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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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 우산 아래, 인간을 걷다, <스몰 프레임>

스몰 프레임(조성환, 미메시스) 리뷰

2025-07-17 문종필

무지개 우산 아래, 인간을 걷다

『스몰 프레임』의 연민과 반역

조성환의 신작 <스몰 프레임>(미메시스, 2025)이 최근에 출간되었다. 그는 이 텍스트 이전에 <재생력>(미메시스, 2022)과 <배부르지않아 배부르잖아>(미메시스, 2024)를 출간했다. 모두 미메시스 출판사에서 나온 데에는 모종의 이유가 있을 것 같지만, 이런 이유가 작품을 감상하는 데 중요하지는 않다. 그보다는 그가 오랜 시간 관심을 두고 있었던 주제에 대해 잠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재생력>(2022), <배부르지않아 배부르잖아>(2024), <스몰 프레임>(2025) 표지

우선 조성환의 첫 책인 <재생력>에 대해 간략하게 이야기해 보자. 이 텍스트에는 지구에 존재하는 악성 유전병을 치료한 한 과학자가 등장한다. 그의 천재성으로 인간을 괴롭혔던 유전병이 대부분 사라지면서, 이 세계관에서 인류의 수명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삶에 아쉬움이 남았거나, 마음의 빚을 갚아야 했던 사람들은 이 과학자의 놀라운 의학 기술 덕분에 심리적 결핍을 채울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인간의 수명이 무한대로 늘어나는 것을 무작정 좋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유전병이 사라진 시대는 오히려 생명 자체가 가벼운 것으로 치부된 사회가 되어 버린다. 그래서 이 텍스트의 천재 과학자는 생명 경시 현상에 대항해 생명의 중요성을 강조하려 애쓴다. 그 방법이 기이하다. 시체를 사들여 과학기술의 도움을 받아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키는 것이다. 이 과학자는 그 순간 ‘신(神)’이 되기를 꿈꾼다. 이 존재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쏟는다.
두 번째 텍스트는 <배부르지않아 배부르잖아>이다. 이 작품은 인간의 욕망에 대해서 다룬다. 욕망이라는 표현이 ‘허기’로 비유되어 이야기가 흘러간다. 굳이 이론의 도움을 받지 않아도 ‘요구’와 ‘욕망’의 관계는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요구는 요구 대상이 채워지면 사라진다. 반면에 욕망은 정신분석학 이론에 의하면 채워지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이런 욕망의 메커니즘을 응시하지 못하는 인간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면서 흔들리고, 자신이 꿈꾸는 진정한 욕망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 채 허기(욕망)를 채우면서 평생을 살아간다. 두 번째 텍스트에서 조성환은 욕망에 휘둘리는 인간의 부조리에 관해 이야기한다.
요약하자면, 첫 번째 텍스트에서는 인간의 수명이 계속해서 증가하는 세계관 속 인간의 대처에 대해 질문을 한 것이고, 두 번째 텍스트에서는 삶 속에서 자신의 온전한 욕망이 아닌 변질된 욕망을 따라가는 어리석은 인간에 대해서 질문한다. 물론, 이런 ‘인간’은 지금 글을 쓰고 있는 나 자신을 포함해 대부분의 사람이 겪는 딜레마이다.



<스몰 프레임>(2025) 표지

그렇다면 이번 신작 <스몰 프레임>은 어떤 작품인가. 이 작품 역시 앞선 두 전작과 같은 문제의식을 품는다. <스몰 프레임>은 서로 다른 두 단편을 통해 인간의 ‘삶’이란 무엇인지에 관해 묻는다.
<스몰 프레임>에는 ‘신과 탄생’이라는 질문이 담겨 있는 <제네시스-GENESIS>와 <무명 사신-UNNAMED DEATH>라는 두 개의 단편이 있다. <제네시스>는 난해한 작품으로 판단(?)된다. 과도하게 난해하지는 않지만, 전작에 비해 작가의 의도가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말풍선이 거의 없고 ‘효과음’만이 정보를 수집할 수 있는 단서가 된다. 물론, 칸과 그림으로 서사의 시간을 충분히 구체적으로 보여주지만, 내용 자체가 ‘신’과 ‘탄생’이라는 추상적인 형태라는 점에서 독자에게는 조금 어렵게 다가올 수도 있다. 이런 추상적인 성질 때문에 작가 역시도 구체성을 포기하고 칸과 그림과 시간으로만 재현해 낼 수밖에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제네시스> 119쪽

<제네시스>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띠가 있는 어느 행성에 인간의 우주선이 도착한다. 우주선은 그곳에서 토양 검사를 한다. 검사는 완료되고, 토양 입자를 토대로 행성이 견딘 기억의 시간을 생성한다. 그때 갑자기 화면이 꺼진다. 그 이후 <제네시스>는 행성의 기원을 독자에게 보여준다.

이야기는 먼 과거에서부터 시작한다. 이 행성에는 식물이 살고 동물이 살고 공룡(?)처럼 보이는 기이한 생명체들이 산다. 그곳에 인간의 형체를 닮은 남성 거인과 여성 거인이 함께 공존한다. 하지만 이들의 공존은 화기애애하지 않다. 남성 거인은 여성 거인에게 잘 보이려고 하지만 여성은 그런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남성 거인은 여성 거인을 독차지하려고 하지만 여성 거인은 그것이 폭력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거절한다. 그때 이상한 물체가 여성 거인을 위협한다. 남성 거인은 여전히 여성 거인을 사랑하기에 그것을 떼주기로 마음먹고 희생한다. 남성 거인의 희생으로 여성 거인은 운 좋게 다시 육지를 걸을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여성 거인은 홀로 남는다. 여성 거인은 과거 남성 거인이 행성을 홀로 배회했던 것처럼, 이 행성에서 고독하게 살아간다. 여성 거인이 걷고 디뎠던 흔적은 행성의 표정이 된다. 인간은 이런 시간의 기록을 아무것도 모르는 듯 셈한다. 조성환은 이런 서사를 통해 인간의 ‘첫’을 고민한다.

<무명 사신>은 앞선 단편과는 대조적으로 구체적이다. 조성환은 이 단편에서 수많은 말풍선을 활용해 빈틈없이 교과서처럼 서사를 채운다. 세계관을 구축해 이 세계에서 벌어지는 모순에 대해 다룬다. 하지만, 이 모순은 인간의 모순이고 인간에 대한 연민의 흔적이다. 인간에게 연민을 느낀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인간을 사랑한다는 말이 되고, 애정을 품고 바라봐야 할 대상으로 인간을 인식하는 것과 다름없다. 전작에서 인간의 욕망에 관해 탐구했던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별 볼 일 없는 인간이지만, 한편으로 소중한 가치를 지니고 아름답게 빛날 수 있다.

<무명사신> 181쪽

<무명 사신>의 세계관은 한국식으로 말해, 저승사자(요원) 세계관이다. 지구에 인구가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으니 위험하다는 판단하에 인간의 개체 수를 줄여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이 작품을 횡단한다. 요원들은 정석대로 인간의 죽음을 기다리다가 저승으로 데려가지만, 지구에 인구가 급속도로 증가하는 과정에서 요원들이 의무적으로 인간을 죽여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그중에 일부 요원들은 지금 당장 막무가내로 인간을 죽여야 하는 상황이 곤혹스럽다. 인간에게 연민을 느끼게 되는 과정에서 상부의 지시를 순순히 받아들일 수 없다. 일부 요원들은 이런 부당함으로 인해 흔들린다. 마음이 흔들리는 두 요원이 <무명 사진>의 주인공이다.
이 텍스트에서 인간은 제 삶을 지옥으로 묘사한다. 60년의 삶을 산다면 59년 9개월이 고통인 삶을 견디는 것이 인간이라고 말한다. 죽는 것이 오히려 이성적으로 나은 결정일 수 있다고 판단하기도 한다. 그래서 요원들은 인간을 죽이는 데 있어 어설픈 연민을 가지면 안 된다고 서로를 독려한다.
저승에서는 폭발적으로 지구의 인구가 증가하는 위험 앞에 인구를 줄일 수 있는 해결책으로, 바이러스, 군사 쿠데타, 총기 난사, 전쟁, 대지진, 행성 충돌 등의 해결책이 언급된다. 하지만 요원들이 직접 발로 뛰면서 사람들을 처리하기로 합의를 본다. 상부의 이 임무를 온전히 수긍하지 못하는 요원(저승사자)들은 인간 세계로 추방당하게 된다. 인간으로 산다는 것은 고통 속에서 산다는 것임을 잘 알고 있기에 일부의 요원들은 죽기 살기로 사람들을 죽인다.
그러나 주인공인 두 요원은 아무 이유 없이 인간을 죽일 수 없다. 힘들게 노동하며 살아가는 어느 아주머니가 일을 마치고 전화로 아들에게 먹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묻는 것을 보고 그녀를 죽일 수 없다고 판단한다. 나약한 노인을 만났을 때는 이곳의 생을 조금이라도 더 연장해 주기 위해 저승으로 데려가는 순서를 뒤로 미룬다. 방금 누군가에게 프러포즈를 받고 행복한 삶을 꿈꾸는 한 여성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두 요원은 상부의 지시를 거절할 수밖에 없다. 끝내 이 둘은 고통을 받는 인간이 된다.

<무명사진> 153쪽

단편 <무명사진>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은 소품으로 쓰인 무지개 ‘우산’이다. 이 우산은 이 텍스트의 가장 중요한 소재이자 시적인 역할을 하는 장치이다. 아마도 이 장면이 없었더라면 이 단편은 성공하지 못했으리라.

나는 앞서 이 작품에 두 요원이 등장한다고 말한 바 있다. 이 둘은 저승사자 선후배이다. 후배는 인간에 대한 연민으로 인해 실적이 좋지 않아 요원의 세계에서 가장 먼저 밀려난다. 요원의 세계에서는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사람들을 없애야 하는데 그는 이것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런 마음은 오랜 시간 함께 일을 했던 선배에게 고민의 형식으로 발화된다. 이 발화 속에서 그는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고 요원이기를 포기한다.
그런 그가 우산을 저승에서 선물 받았다고 작품 초반에 이야기한다. 후배 요원은 이 우산의 쓸모에 대해 정확히 알지 못한다. 사람을 죽여야 하는 직업의 특수성으로 인해 위험한 상황에 노출되었을 때 대비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인다. 호신용 무기로 착각한 것이다. 그러나 이 우산의 쓸모는 요원들의 감정 변화를 확인하기 위해 제작된 것이다. “얼마나 인간의 감정에 흔들릴 수 있는가.”를 측정하는 ‘표시계’였던 것이다.
중요한 것은 선배 역시 후배와 같은 마음이라는 사실이 우산을 통해 간접적으로 표현된다는 것이다. 텍스트의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에서 두 요원이 우산을 바라봤을 때, 항상 무지개색으로 우산을 바라봤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두 요원은 함부로 사람을 없앨 수 없었던, 그 누구보다도 인간을 닮은 요원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메시지는 우리에게 인간이 무엇인지, 인간을 향한 ‘연민’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하게 만든다. 이기적이고 보잘것없는 인간을 품에 안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질문한다. 그래서 텍스트의 표지와 끝이 조각가 로댕(1840~1917)의 <생각하는 사람>으로 마무리된 것은 의도적인 연출임을 증명한다. 인간은 대체 어떤 존재일까. 조성환은 이 메시지를 SF 형식을 통해 그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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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종필

글쓴이 문종필은 평론가이며 지은 책으로 문학평론집 〈싸움〉(2022)이 있습니다. 이 평론집으로 2023년 5회 [죽비 문화 多 평론상]을 수상했습니다. 그밖에 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서 주최하는 대한민국만화평론 공모전 수상집에 「그래픽 노블의 역습」(2021)과 「좋은 곳」(2022)과 「무제」(2023)을 발표하면서 만화평론을 시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