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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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는 언제나 명랑한 (마음의) 전쟁터 - 웹툰 <너의 완두콩을 먹고 싶어!>

무시무시한 박력으로 학교와 거리를 종횡하는 인물들의 모습과 인간사회의 경계에 놓인 존재들을 그려내면서 우리 사회에 있는 다양한 차별과 배제의 문제를 자연스럽게 서사 속에 녹여내고 있는 웹툰 <너의 완두콩을 먹고 싶어!> 리뷰.

2026-09-22 구자준

고등학교는 언제나 명랑한 (마음의) 전쟁터 - 웹툰 <너의 완두콩을 먹고 싶어!> 


웹툰 <너의 완두콩을 먹고 싶어!>는 채소 혼혈 인간들이 인간 사회의 일원으로서 자연스럽게 살아가고 있다는, 다소 황당하면서도 어딘가 익숙한 설정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스스로가 평범하다고 생각하는 주인공 옥수연에게도 사실 출생의 비밀이 있다. 정작 그녀는 그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자신이 남들과 다르지 않은 평범한 학생이라 생각하며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지만 말이다. 하지만 누가 봐도 채소 혼혈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을 만큼 채소의 특징이 뚜렷하게 드러나는 완두콩 혼혈 윤서빈이 전학을 오면서 옥수연의 일상 역시 흔들리기 시작한다. 옆자리 짝궁이 된 전학생은 너무나 친밀하게 옥수연에게 다가와 자신의 완두콩으로 그녀의 마음을 흔들어 놓을 뿐만 아니라, 옥수연 역시 옥수수 혼혈이었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너의 완두콩을 먹고 싶어!> 1화


인간과 다른 종의 혼혈이 일상에 존재한다는 설정은 웹툰에서도 낯설지 않다. 삼촌 작가의 <이런 영웅은 싫어!>(삼촌, 네이버웹툰)과 같은 작품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이때 혼혈이라는 설정과 혼혈 등의 혈통과 연결된 다양한 초능력은 현실에 존재하는 다양한 차이와 차별에 대한 메타포가 되기도 한다. 조금 거리를 두고 바라보았을 때, 우리는 온갖 근거를 바탕으로 정당화되는 소수자에 대한 차별이 왜 발생하는지, 하지만 얼마나 자의적이고 우스꽝스러운지를 새삼 깨닫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한국사회는 누군가의 외양이나 성향이 다소 이질적이라는 이유로, 주류에서 벗어난 이들을 얼마나 쉽게 차별하고 무시하며 외면하는가. 


<너의 완두콩을 먹고 싶어!> 역시 채소 혼혈을 통해 이러한 차별의 문제를 자연스럽게 서사 안으로 끌어들인다. 채소 혼혈들은 다른 인간들과 외양에서부터 너무나 확연히 다르기에,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관심과 주목을 받는 동시에 차별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심지어 일부 채소 혼혈은 실험실에서 인위적으로 탄생해 불법적인 인체 실험의 대상이 되기도 했으며, 그 과정에서 인간 사회 대부분을 증오하고 적대하는 ‘빌런’으로 거듭나기까지 한다. 이처럼 작품은 전통적인 인간사회의 경계에 놓인 존재들을 그려내면서 우리 사회에 있는 다양한 차별과 배제의 문제를 자연스럽게 서사 속에 녹여내고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 작품이 채소 혼혈이라는 설정을 통해 현실의 차별 문제를 깊이 파고드는 작품이라고까지 말하기는 어렵다. 애초에 채소 혼혈이라는 웹툰의 설정이 현실 세계의 차별 양상과 정확하게 대응하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너의 완두콩을 먹고 싶어!>은 각각의 채소가 지는 생물학적 특징을 인물들의 다양한 특징의 기반으로 삼은 다음, 그러한 변환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개그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가령 멘델의 완두콩 교배 실험에 대한 수업을 듣는 순간 얼굴이 새빨개지는 완두콩 혼혈 주인공을 보면서, 서로 다른 종 사이의 차별에 관한 문제에 마냥 진지하게 몰입하기란 좀처럼 쉽지 않다. 대신 작품은 만화의 장르적 세계에서 펼쳐지는 활극, 즉 평범한 일상에 불쑥 난입하는 비일상적인 모험의 과정을 흥미롭게 보여주는 데 더 집중한다. 


<너의 완두콩을 먹고 싶어!> 4화.


그렇기에 대한민국의 평범한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하는 일상물의 외피를 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작품의 인물들과 줄거리는 결코 일상적이지 않다. 주요 등장인물인 옥수연과 윤서빈, 홍다은과 한강호 중 채소 혼혈이 아닌 이는 한강호 밖에 없다. 옥수연이 결코 잘리지 않는 뻣뻣한 정수리의 머리카락을 마음껏 휘두르며 무시무시한 괴력을 선보인다면, 윤서빈은 자신의 머리에서 자라나는 너무나도 맛있고 영양도 풍부한 완두콩을 항상 옥수연에게 나누어 주며 언제 어디서나 그녀의 회복을 돕는다. 마찬가지로 서브여주인 홍다은 역시 당근칼을 흩날리고 뿌리 식물인 자신의 특성을 지속적으로 드러내며 채소 인간으로서 자신의 특성을 강조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은 이른바 ‘병맛’ 웹툰으로 분류되어 온 한국 개그 웹툰의 전통을 충실하게 계승한다. 황당한 설정과 인물들의 기행에도 불구하고 학교의 일상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반복된다. 의욕을 잃은 담임 선생님은 옥수수와 당근, 완두콩의 특성을 지닌 채소 인간들이 계속해서 자기 반에 모여들어 온갖 사건을 일으킴에도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단지 의욕을 잃은 표정으로 출근하기 싫다고 말하며 학생들에게 첫사랑 이야기나 들려달라고 부탁할 뿐이다. 이처럼 온갖 일이 벌어지지만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 것만 같은 세계에서, 옥수연과 윤서빈은 당근 거래와 데이트, 수학여행처럼 소소하고 일상적이지만 매번 목숨을 걸어야 하는 모험이 함께하는 이벤트들을 겪으며 조금씩 서로에게 더 가까워진다. 


<질풍기획!>(이현민, 네이버웹툰)과 같은 작품과도 무척이나 닮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저 평범하고 단조롭게 보이기만 하는 일상을 다루되,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해 몰입하는 인물들의 내면을 통해 그 일상의 사건들이 주는 변화와 충격을 거대한 스펙터클로 외면화한다는 점에서. 

무시무시한 박력으로 학교와 거리를 종횡하는 인물들의 모습은 학교야말로 사실 마음의 전쟁터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새삼 일깨운다. 고등학생 시절이야말로 내가 세상의 고민을 홀로 다 짊어진 것처럼 느껴졌던 시기였다는 것을 떠올려보면, <너의 완두콩을 먹고 싶어!>가 보여주는 과장된 묘사란 오히려 학원물에는 더없이 잘 어울리는 표현법인지도 모른다. 


<너의 완두콩을 먹고 싶어!> 2화.


결국 이 작품에서 일상과 비일상의 경계를 따지는 것은 그다지 의미가 없다. <너의 완두콩을 먹고 싶어!>가 그려내는 세계는 사소한 감정과 사건이 거대한 모험으로 부풀어 오르고, 다시 그 황당한 모험이 자연스럽게 학교의 일상 속으로 스며드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인물들의 정신없는 활극을 따라가다 보면, 독자는 어느 순간 자신의 머리에서 자라나는 완두콩을 옥수연에게 건네는 윤서빈의 플러팅마저 어이없으면서도 사랑스럽게 느끼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이처럼 황당한 비일상의 웃음과 소소한 일상의 사랑스러움을 함께 묶어냄으로써, 작품은 평범한 고등학교의 하루하루를 명랑한 모험의 연속으로 전환하는 데 성공한다.


필진이미지

구자준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BK21 교육연구단 박사후연구원.
박사논문으로 「웹툰과 웹소설의 플랫폼 문예 장치 연구」를 썼다.
웹툰과 웹소설, TV 드라마를 보고 연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