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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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이한 것으로 그려낸, 여성‘들’의 이야기, <날개암>

날개암(박인주) 리뷰

2025-06-09 문종필

기이한 것으로 그려낸, 여성의 이야기, <날개암>

『날개암, 박인주

최근에 박인주의 그래픽 노블 날개암을 읽었다. 그녀는 202528일부터 2025228일까지 진행된 텀블벅(tumblbug)을 성공적으로 완료했고, 같은 해 415일 독자들에게 배송되었다.

날개암표지

박인주는 날개암에서 글과 그림을 동시에 작업했는데, 이런 표정은 일반적이지 않다. 여기서 일반적이지 않다는 말은 독자들에게 여러 지점에서 생각할 것들을 제공해 준다는 맥락에서 말한 것이다. 하나는 그가 그리는 그림과 글의 표정이 기존에 제시되었던 만화와는 다른 결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두 번째는 다른 결을 가지고 있었던 탓에 무엇인가 새로운 감정을 독자들에게 타격한다는 특징이 있다. 나는 이 문장에서 박인주의 텍스트가 새로운 감정을 전달해 준다고 적지 않고 타격한다고 적고 있는데, 타격은 한 마디로 독자에게 충격을 준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 두 가지 이유로 기존에 있었던 그래픽 노블 작가와는 다른 풍경을 펼쳐 보인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날개암은 대체 어떤 텍스트이기에 기존의 과는 다른 결의 호흡을 하고 있다고 적은 것일까. 짧은 이 글은 이 질문에 스스로 답해보는 과정이 되겠다.

이 텍스트는 페미니즘의 문제의식에 의해서 완성된 작품이다. 과거 오랜 시간 우리 사회는 가부장적인 이데올로기에 의해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래서 여성은 어떤 방식이든지 소외될 수밖에 없었다. 모든 여성이 그렇다고 볼 수는 없지만, 시대적 무의식은 여성을 가볍게 취급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그리고 이 감정은 시대적인 분위기와 한계로 인해 과거에는 감히 말할 수 없는 것이었다. 오랜 시간 억압되었고 억눌려져 있었다. 어쩌면 이것을 우리는 금기라고 부를 수도 있겠다.

말할 수 없는 감정은 오래도록 상처 주변을 맴돌았다. 짓눌린 감정은 사라지지 않고, 짓눌린 채 오래도록 기억된다. 이 감정은 어떤 방식이든지 사라지지 않은 채 숨어 있다가 말할 수 있는 시대를 기다려야 했다. 이 시간은 참으로 긴 시간이었을 것이다. 박인주 작가는 그런 시대와 시간을 기다렸고 2025년이 되어서야 날개암을 완성했다. 그렇다면 이 이야기는 박인주 작가 개인의 이야기일까. 그렇지 않다. 박인주 작가의 이야기일 수도 있으나, “어머니 권지영의 자문을 얻어 작업 되었다는 고백에서 알 수 있듯이 그녀의 엄마이기도 하지만 엄마들의 이야기기도 하다. 따라서 여성인 박인주와 박인주의 어머니와 어머니의 어머니의 이야기를 2025년 박인주의 언어와 그림으로 재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것을 예술가의 대리자기능이라고도 부를 수 있다. 누군가를 위해 대신 울어주는 존재인 예술가라고 말이다. 그 대상이 바로 자신이자 자신의 어머니이자 어머니의 어머니의 이야기이고 그 이야기를 담은 것이 바로 날개암인 것이다. 독자들은 여기까지 나의 글을 읽고 날개암의 내용을 어렴풋이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이 텍스트가 여성의 소외에 대해 다루고 있는 작품이라고 말이다. 이 말은 틀리지 않다. 분명히 박인주의 날개암은 그런 작품이기 때문이다.

날개암은 여성의 소외를 있는 그대로 투명하게 재현하려는 계열의 작품이라기보다는 판타지 형식을 지녔다는 점에서 새롭다. 현실에선 붙잡을 수 없는 소재를 끌어와 이야기를 밀고 나간다는 점에서 낯설다. 하지만 그 이야기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방식보다 적나라하다. 이유가 무엇일까. 이 지점을 해명하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그런데 판타지 형식으로 작품을 구현했다고 해서 이 작품이 특별하다고 할 수 있을까. 남성과 여성의 평등은 물론, 세상의 모든 존재가 존중받아야 한다는 동시대의 가장 중요한 담론인 페미니즘 이론이 담겼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 작품이 소중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마도 이런 사상과 정서가 담겨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 작품이 특별하다고 본다면, 그것이야말로 모순이자 부조리이다. 동시대에는 여전히 페미니즘과 관련된 무수히 많은 작품이 계속해서 출현되어야 하고, 이와 같은 작품들로 인해 소외된 존재를 재현하는 과정에서 조금은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것이 옳은 것이겠지만, 이런 당위성만 가지고 좋은 작품이라고 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날개암을 이런 이유로 치켜세우는 것은 날개암이 가진 장점을 모두 덮어버리는 것과 다름없다. 박인주 작가만의 가진 고유한 숨결을 동시대 담론인 페미니즘 이론으로 손쉽게 덮어버리는 것은 작품의 차이를 가리는 것이다. 그래서 이 작품은 페미니즘 이론과는 무관하게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야 할 필요가 있다.

 

박인주 작가의 이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이한 것으스스한 것이다. ‘기이한 것으스스한 것을 정의하기가 참 쉽지 않다. 하지만 이것을 우리는 낯선 것이라고 부를 수 있다. 독자들은 낯선 것을 목격하는 과정에서 기이한감정과 으스스한 감정을 동시에 경험하는 것이다. 모든 낯선 대상이 기이하거나 으스스한 것으로 환원되는 것은 아니지만, 낯선 것은 어떤 방식이든지 독자들에게 기이하고 오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아무래도 이 감정은 시대가 이해할 수 있는 여러 감정의 코드로는 이해되지 못하는 그 무엇일 수 있다. 다르게 이야기하자면 박인주의 이 작품은 기존 그래픽 노블장르에선 볼 수 없었던 독특한 형식을 지녔던 탓에 낯선 감정이라고 부를 수 있는 기이한 것과 연결되는 것이다. 이 감정을 독자들에게 불러일으킨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이 작품은 의미가 있다. 그 이유는 박인주 작가가 전하고자 한 내용이 새로운 형식을 통해 독자들에게 새로운 방식으로 각인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작가의 의도가 무의식적이든 아니든 그 의도가 일정 부분 성공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기이하고 낯선 형태의 텍스트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독특한 형식으로 도드라지게 하니, 주목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작가론적인 측면에서 접근하자면 박인주는 자기소개에서 회화, 애니메이션, 만화, 미디어 강의 등을 하는 전방위 예술가라고 적고 있는데, 이런 자기소개 내용에서 알 수 있듯이,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했던 경험이 기존의 웹툰이나 만화의 문법과는 차별화된 차이를 생성해 낼 수 있었던 원인으로 추측해 볼 수 있다. 나아가 이 작품은 이 시대의 획일적이고 기계적인 공장식 웹툰 문화와 교육 시스템을 정면으로 비판한다. 그렇다면 이 날개암은 어떤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가.

여성은 날개를 지닌 채 태어난다. 하지만, 이 날개를 마음껏 사용하기보다는 숨기며 살아간다. 날개가 여성에게 있다는 것은, 이 기관이 병드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이 텍스트의 화자인 영서의 엄마 임봉화는 날개에 암이 전이됐다는 소식을 의사에게 듣고 병원을 나와 가발 가게로 향한다. 항암 치료를 받기 시작했으니, 빠질 머리카락을 생각한 것이다. 이 발걸음이 지난 기억을 되살린다. 그곳에서 오랜 동료이자 동지였던 서가영을 만나게 된 것이다. 영서에게 이모인 가영은 자신의 친구이자 영서의 엄마 임봉화의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엄마는 단 한 번도 영서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자신이 겪은 부조리를 딸에게 알리지 않기 위해서다.

엄마의 엄마가 남편의 도움 없이 집안의 모든 일을 혼자 맡아서 했던 일들, 지켜야 할 를 지우고 남편에게 맞추며 살아가야 했던 나날, 그런 삶의 일상을 물려받아야 했던 일, 그런 집안의 분위기가 싫어서 고등학교를 졸업함과 동시에 몰래 저금한 돈을 들고 집을 나갔던(103) , 그렇게 떠난 방직공장에서 천대받으며 대학의 꿈을 꾸었던 일, , 공부, 육아 어떤 것도 포기하지 말아라, 여자들! 날개를 펼쳐라!”(197) 라는 광고를 보고 일터에서 열심히 일했지만, 하루 14시간이 넘나드는 고된 노동에 쓰러졌던 일,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사랑한 사람을 만났던 일, 병약한 남편을 돌보며 희생했던 일, 무엇보다도 남편에게 공장의 부조리에 대해 싸워야 한다고 말했을 때 외면하고자 했던 남편의 표정을 쳐다봐야 했던 일, 그때 그녀는 엄마의 엄마의 삶을 반복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고 느꼈다.


자신의 책장에 책이 더 이상 늘어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동맹 파업을 한다고 말했을 때 심지어 성공하지 못할 수도 있는 일에 당신이 다칠 수도 있고 우리 삶이 무너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당신이 이해해 줬으면 해요.”(209)라는 남편의 말은 그녀를 방황하게 했다. 여기서 우리 삶은 우리의 삶이 아니라 그의삶에 가깝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런 확신 이후, 엄마 봉화는 비상을 꿈꾼다.

 

날개암248~249

철새무리가 참 잘 보이는 곳이었다 하나의 새를 선두로 비행하는 새의 군락을 발견한 엄마는 그 모습이 맨 앞의 새가 무리를 통솔하는 것이 아니라, 위치를 바꿔가며 서로를 배려하고 있는 모양새인 것(241)을 알게 된 것이다. 그녀가 진정으로 서로를 배려한다고 느꼈던 곳은 남편이 곁에 있어 주었던 가정이 아니라 공장이었다. 그녀는 이 판단 이후, 곧장 투쟁 현장으로 향한다.

내 딸은 일하다 죽었습니다! 당신들은 내 딸이 여자이기 때문에 교육받지 못하는 게 당연하다 했고, 날개에 쓰이는 관리 비용 때문에 많은 돈을 줄 수 없다고 죽은 것도 어쩔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렇기에 나는 오늘 여자를 포기합니다. ! 이러하면 이제 당신들에겐 무슨 핑계가 남습니까!”(249)

이렇게 절규하면서 이들은 날개며 머리카락을 자른다. 주변은 피로 물든다. 투쟁은 처참하게 실패한다. 그러나 이 기억은 엄마의 엄마의 엄마에 의해서 기억되고 전승된다는 점에서 실패가 아니다. 진정한 실패는 희망을 꿈꾸지 않는다는 것과 기억하지 않는다는 것일 테다. 박인주 작가의 날개암은 이처럼 비상(희망)을 꿈꾸었던 여성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담는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앞에서 서술했던 것처럼 형식적인 측면에서 지독하게 낯설다는 점에서, 독자들에게 새로운 감각을 선사한다. 이런 감정을 전달해 준 것만으로도 이 작품은 동시대에 제법 괜찮은 작품이라고 부를 수 있겠다. 우리의 좁은 감정을 확대해 주었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서 뿜어져 나오는 이기한 것으스스한 감정은 그 당시 부조리한 삶을 견뎌야 했던 많은 여성의 표정을 은유적으로 담아냈다고 볼 수 있다. 이 작품이 다른 작품과 차별화된 차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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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종필

글쓴이 문종필은 평론가이며 지은 책으로 문학평론집 〈싸움〉(2022)이 있습니다. 이 평론집으로 2023년 5회 [죽비 문화 多 평론상]을 수상했습니다. 그밖에 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서 주최하는 대한민국만화평론 공모전 수상집에 「그래픽 노블의 역습」(2021)과 「좋은 곳」(2022)과 「무제」(2023)을 발표하면서 만화평론을 시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