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과 얼음의 여정〉, 남극에서 펼쳐지는 새로운 스팀펑크
강철과 나사로 이뤄진 몸을 가진 이들이 스스로를 인간이라 믿는 세계가 있다. 우리가 보기에는 전혀 인간적이지 않은 그들에게, 물렁한 살로 이뤄진 유기체는 역설적으로 인간이 아니다. 〈철과 얼음의 여정〉은 이 역설에서 출발하여 강철의 로봇이 자신의 기원을 찾아 남극으로 향하는 이야기다.
![<철과 얼음의 여정> <철과 얼음의 여정> 본문 중에서 [네이버웹툰 제공]](https://www.kmas.or.kr/img/archive/webzine/bbs/images/000083/20260818090225413_ADTUP61F.png)
선택하지 않은 강철의 신체
이 작품의 인물들은 얼굴과 머리카락만 남기고 강철과 나사로 이어진 기계의 몸을 드러낸 채 등장한다. 어깨에서는 구동부가 돌아가고 팔뚝에는 패널의 이음매가 드러나며, 무릎을 가로지르는 축을 나사가 물고 있다. 이 신체를 보고 〈총몽(銃夢)〉이 떠오를 수도 있다. 〈총몽〉의 작가 기시로 유키토(木城ゆきと)는 사이보그의 몸을 판타지의 영역에만 두지 않았다. 소녀의 얼굴 아래로 드러난 관절과 배선을 하나하나 따져 그린 정밀함이야말로 <총몽>을 오래 기억하게 만든 힘이었다.
〈철과 얼음의 여정〉 작가 울롱은 이를 일부 계승한다. 이 만화에서 강철의 신체는 단순한 장식이나 소품이 아니다. 손가락 마디마디는 꺾이는 방향의 수만큼 축을 갖고 어깨는 그보다 복잡한 구동계를 품는다. 다만 작가는 앞선 작품의 장르적 요소를 새롭게 갱신한다. 〈총몽〉에서 신체의 개조는 소년 만화적인 숙명에 가까웠다. 더 강해져 살아남으려거나, 죽어가는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 〈총몽〉의 인물은 자신의 몸을 바꾸는 선택을 한다. 그 선택 속에서 강철의 전사가 태어난다. 하지만 〈철과 얼음의 여정〉의 신체는 선택이 아니라 타고난 조건이다. 이들은 이미 조립된 상태로 세상에 도착했고, 자기 몸이 왜 이렇게 구성됐는지 모른다. 질문이 뒤집히는 것은 그래서다. 내 몸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가 아니라, 누가 우리를 이렇게 만들었는가가 이 작품의 서사를 이끌어 간다.
뒤집힌 것은 싸우는 방식에서도 마찬가지다. 금속 외피 앞에서 총과 활이 무력해진 탓에, 20세기가 코앞인데도 이들은 도끼와 철퇴로 강철을 부수고 지렛대로 관절을 뜯어낸다. 그런데 그렇게 뜯기고 조여지는 몸을 하고서도 이들은 왜 인간처럼 행동하고 인간과 같은 욕망을 가지고 있을까?
조금은 낯선 로봇 판타지
이 작품은 탐험극이자 증기기관 시대를 크게 벗어나지 않은 스팀펑크를 복합장르로 활용한다. 작가는 시대적 배경으로 산업혁명과 남극 탐험을 끌어오면서 로봇의 신체를 가진 인물을 그 위에 겹쳐 놓는다. 서로 붙을 이유가 없어 보이는 장르적 요소들이 이질적으로 어우러져 하나의 세계로 접합된다.
접합의 흔적은 지명에서부터 드러난다. 국가의 이름부터가 금속의 학명이다. 황금의 아우롬피어 제국, 납의 블룸브뤼트 제국, 구리의 쿠플란드, 그리고 알파벳 끝자락의 아연으로 지어진 지크니아 왕국의 명명법은 독특하면서도 잔인하다. 금은 제국이고 아연은 그 제국의 식민지이기 때문이다.
남극이 목적지인 것도 그래서 매력적이다. 19세기의 개척은 대개 침략의 명분이었지만, 남극에는 빼앗을 원주민도 수탈할 자원도 없었다. 이 작품은 그 공백에 인류 창조의 공장을 심어 놓는다. 정복하러 떠난 배는 결국 자신의 근원을 찾는 셈이다. 인류 창조의 공장으로 향하면서 앞서 던진 질문을 끌고 가는 인물은 등대지기의 외동딸 ‘올가’다. 그녀는 1화에서 고장 난 아버지를 데리고 잠깐 스쳐 가는 단역처럼 등장했다가, 퀘스트호에 밀항한 채로 다시 나타난다. 그리고 그 흉부에서 인간의 뇌가 든 통이 드러난다. 강철만이 인간이고 살로 된 것은 짐승이라 믿는 세계에서, 올가는 자신이 인간이 아니라는 말을 듣자 정반대라고 대답한다. 인간은 자신이고 인간이 아닌 쪽은 당신들이며 당신들의 명칭은 로봇이라는 것이다. 인간이 로봇을 지향하고 로봇이 인간을 지향하는 아이러니한 세계는 이 작품만이 가지고 있는 특징이다.
![<철과 얼음의 여정> 웹툰 <철과 얼음의 여정> 본문 중에서 [네이버웹툰 제공]](https://www.kmas.or.kr/img/archive/webzine/bbs/images/000083/20260818090410925_Y9LBR1KG.png)
그리하여 이 작품의 미지는 두 겹으로 놓인다. 하나는 지도의 남쪽 끝에 남겨진 공장이고, 다른 하나는 그곳을 향해 함께 항해하는 올가의 정체다. 이는 작품이 앞으로 풀어갈 미스터리이자 독자를 계속 붙잡아 두는 동력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모든 것을 떠받치는 것은 결국 작화에서 오는 회화적인 질감이다. 작품의 선은 자로 잰 듯 반듯하지 않고, 음영은 깔끔한 그러데이션 대신 겹겹이 쌓인 획으로 만들어진다. 강철의 곡면에 든 그늘도, 얼음벽에 파인 결도, 돛에 잡힌 주름도 모두 고밀도의 획으로 채워진다. 그렇기에 프레임 전체가 한 장의 판화처럼 읽힌다.
금속과 설원이 하나의 재질처럼 어우러지는 것은 이와 같은 작화의 특성 때문일 것이다. 대상은 차갑고 정밀한데 그것을 옮긴 화폭은 불균질하면서도 엄청난 밀도를 가지고 있다. 기계 문명을 동경하면서 동시에 수공업의 시대를 그리워하는 것이 스팀펑크 특유의 모순이라면, 이 작품은 그 모순을 소재로만 다루지 않고 화폭 자체로 보여준다.
사실 이런 화면은 웹툰보다 출판만화에서 익숙할 것이다. 획을 쌓아 만든 회색조와 칸 안에 정보를 빽빽하게 채우는 방식은 한 페이지를 한눈에 훑는 지면에 최적화된 문법이다. 그런데 이 작품은 밀도를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세로로 읽기에 무리 없이 얹힌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동선이 배의 돛대를 훑고 빙벽을 따라 떨어지는 방향과 맞아떨어진다. 지면의 밀도를 스크롤의 리듬으로 옮겨 심는 데 성공한 셈이다.
한국 웹툰에서 〈철과 얼음의 여정〉과 같은 작품은 좀처럼 보기 어려웠다. 19세기 유럽과 남극 탐험, 스팀펑크라는 이질적인 요소를 배합한 이 작품은 독특한 질감을 뽐낸다. 기계의 몸을 물려받아 제국의 지도 위에 눕히고, 19세기의 미장센에서 낭만을 채취하여 모험의 종착지를 정복이 아니라 인간의 기원으로 되돌린다. 이처럼 이질적인 요소가 자연스럽게 혼합된 새로운 흐름의 만화가 마침내 비어 있던 자리에 도착했다.
![<철과 얼음의 여정> 웹툰 <철과 얼음의 여정> 본문 중에서 [네이버웹툰 제공]](https://www.kmas.or.kr/img/archive/webzine/bbs/images/000083/20260818090452944_OW6TECPV.p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