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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맛

웹툰 〈애휴〉는 이별 후 자기연민과 감정의 왜곡을 섬세하게 그린 작품으로, 중교와 은수가 안동에서 재회하며 상처를 마주하고 성장하는 과정을 통해 ‘사랑과 이별’이라는 시대적 감정을 성숙하게 성찰한다.

2025-10-06 신경진

인간의 맛

『애휴』, 조금산

어느 시대든 시대는 그 시대만의 고유한 감정과 추억을 간직한 채 시대성을 나타냅니다. 그리고 그와 같은 시대적 정서는 시간이 흘러도 쉽게 사그라지지 않은 채, 때로는 과장되어, 때로는 와전되어 후세에 전해지게 됩니다. 뒤이어 후예들은 과거의 시대적 정서를 마치 심해를 탐사하듯 파고들어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새로운 감정들을 발견하며, 마침내 이 모든 감정이 하나의 마음, 즉 하나의 인간적인 본질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되고, 그리하여 ‘해와 달’이 있어 ‘낮과 밤’이 흐르매, ‘너와 나’, 우리가 있어 지구가 ‘회전’하듯이, 이 세계가 전연 상반된 듯 보이나 끝내 산다는 게 동전의 양면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그때에 비로소 매우 적확하게 감정을 포착해 냄으로써 시대를 ‘유감’하기에 이르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시대를 산다는 게. 지나친 감정 속에 간혹 산다는 것이 ‘지나치게’ 말이 안 되는 일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럴 때마다 ‘어휴’라는 짧은 ‘한숨’을 내지르며 자신을 더욱 가련하게 바라보게 되지요. ‘슬픈 휴식’쯤으로 해석할 수 있는 조금산의 <애휴(哀休)>는 바로 그 짧은 탄식과 가련함에서 시작되는 드라마이자, ‘이별 아닌 이별’을 겪은 중교라는 남자와, ‘실연 아닌 실연’을 당한 은수라는 여자의 시대극을 담담하게 그린 다큐멘터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웹툰 <애휴>는 사랑과 상실 같은 보편적인 정서보다는, 멜로드라마답게, 한 가지 주제를 집요하게 파고드는 다큐답게 연애와 이별이라는 보다 개인적이고 구체적인 감정에 집중합니다. 특히 연애가 끝난 뒤에 흔히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주관적이고 편협한 관념 속에 스스로 만들어낸 왜곡된 감정에 몰두하는 처절한 자기 연민을 중점적으로 다루는데, 단순히 이별로 인한 슬픔을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러한 복잡한 감정을 이기적인 감정의 발로로 승화시켜 ‘헤어짐’의 원인을 상대방에게서 찾으려고 하는 자기합리화의 끝판왕다운 현대 사회의 병적인 모습을 담담하면서도 예리하게 포착한다는 점에서 독특한 면모를 과시합니다.

 

이와 같이 인간의 심리를 ‘예리하게’ 파고드는 특징은 조금산의 작품에서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특징 중의 하나로, ‘감정’이라는 보편적인 주제를 중심에 두면서도 이야기를 과장하거나 인위적으로 비트는 대신, 오히려 예측하기 쉬운 정서적 흐름에 따라 소소하게 줄거리를 전개한다는 점입니다. 다시 말해, 최소한의 서사로 독자들의 감정을 지나치게 자극하지 않으면서도 공감대를 형성하는 방식의 클리셰를 고스란히 사용한다는 점인데, <애휴>만 보더라도, 오래된 연인과의 반복된 갈등 끝에 이별을 맞이한 ‘그 남자’ 중교를 잡지에 실릴 지방 도시 관광 홍보 웹툰 제작을 빌미 삼아 경상북도 안동으로 향하게 만들어, 인연이라는 클리셰가 늘 그렇듯 그곳에서 우연히 ‘그 여자’ 은수를 만나도록 장면을 끼워 맞추는 것이죠. 그리고 그 재회의 배경이 되는 장소가 바로 ‘이응태 부부’의 숭고한 사랑을 기리기 위해 조성된 월영교라는 점에서, 작품은 그 지점으로부터 서사의 상징성을 획득하게 되는 것입니다. 즉, 누군가의 애틋한 사랑이 머무는 그 다리 위에서 또 다른 인연이 교차하도록 설정함으로써, 클리셰의 본질을 정면으로 포개 작품의 리얼리티를 가미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 정도로 잘 짜인 한 편의 드라마 스페셜을 보는 듯한 이 작품은 단 11화에 불과하지만, 어떤 작품보다도 깊은 여운을 남기며 독자들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자신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묘한 ‘뒤끝’을 선사합니다. 작중에서 중교와 은수는 처음엔 성격도, 삶의 배경도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보이지만, 만남을 거듭하며 자기 연민을 솔직하게 마주하는 과정을 통해 결국 서로가 닮아 있는 존재임을 깨닫게 되는데요. 그 남자 중교는 아집으로 다투기만 했던 오래된 연인에게 다시 찾아갈 용기를, 그 여자 은수는 점차 자신을 회복하며 다시 살아갈 힘을 얻게 되면서, 각자의 시간이 존재하는 ‘유감스러운 시대’로 되돌아가게 됩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벌써 일 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어느 날, 중교는 무언가에 이끌리듯 다시 안동을 찾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기억을 되짚어가며 무심코 발걸음을 옮기다, 예전 그 여자 은수와 함께 들렀던 찜닭 가게 앞에서 우연히 새로운 남자 친구와 함께 있던 은수를 마주치게 되죠. 잠깐의 어색한 정적이 흐른 뒤, 그 틈을 깨고 그 여자 은수는 그 남자 중교를 바라보며 그 여자랑은 잘 지내냐는 짧은 질문으로 인사를 대신하고, 중교는 미소를 머금은 채 "비밀입니다"라는 짧은 대답으로 그 질문을 가볍게 흘립니다. 모든 것이 변한 듯하면서도 어딘가 여전히 그대로인 듯한 공기를 뒤로 한 채 말이죠.

 

그리고 다시 찾은 월영교. 중교는 은수와의 첫 만남을 떠올리며, 은수가 말한 ‘그 여자’를 생각하다, 수면 위로 펼쳐진 잔잔한 물결을 바라보다, 괜스레 알 수 없는 감정에 젖어드는데. 그때 머릿속 어딘가에서 종이 울리듯 울리는 전화벨 소리. 중교와 같이 안동을 동행한 친구는 받지 말라고 조언하지만, 중교는 그 말의 의미를 곱씹을 겨를도 없이, 하염없이, 핸드폰에 표시된 이름만을 뚫어지게 바라봅니다. 다리 아래 파동처럼 일렁이는 해와 달. 그토록 자리한 너와 나. 회전하는 시대 유감. ‘내가 기억하는 추억은 언제나,’ ‘처음 사랑 고백하며 설렌 수줍음과,’ ‘내 기다림과 눈물 속’ 항상, 네가 있었음을. “여보세요.”

 

우리는 ‘완전하지 않은 세상’ 속에서 또다시 새롭게 ‘최초의 악수’를 건네고, 서로 진심으로 응원하며 그저 하루하루 꾸준하게, ‘성실하게 늙어가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인간의 맛’인 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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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진

만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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