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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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도의 개

-1-2015년 8월 15일은 70주년을 맞은 광복절이었다.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궤적을 살펴볼 때 1945년 8월 15일만큼 중요한 날은 없다. 1910년 8월 29일, 일본의 침략에 의해 국권을 상실하고 한일병합조약을 강제로 체결, 선포한 경술국치(庚戌國恥)의 날로부...

2015-10-05 김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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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8월 15일은 70주년을 맞은 광복절이었다.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궤적을 살펴볼 때 1945년 8월 15일만큼 중요한 날은 없다. 1910년 8월 29일, 일본의 침략에 의해 국권을 상실하고 한일병합조약을 강제로 체결, 선포한 경술국치(庚戌國恥)의 날로부터 35년이라는 긴 시간이 흐른 뒤에 비로소 민족의 품에 주권을 되찾아온 날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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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광복에 대한 역사학계의 의견은 하나로 통일되지 못하고 여전히 분분하다. 우리의 힘으로 되찾은 독립이 아니라 미국의 힘으로 되찾은 독립이라는 소극적인 시각도 있고, 만약 일본이 패전을 하지 않았으면 우리 민족의 독립은 요원했을 거라는 부정적인 시각도 분명 존재한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광복의 가장 큰 외적 요인이 미국에 의한 일본의 패전일지라도, 우리 민족이 일제의 35년 강점기 동안 독립을 위해 아무 일도 하지 않은 것은 절대 아니란 사실이다. 거국적 민족운동인 3.1. 만세운동은 말할 것도 없고, 윤봉길 의사의 상해 의거는 중국 국민당의 총통 장개석의 마음을 움직여 상해임시정부를 지원하게 만들었으며, 일본에 의해 역사 속으로 사라진 조선이 아니라 대한민국이라는 독립국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온 세계에 알렸다. 중국 공산당의 주석 마오쩌둥도 그들을 도와 전선의 최전방에서 가장 열심히 항일투쟁을 벌였던 조선독립군들의 존재를 높이 평가하였으며, “동지들의 피 값은 돈으로 갚을 수 없다”는 유명한 말을 남기며 한국전쟁에 지원군을 파병하기도 했다. 위에 거론된 분들 말고도 수도 없이 많은 ‘독립투사’들이 계셨고, 이렇게 자신들의 목숨을 민족의 독립을 위해 초개와 같이 던지며 항일투쟁에 앞장섰던 우리들의 할아버지, 할머니가 없었다면, 실제의 역사에서 대한민국은 열강들의 패권다툼 속에 정말로 그 존재조차 사라졌을지 모른다. 지금 우리들이 딛고 서있는 땅과 편안히 누리고 있는 민족의 주권은 그분들의 희생으로 얻어낸 ‘우리의 정당한 지분’임을 결코 잊어선 안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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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70주년을 맞은 8월 15일, 한국의 극장가에서 영화 한 편이 천만 관객을 돌파했다. 최동훈 감독이 항일무장투쟁을 소재로 만든 <암살>이라는 영화였다. 영화 자체의 재미와 감동이 물론 크겠지만, 광복 70주년이라는 기념비적인 날에 이런 소재의 영화가 천만 관객을 돌파했다는 것은 매우 드라마틱한 의미가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영화의 줄거리 자체가 우리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자신의 청춘과 열정을 불살라 민족의 독립을 위해 일본 제국주의에 맞서 싸우는 내용이기 때문에 더더욱 의미가 깊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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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암살>의 내용 중에서 실제로 있었던 역사적 사건과 인물들을 꼽자면 ‘의열단’을 결성해 요인암살, 중요시설 파괴 등의 항일무장투쟁을 적극적으로 전개한 약산 김원봉과 상해임시정부의 주석이었던 백범 김구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에서 자세히 다룰 수는 없지만, 대한민국 독립운동사는 그 계통이 매우 복잡하고 여러 줄기의 가지로 나뉘어 있다. 특히 약산 김원봉으로 대표되는 ‘아나키스트’ 계열의 무장투쟁은 좌, 우의 사상적 대립으로 인해 양 진영 모두에서 외면당한 가슴 아픈 경우이기도 하다. 

우리 민족의 항일무장투쟁은 서간도, 북간도를 아우르는 만주지역, 블라디보스토크, 하얼빈 등의 연해주지역과 러시아령 일부, 연안, 한단 등의 화북지역, 상해, 남경, 중경, 북경 등의 중국 거점도시들을 주요 무대로 대부분 이루어졌다. 김용옥의 연구에 따르면 한국의 독립운동은 크게 세 가지의 양태로 나눌 수 있는데, 유격대 활동을 중심으로 한 ‘동북지역의 무장투쟁’, 중국공산당과 연합하여 수많은 전투에 참여해 전과를 올린 ‘화북지역의 의용투쟁’, 중국국민당과 연합하여 다양한 외교활동을 펼치고 요인암살 등의 성과를 기록한 ‘강남지역의 외교투쟁’으로 나뉜다고 한다. 영화 <암살>은 매우 영리하게도 이 세 분파의 항일무장투쟁세력을 한데 모아 친일파 암살이라는 하나의 임무를 부여한다는 점에서 역사적인 의미가 있을 것이다. 비록 해방 후에 극심한 좌, 우의 대립을 겪으며 또 한 번의 거대한 민족적 비극을 겪게 되는 우리 민족이지만, 영화 속에서라도 이렇게 좌우합작 항일무장투쟁을 볼 수 있었기에 후손으로서 매우 기쁘고 뿌듯하다. 

만화책을 소개하는 리뷰에 이토록 거창한 서두를 쓰는 이유는 딱 한 가지다. 영화 <암살>에서 배우 오달수가 분한 ‘영감’이라는 캐릭터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 너무 가슴에 남았기 때문이다. 그는 사지(死地)로 떠나면서 단 한 마디를 남긴다. “우리 잊으면 안 돼.” 그렇다. 우린 그들을 결코 잊어선 안 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린 더더욱 정확하고 체계적인 역사를 철저히 공부해야 할 필요가 있다. 우린 알아야만 한다. 왜 조선은 일본에 의해 역사 속으로 사라져야 했는가, 왜 우린 그토록 허무하게 국권을 내줄 수밖에 없었는가. 바로 이런 근본적인 역사적 질문들에 대해 어느 정도 해답이 될 만한 ‘일본 만화’ 한 편을 소개하고자 한다. 거장(巨匠) 야스히코 요시카즈가 그린 명작 <왕도의 개>다. (이 작품과 역사적으로 이어지는 또 하나의 명작 <무지갯빛 트로츠키>는 별도의 글로 다루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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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도의 개> 저자 야스히코 요시카즈는 우리나라에선 ‘건담의 어머니’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실제로 최근작이 <기동전사 건담 디 오리진>이기도 하다.) 1947년 홋카이도에서 태어난 그는 ‘건담의 아버지’ 토미노 요시유키와 함께 애니메이터로 활약하며 ‘기동전사 건담’을 만들???냈으며, 만화가로도 활동하며 여러 명작을 남??다. 뛰어난 작화 능력은 굳이 따로 언급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업계에서 인정받은 작가이며, 스토리 구성에 있어서도 선이 굵고 의미 깊은 이야기들을 주로 다루고 있다. 특히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수많은 인간 군상의 면면을 리얼하게 다루는 데 있어 아주 빼어난 솜씨를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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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소개하는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왕도의 개>는 메이지 22년(1889년) 홋카이도에서 시작해 1900년 중국 광동에서 끝이 난다. 일본, 조선, 중국을 넘나들며 19세기의 격동의 아시아를 온몸으로 겪어가는 한 젊은이의 여정을, 무게감 있는 필체와 철학적인 시선으로 풀어낸 정통대하사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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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도의 개>의 주인공은 카노 슈스케라는 청년이다. 카???는 당시 일본에서 열병처럼 번졌던 자유민권운동의 흐름에 온몸을 내던진 의기 넘치는 젊은이였다. 그는 자유당 당원으로서 ‘오사카 사건’의 하수인으로 조선도항자금을 모으기 위해 강도 상해를 일으켜 체포되었고, 징역 9년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었으나, 당시 일본정부의 주요정책 중 하나인 ‘홋카이도 개척정책’으로 인해 이시카리 도로 건설 현장에 끌려와 강제노동에 시달리고 있었다. (오사카 사건이란 메이지 18년 자유당 좌파 지도자인 오오리 켄타로와 그 추종자들이 조선으로 건너가 일본에 우호적이었던 ‘독립당’을 지원하여 요인 암살 등을 벌이려 했던 조선 도항 계획을 말한다. ‘독립당’이란 갑신정변을 주도했던 조선의 개화파 관료들을 지칭한다.)

카노는 105호라는 죄수번호를 부여받고 부역하던 중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죄수인 103호 카자마 이치타로를 만난다. 카자마 이치타로 역시 자유당 당원으로서 ‘하세가와 시로 모살 사건’을 저지르고 징역 10년을 선고받아 죄수로 복역하다가 이시카리 도로 건설 현장에 끌려온 남자였다.(???유당은 국회 개설 등 자유주의를 기치로 내걸고 메이지 14년에 결성된 일본의 정치단체로 급진, 과격화로 치달으면서 국가권력과 충돌이 잦았다)

카노와 카자마는 하나의 쇠사슬로 서로의 몸이 묶인 기이한 인연으로 인해 ‘죽음의 현장’이었던 이시카리 도로 건설공사장을 함께 탈출, 삼엄한 경계를 뚫고 홋카이도의 깊은 산중으로 필사의 도주를 감행한다. 카노와 카자마는 탈출 이후 여러 인연을 만나면서 새로운 길로 접어들게 되는데, 첫 번째로 ‘아이누인’(홋카이도에 살던 일본 원주민) 사냥꾼 니시테를 만나 목숨을 구한 후 아이누인 청년으로 자신들의 신분을 위장한다. 그들은 니시테와 동행하다가 무술의 달인 타케다 소가쿠(대동류 합기유술의 아버지), 전직 무사인 개척농민 토쿠히로 마사테루 등과 만나면서 인생의 커다란 변곡점을 겪게 된다.

탈옥수 신분의 두 남자는 밝은 세상을 당당히 걷는 인생을 더 이상 살아갈 수 없었지만, 강직하고 인간미 넘치는 성품을 가진 카노는 몇몇 우여곡절을 거쳐 당시 일본으로 망명해 있던 김옥균을 호위하게 되면서 새로운 인생의 전기를 마련하게 되고, 그가 오래 전부터 추구했던 ‘진정한 왕도’를 걷기 위해 역사의 어둠 속에서 왕도를 지키는 ‘왕도(王道)의 개’로서 살아가기로 결심한다. 한편, 이재(理財)에 무척 밝고 탐욕스러운 성품을 가진 카자마는 금을 캐러 홋카이도에 온 타카라베 카즈마라는 사금꾼을 죽여 그의 호적증명을 이용, 탈옥수 신분을 세탁하고 금맥의 정보를 팔아 후루카와 재벌의 창업자 후루카와 이치베에게 접근, 때마침 미국에서 돌아온 농상무대신 무츠 무네미츠를 소개받아 농상무성 관리로 변신, 무츠의 지시를 받아 재벌의 이익을 지키고 정적(政敵)을 무너트리는 ‘패도(覇道)의 개’로 변신한다.

작가인 야스히코 요시카즈는, 열강들의 패권다툼이 극단으로 치닫던 19세기의 동북아시아를 배경으로 삼아, 역사의 소용돌이 한가운데를 온몸으로 돌파하는 카노의 지난한 여정을 통해 진정한 왕도란 과연 무엇인가를 진지하게 탐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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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의 서두에서 거론하였지만, 어째서 이 책이 우리의 근현대사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 중 하나인 ‘왜 조선은 일본에 의해 역사 속으로 사라져야 했는가, 왜 우린 그토록 허무하게 국권을 내줄 수밖에 없었는가.’에 대한 해답이 되는지를 먼저 알아야 한다. 

<왕도의 개>가 작품의 배경으로 삼은 1889년부터 1900년까지의 시기에는 동북아시아의 역사에 있어 중요한 전쟁 하나가 터지는데 그것은 바로 조선의 땅에서 벌어진 ‘청일전쟁’이다. 이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청의 속국이나 다름없었던 조선에서 청의 세력을 쫓아내고 조선을 자신들의 실질적인 지배하에 두게 된다. 청일전쟁은 후에 을미사변, 아관파천, 러일전쟁으로 이어지는 ‘일본제국주의 시발점’으로 작용하게 되며, 결국 1910년 일본에 의해 국권마저 상실하는 경술국치까지 이르게 되는 것이다. 더더욱 화가 나는 것은 ‘청일전쟁’의 발단이 조선정부의 요청으로 동학농민군을 진압하기 위해 청·일 양국의 군사가 이 땅에 주둔하면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이다. ‘제세안민(濟世安民:그릇된 정치를 타파하고 곤궁한 백성을 구한다)’을 기치로 내건 자국의 백성들을 폭도로 몰아 외세의 손을 빌려 학살하는 정부라니 이 얼마나 분노가 치미는, 기가 막힌 일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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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것은 이 작품이 일본인 작가의 손에 의해 그려진 일본만화라는 점이다. 야스히코 요시카즈는 다소 과장되게 말하면, ‘아나키스트’적인 관점으로 시대와 역사를 해석하는 진보적인 작가라고 할 수 있다. 그가 작품의 주인공인 카노의 행보를 통해 보여주는, 이 당시 일본 정치의 실상과 국제정세의 냉엄한 현실은 ‘왜 우리가 일본의 식민지가 될 수밖에 없었나?’를 민족적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냉정하게, 아주 현실적으로 분석할 수 있게 해준다. (물론 일본 입장의 역사해석도 이 작품에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그런 불편함을 감수하고라도 <왕도의 개>에는 꼭 읽어볼 만한 역사적 가치가 있다.) 그리고 일본인인 야스히코 요시카즈가 ???시 온 나라가 패도를 추구하며 제국주의로 내달리던 일본의 상황을 ‘엄청나게 잘못된 것’으로 해석하면서, 그에 대항하여 왕도를 묵묵히 걸어가는 주인공 카노의 스승으로 세 명의 실존인물을 극중에 배치하는데, 놀랍게도, 그 중 두 명이 조선인이다. 

작중 카노의 스승과 같은 역할을 하는 역사적 실존 인물은 세 명이다. 카노에게 가장 크게 사상적, 철학적 영향을 끼친 인물은 김옥균(갑신정변의 주도자)이고, 카노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면서 ‘왕도의 개’로 살아갈 수 있게 돌봐주는 인물로 카츠 카이슈(메이지 유신의 주역)를 배치하였으며, ‘올바른 왕도의 방식’을 마치 순교자 같은 행보로 카노에게 보여주는 인물로 전봉준(동학혁명군의 지도자)을 극중에 등장시킨다.(특히 마지막 권에서 전봉준과 카노가 마지막 대화를 나누는 장면은 감동이 휘몰아치는 명장면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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홋카이도의 이시???리 도로 건설현장에서 탈옥수로 출발한 주인공 카노의 여정은 순차적으로 따져보면 다음과 같다. 탈출-아이누인으로 신분위장(아이누인 사냥꾼 니시테를 만남)-아이누인에 대한 내지인(일본인)들의 횡포에 맞서 곤욕을 치르다 타케다 소가쿠를 만나 목숨을 구하고 대동류 합기유술의 제자로 입문-홋카이도 개척단 생활(둔전병 토쿠히로 마사테루를 만남)-타케다의 추천으로 김옥균의 경호원이 됨-도쿄로 돌아와 김옥균을 수행하며 다니다가 카츠 카이슈를 만남-아시오 광산 사건으로 김옥균과 헤어지게 되고 카츠 카이슈의 주선으로 중국으로 건너가 비밀임무를 수행하게 됨-중국에서 삼합회의 일원이 되어 ‘그림자’로 활약-손문(쑨원)을 만나 교분을 쌓음-이홍장과 대면한 후 그의 음모에 휘말림-김옥균 상해에서 암살당함, 조선으로 와서 김옥균의 능지처참된 시체를 보고 복수를 다짐-동학혁명군에 무기와 탄약을 지원, 전봉준과 인연을 맺게 됨-카츠 카이슈의 밀명으로 을미사변의 주범 중 하나인 오카모토 류노스케를 암살하러 왔다가 예전의 인연으로 포기-2차 동학농민혁명 발발, 전봉준과 마지막 대화-??일전쟁 발발-종전 후 시모노세키에 강화조약을 맺으러 온 이홍장을 암살하기 위?? 코야마 로쿠노스케를 꼬여 저격을 사주-무츠 무네미츠의 별장에 잠입, 그를 암살하려다가 카자마의 희생으로 실패-중국으로 돌아와 손문을 도와 광동성 혜주 삼주전 궐기에 참여, 진압군과 대치(전투 발발 직전까지만 보여주고 작품 종결)

아주 간단하게 이 작품의 중요한 사건들만을 나열하였지만, 작가인 야스히코 요시카즈가 주인공 카노를 통해 독자에게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아주 명확하다. 한때 젊은 혈기와 넘치는 의기로 혁명에 참여하려 했던 어설픈 자유당 민권파였던 청년 카노는 ‘치치부 사건’과 ‘오사카 사건’을 거치면서 지도부의 타락과 배신을 경험하게 되고 결국 시국사범도 아닌 강도상해죄로 잡혀 앞날을 기약할 수 없는 죄수가 된다. 겉으로는 약자들을 위한 세상을 만들자는 대의명분을 내세운 민권파 지도부였으나, 정작 그들이 노렸던 것은 자신들을 지지했던 약자들의 희생을 발판삼아 국회에 진출하여 또 다른 기득권이 되는 것이었다. 패기와 열정, 그리고 순수로 무장한 자신과 같은 세상물정 ???르는 청년당원들의 단물만 쏙 빼먹고 결국 권력 앞에 변절하는 지도부들의 ???태를 가혹한 수감생활 속에서 곱씹으며 자신의 나아갈 바를 끝없이 고민하던 카노는 결국 탈옥, 새로운 인생의 여정에 접어들게 된다.

카노는 자신을 구해준 아이누인 사냥꾼과 함께 다니며 본래 홋카이도의 원주민이었던 아이누인들을 내지인들이 어떻게 핍박하고 착취하는지 뼈저리게 체험하게 된다. 자연의 이치에 따라 순리대로 살아가던 아이누인들은 어느 날 갑자기 내지에서 건너온 탐욕스러운 일본인들에게 땅과 집을 빼앗기고 ‘식민지 인’으로 전락한다. 겉으로야 ‘황국신민 일체화’라는 정책을 써서 차별은 없다고 대내외적으로 선전했지만 실상은 화명(和名: 일본식으로 이름을 바꾸는 것, 우리나라에 행해졌던 창씨개명과 같다)을 강요하고 그들의 노동력을 착취하며 노예처럼 부려먹은 것이다. 홋카이도라는 천혜의 땅에서 자연과 어울려 평화롭게 살아가던 아이누인들은 남자는 광산과 공장, 부두 하역장 등으로 끌려가 기약 없는 노동에 시달렸으며 여자들은 유곽에 팔려가 내지인들의 성적 노리개로 살아가??? 몸을 망가트리고 있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내지인들에게 아이누인은 자신과 같은 인간이 아니었던 것이다.(아메리카 인디언들이 유럽에서 이주한 백인들에게 몰락하는 과정과 매우 비슷한 행보를 보인다. 아마도 이는 제국주의의 특성 중 하나인 듯하다. 훗날 조선을 병합한 일본인들은 아이누인을 복속시킬 때와 유사한 방법을 써서 조선인들을 ‘식민지 인’으로 만들어간다.)  

아이누인 청년 쿠완으로 살아가며 내지인들의 핍박과 착취, 차별을 경험하던 어느 날, 금전관계로 시비가 붙어 곤욕을 당하고 있던 카노 일행을 홀연히 나타나 구해준 무술가가 있었으니, 그는 바로 대동류 합기유술의 아버지로 이름 높은 타케다 소가쿠였다. 타케다 소가쿠의 강인함에 반한 카노는 그의 제자로 입문하여 유술을 전수받게 되고, 니시테의 소개로 알게 된 홋카이도 개척단의 둔전병(미개척지에 주둔하여 개간과 국방의무를 동시에 수행하는 병사) 토쿠히로 마사테루의 보살핌을 받으면서 ‘진정한 왕도’란 무엇인지 고민하게 된다.

얼마 후, 타케다와의 인연은 생각지도 못한 거대한 인연??? 카노에게 이어주게 되는데, 그것은 때마침 홋카이도에 머물고 있던 조선의 이름 높은 망명정객 김옥균의 경호원으로 취직하게 된 것이다. 이때부터 카노는 김옥균을 수행하는 경호원으로서 다양한 정계의 거물들과 접촉하면서, 일본의 정치와 국제외교의 실상을 가감 없이 직시할 수 있었고, 왕도(王道)가 아닌 패도(覇道)가 온 나라를 점령하고 있는 냉혹한 현실을 깨닫게 된다. 카노는 머리로만 혁명을 꿈꿨던 자신의 어설펐던 시절을 반성하면서, 일본이 대내외적으로 주창하는 근대화의 허울과 가식을 비판하게 되고, 더 나아가 제국주의적 발상으로 조선을 비롯한 주변 약소국을 침탈, 복속하려는 일본의 여론에 강한 반감을 가지게 된다. 이는 자신이 ‘아이누인 신분’으로 제국주의의 실상을 몸소 체험했기에 가능했던 발상의 전환이었으며, 이러한 카노의 생각은 당시 일본의 많은 사상가들과 지식인들을 매력적으로 빠져들게 만들었던 김옥균의 ‘삼화주의(三和主義)’ 즉, ‘아시아 화합론’과 일치하는 것이었다. 

김옥균의 사상은 앞선 근대화를 이룬 일본을 본받아 조선도 얼른 근대화를 이루어 청나라로부터 정치경제적으로 독립을 이루고, 역사적으로도 아주 긴밀한 관계를 지닌 중국, 일본, 조선이 동등한 입장에서 평화조약을 맺어 서양열강들을 견제하며 아시아의 균형발전을 이루자는 것이었다. 이러한 김옥균의 사상은 사실상 패도를 추구하며 제국주의를 향해 달려가고 있던 일본의 정치가들에겐 휴지조각보다 못한 쓸모없는 사상이었지만, 그의 사상이 내포하고 있는 평화와 공존의 가치 때문에 때로는 외교의 ‘대의명분’으로, 때로는 ‘선전의 도구’로 이용되고 있었다.(실제로 대동아공영권을 대의명분으로 주장하며 전쟁을 일으킨 일본의 프로파간다에는 김옥균이 설파한 ‘아시아 화합론’이 상당히 많은 부분 차용되어 쓰였다) 

당시의 긴박한 국제정세 속에서 청, 조선, 일본 모두에게 걸림돌 취급을 받은 김옥균의 피곤하고 불운한 망명생활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김옥균의 사상에 진심으로 매료된 카노는 그로부터 ‘츠라누키 마히토’라는 새로운 이름을 받으면서 그를 아버지처럼 따르며 인생의 스승으로 모시게 된다.(극중 주인공 이름의 변화는 매우 ??미 있는 일이다. 일본인이었을 때 카노 슈스케, 아이누인으로 살 때는 쿠완, 김옥균으로부터 받은 츠라누키 마히토, 그리고 김옥균이 지어준 이름을 한자로 바꾼 貫眞人은, 일본인에서 진정한 아시아인으로 탈바꿈하는 카노의 여정을 그대로 상징하고 있다)

그 후 많은 우여곡절을 거쳐 카노 카이슈를 만나 작은 전함을 얻은 후, 해외로 나가서 신분을 숨기며 해적으로 활동하던 카노는 다양한 사람들과 소중한 인연을 맺어가며 그가 추구하는 왕도를 지키는 ‘왕도의 개’로서 흔들림 없이 묵직한 행보를 보인다. 그러나 이홍장과 무츠 무네미츠의 비열한 정치적 음모로 인해 김옥균을 잃게 된 그는 마음 깊이 복수를 다짐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만나게 된 동학혁명군의 지도자 ‘녹두장군 전봉준’은 진정한 왕도가 무엇인지를 카노에게 깨닫게 해준 아주 소중한 인연이었으나, 그 역시 결국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된다. 전봉준의 죽음 이후 한층 더 강인해진 카노는 손문을 도와 중국혁명에 온몸을 내던지게 된다. 패도에 대항할 ?? 있는 진정한 왕도의 완성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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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스히코 요시카즈는 <왕도의 개>를 통해 독자들에게 끊임없이 묻는다. 왕도와 패도, 과연 그 당시 일본은 어떤 선택을 해야만 했을까? 실제 역사에서 일본은 패도를 선택했고, 그 결과 제국주의의 깃발아래 온 나라 온 국민이 폭주기관차처럼 돌진했으며, 주변의 약소국들을 침략해 전쟁을 벌였다. 일본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계속 전선을 확대해나가 태평양 건너 미국과도 전쟁을 치르는 무리수를 두다가 결국 ‘원자폭탄’이라는 엄청난 공격을 받고 패전했다.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원폭’을 맞은 국민이 바로 일본인이라는 역사적 사실은, 결코 우연의 산물이 아니라 그들이 선택했던 잘못된 길, 즉 패도의 필연적인 결말인 셈이다. 

작가는 작품 내내 ‘맹자’를 인용하며 ‘왕도정치’에 대해 설파한다. 둔전병 토쿠히로나 김옥균, 카츠 카이슈, 전봉준 등등 ???중의 카노에게 깨달음을 주고 ‘옳은 길’을 설파하는 인물들은 모두 다 ‘맹자’를 인용한다. 이들이 맹자를 ‘바른 정치의 표상’처럼 자주 인용하는 이유는 당시 일본의 모습이 패도를 추구하면서 마구 망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작가는 열강들이 자원과 영토를 놓고 경합하던 당시의 복잡했던 국제정세만이 아니라, ‘치치부 사건’이나 ‘아시오 광산 사건’ 같은, 근대화의 깃발 아래 삶의 터전을 잃고 빈민으로 전락하던 일본 민중들의 아픔도 놓치지 않고 세심하게 조명한다. 경제적으로는 초기 자본주의(산업자본주의), 정치적으로는 제국주의(또는 군산복합체)의 모습을 띠고 있던 이 시대 일본의 모습은 백성의 편안한 삶과 평화로운 공존과는 전혀 상관없는, 복속과 착취를 기반으로 주변국을 병합하려는, 영락없는 패도의 얼굴이었다.(무리한 개발로 인한 급속한 환경파괴와 휴머니티의 상실은 자연스럽게 덤으로 따라왔다) 당시 일본의 민권(民權)은 국권(國權)이라는 전체주의적인 개념으로 점차 변질되고 있었다. 나라의 공론이 아주 위험한 방향을 향해 조성되고 있었고, 이는 결국 ???중에서처럼 ‘모든 국민이 찬성하는 청일전쟁’이라는 프로파간다를 만들어내게 되면서 일본은 제국주의의 길로 확실하게 접어들게 되는 것이다.

야스히코 요시카즈는 작품 후기에서 아래와 같이 말한다.
“그렇다면 대체 일본은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단 말인가. 일본인이면 누구나 자랑스럽게 여기는 메이지 유신 시대가 이룩한 성과는 대체 언제부터 일그러져 일본을 패권주의 국가로, 온 아시아에 대한 가해자로 만들었을까? <왕도의 개>가 다루는 테마는 바로 그 점이라 할 수 있다...(중략)...나는 일본이 길을 잘못 든 것은 청일전쟁 때였다고 본다. 청나라는 쇠약했을지언정 아시아의 대국으로, 이제 막 근대 국가로서 발돋움하고자 하던 일본을 가로막는 장해물이었다. 이를 언제 걷어차 버릴지, 메이지 시대 위정자들은 그 타이밍을 놓고 심사숙고했을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외무대신 무츠 무네미츠가 계획을 짜고 이토 히로부미 내각이 실행에 옮긴 행동이 바로 청일전쟁이었다. 청일전쟁은 온 국민이 지지한 전쟁이었다. 그러나 이는 철저하게 의도적인 전쟁, 그리고 일본 쪽에서 벌인 더러운 전쟁이기도 했다....(중략)...청일전쟁은 수많은 것들을 뒤바꿔 놓았다. 그리고 그 뒤를 이은 수많은 전개의 시발점이 되었다. 일본이 전쟁을 향해 돌진하던 와중 민권파를 자처하던 지사들은 패도의 첨병으로 변모했다. 전쟁에 승리함으로써 일본인은 자신들이 아시아에서 유일한 문명국 국민이라며 우쭐거리게 되었고, 조선지배에 가책을 느끼지 않게 되었으며, 삼국 간섭을 경종으로 인식할 줄 모르고 발끈했다. 얼마 후 일어난 러일전쟁, 그리고 그 뒤로 계속된 흐름은 마치 격류처럼 더 이상 막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중략)...하물며 청일전쟁 직전 일본에 김옥균이라는 망명자가 있었음을, 그리고 바로 그가 이루고자 한 바가 최소한 이웃나라 조선과 일본의 관계를 왕도로 이끄는 지표(指標)였을 수도 있음을 지적하는 움직임은, 한류 붐이 세간을 떠들썩하게 하는 와중에도 도무지 찾아볼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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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도의 개>에 등장하는 김옥균은 매우 섬???하고 자애로운 문인으로, 그러면서도 조국의 독립과 아시아의 평화를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는 강직하고 순수한 정치인으로 그려진다. 실제로 그의 일본망명생활은 매우 불우하고 고달팠다고 한다. 일본의 막판 배신으로 갑신정변이 실패한 후 일본으로 망명한 그를 일본 정부는 당시의 국제정세를 고려한 탓에 매우 핍박하였다. 오가사와라 섬에 귀양을 보냈으며 북해도로 추방하여 연금시키기도 했다. 결국 상해에서 홍종우의 손에 암살당할 때까지 그의 생애는 매우 불운하고 씁쓸한 삶이었을 것이다. 

작품 속에서 아주 리얼하고 디테일하게 그려지는 김옥균의 일본 망명생활은 한국인의 입장에서 보자면, 매우 미묘한 기분이 들게 한다. ‘아시아의 화합과 평화’를 주창했던 그의 사상적 본질이 아무리 훌륭했다 하더라도, 그의 존재와 그가 설파한 사상들을 당시 일본의 정치가들과 정치단체들은 좌익, 우익을 구분하지 않고(심지어 극우단체인 현양사까지도) 정세에 맞춰 수시로 이용했으며, 결국 그의 죽음은 일본이 청일전쟁을 일으키는 방아쇠로 작용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훗날 일본이 조선을 침략하는 과정에 있어서 그의 존재와 그가 남긴 사상은 제국주의자들에게 ‘대의명분’을 주는 데 상당히 일조했다고 보여진다.(물론 그의 사상을 이용한 것뿐일 수도 있지만) 그러나 작품 속에서 김옥균은 주인공인 카노에게 사상적, 철학적 기반을 제공하고 왕도정치의 실천을 온몸으로 보여준 훌륭한 스승으로 그려진다. 

작중 비중이 거의 주연급인 김옥균보다, 한국인으로서 감동을 넘어 자랑스럽게까지 느껴지는 등장인물은 오히려 전봉준이다. 1차 동학농민혁명 때 농민군을 이끌고 궐기한 그는 자신에게 무기와 탄약을 들고 찾아온 일본인 카노에게 자신의 철학과 비전을 당당히 설파하면서 그를 ‘매국노’라고 꾸짖기까지 한다. 특히 자신들을 진압하러온 경군(정부군)들이 조선의 성지(聖地)인 완산에 진을 치고 태조 이성계의 사당에 포격을 가하자 매우 참담한 표정으로 화친을 권하는 카노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경군 놈들이 완산을 군마로 더럽혔네. 태조를 모신 완산을 백성들의 피로 물???였음이야! 이것이 얼마나 참담한 일인지 한낱 왜인이 어찌 알까! 완산이 지닌 지리적 이점을 살리면 전주 방비를 완벽히 굳힐 수 있었으리라는 것쯤, 누가 몰랐을 것 같나! 허나 그리 하지 않았던 것은 태조를 모신 경건한 산을 전쟁터로 만들고 싶지 않았던 까닭이야! 그런데 민씨 놈들이 보낸 경??은 이를 범하고 말았지. 마음 속 깊이 임금을 우러르고 안민(安民)을 바라던 이들을 두 번 죽인 꼴이라 이 말이다!...(중략)...천도(天道)를 모르는 너희 불의한 왜인들이 진정으로 어진 정치가 무엇인지 어찌 안단 말이냐! 분명 있음이야! 군왕은 어질고 신하는 올곧은, 일군만민(一君萬民)의 덕이! 이 나라에는! 그런 나라를 만들 수 있단 말이다! 간신들을 쳐낸 뒤 현량정직(賢良正直)한 신하가 임금을 보필토록 하면! 부모가 자식을 아끼고 자식이 부모를 받들면! 지금은 도탄에 빠진 만민이 시름없이 살 수 있는 세상, 덕화(德化)에 잠긴 천만행심(千萬幸甚)의 세상을 만들 수 있음이야...!” 라고 말이다.

그리고 또 2차 동학농민혁명 때 마지막으로 만난 카노에게 전봉준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번 거사는 올봄 때보다 몇 배는 더 힘겨운 것이 될 듯 싶네. 청나라와 전쟁을 다 마치는 대로 일본은 대원군을 앞에 내세운 괴뢰 조정과 함께 우리를 토벌하려 들 것이야. 우리는 산지를 거점 삼고 겨울을 벗 삼아 싸울 생각이네만 승리는 힘들 걸세....(중략)...나는 아무 데도 아니 갈 걸세. 장수는 달아나지 않는 법... 장수가 달아나면 아랫사람들은 더 모진 꼴을 당하게 되네. 친지와 가족에게 그 책임을 물으려 드니 말일세. 게다가... 조선을 떠나면 나는 더 이상 내가 아니게 되네. 사람은 어딜 가나 다 같은 사람이지만, 초목과도 같이 땅에 그 뿌리를 두는 까닭에 자기 땅을 떠나면 사람이 바뀌거나 시들고 마는 법. 나는 죽는 날까지 조선의 농민으로 살고 싶네...(중략)...그런데 젊은이. 아까 그 이야기 말이네만, 나라의 이득이나 겨레의 형편을 넘어서는 도리가 있음을 자네는 믿는가?...(중략)...나도 믿네.”  
 
작중에선 아주 짧게 등장하지만, 전봉준이 등장하는 장면은 아주 강렬하다. 치기어린 젊은 시절에 지도부의 타락과 배신, 동지들의 변절을 경험하며 정치적으로는 ‘아나키스트’처럼 변한 카노에게 있어, 끝까지 자신의 의지와 사상을 관철하며 부하들과 동지들을 위해 자신의 목숨마저 내놓는 왕도의 상징, ‘녹두장군’ 전봉준은 그야말로 새로운 깨달음을 주는 인물이다. 카노는 전봉준을 통해 진정한 왕도가 무엇인지 가슴 깊이 깨닫게 되며, 이는 후에 카노가 손문을 도와 중국의 혁명운동에 온몸을 던??게 되는 계기로 작용한다. ‘나라의 이득이나 겨레의 형편을 넘어서는 도리’라니... 맹자가 설파한 ‘왕도’를 이렇게 멋진 말로 다르게 표현한 것은 아마 전봉준의 대사가 처음일 것이며, 이런 전봉준의 모습을 한국인이 아닌 일본인 작가가 작품 속에서 구현했다는 것이 한편으론 분하고, 한편으론 부끄럽기도 하다.     

이야기가 조금 빗나가겠지만, 일본이 청일전쟁을 통해 어떻게 제국주의의 길로 나아갔는가를 심도 있게 조명하는 이 작품 속에서, 제어가 불가능한 패도를 걷는 일본 정부와 정치가들보다 더 한심하고 못나게 그려지는 것이 고종을 비롯한 조선의 기득권 세력들이다. <왕도의 개>에서 등장하는 조선의 기득권 정치세력은 존재감도 미약할 뿐더러 엄청나게 바보 같은 모습만 보인다. 민비의 말에 쩔쩔 매면서 백성은 안중에도 없이 막대한 예산을 들여 등불축제나 개최하는 고종과 그 주변인들. 정말 이런 말을 하면 더더욱 분노가 치밀지만, 야스히코 요시카즈에게 고종은 ‘바보 왕’, 민비는 ‘자신의 욕심을 채우는 데 급급해 나라를 파탄내고 백성을 도탄에 빠지게 하는 악녀’로 보였던 모양이다. 실제 역사에서 민씨 일족이 고종을 등에 업고 외세를 끌어들여 동학 혁명을 진압한 과정 자체가 정말 어이가 없을 지경이고, 이런 쓰레기 같은 정치 세력이 집권하고 있던 나라에 무슨 희망과 의기가 남아있어 당시의 일본을 이길 수 있었겠느냐만은, 그래도 이렇게 일본의 작가에 의해 바보처럼 그려지는 고종의 모습은 한국인으로서 정말 보기가 불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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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도의 개>는 팩션(faction)의 형식을 취한 정통대하사극이다. 관련 연표를 보면 1868년 메이지 원년의 보신전쟁부터 1889년 제국헌법 발표까지 나와 있는데, 일본의 근현대사를 세세하게 모르더라도 관련연표와 ??문의 주석만 꼼꼼히 읽어보아도 책의 내용을 이해하기 어렵진 않을 것이다. 특히 조선의 역사와 관련된 부분(김옥균이나 전봉준, 갑신정변이나 동학혁명 등)은 일본인의 시각으로 해석된 부분이 매우 독특하게 느껴져서 꽤 흥미롭기까지 하다. 책이 좀 두껍긴 하지만 4권밖에 되지 않으니 관심 ??으신 분들은 꼭 한 번 보시길 바란다. 하나의 역사적 사건을 놓고 이토록 많은 시각과 의견들이 당시에 분분하게 존재했었음을 새롭게 알게 되실 것이며, 인간의 역사가 중요한 고비 때마다 언제나 반복하는 과오가 무엇인지도 절실하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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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제일 두려웠던 것은, 일본이 메이지 유신을 통해 근대화의 길로 접어들고 ‘아시아의 영국’을 지향하며 부국강병에 힘쓸 때가 1870년대였는데, 그 당시 조선은 여전히 꿈속에 살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종주국인 청나라가 외세로부터 우리를 지켜주는 것이 마치 당연한 사실인 양 ?? 치의 의심도 없이 믿고 있었고, 기득권을 유지하기에만 급급했던 정치인들은 썩을 대로 썩어 있었으며, 탐관오리들은 백성들의 고혈을 쥐어짜는 것에만 열중하고 있었다. 물론 일본도 이 당시엔 근대화의 혼란을 대내외적으로 극심하게 겪었던 시기였지만, 적어도 그들은 명확히 지향하는 목표를 가지고 온 나라가 합심해 변하려고 노력하던 때였고, 우리는 여전히 뼈대만 남은 낡은 봉건제의 틀 안에 갇혀 우물 안 개구리로 살면서 일부의 기득권 세력을 제외한 대다수의 백성들은 고통과 절망 속에 신음하고 있었다. 이 결정적인 ‘상황인식의 차이’가 결국 양국 간에 큰 국력의 차이를 만들었고, 얼마 되지 않는 시간이 흐른 후, 한 쪽은 총칼을 앞세워 침략했고 한 쪽은 모든 것을 빼앗겼다. 
     
김용옥은 “한국독립운동사”라는 10부작 다큐멘터리를 통해, 나라를 빼앗긴 후 독립을 위해 동분서주했던 선열들의 고통스러운 족적을 세심하게 뒤쫓는다. 그는 다큐멘터리의 첫 번째 편에 해당하는 1부 ‘피아골의 들국화’에서 동학농민혁명으로부터 기원한 구한말 항일의병들의 가슴 아픈 역사를 하나하나 발굴해낸다. 거국적으로 봉기하여 일본의 손에 빼앗긴 나라를 되찾으려 했지만, 기가 막히게도 정부군을 앞잡이로 내세운 일본군의 압도적인 무력에 짓밟혀 만주로, 연해주로, 상해로, 연안으로 뿔뿔이 흩어져 조국을 떠나야만 했던 그들은 결국 해외에서 조국의 독립을 위해 풍찬노숙하며 고달픈 투쟁을 이어가는 ‘독립군’의 뿌리로 변모하였다. 김용옥은 힘주어 말한다. 우리나라를 일본의 손에서 되찾게 해준 ‘항일 무장 투쟁’의 근원은 바로 동학농민혁명으로부터 시작된 이름조차 모르는 구한말 항일의병들이었다고. 나라가 존재할 땐 가장 많은 고난을 짊어지며 기득권 세력들에게 피 빨리며 착취당하던 그 평범한 백성들이 나라를 잃었을 때 가장 앞장서서 목숨을 내던지며 나라를 되찾고자 했다고. 부귀영화를 누리며 백성들의 고혈을 빨아먹던 높고 귀하신 분들이 하루아침에 친일 세력으로 변모해 앞장서서 나라를 팔아먹을 때, 백성들은 농사짓던 손으로 무기를 들고 나라를 되찾기 위해 분연히 일어섰다고 말이다. 

광복 70주년, ‘민중의 힘’이란 과연 무엇인지, ‘역사의 교훈’은 과연 무엇인지, 모두 다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