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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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동들의 조합과 그 전면화 ―조재연의 만화집 《샴페인 슈퍼노바》

“나는 글보다는 그림 쪽으로 사유한다.”는 조재연 작가의 만화집 《샴페인 슈퍼노바》에 관한 의미심장한 리뷰.

2026-11-03 박동성

미동들의 조합과 그 전면화 ―조재연의 만화집 《샴페인 슈퍼노바》


《샴페인 슈퍼노바》표지. [교보문고 갈무리]


일상은 ‘일상적’이기만 할까? 골똘히 반추해보면, 썩 평탄하지만은 않은 듯하다. 별별 ‘이상한’ 순간들로 뒤죽박죽 조합된 다면체에 차라리 가깝지 않은가? 만화보다 더 신기한 장면이나 희한하다고까지 느낄 광경은 그런 순간들의 일면을 이룬다. 그저 스쳐 보냈었을 일상은 너무나 미묘히 일렁여 적확히 언표되지 못하다가 그저 순식간에 흘러갔었을 순간들로 가득함 직하다. 


조재연의 만화집 《샴페인 슈퍼노바》1)는 그렇게 미묘한 순간들을 그러모아 주목의 가치에 값한다. 조재연 스스로 “나는 글보다는 그림 쪽으로 사유한다.”(15쪽)라 밝혔듯, 그림을 주된 질료로 삼는 만화는 인간의 고정된 사회적 언어나 문명의 안정된 기성적 시선으로는 뾰족하게 포착되지 못할 “차원이 다른 한 끗”(46쪽)의 차이들을 기민히 감지하는 데에 특화된 매체일지도 모른다. 조재연이 “그 미묘함을 아는 것”(245쪽)에 특화됐음은 확실하다. 《샴페인 슈퍼노바》가 언어로는 거의 설명되지 못할 어떤 일상적 순간들과 그것들의 미묘한 감을 이미지들이 조합된 칸의 확대로써 전면화하는 데 능하다고 감득되기 때문이다.  


Ghostbooks 온라인 신간 도서 소개에서 갈무리


조재연의 만화를 논하는 데에서 첨예한 다툼이 벌어질 만한 지점은 ‘일상 만화’로서의 재현 양상을 타당하게 가늠하는 부분에 놓일 것이다. 이 만화집이 현실의 일상을 단순히 기록했을 뿐이라 보는 의견들도 적지 않겠다는 뜻이다. 이 의견들이 틀린 것은 아니다. 작가의 일상을 상당히 선명하게 담은 듯한 이야기들이 실제로 많고, 그 일상에 “허구가 스며들며”(9쪽) 형성된 이야기들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독법이 조재연 만화의 매체적 문법은 섬세히 짚지 못함을 지적하고 싶다. 일상이 “인간사 스토리텔링의 멜팅팟”(33쪽)임을 간파하는 조재연은 그런 일상 속에서 형언하지 못할 장면을 만화적으로 연출하는 감각이 돋보인다. 그 연출의 요체는 한 칸 안에 서로 다른 이미지들의 조합을 그리는 방식이다. 이 방식은 다채로운 개별자들의 교호를 통해 파생되는 오묘한 감응을 효과적으로 구현한다. 


Ghostbooks 온라인 신간 도서 소개에서 갈무리.


만화집의 63쪽에 그려진, 만화집의 동일 표제작 <샴페인 슈퍼노바>의 장면은 조재현 만화의 문법을 힘있게 그려낸 예다. 허술하게 여겨지는 노래 가사 또는 언어적·준언어적·비언어적 표현들이 어우러질 때 생성되는 뉘앙스에 생각이 꽂힌 여주인공을 담은 이 장면은 풍성하다. 그 주인공에게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지는 가운데, 그 스포트라이트 외의 배경은 흰 별들이 점점이 박힌 우주 공간으로 형상화된다. 주인공의 머리 위에서는 두 여인이 춤추며, 주인공의 주위에는 구름 형상을 닮은 연기들이 뭉게뭉게 끼어 있다. 이 장면은 “유일무이”(187쪽)할 한 사람이 구름처럼 부단히 유동하는 상상력을 통해 평소 즐겨 듣는 노래의 멜로디를 떠올리면서 드넓은 우주를 무대로 삼아 자신의 사유에 집중하는 일상 상황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러한 연출은 적절하다. 단독으로는 별 의미가 도드라지지 못할 이미지를 다른 이미지들과 엮어 새로운 의미망을 빚어내는 데에 성공하기 때문이다. 통사 원자로서의 단어든 점·선·면으로서의 이미지든, 한 원자가 절대적 의미에서는 유일무이해서 세상 만물이 그 자체로도 다 특별하다고 주장한다면 어떨까? 이 주장은 “쌍둥이지만 닮은 만큼이나 달라서”(27쪽) 서로에게 은근히 신경을 쓰는 쌍둥이 남매를 다룬 이야기 「해솔과 은솔」 앞에서 무의미해질지도 모른다. 모든 것이 각자 다르면 차이 자체를 상정할 수 없고, 차이의 개념이 전제되지 않으면 “생의 공허와 무의미”(115쪽)가 현전하기 쉽다. 그러나 조재연은 형태가 일정히 변별되는 이미지들을 한 칸 속에 병치함으로써 그것들이 “모여 만드는 뉘앙스”(61쪽)를 자연스레 만들어낸다. 


변별의 연출은 칸 안의 개별 이미지들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칸들의 모양도 자세히 살펴보면, 칸들의 크기 자체도 확대하는 연출이 구사됨을 볼 수 있다. <샴페인 슈퍼노바>의 63쪽 장면으로 돌아가 보자. 그 장면은 페이지 전면을 가득 채운 한 칸으로 그려졌다. 이 연출은 말 그대로 ‘전면적’ 효과를 일으킨다. 이 효과는 극도로 세세해서 느끼지 못했을 법한 미묘한 일상적 순간을 전면으로 강조함으로써, 읽는 이에게 그 순간의 고유한 미동을 성찰해 보게끔 유도한다. 이 전면화 기법은 대화 상대의 마음을 짐작하는 일에 관한 이야기 <속 읽음>에서 86쪽과 87쪽의 양면에 걸쳐 응용되기도 한다. 


Ghostbooks 온라인 신간 도서 소개에서 갈무리.


<바나나 튀김집>은 조합과 전면화의 문법을 또 다르게 전유한 예다. 바나나 튀김을 요리하고 판매하는 남자 사장이 랩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해 유명세를 누리다가 바나나 튀김을 맛있게 만드는 일이 자신의 참된 특기임을 깨닫고 식당의 운영에 재집중하게 된다는 이 이야기에서는 주인공 사장의 꿈이 나온다. 달리기 시합에서 방심해 잠자던 토끼를 추월하고 승리해서 유명해진 거북이 주변의 과한 기대로 인해 “거북이로 태어나 느리게 살 때가 더 행복했다.”(379쪽)라고 후회하는 꿈이다. 이 꿈은 바나나 튀김을 요리하다가 신예 래퍼로 관심을 끈 주인공의 부담감이 투영된 꿈으로 해석되어도 충분하나, 조재연이 자신에게 첫 만화적 영감을 주었던 동화로 언급한 “『슈퍼거북』”(8쪽)의 내용이 요약된 것이기도 하다. 이 꿈 장면은 거북 주인공이 토끼를 이기고 달리기 연습에 열중하는 원작 그림동화의 이색적 광경을 두 페이지에 걸쳐 그렸다는 점에서 조합과 전면화의 상호 텍스트적 전유로 정리될 만하다. 


이렇게 조재연의 《샴페인 슈퍼노바》는 샴페인의 식감처럼 일상에서 흔히 경험하기 마련인 톡톡한 미동들을 슈퍼노바의 “폭발적인 에너지”(333쪽)에 접목하는 또렷한 특기를 지녔다. 이 특기가 만화 매체의 고유 문법으로 가능했음은 더욱 의미 깊다. “슈퍼 거북”2)이 된 ‘꾸물이’를 보고 “너도 나도 꾸물이 흉내를 내느라” 3)혈안이 된 동물 도시가 몰개성이 일상화된 인간 사회를 겨냥한 알레고리로 감득되는 것이 더욱더 의미심장해지는 이유다. 



[각주] 


1) 조재연, 《샴페인 슈퍼노바》, goat(쪽프레스), 2026. 이 글에서 별도의 출처가 표기되지 않는 한, 괄호 안에 쪽수만 표기된 것은 모두 이 책에서 인용된 것임을 밝힌다. 

2) 유설화 글·그림, 『슈퍼 거북』, 책읽는곰, 2014, 2쪽. 

3) 위의 책, 같은 쪽.


필진이미지

박동성

대학교와 대학원에서 각각 국어국문학사 학위와 국어국문학 석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2023 대한민국 만화평론 공모전에서 신인상을 수상하면서 만화평론가로 등단하였다.
현재 국어국문학과 일반대학원 박사 과정에서 공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