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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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급 영지 설계사>, 지키고, 깨뜨리고, 함께 나아가는 유쾌한 모험

안정적인 스토리와 독보적인 연출로 웹소설 원작을 넘어선 웹툰만의 재미를 만들어낸 웹툰 <역대급 영지 설계사>만의 차별점을 찾아보는 리뷰.

2026-08-14 김혜원

<역대급 영지 설계사>, 지키고, 깨뜨리고, 함께 나아가는 유쾌한 모험

 

2024년 여름, 타이완콘텐츠진흥원(TAICCA)의 초청으로 대만 작가들에게 K-웹툰의 제작 과정을 소개하는 교육 프로그램에 한국 멘토진으로 참여했다. 수도 타이베이에 짧게 머무는 동안 한국 웹툰의 인기를 새삼 실감할 수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현지 작가들이 하나같이 입에 올린 작품이 바로 네이버웹툰 <역대급 영지 설계사>였다. 국내에서도 재밌다는 입소문이 자자했지만, 해외의 현직 만화가들까지 호평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유사한 ‘회∙빙∙환’ 서사들 속에서 <역대급 영지 설계사>는 왜 유독 강한 존재감을 드러낼까. 국경을 넘어 수많은 독자에게 사랑받는 이 작품의 매력을 살펴보자.


<역대급 영지 설계사> 중에서 [김현수 작가 제공]


# 안정적인 스토리와 독보적인 연출! 


<역대급 영지 설계사>(이하 역영설)는 2021년 8월 5일부터 2026년 3월 12일까지 네이버웹툰에서 연재된 판타지 웹툰이다. 문백경 작가의 동명 웹소설을 원작으로, <질풍기획>의 이현민 작가가 각색을 맡고, 김현수 작가가 작화를 담당했다. 본편 210화와 외전을 포함해 총 228화로 완결된 이 작품은 5년 가까이 이어진 연재 끝에 완성도 높은 결말을 선보이며 ‘용두용미’라는 평을 받았다.


<역영설>은 토목공학도 김수호가 자신이 읽던 판타지 소설 속 파산 직전의 영지 후계자, 망나니 귀족 ‘로이드 프론테라’에게 빙의하면서 시작된다. 원작대로라면 가문의 몰락과 죽음이 기다리는 처지지만, 김수호가 빙의한 로이드는 현대의 토목 지식과 끈질긴 생활력을 총동원해 죽어 가는 영지를 되살리기로 결심한다. 도로를 놓고, 집을 짓고, 빚을 갚고, 때로는 괴물보다 무서운 표정으로 사람들을 부려 먹으며 ‘편하게 먹고살기’ 위한 대공사를 벌인다. 그 과정에서 단순한 웃음을 넘어 독자들에게 제법 진지한 질문도 건네며 서사적 재미와 더불어 삶에 관한 생각거리도 남긴다. 


호평받은 웹소설을 기반으로 한 작품이어서일까. 물론 그것만이 흥행의 주된 요인은 아닐 것이다. 게다가 스토리의 시작이나 전개는 익숙한 회빙환물의 패턴과 비슷하다. 그럼에도 이 웹툰이 다르게 느껴지는 비결은 뭘까? 답은 원작의 장점을 웹툰 문법에 맞게 재구성한 이현민 작가의 정교한 각색과 이를 유쾌하고 역동적인 장면으로 구현해 낸 김현수 작가의 노련한 연출 능력에 있다. 


<역대급 영지 설계사> 중 [김현수 작가 제공]


# 보통의 회빙환 서사와의 차별점: 관계 포인트 


<역영설>의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독특한 장치 중 하나는 주인공의 성장을 움직이는 힘이 RP(Relationship Point), 즉 관계 포인트라는 점이다. 일반적인 판타지에서 캐릭터의 능력치를 올리는 것은 레벨업이나 강력한 스킬의 습득, 희귀한 장비의 획득이라면, 이 작품에서는 주변 인물과 관계를 맺고 신뢰를 쌓아 가는 과정이 성장의 중요한 조건이 된다. 

 

흔히 성장 서사에서 주인공 한 사람의 능력치 상승이 이야기의 중심이 되기 쉽다. 그러나 <역영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로이드 혼자 강해지는 과정이 아니다. 과거의 망나니 행적 탓에 주변 인물들과 지독하게 얽혀 있던 로이드는, 김수호의 현실적인 생활력과 관계를 개선하려는 노력을 통해 전혀 다른 인물로 변화한다. 변화하는 것은 로이드만이 아니다. 홀로 살아남는 데 익숙했고 타인과의 연대를 기대하지 않았던 김수호 역시, 로이드의 삶을 살아가며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는 법을 배운다. 

이 변화는 주변 인물들에게도 이어진다. 악연으로 얽혀 있던 관계가 개선되면서, 원작 속에서 고정된 역할을 맡았던 인물들 또한 새로운 선택을 하고 달라진 모습을 보여 준다. 주인공 한 사람의 변화에 그치지 않고 그 변화가 주변으로 번져 나간다는 점이야말로 <역영설>이 여느 성장물과 다른 지점이다. 


<역대급 영지 설계사> 본문 중에서 [김현수 작가 제공]


# 웹소설 원작을 넘어선 웹툰만의 재미


이미 탄탄하게 구축된 웹소설의 스토리라인과 캐릭터 설계를 웹툰에서 변주해 내는 일은 생각보다 위험한 모험이다. 원작의 핵심을 놓칠 수 있다는 점에서 기존 독자의 우려를 사기도 한다. 하지만 <역영설>은 그 어려운 모험을 훌륭한 형태로 해냈다. 웹툰의 전개가 원작보다 빠르고 시원시원하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는 방대한 원작의 사건과 기존 설정을 단순히 압축하는 데 그치지 않고 웹툰의 호흡에 맞게 재배치했기 때문이다. 

건축 개념이나 토목 공사처럼 긴 설명이 필요한 부분은 장면과 대사로 직관적으로 보여 주고, 사건 사이의 간격은 군더더기 없이 좁힌다. 대신 로이드의 중독성 있는 표정 연출과 인물들 사이의 기가 막힌 티키타카, 웹소설에는 없던 캐릭터까지 더해 웹툰만의 재미와 감정선을 놓치지 않는다. 원작을 그대로 따라가는 데 그치지 않고, 웹툰 독자가 가장 즐겁게 몰입할 수 있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다시 설계한 것이다. 


<역대급 영지 설계사> 100화 기념 작가 기념인사 그림 중에서 [김현수 작가 제공]


물론 아쉬움도 있다. 강한 개그와 과장된 표정 연출은 이 작품만의 매력이지만, 비슷한 방식이 반복될 때는 다소 식상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역영설>은 그 익숙한 설정조차 빠른 전개와 유쾌한 변주를 거치며 이 작품만의 재미로 바꿔 낸다. 작품 속 캐릭터들의 티키타카는 댓글창에서 독자들의 대화와 반응으로 이어지고, 이 과정에서 관계 포인트는 등장인물 사이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작품 세계와 독자, 나아가 독자와 독자를 연결하는 장치로까지 확장된다. 결국 <역영설>의 관계 포인트는 로이드의 성장 장치인 동시에, 독자까지 작품의 관계망 안으로 끌어들이는 힘이 되는 것이다. 


<역대급 영지 설계사> 중에서 [김현수 작가 제공]


지키고, 깨뜨리고, 함께 나아가다


수파리(守破離)라는 말이 있다. 먼저 기존의 형식과 가르침을 충실히 익히고(守), 그 형식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깨뜨리며(破), 마침내 새로운 경지로 나아간다(離)는 뜻이다. <역영설>은 회빙환이라는 익숙한 공식을 따르면서도, ‘관계’를 서사의 중심에 놓고 독보적인 연출과 경쾌한 전개를 더해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냈으며, 독자에게까지 그 관계의 장을 확장했다.

이러한 점에서 <역영설>은 원작의 강점을 지키되, 웹툰에 맞게 과감히 변주하고, 마침내 독자들까지 끌어들인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이 웹툰이 국내를 넘어 해외의 팬들까지 사로잡은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그리고 로이드와 하비엘, 프론테라 영지의 모험에는 이 글에서 미처 다루지 못한 반전과 이야기가 훨씬 더 많이 남아 있다. 그들의 모험은 직접 따라가며 재미를 확인해 보시길 바란다. 분명 유쾌한 웃음과 함께 삶과 관계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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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원

동명대학교 문화예술학부 겸임교수, 만화를 그리고 연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