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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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비문학의 가장 한국적인 환생 <사람의 탈> – 고전문학의 환상적 탈바꿈

한국적인 세계관, 한국의 미, 한국의 신앙, 한국의 혼이 담긴 물건으로 싸우는 주인공. 이 모든 것이 어우러진 한국만의 판타지 <사람의 탈. 리뷰.

2026-09-17 양민혁

구비문학의 가장 한국적인 환생 <사람의 탈> – 고전문학의 환상적 탈바꿈


옛날이야기는 재미없다는 편견에 쏜살같이 정면 돌파하는 판타지 <사람의 탈>


<사람의 탈> 대표 이미지.


문학의 땅에서 고전이, 그중에서도 한국의 고전이 차지하는 영역은 얼마나 되는가. 한국인의 대다수는 대입 직전 마지막 수능 1교시가 끝나면서 고전문학과 영원한 작별을 고한다. 조상들이 열광했던 이야기들은 수백 년의 수명을 다하고 그렇게 사라져간다. 하지만 영화 <전우치>의 성공이 보여주었듯, 고전문학의 성공적인 현대적 재해석은 양산형 이야기들에 지친 우리에게 참신한 세계를 보여줌과 동시에 고전의 이야기가 ‘탈바꿈’을 통해 영원불멸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한국적인 세계관, 한국의 미, 한국의 신앙, 한국의 혼이 담긴 물건으로 싸우는 주인공. 이 모든 것이 어우러진 한국만의 판타지가 궁금하다면 ‘우주돌’ 작가의 <사람의 탈>(네이버웹툰, 네이버 시리즈, 2024.03~)을 추천한다. 


고전을 흥미진진한 놀이판으로 만든 세 개의 놀이 도구 – 탈춤, 호랑이, 무속 


<사람의 탈>은 조선을 각색한 ‘신조선’이라는 가상의 나라에서 광대로 살아가는 소년 ‘봉산’이, 호환(호랑이에게 당하는 화)에 맞서는 착호갑사가 되어 국난을 극복해 나가는 것이 서사의 주된 흐름이다. 


이 작품을 지지하는 세 개의 주춧돌은 ‘탈춤’과 ‘호랑이’와 ‘무속 신앙’이다. 주인공 봉산 이외에도 서사에서 베일에 싸인 최중요 인물들은 모두 탈을 쓰고 있다. 얼굴에 탈을 쓰는 행위는 자신의 신상 노출을 차단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탈을 쓴 자와 탈을 쓰지 않은 자들 사이에는 정보의 비대칭이 발생한다. 이로 인해 독자에게 탈을 쓴 인물들의 정체를 알고자 하는 욕망이 생겨난다. 다음 화 버튼을 누를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또한 탈춤에서는 탈을 쓰고 그 탈이 나타내는 대상과 물아일체를 이룬 듯한 연기를 펼친다는 점에서, 작품 속 탈을 쓴 인물들은 모두 <사람의 탈>이라는 거대한 탈춤의 연기자인 셈이다. 우리는 탈춤을 구경하는 관중이다.


36화 ‘도깨비불’ 편 중 도깨비 탈을 쓴 수수께끼의 인물 ‘망량’이 등장하는 장면


작품의 메인 빌런이 호랑이인 만큼 서사의 곳곳에는 호랑이와 관련된 전설, 민담, 신화 등의 설화들이 뿌리내리고 있다. 햇님달님 전설, 장산범 전설, 십이지신의 달리기 경주 설화, 호랑이 형님 설화 그리고 이 모든 것의 시작인 단군신화까지. 독자들이 작품을 감상하며 곳곳에서 호랑이 설화들을 찾아내는 재미가 있다. 심지어 이 설화들이 가볍게 소비되지 않고 서사의 개연성을 높이는 장치로 기능한다는 점에서 <사람의 탈>은 구비문학을 주요 화소로서 현대 문학에 차용한 희귀한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이는 구비문학이 다시 매력적인 콘텐츠로서 불을 지필 수 있음을 증명한 것이다. 


11화 ‘동아줄’ 편 중 아이들에게 동아줄이 내려오는 장면


‘한’은 한국인의 고유한 정서이다. 끊임없는 침략과 수탈로부터 아득바득 살아온 한국인에게 ‘한’은 불가피한 정서인 것이다. 그렇기에 한국에는 한 맺힌 귀신이 많았고, 이를 달래기 위한 무속이 발달했다. <사람의 탈>에서 인간이 호랑이에게 대적할 수 있는 것은 이러한 ‘한’을 이용하기 때문이다. 범에게 죽어 한 맺힌 귀신을 ‘창귀’라고 부른다. 호랑이는 창귀를 부리고, 이에 대적하는 인간들 역시 창귀를 두른 무기 ‘창귀도’를 이용해 호랑이를 잡는다. 그런데 망자의 한은 산 자를 한없이 죽음으로 끌어들인다. 그렇기에 이를 위로하는 무당은 필연적으로 서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작가는 위령굿의 묘사를 한국적인 선과 색채를 이용하여 숭고한 예술의 경지로 올려놓는다. 웹툰이 단순한 오락을 넘어 미적 대상으로 변화하는 순간이다.


33화 <운종가 完> 편 중 까마귀 정대장 자오가 위령굿을 하는 장면


작품의 제목이 <봉산전>일 수 없는 이유


여기에 더해 <사람의 탈>은 자칫 고전적일 수 있는 인물들과 서사를 현대적으로 창조했다. 주인공 봉산은 고전소설의 영웅들처럼 최강의 영웅이 아니다. 운명이 도와주는 아이도 아니다. 그저 자신의 간절함과 노력으로 시련을 극복한다. 충효를 중요시하는 유교적 인물도 아니다. 다만 봉산은 사람과의 유대를 중요하게 여기는 주체적인 인물이다. 봉산이 만든 유대를 연결고리로 하여 다채롭고 매력적인 인물들이 등장한다. 심지어는 적으로 등장하는 호랑이들마저도 그들만의 사연과 아픔이 존재한다. 이 작품에 <봉산전>이라는 제목을 붙일 수는 없는 이유이다. <사람의 탈>은 봉산과 등장인물들이 만들어 가는 ‘그들의 이야기’이다. 


한국만의 요소를 한데 버무림과 동시에 매력적인 인물들과 서사를 갖춘 판타지를 찾는 독자들에게 <사람의 탈>은 최고를 넘어서 단 하나의 선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의 탈>을 관람한 많은 구경꾼들이 구비 설화와 고전문학의 다음 과장1)들에 관심을 가지길 바란다. 


1) 과장 : 탈놀이에서, 현대극의 막이나 판소리의 마당에 해당하는 말. 


필진이미지

양민혁

2001년 출생, 고려대 국어교육과에 재학 중이다. 여덟 살에 웹툰 <남기한엘리트만들기>를 접했을 때부터 웹툰을 좋아했다. 최근에는 고전문학 수업들에 감명 받은 이후부터 고전을 교육과 문화 콘텐츠의 영역에서 다시 부흥시키는 것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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