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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식(美食)이 불가능한 모치즈키의 식탁, <폭식 너무 좋아! 모치즈키 양>

“잘 먹겠습니다”라는 미식 만화의 패러다임을 흔드는 작품 <폭식 너무 좋아! 모치즈키 양>에 관한 리뷰.

2026-09-18 박근형

미식(美食)이 불가능한 모치즈키의 식탁, <폭식 너무 좋아! 모치즈키 양>



“잘 먹겠습니다”는 미식 만화가 다루는 세계를 상징하는 언표다. 미식(美食)이라는 단어 그대로, 미식 만화-구루메 만화라고 불리기도 하는 이 장르는 맛있고 좋은 음식을 먹고, 그것을 '음미하는 행위’를 그리는 것에 중점을 둔다. '미식'을 공통 소재로 다루면서도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지에 따라 미식 만화는 다양한 하위 카테고리로 분화한다. <리틀 포레스트>처럼 자연의 순환과 그 안에서의 인간을 다룬 작품이 있는가 하면 <심야식당>, <툇마루 만찬>과 같은 작품은 일상 음식을 매개로 따듯한 공동체를 상상한다. <고독한 미식가>, <짱구 아빠 노하라 히로시의 점심> 등의 작품은 노동자의 점심 식사와 식사가 이루어지는 식당이라는 공간에 “탈노동의 시간성과 공간성”1)을 부여하며, <오무라이스 잼잼>, <먹는인생> 류의 작품은 음식에 일상사와 기억을 연결한다. 


폭식 너무 좋아! 모치즈키 양> 1권 표지.


사유 불가능한 세계의 폭로


일본의 청년 만화 잡지 영 애니멀 ZERO와 웹코믹스 사이트 영 애니멀 WEB에서 연재되고 있는 <폭식 너무 좋아! 모치즈키 양>(이하, <폭식 너무 좋아!>)은 “잘 먹겠습니다”라는 미식 만화의 패러다임을 흔드는 작품이다. 영업사무 모치즈키의 일상은 야근의 반복으로 이루어져 있다. 야근이 있는 날은 편의점 음식을 조합해서 저녁을 때우거나, 퇴근 후 늦은 시간에 폭식을 하기 마련이다. 그런 날의 식사는 빠르고, 간편하고, 자극적으로 이루어진다. 


<과로 사회>에 따르면 노동시간의 증가 및 노동 세계의 유연화 결과, 사람들은 “시간을 밀도 있고 압축적으로 사용하려는 경향”2)을 보인다고 설명한다. “시간 자체가 귀중”해지면 “한가로운 ‘식사’는 냉동식품에 그 자리를 내주기 마련이다.”3) 냉동식품으로 대체된 식사는 몸과 마음을 돌보고 순환에 감사하는 행위가 아니라, 최대한 짧은 시간에 큰 쾌락을 누리기 위한 소비의 대상으로 격하된다. 늦은 시간까지 영업하는 마트, 24시간 편의점은 모치즈키의 구원 투수처럼 묘사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그것은 소비 자본주의에 의해 낮 시간(노동)과 밤 시간(휴식)의 경계가 무너지면서, "밤 시간이 이윤 창출을 위한 자원의 대상으로 전환된”4) 결과다.


모치즈키와 그 동료들은 잦은 잔업에 시달리지만 아무도 과로가 반복되는 구조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 1권 4화에서 모치즈키와 동료 쿠라하시가 밤 11시까지 야근하는 장면에서 동료 쿠라하시는 중얼거린다. 

“거래처의 시간외 근무가 많아서 나까지 매일 거기에 맞춰야 해서…. 단골 거래처라 고맙기는 한데….” 


그러나 그 역시 반복되는 장시간 노동을 구조의 문제가 아닌 거래처의 문제로 간주할 뿐이다. <폭식 너무 좋아!>에서 세계에 대한 의문은 프레임 너머의 것으로 배제되어 있다. 그러나 <폭식 너무 좋아!>는 미식 만화의 핵심 키워드인 음식과, 그것을 먹는 신체에 대해 이야기함으로써 사유 불가능한  신자유주의 세계를 고발한다. 


대원코믹스 블로그 갈무리.


파괴된 네트워크와 그 잔해로서의 식사


미식 만화에서의 음식은 ‘나’라는 주체와 무언가를 매개하는 가교 역할을 한다. 그 무언가는 세계와 기억이 될 수도 있고, 타인이 될 수도 있다. 맛을 음미한다는 것은 음식이 매개하는 세계·기억·타인과 같은 대상을, 감각을 바탕으로 주체 안에서 재배치한다는 것이다. 미식 만화에서 음식을 매개로 한 이웃이나 가족과의 일상적 교류는 낭만적이고 이상적인 소규모 공동체를 상징한다. 


그러나 모치즈키는 도시에 혼자 거주하고 있다. 잔업이 잦은 노동 환경 특성을 반영한 탓인지, 그녀가 여동생과 직장동료 외에 어떤 인적 네트워크를 맺고 있는지 작품에서 확인하기는 어렵다. 개그 만화 등장인물다운 성격적 결함5)인 ’식탐‘과 그로 인한 수치심이 그녀가 고립되어 식사하는 것을 강화되는데 일조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이처럼 모치즈키의 ‘시간이 없는 삶’은 식사의 품질뿐 아니라 식사의 형태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녀는 주로 잔업 후 혹은 주말에 혼자 폭식을 하거나, 타인의 시선을 피해 몰래 음식을 먹는 식의 식사를 반복한다. 기존의 미식 콘텐츠에서 음식이 “인간과 인간, 인간과 세계의 네크워크를 구성하는 접속력”6)으로 간주되었다면 <폭식 너무 좋아!>의 식사는 파괴된 네트워크를 증명하는 행위나 다름없다.


대원코믹스 블로그 갈무리.


신자유주의적 착취를 고발하는 신체


<폭식 너무 좋아!>의 음식이 파괴된 네트워크의 잔해라면, 모치즈키의 신체는 신자유주의와 소비 자본주의의 착취를 고발하는 증거로 기능한다. 건강에 대한 이성적 염려와 폭식(과 그에 따른 쾌락)을 갈구하는 본능은 매화 모치즈키 내부에서 끊임없이 사투를 벌이는 것으로 묘사된다. 이 내적 사투는 모치즈키의 행동을 추동하는 가장 강력한 서사적 원동력이다. 사투에 이어지는 모치즈키의 폭식 장면은 향유나 미식보다는 '생존', '전투'의 스펙터클 가깝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건강에 대한 염려’는 자기 보존적 측면에서 지극히 합리적인 개념인 듯 보이지만, 건강이라는 단어가 대변하는 ‘노동 가능한, 욕망이 관리된 육체’는 자본주의의 모범이자 정언명령으로도 작동한다. 그러나 이 모범은 아이러니하게도 ‘장시간 노동’이라는 또 다른 규범과 맞물리면서 시간 집약적 소비-단발성 쾌락의 탐닉을 촉구하는 결과를 낳는다. 그러므로, 애초에 모치즈키의 내적 사투는 옳고 그름이라는 도덕에 근거한 갈등이 아니었다. 애초에 모치즈키는 승리할 수 없는 조건으로 링에 올랐던 셈이다. 


이처럼 <폭식 너무 좋아!>는 '미식개그 만화'라는 장르적 성격을 표피에, 신자유주의적 착취의 폭로를 내피에 배치한다. 세븐일레븐, 냉동식품 기업과 협업한 광고 단편들은 모치즈키의 미식을 불가능하게 하는 프레임을 강화한다는 점에서 <폭식 너무 좋아!>의 블랙코미디적 성격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희화화할 수 없는 것을 의도적으로 희화화하는 그 간극에서 <폭식 너무 좋아!>는 스스로를 장르적 문법으로 매끄럽게 봉합함과 동시에 현실 세계의 균열을 폭로한다. 폭식 후 부어오르는 신체, 점점 늘어나는 체중-모치즈키 그 자신의 신체를 통해. 


미식(美食)이 불가능한 식탁


<폭식 너무 좋아!>의 식탁에는 향유나 관계, 돌봄과 같은 언어의 자리가 없다. 모치즈키의 식사는 세계에게서도, 다른 인간에게서도, 심지어 스스로에게서도 고립되어 있다. 사유할 수 없는 인간과 파괴된 네트워크의 잔해, 착취당하는 신체-현실 세계의 파열음을 장르적 문법으로 매끄럽게 봉합한 것, 오직 그것이 놓여있을 뿐이다. 모치즈키의 공허한 “잘 먹겠습니다!!”가 폭로하고 있는 것이 바로 그 현상이며, 동시에 우리가 <폭식 너무 좋아!>를 주목해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참고문헌/각주] 

 권두현, 「‘맛’의 경험과 테크놀로지의 신체-1980년대 이후 한일 대중서사를 중심으로-」, 『국제어문』 제67집, 2015, 71~111쪽. 

 김영선, <과로 사회>, 이매진, 2013. 98쪽.

 김영선, <과로 사회>, 이매진, 2013. 98쪽.

 김영선, <과로 사회>, 이매진, 2013. 117쪽. 

 (사)한국만화웹툰평론가협회, 『만화웹툰 장르 대백과』, 팬덤북스, 2025, 214쪽 참고.

 권두현, 「‘맛’의 경험과 테크놀로지의 신체-1980년대 이후 한일 대중서사를 중심으로-」, 『국제어문』 제67집, 2015, 71~1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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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형

2017 디지털만화규장각 신인만화평론 공모전 가작 수상
2021 제4회 혼불의 메아리 공모전 대상 수상
2024 대한민국만화평론공모전 최우수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