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섬세한 로맨스 – 웹툰 <두 마리를 위한 뜰>
구자준솜마르 작가의 웹툰 <두 마리를 위한 뜰>(이하 <두뜰>)은 산양과 늑대의 사랑을 보여주는 로맨스 웹툰이다. 산양과 늑대 간의 사랑 이야기라니. 얼핏 이상하게 느껴지지만, 그렇기에 더 익숙하면서도 로맨틱하고 자극적인 소재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미 이종의 동물들 사이에서 오가는 다양한 감정에 대한 묘사를 바탕으로, 본성과 편견의 공고한 경계를 뛰어넘는 금지된 사랑을 그려내는 문법에 익숙하지 않은가.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 웹툰을 이종 간 금지된 사랑에 기반한 ‘고자극’ 로맨스라고만 소개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웹툰의 매력은 단지 종을 뛰어넘는 사랑이 불러일으키는 갈증과 욕망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너무나도 다른 모습을 지닌 둘이 어느새 서로에게 의지하며 조금씩 마음을 열고 변해가는 과정을 섬세하게 그려내는 연출과 서사에 있기 때문이다. <두뜰>은 복수와 체념의 감정에 사로잡혀 있던 이들이 사랑에 빠져드는 모습을 포착하면서, 사랑이 우리를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가를 질문하며 가늠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두뜰>에서 가장 자극적인 것은 늑대와 산양의 사랑 그 자체라기보다는, 그 사랑이 각자가 품은 복수와 체념마저 내려놓게 만들 만큼 강렬하다는 사실이다.

웹툰은 쌍뿔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산양들의 마을 카펠라에서 추방된 일각산양 우이람의 이야기에서 시작된다. 우이람은 성숙의 증거인 뿔만 자라나면 짝사랑하던 선배에게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려 했으나, 하필이면 이마에서 재앙의 상징인 외뿔이 솟아나면서 마을에서 추방되고 만다. 말 그대로 희생양을 찾아 배척해 버리는 폐쇄적인 공동체의 논리 앞에서 자신을 아껴주던 선배조차 우이람을 외면하지만, 기이하게도 길에서 만난 회색 늑대 사티만은 우이람을 잡아먹지도 외면하지도 않는다. 사티는 단지 자신이 백일기도를 드리는 중이라 산양을 잡아먹지 않은 것이라며 우이람을 쫓아내려 한다. 그러나 어디로도 갈 수 없는 일각산양은 회색 늑대에게 백일기도가 끝난 후에는 자신을 잡아먹어도 좋으니 그때까지라도 동행을 허락해 달라고 간청한다.

물론 떠돌이 회색 늑대 ‘사티’에게도 복잡한 사연이 있다. 사티는 회색 무리를 위협하러 온 붉은 늑대의 일곱 리더 중 하나인 발다트에게 자신의 정혼녀 마야를 빼앗긴 다음, 그로 인한 상처를 잊지 못하고 마을을 떠난 늑대이다. 초원의 유목민족을 그대로 옮긴 것처럼 날렵하고 용맹한 붉은 늑대 무리의 원초적인 폭력 앞에서, 육포 만드는 일을 하며 싸움을 정식으로 배울 생각도 없었던 사티는 제대로 된 저항도 하지 못한 채 무력함을 느끼고 만다. 부족의 다른 회색 늑대들 역시 붉은 늑대에게 정면으로 대항할 수 없었기에, 모두들 사티에게 그저 상황을 받아들이고 살아가라고 강요할 뿐이다. 그러한 압력을 견딜 수 없었던 사티는 발다트를 죽임으로써 붉은 늑대에게 복수하고자 한다. 그러나 더 솔직히 말하면 그의 분노는 자신을 떠나고도 잘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옛 정혼녀 마야와, 부족의 여자들을 빼앗기고도 저항하는 대신 굴복하기를 선택한 회색 늑대 전체를 향해 있기도 하다.
흥미로운 것은 이 과정에서 우이람과 사티가 단지 동물로 그려질 뿐만 아니라, 대부분은 사람의 모습으로도 의인화되어 제시되고 있다는 점이다. 작가는 독자들이 캐릭터에 빠르게 이입할 수 있도록 늑대와 산양, 까마귀와 같은 등장 동물들을 마치 사람처럼 묘사한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그러한 작가의 공식적인 의도에도 불구하고, 도시를 이루고 살아가며 총이나 화약까지 사용하는 동물들의 모습은 너무나 인간적이기도 하다. 특히 카펠라에 모여 사는 산양들이 폐쇄된 정주 공동체를 떠올리게 한다면, 북방에 자리 잡아 대륙을 휩쓰는 붉은 늑대는 정복에 나선 역사 속의 유목민족을 떠올리게 한다는 점에서 더더욱 그러하다.
그렇기에 어떤 순간에는 오히려 작가의 ‘공식적인’ 설명과는 반대로, 인간이 지닌 동물적인 면모를 드러내기 위해 이중화된 묘사가 제시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인물이 인간으로 그려지는가 동물로 그려지는가에 따라, 기쁨이나 슬픔 같은 감정은 물론 인물들 간 관계의 변화 양상까지 세심하게 포착된다. 이처럼 각각의 사람들과 공동체가 지니고 있는 근원적 차이가 동물이라는 설정과 외양을 통해 강렬하게 드러나기에, 종 간의 경계가 만들어 내는 한계를 뛰어넘어 동행을 시작하는 주인공들의 모습 역시 독자에게 더욱 강렬하게 전달되는 것처럼 보인다.

자신의 공동체로부터 버림받은 산양과 스스로 공동체를 뛰쳐나온 늑대는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찾아 기이한 여정을 떠난다. 그리고 길 위에서 만난 누군가의 말처럼, 이처럼 버림받거나 빼앗긴 이들을 치유하는 행동은 단지 복수뿐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면, 복수 다음에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어쩌면 복수가 아닌, 누군가를 위하고 사랑하는 마음이야말로 치유로 나아가기 위해 필요했던 것은 아닌가? 어느덧 서로에게 스며든 둘은 복수 외에 다른 해답은 없을지 고민하게 되지만, 불행하게도 쌓인 오해와 갈등을 해소하지 못하고 잠시 헤어져 다른 방향으로 길을 떠나게 된다.
한쪽에서 우이람은 자신보다 선대의 일각산양인 아나말리를 만난다. 박해받은 역사를 공유하는 둘은 급속도로 가까워지지만, 자신의 짝이 될 수 있다는 이유로 우이람에게 집착하며, 일각산양이 다른 산양들을 지배하는 세계를 꿈꾸는 아나말리의 모습에 우이람은 거부감을 느낀다. 사티 역시 마침내 발다트가 머무르는 붉은 늑대의 도시에 도착하지만, 그는 여정의 끝에서 복수가 자신이 사랑하던 모든 이들을 괴롭게 할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복수는 단지 상처받은 자기 자신을 위로하기 위한 발버둥이었으며, 계속해서 다른 이들에게 상처를 남길 뿐이라는 사실을. 둘 모두 자신들이 매여 있던 삶의 궤적으로부터 벗어남으로써, 어쩌면 행복이 깃들지도 모르는 미래를 다시 상상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처럼 <두뜰>은 힘을 키워 굴욕을 극복하고 복수에 성공하는 인물들의 모습을 시원하게 보여주지 않는다. 여행의 과정에서 우이람이나 사티에게 특별한 힘이나 능력이 주어지는 것 역시 아니다. 대신 둘은 서로에 대한 사랑을 확인하고, 그 사랑을 바탕으로 자신들이 복수하지 않고도 새로운 미래를 그릴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을 뿐이다. 작품은 인물들이 지닌 상처가 완전히 치유될 수 있다고 말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복수 역시 반드시 치유로 이어지는 것은 아님을 보여준다.
두 사람이 스스로의 마음을 깨닫고 나아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순간들이 이처럼 자극적으로 느껴지는 것 역시, 작품이 단지 페티시화된 늑대와 산양의 관계를 그려내는 것에 만족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두뜰>은 복수와 치유, 그리고 사랑의 관계에 대한 자기 나름의 답을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성찰하는 인물들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는다. 그리고 결국 독자의 눈에 담기는 것은, 오랜 시간 과거의 감정에 휘둘리며 어리석게 헤매었으면서도 마침내 자신들에게는 두 사람을 위한 뜰만 있으면 된다는 것을 깨달은, 끝내 그 누구보다도 현명한 선택을 내린 연인들의 행복한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