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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MORPG에서 피어나는 사랑 – 웹툰 <우리 길드 아이돌>

MMORPG에서 시작되는 사랑을 다루면서, 게임 속에서 우리가 과연 어떻게 진실한 관계를 맺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보여주고 있는 <우리 길드 아이돌> 리뷰.

2026-11-02 구자준

MMORPG에서 피어나는 사랑 – 웹툰 <우리 길드 아이돌>



지금의 우리는 게임이 때로는 얼마나 많은 사회성을 요구하는지 익히 안다. 20세기 후반부터 오랜 시간 한국 사회의 놀이문화로 자리 잡은 다양한 MMORPG의 세계 속에서, 우리는 게임의 유저들이 길드를 만들어 함께 레이드를 돌거나 공성전에 참여하고,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들며 친목을 형성하는 모습을 수없이 목격한 바 있다. 때로는 그 과정에서 온라인의 삶과 관계가 오프라인의 일상을 대체하거나, 온·오프의 경계가 흐려지며 하나로 섞이는 상황이 생겨나기도 한다. 함께 길드를 꾸리고 레이드를 뛰며 우정과 사랑을 키워나가는 모습은 한국 사회에서 낯선 풍경만은 아닌 셈이다.


그렇기에 MMORPG에서 시작되는 사랑을 다룬 <우리 길드 아이돌>의 이야기는, 어떤 의미에서 지금의 우리에게는 무척이나 친근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물론 ‘게임 로맨스’라고 할 수 있는 작품이 많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러한 장르적 설정이 예고하는 주제와 갈등은 우리에게 익숙하기 때문이다. 작품 속에서 현실과 게임은 각각 어떤 공간으로 제시되는가? 현실의 삶과 게임 속에서의 활동은 인물들의 관계를 어떻게 변화시키는가? 현실과 게임 사이에서 흔들리는 과정을 거쳐, 게임 유저인 나는 결국 어떤 선택을 내리게 되는가. 


<우리 길드 아이돌> 표지. [필자 제공]


그리고 <우리 길드 아이돌>은 그러한 장르적인 고민을 충실하게 반영하여, 게임 속에서 우리가 과연 어떻게 진실한 관계를 맺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다. 작품의 주인공 배아진은 모종의 이유로 히키코모리가 되어 집 밖으로 거의 나서지 않는 인물이다. 그런데 어느 날 고3이 된 남동생 배도진으로부터 <디어 데인>(이하 <디데>)의 아이디 ‘챠루’를 넘겨받으면서, 그녀 역시 자연스럽게 MMORPG 게임의 세계에 빠져들게 된다. 그녀는 동생이 운영하던 ‘햇살’ 길드 역시 아이디와 함께 가지게 되는데, 놀랍게도 햇살은 <디데> 서버 1위의 초인기 길드였다. 그렇기에 가벼운 마음으로 발을 들여놓은 <디데> 활동은 어느덧 배아진의 일상을 가득 채우기에 이른다. 


하지만 배아진이 길드의 원활한 운영을 위해 여성으로 알려진 인기 유저 꽃뿌링에게 접근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기고 만다. 배아진은 꽃뿌링이 햇살 길드의 중심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그녀에게 적극적으로 말을 건넨다. 그러나 그녀가 동생의 아이디를 물려받은 탓에, 사정을 모르는 다른 유저들에게는 단지 남성 길드 마스터인 챠루가 자신의 지위를 이용하여 여성 유저에게 추근거리는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결국 챠루의 만행을 폭로한다는 글이 올라오면서 햇살 길드는 산산조각이 나고 만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일은 오히려 챠루와 꽃뿌링이 친해지는 계기가 된다. 사실 꽃뿌링, 즉 현실의 연지현 역시 아이돌인 자신의 신분을 숨기기 위해 남자로 위장하고 있었고, 오해를 해소하는 과정에서 둘은 서로가 성별을 숨기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이처럼 온라인 공간에서 우리는 현실과는 다른 모습을 의도적으로 드러내기도 한다. 그렇기에 온라인 공간에서 만난 누군가와 깊이 교류하는 것은 배도진의 말처럼 어리석은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반대로, 현실로부터 조금은 거리를 두고 있기에 솔직해지는 순간 역시 존재한다. 배아진과 연지현 모두 현실에서만 만났더라면, 설령 호감을 가졌더라도 둘 사이의 ‘현실적인’ 차이로 인해 서로에게 다가갈 생각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실제 모습을 숨길 수 있는 게임이 주는 해방감은 우리로 하여금 현실에서는 삼키고 말았을 말과 행동을 할 수 있도록 이끈다. 심지어 온라인 공간을 한 번 버리고 떠났던 배도진조차, 다시 <디데>를 하며 현실에서는 미처 하지 못했던 말을 누나에게 할 수 있었던 것에서도 이를 알 수 있듯이. 

 

현실의 배아진(30화) [필자 제공]


그런 점에서 작품은 게임과 현실이라는 두 세계 사이에서 손쉽게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주는 대신, 두 공간을 오가며 생겨나는 다양한 사건들과 관계의 변모 양상을 촘촘하게 보여주고자 시도한다. 작품의 이와 같은 균형 감각은 작화를 통해서도 뒷받침되고 있다. <우리 길드 아이돌>은 현실과 게임을 극단적으로 구별되는 세계로 묘사하는 대신, 두 공간의 인물을 서로 다른 화풍으로 그리면서도 각각의 세계가 가진 저마다의 매력을 강조한다. <디데>의 세계가 화창한 풍경 속에서 아기자기한 복장을 입은 귀여운 2∼3등신의 캐릭터들로 채워진다면, <디데> 바깥의 현실에서는 보다 섬세한 감정까지 얼굴에 담아내는 미형의 인물들이 보다 차가운 색채의 빛과 어둠 속에서 움직이고 있다. 


게임 속의 챠루(1화) [필자 제공]

이처럼 <우리 길드 아이돌>은 게임을 현실 도피의 공간으로만 그려내지 않는다. 게임 속은 현실만큼이나 복잡하고 어려운 공간이며, 때로는 현실에서는 이루기 어려웠던 솔직한 교류를 가능하게 만드는 곳이기도 하다. 도피처로서의 게임과 냉정한 현실이라는 이분법은 언제나 완벽하지 않다. 그러기에 중요한 것은 게임과 현실 중 어느 쪽을 선택하느냐가 아니라, 두 세계를 오가며 어떻게 사람들과 새롭게 관계를 맺고 유지하느냐일지도 모른다. 물론 지금 시점에서 이에 대한 답을 충분히 찾기는 어렵다. 한창 연재 중인 이 작품에서 연지현과 배아진의 이야기를 더 상세히 듣기 위해서는 아직도 한참은 더 기다려야 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여전히 갈 길이 많이 남은 이 작품이 우리에게 어떤 답을 내놓을지 궁금하다. 




필진이미지

구자준

캣츠랩 연구위원. 연세대학교 강사. 박사논문으로 「웹툰과 웹소설의 플랫폼 문예 장치 연구」를 썼다. 웹툰과 웹소설, TV 드라마를 보고 연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