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세계, <오후의 광선>
『오후의 광선』, 미나미네

* 본 리뷰는 <오후의 광선>의 결말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0. "그건 전부 나로 덮어쓸 수는 없는 건가"

<오후의 광선>
출처: 문학동네
<오후의 광선>은 엄마의 새 연인을 둘러싼 집안 문제로 고뇌하는 ‘요도이’와 트라우마로 그로테스크한 것에 성욕을 느끼게 된 ‘무라세’가 주인공인 BL 만화다. 무라세는 중학생 때 목격한 전철 사고에서 피와 내장이 튀는 역겨운 장면을 겪은 후, 그 경험이 페티시로 바뀌어 사고로 죽은 사람의 사진을 모으기 시작한다. 학교에서 개구리 해부 중 흥분한 무라세의 모습을 요도이가 의도치 않게 떠벌렸고, 이로 인해 무라세는 괴롭힘을 당하게 된다. 요도이가 무라세를 구해준 것을 계기로 둘은 가까워진다.
요도이와 무라세의 관계는 전형적인 BL처럼 보이지만, 이야기는 무라세의 말처럼 '점점 뇌가 흐물흐물해지는' 서사로 전개된다. 요도이가 무라세의 '검은 앨범' 속 모든 것을 자신으로 덮어쓰라고, 즉 '마음대로 해도 돼'라고 허락하는 말은 무라세를 기쁘게 하면서도 슬프게 만든다. 요도이가 무라세가 바라는 대로 행동하지만, 그에게는 욕망이 거세되어 있다. 이는 요도이가 자신을 소중히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무라세가 요도이를 '신' 같다고 느낀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자신을 안쓰럽게 여기지 않는 신. 심지어 자신의 상처를 바라는 사람에게 기꺼이 자신을 내어주는 사람을 신이라 여기는 것은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닐 것이다.
1. "사실은 잔인한 건데"

<오후의 광선> 일부
요도이가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려 했던 건, 아버지를 대신하려던 마음을 엄마가 외면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만약 요도이가 그런 외면을 받지 않았다면, 무라세가 '내 전부를 요도이에게 줄게'라고 말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어떤 상처는 그 틈으로 애정이 오갈 수 있는 통로가 된다. 그래서 무라세는 '자신의 전부'를 요도이에게 주기로 결심한다. 소심함과 특이한 취향까지 담아 죽이고 싶어 하던 엄마의 애인을 전철에서 있는 힘껏 밀지만 '몸이 덜 커서' 실패한다. 이 일을 계기로 무라세는 '요도이가 아빠의 존재를 대신하려 했을 때의 마음'과 '내가 요도이의 엄마였으면 하는 마음'이 비슷하다고 생각하며, '요도이와 같은 감정을 알게 되어 기쁘다'라고 느낀다. 그래서 무라세는 외로움과 기쁨을 동시에 느낀다. 이는 무라세의 독백처럼 '잔인한 마음'이기도 하다.
2. "사실은 내 몸이 터지는 걸 보고 싶지."

<오후의 광선> 일부
요도이가 '내 몸이 터지는 걸 보고 싶지 않냐'라고 묻자, 무라세가 '보고 싶다'라고 대답하는 장면은 <오후의 광선>이 사랑을 묘사하는 방식이다. 누군가의 슬픈 마음을 자신도 가졌다는 데서 슬픔과 기쁨이 동시에 느껴지는 '잔인한 마음'이라는 깨달음과 같은 방식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몸이 터져버리는 것을 보고 싶어 하는 동시에 계속 함께 있고 싶은 마음을 갖는 것, 요도이가 '무라세 마음에 평생 남을 상처가 된다고 생각하면 두근거려'라고 말하는 것 또한 사랑이다. 서로에게 상처가 되어 오가는 애정의 마음이 넓어지는 것이 바로 사랑이다. 이러한 마음은 그들의 말처럼 '엉망진창'이기도 하다. 엉망진창인 사랑은 무라세가 '요도이 몫만큼 요도이를 소중히 대할 것'이라는 따뜻한 마음을 실현하지 못하게 한다. 요도이를 소중히 여겨야 할 사람은 오직 요도이 자신뿐이었지만, 그는 무라세를 위해 자신을 버릴 수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요도이가 불의의 사고로 죽은 뒤 무라세가 독백한 것처럼. '내가 마지막 순간을 보고 싶다고 말했다면 분명, 간단히, 세계를 버리고 보여줬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