고 오래오래 아름다우라니, 그러면 더 빨리 시들어 버릴 거 아냐?”
마치 동화 ‘벌거벗은 임금님’에서 유일하게 벌거벗은 임금님의 정체를 ‘팩폭’했던 아이의 말처럼, 심청의 말은, 진실을 후벼파는 말일 터. 심청이 mbti 성격유형에서 분명 F가 아닌 T라는 확증을 굳혀준다.
혼례를 치른 직후 쓰러져 누운 남편을 정성으로 간호하는 승상 부인을 심청이 현실적으로 도와주고, 그런 심청에게 승상 부인이 물질적인 도움을 주면서 심청과 승상 부인은 급속도로 가까워진다. 이 과정에서 승상 부인은 심청에게 세상에서 여성이 생존할 수 있는 자신의 비결을 알려준다. 그것은 바로 ‘사랑받음으로써 살아남는’ 것. 아무리 억울해도 여자가 참고 인내할 때 인정받는다는 것을 승상 부인은 어렸을 때부터 몸으로 배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런 승상 부인에게 심청은 새로운 영감을 주는 역할을 한다. ‘뭐가 좋은지 싫은지 스스로 알게 되는’, ‘나’란 주체를 만들어 가는 삶의 다양한 방법들을 알려준다. 기와지붕에 올라가고 맨발로 들판을 달려가는 것과 같은, 그 시대 여성들이 보기엔 일탈적인 행동을 통해 무엇이 좋은지 싫은지를 스스로 알게 되는 것이 중요하다는걸, 승상 부인에게 전해주는 심청.
심청은 mbti 성격 유형에서 J로 불리우는 판단유형보다는, P로 불리는 인식유형의 사람이 아닐까? 판단유형인 J가 사람의 삶에 의지가 작용하고 결정이 내려져야 한다고 믿는 것에 반해, 인식유형인 P는 삶은 경험되고 이행되어야 할 무엇인가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마도 심청은 외향적 감각유형인, estp일 가능성이 크다. 이 유형은 무엇보다도 현실적인데, 경험에서 가장 많은 것을 배우는 유형이다. 학교에서보다 실제 삶에서 능력을 더 잘 발휘하는 estp 유형을 심청에게서 볼 수 있는 것은, 심청이 거리에서 구걸을 하던 처지에서 하루아침에 승상부인의 집으로 들어가 살면서 그전까지 익숙하지 않았던 생활에 적극적으로 적응해 나갔던 점이다. 남편을 치료하는 승상부인을 도와주면서, 심청이 승상부인의 커다란 의지처가 될 수 있었던 것도 외향적 감각유형의 성격을 지닌 덕분이 아닐는지.
estp는 어떤 계획을 세우지 않고도 일을 잘 처리해 나갈 때가 많은 유형의 사람들이라고 한다. 즉, 어떤 상황에 처했을 때, 그 상태 그대로 다루기를 오히려 즐겨한다는 것이다. 심청이 그 어떤 상황에서도 적응해 가며 생존했던 모습이야말로 estp의 성격유형을 보여주는 듯하다.
또, 이것은 지극히 현실적인 것을 바탕으로 한 사고체계일 터. 심청의 성격이 현실적일 수밖에 없는, 너무나 열악하고 힘겨운 삶에서 성격의 유래를 찾아볼 수도 있겠지만, 이후 승상부인과의 관계에서도 심청은 현실주의적인 경험주의자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웹툰 <그녀의 심청>의 결말은, 원전과는 다르게 해피엔딩이다. 아무도 희생양으로 죽지 않고, 심청과 승상 부인은 함께 계속 연대하며 살아간다. 그 전과는 다른, 자유로운 정체성으로 말이다. 이야기의 결말이 심청의 캐릭터처럼 현실적이지 않은 걸까? 이상과 현실의 조합 역시, 현실주의자들의 몫이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