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초기화
글자확대
글자축소

조금 무서운데 웃기다가 슬프고 마침내 따뜻해지는, <우리반 숙경이>

우리반 숙경이(글 해밀 외 1인/그림 뽀얌, 카카오웹툰•카카오페이지) 리뷰

2025-08-12 김득원

조금 무서운데 웃기다가 슬프고, 마침내 따뜻해지는

『우리반 숙경이』, 글 해밀 외 1/그림 뽀얌

폭풍우 치는 밤 어두운 교실, 학생 한 명이 앉아 있다.
머리카락 때문에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마침 순찰을 돌던 경비 아저씨가 이를 발견하고 놀란다.

일반적인 괴담이라면 학생은 귀신이었을 것이고, 홀연히 사라졌다가 불쑥 다른 자리에서 나타나 경비 아저씨를 해쳤을 것이다. 아니면 다음 날로 장면이 전환되어 귀신을 보기 위해 학생들이 작당모의를 하는 전개일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반 숙경이>의 경비 아저씨는 왜 창문을 닫지 않고 갔냐며 화를 내며 교실로 들어온다. 귀신을 신경도 쓰지 않는데, 그 귀신은 비에 젖은 채로 앉아 있다. 귀신의 이름은 숙경이다. 숙경은 27년째 교실의 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조금 어둡고 과묵한, 누구에게나 보이는 귀신이다.

귀신과 친구가 되었는데요

귀신이란 무엇인가. 사람으로 태어나 죽었으나 저승으로 가지 않고 이승을 배회하는 존재다. 그들에게는 대체로 기구한 사연이 있다. 숙경은 무슨 사연이 있기에 교실에 머물러 있었던 걸까.

<우리반 숙경이>의 장르는 호러 개그다. 귀도고등학교에 전학 온 주인공 다운은 눈치가 너무 없어서 귀신을 보고도 귀신인 줄 모르고, 착각물의 전형을 따라 숙경에게 말을 걸며 친구처럼 지낸다. 이전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다 전학을 와 숙경을 처음 본 다운에게 숙경은 조금 어둡지만 과묵한 친구일 뿐이었다.

숙경은 낮에도 누구에게나 보이는 귀신이었고, 너무 오랜 시간 같은 자리에 가만히 있었다. 그래서 학교 관계자들도, 학생들도 모두 그러려니 하는 존재가 되었다. 학교는 대외적으로 귀신이 나오는 곳으로 유명해졌지만, 다운은 급하게 전학을 왔던 까닭에 그 사실을 몰랐다. 오해가 이어지는 와중에도 다운을 걱정하는 따뜻한 친구들이 생기고, 다운은 꿋꿋이 학교생활을 이어간다.

그림1) 숙경에게 말을 거는 다운과 놀라는 반 학생들
©해밀 외 1/뽀얌, <우리반 숙경이>, 카카오페이지

귀신인 숙경과 친구가 된 다운이 마주하게 될 숙경의 과거란 무엇일까. 다시 돌아오자면, 숙경이는 왜 교실에 머물러 있었던 것일까. 숙경은 예전에 모종의 사건으로 실종된 후,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 27년 동안 교실 한 자리를 지켜 왔다. 실종과 재등장에 얽힌 비밀은, 숙경이 다운과 가까워지고 반 친구들과 진짜 친구가 되는 에피소드를 지나며 서서히 밝혀진다.

숙경은 귀신임에도 물리력을 행사할 수 있어 사람과 사물을 만질 수 있고, 낮에도 영안(靈眼)이 없는 사람들의 눈에 보이며, 말을 통한 의사소통도 가능하다. 또한 지박령(地縛靈)이 아니라 얼마든지 학교를 벗어날 수도 있는 비범한 귀신이다. 이렇듯 일반적 귀신과 궤를 달리하는 설정들은 후반 전개에서 복선으로 작용하며 완벽하게 회수된다.

위 내용만 본다면 어둡고 무거울 듯하지만, 눈치가 지나치게 부족한 다운으로 인해 발생하는 오해와 그로 비롯되는 어지러운 상황들로 인해 작품의 톤은 매우 가볍다. 괴담의 클리셰라 할 수 있는 요소들이 촘촘하게 있음에도 늘 비틀린 방향으로 귀결되며 웃음을 자아낸다. 물론 웃음이 이 작품의 전부는 아니다.

같은 사람이었고, 우리도 언젠가 귀신이 될 수 있어

<우리반 숙경이>에 등장하는 어른들은 학생들의 무관심 혹은 두려움과 대비되는 다양한 감정을 보여준다. 귀도고등학교 생물과학 선생과 이사장은 숙경에게 유독 적대적이다. 교감 선생은 숙경에게 호의적이며, 무슨 사연인지 한없이 미안해한다. 숙경의 과거 친구였던 다운의 엄마는 귀신이 된 숙경을 보고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한다.

하지만 변화는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온몸을 내던질 다정한 마음을 가진 다운으로부터 시작된다. 다운이 선입견을 배제하고 숙경과 어울리는 마음이 주변에 퍼지면서, 하나둘 거리감을 잊게 되는 것이다. 점점 숙경도 사람이었다는 것, 귀신도 결국 같은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된다.

숙경에게 해를 끼치면 저주에 걸린다는 소문의 진상을 확인하기 위해 조사하거나, 어떤 어른의 농간으로 숙경이 학교에서 내쫓길 위기에 처했을 때 모두가 이를 막으려 애쓰는 모습은 인물들의 변화를 극적으로 보여준다. 이를 보여주는 시점마다 인물 개개인의 상처를 상기시켜 줌으로써 그들의 변화는 작위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사람이란 남에게서 를 발견하고 이해하며 성장한다. 성장은 남을 통해 찾은 또 다른 를 직시해야만 가능한 법이다. 이 과정에서 흐르는 눈물, 어렵사리 꺼내는 속내는 성장의 밑거름이 되는 것이다.

<우리반 숙경이>는 마음가짐을 달리하면 모두와 친구가 될 수 있다는,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낙관적인 관점을 내세운다. 의중을 알 수 없는 이종(異種)이지만, 그걸 꼭 알아야만 친구가 될 수 있느냐는 거다. 낯선 존재를 대할 때 사람의 반응은 거부감을 가지고 멀어지려 하거나, 호기심을 드러내며 가까워지는 것 두 가지로 구분해도 무방할 것이다. 낯선 존재라고 하면 좀 막연한가. 새로운 기기라고 봐도 좋고, 처음 보는 동물 혹은 곤충이어도 좋다. 그러나 반응의 시작점이 어떠하든 마음을 주고받는 친구로 남거나, 서로에게 무관심해져 떠나는 게 이종 간 관계의 엔딩이 아닐까 한다.

그림2) 가운데 모둠에 혼자 앉아 있는 숙경과 짝꿍이 된 다운
©해밀 외 1/뽀얌, <우리반 숙경이>, 카카오페이지

낙관의 힘으로 완성한 호러 개그 드라마

어쩌면 귀신이란 눈에 띄지 않는 존재, 외면하고 있는 진실, 의식할 필요가 없던 사람일 수도 있다. 나에게도 여러 관계가 있었다. 주변의 눈치를 보며 마음을 감춘 소심함, 부담스러운 사람보다는 언젠가 한 번 봤던 사람으로 남는 게 낫다는 초라함 속에서 지나친 관계들이 많았다. 아마도 내가 그들에게 귀신이었던 경우일 테다. 다른 누군가가 나에게 귀신이었을 수도 있지만, 내가 기억할 수 있는 건 나의 마음뿐이다.

다운이 숙경을 대하는 태도는, 자신도 귀신처럼 겉돌고 외로웠기에 오히려 숙경에게 호감을 느꼈던 덕분일 것이다. 다운의 성격과 기질상 본인의 진심을 맨 앞에 두니, 독자들은 숙경을 위한 다운의 비현실적 행동을 흐뭇하게 응원하게 된다.

<우리반 숙경이>는 초반에 귀신이 등장하는 호러를 내세우지만, 단순히 호러로만 분류할 수 없다. 플랫폼 페이지 내에는 드라마로 분류되어 있다. 그럼에도 이 작품의 진가는 호러이자 개그이면서 동시에 드라마라는 데 있다.

그림3) 호러 연출 예시 2
©해밀 외 1/뽀얌, <우리반 숙경이>, 카카오페이지

작품에서 드러나는 다채로운 연출은 작품 전반에 깔린 낙관에 힘을 더한다. 이제 웹툰의 형식으로 보여준 방식의 탁월함을 언급해야 할 것이다. 앞서<우리반 숙경이>는 호러 개그 드라마 장르라고 했다. 이는 단순히 서사 유형에 대한 분석이 아니다. 실제로 한 회차 내에도 호러 장르 특유의 긴장감을 유발하는 점진적 연출과 반전, 반전 이후 단순해진 인물을 표현하는 선과 과장된 표정, 주변의 시끌벅적한 반응이 패턴처럼 자주 등장한다.

내면의 변화를 다루는 회차는 일상 드라마의 서정적인 톤으로 구성되고, 분위기가 무거워진다 싶으면 어리숙한 다운과 숙경, 혹은 주변 친구들의 잔망스러움으로 슬쩍 환기한다. 호러적 상황과 가벼운 개그, 복잡한 서스펜스를 어렵지 않게 풀어내는 와중, 작화의 완급조절이 이를 능숙하게 통제하여 독자들에게 몰입감을 선사한다. 이 패턴이 몇 번 반복되며 각 인물의 시점으로 숙경이에 대한 묘사가 나온다. 모든 사건은 숙경에게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반 숙경이>해밀 외 1으로 명기된 스토리 작가의 서사 구성 역량과, 다양한 장르 연출에 대한 이해를 쌓은 그림 작가 뽀얌202011월 연재를 시작해 20236, 103(에필로그)로 완결한 작품이다. 복합 장르 서사로서 좋은 작품을 보여준 작가진 중 한 명인 뽀얌 작가의 후기에 있던 아래의 컷을 보여주며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유난히 무더운 이 여름, 조금 무서운데 웃기다가 슬프고, 마침내 따뜻해지는 <우리반 숙경이>와 함께해 보길 권하고 싶다.

 

그림4) 뽀얌 작가의 후기 내 삽입 컷 & <우리반 숙경이> 썸네일
©해밀 외 1/뽀얌, <우리반 숙경이>, 카카오페이지

필진이미지

김득원

만화 평론가
E-mail: dokwon0o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