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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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상륙작전

2015-10-01 유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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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태호는 해방 이후의 혼란한 정국부터 한국전쟁이 격렬하게 진행되었던 시기, 즉 1945년부터 1951년까지의 대한민국의 참혹한 풍경을 화폭에 담아낸 ‘인천상륙작전’을 한겨레신문 토요판에 연재하면서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왜 다시 6·25인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윤태호는 다음과 같이 답했다. “한국전쟁의 분단 상황은 지금의 우리가 감당하고 있는 부조리의 시작이고, 우리를 옥죄는 실체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 역사는 결코 단절되지 않는다. 시간이 결코 멈추는 법이 없듯이 과거를 기록해 미래로 전하는 역사 역시 끊임없이 이어지는 것이 진리이다.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명저를 남긴 E.H.Carr는 저서의 첫 장에서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 사이의 상호작용의 부단한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이다.’라고 말했다. 

역사학자 랑케는 ‘자기가 사실을 보살피기만 하면 역사의 의미에 대해서는 신의 섭리가 보살펴 줄 것이라고’ 믿으면서, 역사가의 임무가 ‘그것이 실제로 어떠했는가.’라고 보여주는 것이라 주장했다. 그에 반해 크로체는 ‘모든 역사는 현대의 역사이다.’라고 말했다. 이는 역사란 본질적으로 현재의 눈을 통해서 현재의 문제들에 비추어 과거를 바라보는 것이며, 역사가의 주요한 임무는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평가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점에서 E.H.Carr는 두 기준의 극단을 배격하고, 역사가가 단순한 사실의 매개자도 아니며 그렇다고 해서 사실을 무시하고 나름의 해석 위주로 기술하는 것 또한 옳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즉, 그는 역사학의 이런 두 극단에 치우치지 않고 사실과 해석의 균형적인 상호작용을 추구하여 역사를 바라보는 것이 옳기에 연구방법도 이러한 범위 안에서 수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므로 역사가는 사실의 선택과 해석이라는 역사가의 검증작업에 있어서 사실과의 연관관계를 어느 극단으로 치우치지 않고 끊임없는 상호관계를 통해 구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E.H.Carr의 주장이 한 문장으로 요약된 것이,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 사이의 상호작용의 부단한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이다.’인 것이다.

윤태호가 E.H.Carr의 <역사란 무엇인가>를 읽었든 안 읽었든 간에, 중요한 것은 그가 <인천상륙작전>이라는 작품을 기획한 의도가 E.H.Carr의 역사인식과 맞물려 있다는 것이며, <인천상륙작전>의 첫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부터, 우리는 혼란과 비극으로 점철되는 ‘우리 민족이 가장 최근에 겪은 최고의 참담한 시간’을 어쩔 수 없이 만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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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서울, 해방은 짧고 혼란은 길었다. 해방은 도둑같이 왔다. 해방 하루 전 철구는 여전히 배가 고팠고, 어머니는 끼니를 위해 남의 집 일을 도왔으며, 삼촌은 밀정 노릇에 여념이 없었다. 그날도 굶주림이 식민지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었다. 1939년의 기록적인 흉년과, 그 이듬해부터 시작된 일제의 식량 공출은 말 그대로 살인적이었다. 어머니의 물벼락을 맞은 삼촌이 ‘아, 새끼 굶겨 죽인 에미가 할 소리요!’(61쪽)라고 외쳤던 아이의 죽음도 흉년과 공출 때문이었을 것이다.” 
- 구완회, 1권 225p, <해설> 中에서 발췌

<인천상륙작전> 1권은 갑작스럽게 찾아온 해방과 그로 인한 민중의 혼란, 그리고 이후의 정국에 대해 서술한다. 윤태호는 <인천상륙작전>을 집필하면서 기존에 하지 않았던 아주 색다른 시도를 하는데, 그것은 거시적인 표현과 미시적인 표현의 적절한 혼용이다.

거시적인 표현이라는 것은 마치 잘 만들어진 역사 다큐멘터리를 보듯이, 당시의 영상과 사진, 신문기사, 사료 등을 긁어모아 모사하듯이 지면에 배치하는 것이다. 독자들은 윤태호가 배치한 실제 역사에서의 굵직한 사건들을 보면서 당시의 대한민국에서 어떠한 일들이 벌어졌는가를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다. 작화도 만화의 형태라기보다는 기록영화나 사진집을 보는 듯한 느낌을 독자가 체험할 수 있도록 기존의 만화체와 그 궤를 달리한다. 

미시적인 표현이라는 것은 <인천상륙작전>이라는 만화의 주인공인 ‘철구네 가족’의 개인사를 기존의 그림체로 장편극화의 형식을 통해 풀어내는 것이다. 이것은 기존의 윤태호 작품을 즐겨 보는 독자들이라면, 아주 익숙하고 반가운 표현에 해당할 것이다. 철구네 가족은 역사의 거대한 흐름에 불가항력적으로 휘말리면서 실로 가슴 아픈 비극을 겪게 되는데, 이는 아마도 ‘거대한 광기에 휘말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존재 자체를 짓밟히게 되는 개인의 비극’을 가장 효과적으로 독자에게 보여주기 위한 윤태호의 의도가 아닌가 한다.

이처럼 윤태호는 <인천상륙작전>이라는 작품을 만들어갈 때, 거시적인 표현을 의도적으로 스토리의 앞부분에 배치하여 역사의 거대한 흐름을 독자들에게 먼저 인지시킨 후, 철구네 가족의 개인사를 그 안에 집어넣듯이 이야기의 뒷부분에 배치함으로서 미시적인 표현으로 전환, 당시를 살아가던 개인의 입장에서 최대한 디테일하게 묘사함으로서, 독자들의 감정이입을 극대화하는 영리한 시도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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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태호의 이러한 신선한 시도는 매우 성공적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 �����품을 접하면서 독자들은 철구네 가족의 비극에 대해 같이 울고, 같이 슬퍼하는 입장에 처하게 되는데, ‘생존’이라는 절실한 절대명제 앞에 사상이니 대의니, 이념이니 하는 것들은 아무런 가치도 없어 보일 정도로, 철구네 가족이 겪게 되는 참담한 대한민국의 현대사는 그야말로 눈물이 앞을 가려 보기가 힘들어질 정도인 것이다.

“애국지사와 독립 운동가들이 ‘죄인’들과 함께 요정에서 기생들의 이마에 지폐를 붙이며 ‘나랏일’을 논하는 동안, 배고픈 철구는 인분 뿌린 배추꽃을 따 먹다 기생충 똥을 쌌고, 43년만의 대홍수를 만난 민중들은 물난리와 전염병, 대기근으로 죽어갔다, 철구 삼촌이 적산 문제를 상의하기 위해 찾아간 김 노인의 저녁 회식 상에 있던 수육은 임정 요인들과 한민당 핵심들의 국일관 저녁상 위에도 있었으리라. 지난 시절 풍찬노숙, 찬바람 맞으며 독립운동에 힘쓴 애국지사들은, 해방된 조국에서 새나라 건설보다 보상이 더 급했다.”
-구완회, 2권 227p, <해설> 中에서 발췌     

윤태호는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또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오늘의 갈등은 최근 나타난 새로운 사건이 아니라, 과거 청산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해방 이후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오는 것이란 점을 이야기하고 싶다.”

1권의 해방정국부터 이승만 정권 수립까지의 과정을 지켜보면, 소위 말하는 왜정 때 일본에 부역하던 친일파들이 해방 이후에 어떻게 살아남았고, 어떤 식으로 또다시 이 나라의 기득권을 잡을 수 있었는지를 아주 디테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식민지 시절에 일본의 ‘밀정’으로 활동하다가 해방 이후엔 ‘빨갱이 때려잡는 애국자’로 변신하는 철구 삼촌의 행보를 아주 적나라하게 묘사하면서 현재의 대한민국이 왜 이런 상태에 다다랐는지 그 기원을 유추할 수 있도록 독자에게 ‘극화의 형식을 빌려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2, 3권에서는 해방 이후 혼란이 극에 달하는 정국과 좌·우의 극심한 대립, 미군정 치하의 생활상 그리고 일본인들이 남기고 간 ‘적산(敵産)’ 처분과정을 보여주고 있으며, ‘철구네 가족’의 ‘치열한 살아남기’를 세세하게 묘사하면서 당시의 혼란이 어느 정도였는지 독자가 체험하기 쉽도록 세심하게 배려하고 있다.  

“<서울 시민들은 가만히 있으라>..... 6월 25일 새벽, 북한군이 38선 전역에서 밀고 내려왔다. 이승만은 서울을 사수하자고 호소했지만 일찌감치 대전으로 도망간 뒤였다. 북한군은 곧 서울을 점령했고 인민재판이 벌어졌다. 미군의 무차별 폭격으로 수십만의 민간인이 희생되었고 피난민으로 가득한 한강대교는 예고도 없이 폭파되었다. 수뇌부가 사라지고 거짓방송과 소식이 난무하는 서울은 아수라장이었다.” - 4권, 책 표지에서 발췌 

“전쟁은 학살의 연속이었다. 도처에서 군인 민간인 가리지 않고 죽음이 이어졌다. 북한군의 기세에 이승만 정부는 부���까지 쫓겨 간다. 피난민들은 기아에 허덕이며 생사의 기로에 놓였지만 휘황찬란한 댄스홀 앞에는 고급차가 즐비하고 부자들은 거금을 들여 밀항을 ��비한다. 맥아더는 상륙 작전지로 인천을 지목한다.” - 5권, 책 표지에서 발췌

4, 5권에서는 한국전쟁의 참혹함을 리얼하게 묘사한다. 너무 리얼해서 차마 보기 괴로울 정도다. 한강 인도교 폭파, 인민재판, 보도연맹 학살 사건, 노근리 학살, 부산 피난 등의 전쟁 통에 벌어진 끔찍한 사건들 속에서 철구네 가족은 생이별을 하고, 가슴 아픈 비극적 운명에 휘말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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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살려주세요...”
- 6권 194p, 철구의 대사 中에서 

<인천상륙작전>은 1945년 8월 15일 해방 전야(前夜)부터 시작해서 1951년 1월 4일 ‘1·4후퇴’까지를 다루고 있다. 아직 읽지 못한 독자들 때문에 스포일러가 될까봐 이 글에 작품의 결말을 밝힐 수는 없지만, 맨 마지막 6권에서 철구의 비극적 운명을 보며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아마도 인간성이 매우 저열하거나, 공감능력이 상당히 떨어지는 위험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물론 작가가 의도한 대로 그려진 ‘철구네 가족사’는 윤태호가 창작한 픽션일 뿐이지만, 정말 안타깝게도 철구네 이야기의 베이스가 되는 한국현대사의 사건들은 우리의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세대가 실제로 겪은 일이다. 

<인천상륙작전>의 단행본 뒷부분에는 ‘대한민국 VS 철구네’ 연표가 수록되어 있다. 당시에 벌어진 역사에 기록된 굵직한 사건들과 윤태호가 창작한 철구네 가족사를 대비해서 작성한, 이 작품을 위한 연표라고 보면 된다. 이 연표를 보면 <인천상륙작전>의 내러티브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으며, 역사라는 이름으로 기록된 ‘추상적 문자’에 국한되지 않고, 대한민국의 비극적 현대사가 실제의 삶을 살아가는 개개인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를 쉽게 알 수 있다. 구완회 교수의 역사해설도 덤으로 읽어본다면 아주 만족할 만한 작품이 될 것이다.

한겨레신문 토요판과 포털사이트 네이트 웹툰섹션에서 연재된 윤태호의 역작 <인천상륙작전>은 총 여섯 권의 단행본으로도 출간되었으며, 제18회 부천국제만화축제에서 부천만화대상을 수상했다. 윤태호는 수상소감에서 “7~8년 전에 고료는 상관없으니 한겨레신문에 만화를 연재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물론 고료는 매우 적었지만, 처음으로 신문사 양면 페이지에 연재를 하게 되어서 즐거웠다. 정치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는 전문가 같이 이야기하지만, 정작 작품을 만들면서 자기 뜻대로 되지 않고, 자기 생각이 왜곡되는 점을 보게 되었다. 수상작 결정 소식을 들었을 때 그 책을 만들 때 많은 선생님들의 책을 참조해서 만들었기 때문에 나 혼자만의 저작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받았던 다른 상들이 그만큼의 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지 고민한 결과 받기로 했다. 이 상패는 그동안의 나를 채찍질하는 증표로 삼고, 상금은 만화가협회와 우만연(우리만화연대)에 기증하겠다.”며 소감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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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우리는 광복70주년을 맞이했다. <인천상륙작전>에 묘사된 한국현대사의 참담한 비극들은 고작 70년도 지나지 않은 것이다. 이제라도 더 늦지 않게, 되도록 많은 사람들이 이 작품을 읽었으면 좋겠다. 역사는 바르게 계승되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의 후손들이 똑같은 비극을 겪지 않고, 똑같은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들에게,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