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과 진심의 차이
『아이사와 리쿠』, 호시 요리코

인간은 감정의 동물이라는 말이 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여러 감정을 표현하고 서로 소통할 수 있기에 나온 말이다. 하지만 항상 진심이 담긴 감정만을 표출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나를 위해, 또는 남을 위해 거짓된 감정을 보이고는 한다. 진심이 담긴 감정과 거짓된 감정의 차이는 무엇일까? 진심이 담긴 감정은 나를 위한 것, 거짓된 감정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혼자서 아무 감정이나 억지로 지어본들 아무 소용 없으니까. 그리고 이러한 거짓된 감정을 남에게 보이다 보면, 우리는 그 감정에 자기도 모르게 감화되곤 한다. 그 감정을 진짜 자신의 감정이라 착각하거나, 다른 사람 앞에서 거짓된 감정을 표출하지 않고서는 자신을 표현하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기도 한다. 호시 요리코 작가의 만화 『아이사와 리쿠』는 이러한 거짓된 감정에 대해 생각해 보게 만드는 작품이다.
이 작품의 제목이자 주인공인 아이사와 리쿠는 감정을 속일 줄 아는 중학생이다. 수도꼭지를 틀듯이 원할 때마다 남들 앞에서 눈물을 흘릴 수 있다. 이를 이용해 다른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모으고, 때로는 리쿠가 원했던 대로 상황이 흘러가게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가짜 눈물 때문에 리쿠는 진심이 담긴 감정을 거의 느끼지 못한다. 그나마 느끼는 것은 딱딱하면서도 엄격하고, 편견에 가득 차 있으며 딸보다 자기 자신을 더 생각하는 어머니와 자상하고 딸을 신경 써 주지만, 아내 몰래 다른 여자와 바람을 피우며 정작 아내에겐 무관심한 아버지로 인해 생기는 ‘싫음’이라는 감정뿐이다. 그러나 이런 진심 어린 감정마저 거짓된 감정 속에 감추며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리쿠의 삶에 어느 날 변화가 생긴다. 가족 앞에서 감추고 살아온 거짓된 감정을 자기도 모르게 표출하게 되고, 이를 본 가족은 리쿠에게 휴식이 필요하다고 느낀다. 가족들은 엄마가 자격증 공부에 좀 더 집중할 수 있도록 할 겸 리쿠를 잠시 간사이에 사는 고모할머니 댁에 보내기로 한다. 리쿠는 이곳이 처음엔 맘에 들지 않았다. 원래 살던 집과 달리 자신에게 잘 대해주는 집에 적응이 되지 않았고, 엄마가 심어준 편견 때문에 간사이 사투리는 이상하게 들리기만 했다. 자기를 챙겨주려는 주변 사람들도 귀찮기만 할 뿐이었다. 그러나 이런 삶 속에서 리쿠는 점차 진심이 담긴 자신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아이사와 리쿠』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호시 요리코 작가 특유의 연필로 그린 가벼운 그림체다. 스크린 톤은커녕 명암도 없고, 배경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하지만 이로 인해 캐릭터에 좀 더 집중하고, 캐릭터들의 감정과 그 감정이 변화하는 과정을 느낄 수 있다. 책을 읽으면서 캐릭터가 느끼는 감정을, 거짓된 감정이 아닌 진심이 담긴 감정을 직접 느낄 수 있다. 감정을 주요 소재로 한 이 작품에서 이러한 그림체는 더 빛을 발했다. 이 덕에, 작가 호시 요리코가 『아이사와 리쿠』를 통해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메시지를 더욱 잘 느낄 수 있다.
거짓된 감정은 남에게 보이기 위한 감정, 남을 속이기 위한 감정이다. 사람끼리 서로 대하는 일이 많은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거짓된 감정을 짓는 일이 많다. 남 앞에서는 웃다가도 혼자가 되면 그제야 표정이 바뀌며 진심을 드러내고, 편견에 속아 넘어가 어떠한 상황에선 어떤 감정을 짓는 것이 맞다 착각하기도 하고, 좋아하는 상황에서도 주변 사람들에게 맞춰주기 위해 애써 싫은 감정을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거짓된 감정을 계속해서 지으면 나도 모르게 그 감정이 진짜라 믿게 되거나, 진심이 담긴 감정을 짓지 못하게 되기도 한다. 감정은 남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나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 사람이 감정의 동물이라 불리는 이유는 남들과 감정을 통해 소통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감정을 통해 자기 자신 안에 있는 무언가를 표출하기에 그런 것이다. 자기 자신을 속이면서까지 남에게 감정을 보인다 한들, 마음 깊숙이 숨겨진 진심을 드러내지 못한다면, 그 감정은 점점 속에서 응어리져 예상치 못한 형태로 표출되고는 한다. 그리고 그로 인해 사람들과 더 거리를 두게 되고, 점차 혼자 지내는 일이 많아진다.
거짓된 감정이 나쁘기만 하다는 것은 아니다. 남을 속이기 위해 짓는 감정이긴 하지만, 남들을 위해 배려하면서 짓는 감정일 때 또한 있으니까. 하지만 그런 감정이 진심이 아니란 걸 상대가 알게 된다면, 상대는 내가 감추는 진짜 감정이 뭔지 알고 싶지 않을까? 거짓된 감정이 점차 나 자신조차 속여 어떤 감정을 지어야 하는지 모르는 상황이 오지 않을까? 진심이 담긴 감정은 사람 간의 진실한 관계를 만들고, 나 자신을 좀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 준다. 친구를 만들고, 동료를 만들고, 연인을 만들어 사회에 내가 녹아 들어가게 해준다. 진심이 담긴 감정이 소통의 창구가 되어준다.
그런 진심이 담긴 감정을 짓기 힘든 현시대에, 이 작품은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해준다. 너무 남을 위해서만 감정을 표현하지는 않았는지, 내가 느끼고 있는 감정을 나 자신조차 모르고 있지는 않았는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러한 진심의 감정을 풀어놓을 해결책 또한 제시한다.
일상적인 삶에서 벗어나 다른 경험을 한번 해본다거나, 속에 감추고 지내왔던 진실을 남에게 털어놓거나, 다른 사람이 원하던 것을 기억해 그에게 전해본다. 남들이 심어준 강압적인 편견을 떨쳐내 본다. 이러한 일들이 우리가 감정을 짓는 데 좀 더 솔직해지는 방법을 제시할 것이다.
『골든 카무이』, 『치하야후루』, 『요츠바랑!』 등의 쟁쟁한 작품을 꺾고 2015년 제19회 데즈카 오사무 문화상 대상을 받은 『아이사와 리쿠』. 감정을 숨기고 살아가는 현시대에 한 번쯤은 읽어볼 만한 만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