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궤도 밖을 상상할 수 없는 경우, <저궤도인간>

저궤도인간(조은영, 네이버웹툰) 리뷰

2025-08-12 이현재

궤도 밖을 상상할 수 없는 경우, <저궤도인간>

저궤도인간, 조은영

[그림1 메이저 웹툰 플랫폼 양사의 5년간 소비자 선호도 추이]
데이터출처: 만화웹툰 이용자 실태조사 보고서 (한국콘텐츠진흥원, 2020~2024)

웹툰 시장의 궤도가 된 네이버웹툰

좋은 뜻으로든 나쁜 뜻으로든 한국의 웹툰 시장, 어쩌면 만화 시장 전체는 네이버웹툰 없이 작동하지 않을 확률이 대단히 높다. 그만큼 한국의 만화 시장에서 네이버웹툰의 지위는 절대적이다.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면, 한국 만화 시장 참여자들의 헤게모니와 계층 구조가 명확해 새로운 기획과 시도를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실행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할 수 있다. 네이버웹툰의 절대적 지위를 바탕으로 형성된 이러한 기대는 단순히 시장 참여자들의 의사결정 효율화에서만 평가할 수 없다. 빠른 의사결정을 바탕으로 신속하게 진행되고 있는 사례연구는 시장의 혁신성을 촉진하며, 혁신성을 바탕으로 시장에 강력한 확장성을 내재하게 만든다. 더불어 네이버웹툰이 절대적인 지위를 바탕으로 한국의 만화 문화를 대중의 저변까지 확산하는 데 크게 이바지한 점은 부정할 수 없는 성과다. 또한, 마블 코믹스와 DC코믹스를 동시에 유통하며 미국 만화 유통 시장의 절대자로 군림했던 다이아몬드 코믹스 디스트리뷰터스가 올해 초 시장 혁신에 실패하고 파산했다는 점을 생각해 보자. 네이버웹툰이 절대적인 지위를 가진 시장 참여자라는 점을 나쁘게 평가한다고 해도, 지난 10년간 네이버웹툰이 쌓아 올린 성과와 기여는 결코 얕잡아 볼 수 없다.

[그림2 네이버웹툰 신작(8월 기준)51개 작품 태그를 통한 장르 분포도 트리맵]
파란색은 원작이 있는 작품 초록색은 창작된 작품 노란색은 브랜드/스핀오프 등


[그림3 카카오웹툰 & 카카오페이지 신작(8월 기준)55개 작품 태그를 통한 장르 분포도 트리맵]
파란색은 원작이 있는 작품 초록색은 창작된 작품 노란색은 브랜드/스핀오프 등
카카오웹툰의 경우 카카오페이지와 동시 연재되는 경우가 많아 카카오페이지와 함께 분석했으며,
카카오웹툰 무료 연재의 경우 5개의 작품이 신작에 올라와 있다.

물론, 네이버웹툰이 시장의 절대적 지위를 가지고 한국의 만화 시장과 문화에 긍정적인 기여만 한 것은 아니다. 많은 평자가 네이버웹툰의 독주를 두고 작품의 다양성 저하를 우려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특정 시장 참여자의 독주 자체가 작품의 다양성을 해치는 결과를 만들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특정한 시장 참여자의 독주로 인해 시장에 발생하는 진정한 문제는, 시장의 탄력성과 회복력이 크게 저하된다는 데에 있다. 특정한 시장 참여자의 절대적인 지위가 효율성을 만드는 원리는 넓게 퍼진 가능성을 특정한 어젠다로 모으는 데서 온다. 견고하게 설정된 어젠다는 단순한 표어로만 남지 않는다. 구체적인 수치와 지표를 산출하며, 다양한 통계로 가공되어 수치와 의미를 측정할 수 있을 정도로 정밀한 사회적 기능을 구현한다. 이 과정에서 지표는 필연적으로 귀납적 정보 처리에서 연역적 정보 처리로 이동하게 된다. 그러나 연역적 가정이 지표와 적절한 관계를 찾지 못하면 정보는 지나치게 넓거나 협소한 의미를 지시하게 되어, 수치로서의 가치를 잃게 된다.

특히 정보의 의미가 특정 행위자 등에 의해 결정되는 경우 정보의 해석 가능성이 지나치게 협소해진다. 이 경우, 정보를 바탕으로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 시장 참여자들은 일관된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고, 이는 시장 실패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에 대한 사례는 멀리 갈 필요 없이, 최근 부진이라는 표현이 점잖게 느껴질 정도로 급격한 붕괴를 겪고 있는 한국의 영화 산업을 생각해 보면 된다. CJ ENM의 넓고 강력한 콘텐츠 유통망은 지금의 네이버웹툰처럼 시장에 강력한 헤게모니와 계층 구조를 제공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영화 시장과 문화 전반에 부정할 수 없는 성과와 기여를 쌓았다. 경쟁자였던 롯데컬쳐웍스와 콘텐트리중앙과의 격차도 성공적으로 벌려왔지만, CJ ENM이 영화 시장에서 30년 가까이 쌓았던 헤게모니와 계층 구조는 넷플릭스라는 외부 시장 경쟁자와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외적 요인의 등장으로 급속히 무너졌다. 그리고 CJ ENM이 영화 시장에서 주도권 상실하기 시작하며, 한국 시장 전반 역시 붕괴했다. 심하게 말해, 네이버웹툰 역시 CJ ENM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글로벌 시장에서 무조건 점유율을 높여 시장 자체를 확장해야만 한다.

간절함에도 용기가 필요한 시대

만화 리뷰를 하면서 만화 자체와 관계가 없어 보이는 시장 이야기에 지나치게 지면을 길게 할애한 이유는, 이제 네이버웹툰을 제외하면 메이저라고 부를 만한 시장이 남지 않은 것 같기 때문이다. 그 이야기는 다양성, 나아가 대안적 가능성을 상상하려고 해도 네이버웹툰을 벗어나 이야기하기 힘들어졌다는 의미다. 더불어 네이버웹툰은 이제 정부와 제도의 손으로도 건들기 힘들 만큼 한국 웹툰 시장에서 독점시장을 성공적으로 구축했다. 이 상황은 응당 만화 리뷰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야 했을 작품 <저궤도인간>과 그 작품의 주인공인 39살 시간강사 주재열의 처지와 닮았다. 인간의 불안을 소재로 삼고, 현실적인 작화를 지향하며 리얼리즘 사조를 따라가는 듯한 문학적 내러티브를 가지고 있어 사이코드라마나 슬로번 호러(Slow-Burn Horror)와 같은 비주류 서브 장르 컨벤션 이상을 적용하기 어려워 보인다. 그 때문에 마니아층을 발굴할 수 있을지언정 많은 독자를 만나기는 힘들어 보이는 만화이기도 하다.

<저궤도인간>의 작가 조은영은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제 취향껏 만들었습니다. 저와 취향이 비슷한 독자님들을 많이 만나고 싶어요.”라고 웹툰 개시에 대한 소회를 밝혔다. 작가 역시 작품을 내놓을 때 어느 정도 각오는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한국 웹툰 시장은 그러한 각오조차 네이버웹툰이 아니면 수용될 수 있으리라는 상상을 펼치기 어려운 시장이 되었다. 다른 곳에서 수용한다고 하더라도, 네이버웹툰이 아니면 저와 취향이 비슷한 독자님들을 많이 만나고 싶어요.”와 같은 바람을 품기 어려운 시장이 되었다. 저궤도라도 궤도 안에 안착하고 싶다는 바람은 단순한 안전과 안정의 욕망이 아니라, 애초에 궤도 밖을 상상할 수 없을 때 가지게 되는 간절함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제는 간절함을 갖는 데도 용기가 필요해졌다. 스포트라이트를 비춰 주지도, 작품에 대한 깊은 분석을 하지도, 장점을 짚어주지도 못했지만, 그럼에도 건투를 빈다.

필진이미지

이현재

경희대학교 K컬쳐・스토리콘텐츠연구소, 리서치앤컨설팅그룹 STRABASE 연구원. 「한류 스토리콘텐츠의 캐릭터 유형 및 동기화 이론 연구」(경제·인문사회연구회) 「글로벌 게임산업 트렌드」(한국콘텐츠진흥원) 「저작권 기술 산업 동향 조사 분석」(한국저작권위원회) 등에 참여했다. 2020 동아일보 신춘문예 영화평론부문, 2021 한국만화영상진흥원 만화평론부문 신인평론상, 2023 게임제네레이션 비평상에 당선되어 다양한 분야에서 평론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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