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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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주의 시대가 지나가는 풍경, 《캐슬》

캐슬 (글, 그림 : 정연 / 네이버 웹툰 연재)

2024-09-17 이현재

변주의 시대가 지나가는 풍경, 《캐슬》

[<캐슬> 포스터 (출처 : <캐슬> 공식블로그 '캐슬홀딩스')]

레드오션 틈새시장의 승자가 된 《캐슬 시리즈

  웹툰 시장은 영화나 패션만큼이나 유행에 대단히 민감한 변동적인 시장이다. 이러한 변동적인 시장을 극복하는 방법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일반적인 유행을 빠르게 따라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변동성에도 불구하고 탄탄한 지지층을 가진 계통에 집중하는 것이다. 후자의 전략을 선택하기 위한 장르로 종종 언급되곤 하는 장르 중 하나는 누아르다. 뉴미디어가 아닌 레거시 미디어 시장에서 20세기 말을 풍미한 홍콩 누아르’, 00년대 초 한국 영화시장에서 유행한 조폭 누아르등의 사례를 통해 그 팬덤의 규모와 확장성을 구체화하기 비교적 수월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특징 때문인지 누아르 장르를 바탕으로 문화 상품을 기획하는 시도는 대단히 많다. 누아르 장르 시장은 이미 과포화된 레드오션에 가깝다. 반드시 기존 작품과 차별화를 두어야 하고, 탄탄한 팬층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누아르에서 통용되는 클리셰들을 적극적으로 차용해야 한다. 그리고 상반되는 요구를 한 작품 안에서 동시에 수용해야 소구가 생기는 만큼, 기획의 난이도 또한 높다. 하지만 수많은 시도가 이루어지는 만큼, 민백두 유니버스<광장> 등의 수작들이 꾸준히 생산되는 장르이기도 하다. 그리고 캐슬 시리즈(정연, 네이버웹툰, 2019~) 역시 그 이름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 만큼 많은 팬덤을 모았으며, 탄탄한 완성도를 가졌다.

  캐슬 시리즈의 가장 큰 장점은 누아르 장르가 가진 약점을 포용하려는 시도를 과감히 잘라내고 누아르의 강점에 집중한다는 것이다. 먼키친 주인공에게 캐슬이라는 거대 조직을 장악해야 한다는 목표를 제시하여 서사의 과정과 독자의 소구점을 깨끗하게 정리하여 서사의 난립을 차단했으며, 이를 통해 전개 속도를 높이고 액션과 인물 간의 충돌 극적 요소를 집중시켰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여성 주인공을 최소화하여 작품을 독자층의 결집력 역시 공고히 다졌다. 그러나 무엇보다 <캐슬: 난공불략>에서 <캐슬2: 만인지상>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캐릭터의 심경 변화를 설득력 있게 그린 점은 캐슬 시리즈가 가진 완성도이며 작가의 역량으로 보인다.

[<캐슬> 중 '리사' (출처 : 웹툰 캐슬 마이너 갤러리)]

누아르에서 사라지기 시작한 팜므파탈

  이러한 심경 변화의 중심에는 캐슬 시리즈의 세계관을 확장하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한 캐슬홀딩스의 지배자이자 주인공이 반드시 넘어야 하는 목표이자 안타고니스트인 최민욱의 등장이 있다. 이는 캐슬 시리즈가 가진 장점이자 한계를 이해하는데 핵심적인 포인트이기도 하다. <캐슬: 난공불략>에서 캐슬 시리즈의 세계관을 확장하는 포인트는 캐슬홀딩스가 자체가 아닌, 주인공 김신의 출신지인 러시아의 킬러 집단 이스크라였다. <캐슬: 난공불략>에서 이스크라는 김신의 조력자들을 공급하는 역할을 하며 인물과 주인공의 활동 영역을 넓히는 핵심 역할을 했다. 더불어 그 조직의 리더를 리사라는 여성 인물로 설정하여 누아르의 중요 구성 중 하나인 팜므파탈에 대한 역할을 부여했다.

  그러나 <캐슬2: 만인지상>으로 넘어오며 주인공은 캐슬의 장악 자체를 본격적인 목표로 두기 시작한다. 이와 함께 이스크라리사의 역할이 줄어들고, 그 대신 1편인 <캐슬: 난공불략>에서 등장했던 아킬라’ ‘메드베디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이스크라의 리더이자 팜므파탈의 등장 횟수를 줄이는 대신 이스크라의 등장 자체는 늘리는 방식으로 인물 역학을 조율했다. 이는 주인공 김신이 겪어야 하는 외부 갈등의 요소를 단순화시켜 액션의 강도를 높이는 동시에 주인공에게 내면 갈등의 요소를 늘려 드라마의 강도를 증폭시키는 효율적인 장치로 활용되었다.

  캐슬 시리즈의 이러한 선택은 장르의 다양화를 지양하는 대신 기존 팬덤을 집결시키는 전략으로 이해할 수 있다. 동시에 누아르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던 팜므파탈의 역할을 축소시킨 선택은 최근 누아르 장르를 선택하는 작품들이 보이는 일관된 흐름으로 보이기도 한다. 가령, <광장>의 경우 팜므파탈의 역할을 아예 김기창이라는 남성 노인으로 등장시키는 모습을 통해 여성 등장인물이 등장 가능성을 최대한 차단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는 이야기 장르로서 누아르의 변화를 관찰할 수 있는 지점으로 보이기도 한다.

[니노 프랑크 (출처 : 위키피디아)]

변주 대신 집중을 택하기 시작한 누아르

  누아르에 대한 최초의 정의는 영화 매체에서 나타나는 특정한 이야기의 양식을 정의하기 위해 등장했다. 이 때문에 누아르의 어원 역시 영화의 특정 하위장르를 지칭하기 위해 사용한 것에 있다고 본다. 누아르의 어원은 대부분 영화평론가였던 니노 프랑크(Nino Frank)가 특정한 미국의 탐정 장르 영화를 지칭하기 위해 필름 누아르(Film Noir)’라는 용어를 사용했던 사례를 지목하곤 한다. 니노 프랑크는 1946년 여름 프랑스에서 초연된 5편의 미국 범죄 영화를 두고 미국의 필름 누아르는 범죄 심리학과 여성 혐오(Criminal psychology and Misogyny)에 치중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하며 일반 탐정 영화와는 공통점을 찾을 수 없다고 장르가 탄생했음을 선포하듯 기존 장르와 분명한 선을 그었다.

  프랑크가 언급한 위의 특징 두 가지, ‘범죄 심리학여성 혐오(좋은 뜻으로든 나쁜 뜻으로든) 훗날 누아르를 정의하는 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 누아르가 이야기 전반의 범주에서 나타나는 특정한 양식의 하나로 활용되기 시작하며, 여성 혐오와 범죄 심리학이라는 누아르의 키워드는 정신분석학을 비평의 도구로 사용하는 흐름과 시너지를 만들어냈다. 누아르의 두 가지 키워드는 팜므파탈이라는 누아르의 특정한 캐릭터 유형을 독해하는 동시에 누아르의 주인공이 가진 정신 병리적 남성성을 분석하는 강력한 도구로 활용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해석은 누아르를 변주하는 데 활용되며 누아르의 다양화에 공헌하던 때도 있었다.

  그리고 어느덧 시대의 변화는 이제 특정 인물을 기반으로 특정 독자 타겟을 형성하는 방법론이 일반화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이 방법론을 바탕으로 기획된 <광장>캐슬 시리즈와 같은 작품들의 연이어 성공은, 최소한 누아르 장르에 있어 변주의 시대가 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이는 다양성과 혁신성의 축소로 읽힐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레드오션과 변동성에 대응하려는 방법으로 모험보다는 탄탄한 안정성을 선택하고 있다는 모습으로 보이기도 한다. , 누아르라는 서사 장르 자체가 하위문화를 넘어 어느덧 주류문화의 자리를 넘보고 있는 신호로 읽을 수 있을 것이다.

필진이미지

이현재

경희대학교 K컬쳐・스토리콘텐츠연구소, 리서치앤컨설팅그룹 STRABASE 연구원. 「한류 스토리콘텐츠의 캐릭터 유형 및 동기화 이론 연구」(경제·인문사회연구회) 「글로벌 게임산업 트렌드」(한국콘텐츠진흥원) 「저작권 기술 산업 동향 조사 분석」(한국저작권위원회) 등에 참여했다. 2020 동아일보 신춘문예 영화평론부문, 2021 한국만화영상진흥원 만화평론부문 신인평론상, 2023 게임제네레이션 비평상에 당선되어 다양한 분야에서 평론 활동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