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초기화
글자확대
글자축소

만화와 식사, <백수세끼>

백수세끼(치즈, 네이버웹툰) 리뷰

2025-09-03 이종석

만화와 식사, <백수세끼>

『백수세끼』, 치즈

 

. 의식주 중 하나이자, 사람의 욕구 중 하나인 식욕을 충족시켜 주는, 살면서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 만큼 만화에서도 등장인물이 음식을 먹는 장면을 통해 여러 가지를 전달하려 할 때가 많다. 식사 장면은 인물이 인간으로서 가지는 욕구 중 하나를 보여주고, 취향과 태도, 습관 등을 보여주어 등장인물을 좀 더 사람으로 보이게 한다. 여러 사람이 함께 식사하는 장면은 단순히 음식을 먹는 것을 넘어, 대화와 행동을 통해 인물 간의 관계를 드러낸다. 이런 장면이 반복되면 관계의 변화 과정을 보여주기도 한다. 특정 상황이 끝난 후에 나오는 식사는 안도감이나 허탈감을 전달해 독자가 상황이 마무리되었음을 느끼게 한다. 식사가 우리 삶에서 중요하듯이, 만화 속 식사 장면 역시 단순한 행위 묘사를 넘어 중요한 연출적 위치를 차지한다. 치즈 작가의 웹툰 <백수세끼>는 이러한 점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허영만 작가의 <식객>, 오가와 에츠시 작가의 <신 중화일미>, 쿠이 료코 작가의 <던전밥> 등 요리를 다루는 만화는 많다. <백수세끼>에도 매화 다른 요리가 등장하기 때문에 이 만화도 요리 만화인가?’라는 생각이 들 수 있다. 하지만 <백수세끼>는 요리 만화가 아닌, ‘식사 만화에 가깝다. 앞서 언급한 작품들이 요리 과정을 자세히 설명하거나 <던전밥>처럼 판타지적 설정을 곁들여 소개하는 등 요리에 집중하는 반면, <백수세끼>는 요리 과정은 보여주지만 음식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대신 캐릭터가 음식을 먹는 장면을 통해 삶에서 식사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내 삶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식사는 무엇인지, 어떤 식사를 계기로 삶이 바뀌었는지 등을 생각하게 만든다.


<백수세끼>는 백수 김재호와 회사원 서수정의 삶을 그린다. 대학에서 우연히 만나 7년 넘게 장기 연애를 이어오던 두 사람은 갈등 끝에 결국 헤어진다. 서로의 빈자리를 느끼며 사회에 다시 녹아 들어가려 노력하는 과정에서, 그의 관계는 과거의 추억이 담긴 음식과 사회생활 속에서 마주하는 음식을 통해 변화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백수세끼>의 장점은 음식과 삶의 관계를 잘 보여주는 데 있다. 데이트, 회식, 해장, 스트레스 해소 등 은 식사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우리는 맛있게 음식을 즐기기도 하고, 때로는 맛없는 음식을 억지로 먹기도 한다. 아플 때 몸을 달래기 위해 먹거나, 아픈 사람을 위해 직접 요리해 주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접하는 다양한 음식에는 각자의 사연이 담기기 마련이다. 음식을 먹으면서 과거를 떠올리고, 현재를 기억하고, 미래를 기약한다. <백수세끼>에서 식사는 이렇듯 중요한 역할을 한다.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누구나 겪었을 법한 현실적인 이야기를 다루는 전개는 독자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작품에 몰입하게 만든다.

등장인물의 나이대가 20~30대인 점 또한 이러한 연출에 효과적이다. 이 시기에는 사회에서 자리를 잡아 일을 하는 사람, 일을 찾지 못해 방황하는 사람, 누군가와 사랑을 나누는 사람, 헤어져서 외로운 사람, 사랑을 갈구하는 사람 등 다양한 유형의 사람들이 존재한다. 청소년기를 지나 성인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다양한 경험이 쌓여 있을 뿐만 아니라, 술자리나 모임, 데이트처럼 함께 음식을 먹는 일이 많고 음식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기도 한다. 따라서 각 에피소드마다 다른 사연으로 음식이 등장하는 것이 매우 자연스럽게 느껴지며, 억지로 연출된 느낌이 들지 않는다.

또한, 많은 등장인물이 평면적이지 않고 입체적인 모습을 보여주어 함께 식사하며 삶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때 독자가 더욱 공감할 수 있다. 만화에서만 볼 수 있는 인물이 아니라 현실에서도 만날 법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식사 장면과 자연스럽게 연결되고, 대화를 통해 취업, 연애, 직장 내 갈등 등 현실적인 문제를 떠올리게 하며 캐릭터와 독자 간에 동질감을 형성한다. 다만 일부 인물이 평면적으로 그려져 아쉬움을 남긴다.

음식에 대한 묘사도 훌륭하다. 맛은 혀로 느끼는 미각, 입과 이로 느끼는 촉각, 후각, 시각, 청각 등 여러 감각이 합쳐져서 완성된다. 하지만 만화는 시각만을 전달한다. 따라서 만화에서 음식을 표현할 때는 시각적인 요소를 통해 독자가 맛을 상상하게 만들어야 한다. 단순히 잘 그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며, 음식을 먹는 과정과 캐릭터의 반응 등을 통해 맛을 표현해야 한다. <백수세끼>는 이 점에서 높은 점수를 줄 수 있다. 매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음식의 맛을 시각만으로도 느낄 수 있게 하고, 맛을 표현하는 등장인물들의 모습을 보며 독자도 음식의 맛을 상상하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식사는 삶의 일부이자 우리가 살아가는 원동력이 되어준다. 삶의 지표이자 목표가 되기도 하고, 어떤 식사는 훈훈한 추억으로, 어떤 식사는 좋지 않은 추억으로 남기도 한다. 그 식사가 혼자 한 식사일 수도, 다른 사람과 같이 한 식사일 수도 있다. 식사는 단순히 음식을 먹는 것을 넘어선다. 이러한 식사를 재미있는 방식으로 다룬 만화 <백수세끼>, 앞으로 어떤 음식을 어떻게 식사하며 어떤 삶을 보여줄지 기대된다.

필진이미지

이종석

1995년생. 2023년 대한민국 만화 평론 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하고 현재 평론가로 활동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