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가 스며든 여행의 기록
『주말엔 산사』, 윤설희

동시대는 만화의 시대라고 부를 수 있다. 분명히 만화의 시대는 아니지만, 만화의 ‘형식’이 다양한 영역에 스며드는 것을 쉽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으니, 뜻하지 않게 만화와는 무관한 다른 장르에서 만화의 흔적을 발견하는 일은 즐겁다. 만화의 형식이 자유롭게 침투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만화 형식의 현재성과 놀이로서의 만화적 형식을 생각하게 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2025년 9월 1일에 휴머니스트에서 출간된 윤설희의 〈주말엔 산사〉도 흥미롭다.
“10년 차 디자이너가 펜으로 지은 숲속 자기만의 방”이라는 부제처럼, 이 책은 만화가가 아닌 10년 차 디자이너가 만화 형식을 빌려 만들었다. 책은 2019년부터 5년간 전국 백여 곳이 넘는 산사를 돌아다니며 그중 가장 특별했던 일곱 곳의 산사, 조계산 선암사, 봉황산 부석사, 만수산 무량사, 모악산 금산사, 운길산 수종사, 천불산 운주사, 수도산 봉은사를 소개한다. 일상에 지친 이들에게 국내 산사 정보를 알려주는 정보만화라 할 수도 있지만, 만화의 형식을 온전히 따르지는 않는다. 칸과 칸의 유기적인 리듬으로 구성된 부분도 있지만, 디자이너의 정체성이 반영되어 그림과 에세이가 조화를 이룬다. 따라서 만화가 차지하는 비중은 30% 정도에 불과하지만, 이 30%가 텍스트를 지루하지 않게 만들며 간접적으로 일곱 곳의 산사 방문을 지루하지 않게 돕는다. 이는 만화가 다른 장르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좋은 사례일 것이다.
텍스트에서 의미 있게 읽었던 부분은 다음과 같다. 김지운 감독의 오래전 영화 〈달콤한 인생〉(2005)에 수록된 선문답이 소개된 부분, “꽃은 한 철이지만 누군가의 마음에 남아 오랫동안 회자되기도” 한다는 구절, “어떤 공간은 사진 한 장으로 모든 것을 표현”하기도 하지만 “어떤 공간은 그곳을 설명하기 위해 빛과 소리, 시간 등을 필요”로 한다는 구절, “사진을 찍는 건 간편하지만 순간을 제대로 즐기는 방법은 아닙니다. 창문의 풍경이 아닌 정자의 풍경을 즐기는 사람처럼, 은행잎의 향과 촉감까지 오롯이 간직하는 법을 고민하다 휴대폰 케이스 안에 은행잎을” 넣었다며 ‘시간’과 ‘촉각’의 소중함을 반영한 구절, “결과만 좋으면 되지 않느냐 하는 사고는 위험한 것이다. 짧은 인생밖에 거느리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그 과정이 전부인 것”이라고 말한 건축가 김수근의 말을 인용한 것, 절이 산에 위치하게 된 이유를 설명한 부분, 전쟁이 잦았던 한국 역사에서 소실되지 않고 남아 있었던 “산사는 한국의 건축을 깊게 이해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내용, “더는 사람과 상황을 ‘이것이다’라고 정의하는 사람이 멋져 보이지 않습니다. 정의하기보다 모든 건 변하고 흘러간다는 걸 알고 받아들이는 사람이 멋지고 대단해 보이기까지” 한다는 작가의 고백, “한국 고건축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대화’입니다”라는 구절. 이처럼 작가의 깊은 성찰은 휴식이 필요한 현대인에게 산사에서 잠시 쉬어가라고 설득력 있는 위로를 건넨다.
독자들은 책 속 깊은 위로의 문장 덕분에 멈추지 못하는 열차에 승차했더라도, 과감히 열차 밖으로 몸을 던질 수 있을 것도 같다. 산사를 방문하며 느끼고 배운 경험을 디자이너가 만화의 형식을 빌려와 재구성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여러 형식이 뒤섞여 다소 복잡하고 산만하다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만화, 직접 그린 그림, 산사에 대한 정보, 직접 찍은 선명한 사진, 짧고 명쾌한 에세이를 동시에 즐길 수 있어 만화의 확장은 물론, 성큼 다가오는 가을에 잠시 쉬어갈 장소를 마련해준다. 〈주말엔 산사〉를 독자들에게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