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빼고 '웹툰'하기 - <환수왕>
만화와 광고가 함께한 역사는 길다. 광고와 이미지의 결합은 홍보 효과가 높기 때문이다. 이미지를 통한 정보 전달은 직관적이다. 웹툰의 탄생 이후 웹툰 또한 광고에 적극 활용된다. 2005년 다음 만화속세상의 <쉬운 저작권 이야기>는 공익광고의 성격이 강한 첫 브랜드 웹툰이다. 이후 다음 웹툰과 네이버 웹툰에서는 지속적으로 브랜드 웹툰(혹은 캠페인툰)이 연재되었다. 홍보를 위한 웹툰이 늘어나자, 네이버 웹툰은 카테고리를 분류하거나 태그를 통해서 브랜드 웹툰 혹은 광고 웹툰이라는 것을 독자들에게 주지시켰다.
브랜드 웹툰이 어느 정도 정착되면서 유명 작가가 브랜드 웹툰을, 작가의 유명 작품의 ‘스핀오프’으로 구성하는 방식이 진행되었다. 인기있는 주인공을 등장시켜, 비슷한 세계관을 공유하여 최대한 원작과 친밀감을 전제하여 독자에게 어필한 것이다. 즉, 익숙함에 기대어 작품을 찾는 독자들에게 홍보하고자 한 것이다.
정부 기관에서 진행하는 브랜드 웹툰은 특히나 엄숙함이 더해지면서, 독자가 브랜드 웹툰에서 재미를 느끼기 쉽지 않다. 특정 기관에서 브랜드 웹툰은 완벽한 목적이 존재한다. 홍보되어야만 하는 이슈를 지속적으로 드러내며, 훌륭한 것이라는 것을 인지시키고자 한다. 작품의 목적이 홍보에 치우친 상태에서 서사를 구성하기란 쉽지 않다. 특히나 일상툰과 같은 방식의 웹툰이 아니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웹툰의 구성이 정보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서사가 진행될 수 있는 여지가 거의 없다. 이야기는 대상을 알리기 위해 지속적으로 ‘이야기하기’를 멈춘다. 은근히 드러내기보다 ‘적극적’으로 보여주기를 택하기 때문이다. 최대한 재미를 위해 익숙한 인물을 배치하여 서사를 진행하지만 완전한 내용을 지닌 이야기로 살아남기란 쉽지 않다. 이런 이유로, 브랜드 웹툰 대부분은 10편 내외로 짧고, 한 명의 작가가 한 작품을 맡기 보다 협업을 하는 경우가 많다. 특집 웹툰 방식으로 제작되는 것이다.
자유로운 서사, B급의 웃음
네이버 웹툰에서 연재 중인 <환수왕>은 이전의 브랜드 웹툰과 완전히 다른 노선을 택한다. 개그가 우선이다. 국가유산청(구 문화재청)에서 지원받은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환수왕>은 고미술품 혹은 문화유산에 대한 설명은 극히 드물다. 서사를 진행하기 위한 도구로만 존재할 뿐이다. 이런 진행은 최근 유튜브에서 몇몇 정부 기관이 운영 중인 채널과 유사하다. 충주시에서 운영 중인 ‘충TV’나 KORAIL의 ‘한국철도TV’와 같이 B급의 유머를 견지하고 있다. 엄숙함을 버리고 자율성을 부여하며 새로운 방식의 홍보 노선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환수왕>은 적극적으로 개그 웹툰의 서사 방식을 따른다. 서사 중간 중간 코믹의 요소를 배치하여 재미를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판타지적 요소인 ‘회·빙·환’의 구성을 적극적으로 차용한다. 익숙한 서사 패턴에 유머가 더해지면서 <환수왕>은 브랜드를 빼고, 완벽한 하나의 웹툰으로 존재하게 된다. 완전한 ‘이야기’가 있는 웹툰인 것이다.
2024년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준섭은 국내 최고의 고미술품 전문 경매사다. 가치있는 모든 고미술품을 취급하며, 출처는 신경쓰지 않는다. 도난 유물이라는 것을 짐작하기도 하지만, 최고의 이익을 내기 위해서 모두 무시한다. 이러한 준섭의 경매를 예의 주시하는 인물이 있다. 바로 국가유산청 소속 김하윤이다. 하윤은 준섭의 집으로 찾아가 준섭에게 경매 물품의 출처를 확인해달라고 요청한다. 그때 갑자기 국제문화유산수집단(ICC)가 침입하면서 엄청난 사건이 벌어진다. 총에 맞은 준섭이 흘린 피가 백제 유물인 ‘방격규구신수경’에 묻자, 1905년 대한제국으로 가게 된 것이다. 단순히 백제의 유물인 줄만 알았던 ‘방격규구신수경’은 조상신을 이어주는 장치였다. 그러나 대한제국으로 돌아간 것은 준섭 뿐만이 아니다. 하윤과 국제문화유산수집단의 태승도 마찬가지로 과거로 떨어진다.
미래를 바꾸는 과거의 윤리적 선택
모든 ‘회빙환’ 작품에서 과거로 돌아가 바꾸려는 선택들은 갈등 요소로 작용한다. 과거의 선택이 미래를 좌우하기 때문이다. <환수왕> 또한 마찬가지다. 그러나 <환수왕>은 영리하게도 개그 코드를 전면에 내세우며, ‘변경될’ 역사, 즉 주인공들의 선택에 대한 영향력을 의도적으로 뒤에 배치한다. ‘웃음’으로 덮어둔 것이다. 그러나 작품의 주된 배경이 대한제국이기에 ‘대체 역사물’의 성격을 지닐 수밖에 없다. 역사 속 인물들의 이름을 바꾸어 놓았으나 누구인지, 또한 어떠한 사건이 전개될지 짐작이 가능하다. 따라서 역사가 어떻게 바뀌게 될 것인지에 대한 기대감과 두려움은 웃음 뒤에 존재한다.
2024년을 살던 하윤과 준섭은 과거의 사건들을 알고 있기에 역사를 바꾸려는 노력을 한다. 그들이 벌인 활극 덕분에 을사년에 일어났던 을사늑약은 병오조약으로 미루어진다. 조금씩 틀어지는 역사적인 상황에 한수는 우려를 표한다. 2024년으로 돌아갈 후손을 걱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또한 지금-여기, 대한제국의 현실을 외면할 수 없기에 준섭의 행동을 적극적으로 만류하기도 어렵다.
준섭과 하윤은 모든 역사적 사건마다 선택의 갈림길에 서게 된다. 사실 하윤의 선택은 늘 동일하다. 유물을 지키는 것, 그리고 이를 온전히 후손에게 남겨주는 것을 최선의 가치라고 두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녀는 미래로 돌아가는 선택보다는 과거에 남더라도 임무를 완수하고자 한다. 하지만 준섭은 조금 다르다. 한수로 인해서 수동적으로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그의 최우선 목표는 무조건 2024년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하지만 준섭은 대한제국의 현실을 직접 마주하고, 하윤과 함께하며 자신의 ‘윤리’를 재단하게 된다. 홀로 미래로 돌아갈 수 있었음에도 이를 선택하지 않았고, ‘같이’ 살아남기를 선택한다. 태승 또한 마찬가지다. 2024년의 태승은 문화재를 약탈하는 악인이었으나, 대한제국의 태승은 다르다.
<환수왕>은 여전히 연재가 진행중이다. <환수왕>을 마지막까지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 <환수왕>은 분명 국가유산청의 ‘브랜드’ 웹툰이지만 국가유산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다. 이로인해 오히려 독자들은 역사와 유산에 더욱 주목하게 된다. 웹툰으로서의 서사가 완전하기 때문이다. 서사적 장치로 활용되는 유물과 역사는 서사에 살을 붙여나간다. 브랜드 웹툰이 ‘브랜드’ 될 수 있는 최선의 방식은 결국 ‘이야기’를 하는 것이라는 점을 <환수왕>이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결국 ‘웹툰’을 보고 싶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