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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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포마스

-序-여성들이 혐오하는 여러 가지 것들에 순위를 매긴다면, 아마도 ‘바퀴벌레’가 상당히 높은 순위를 차지할 것이다. 고생대 석탄기(石炭紀)에 나타나, 지금도 세계에 4,000종 이상이 남아 있는 곤충류인 바퀴벌레는 ‘살아 있는 화석’으로 불릴 정도로 강력한 생명력을 지...

2015-10-26 석재정
-序-
여성들이 혐오하는 여러 가지 것들에 순위를 매긴다면, 아마도 ‘바퀴벌레’가 상당히 높은 순위를 차지할 것이다. 고생대 석탄기(石炭紀)에 나타나, 지금도 세계에 4,000종 이상이 남아 있는 곤충류인 바퀴벌레는 ‘살아 있는 화석’으로 불릴 정도로 강력한 생명력을 지닌 생물이다. 불완전변태를 하는 관계로 유충이 성충과 거의 같은 모양을 하고 있으며, 생활양식마저도 거의 같다. 유충은 자유로운 생활을 하며 여러 번의 탈피로 성충에 이르는데 성충의 수명은 3∼4개월인 것부터 1년 이상인 것까지 다양하며, 특히 암컷은 죽을 때까지 산란을 계속한다고 한다. 예전에 어느 과학자가 발표한 것처럼 ‘핵전쟁이 일어나도 멸종되지 않을 생명체’ 중 하나인 바퀴벌레는, 그 특유의 강인한 생명력과 뛰어난 환경적응력, 엄청난 번식력을 바탕으로 지구상에 존재하는 최강의 종(種)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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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소개하는 만화 <테라포마스>는, 바로 이 바퀴벌레를 소재로 만든 아주 독특한 SF 판타지다. <테라포마스>의 장점은 기발한 아이디어 차원에서 멈추지 않고, 박진감 넘치는 전투장면과 감동적인 드라마까지 덧붙여, 그야말로 최강의 재미를 구축했다는 것에 있다. 
만화만의 독특한 상상력이 이끌어낼 수 있는 재미와 감동은 과연 어디까지인가를 당당히 세상에 증명하고 있는 이 작품은, 마치 작중에 ‘인류의 새로운 적(敵)’으로 등장하는 ‘진화하는 바퀴벌레’들처럼, 회를 거듭할수록 작품의 재미와 감동이 진화해 가는 매우 놀라운 모습을 독자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本-

1. 작품개요
타치바나 켄이치가 작화를 맡고 사스가 유가 스토리를 쓰는 <테라포마스>는 슈에이사가 발행하는 만화잡지 <미라클 점프> 창간호부터 연재를 시작했다. 이후 만화잡지 <주간 영 점프>로 연재잡지를 옮겨 2012년 22·23 합병호부터 연재가 재개되었다. 단행본은 현재(2015. 10. 7.) 14권까지 발행되었다 (한국어판으로는 현재 12권까지 발행되었다.) 2014년 일본 만화판매량 집계(2013. 12. 2. ~ 2014. 11. 24.)에서 429만5257부를 기록, 2014년 판매순위 12위에 올랐다. 13권까지의 누계부수가 1200만 부를 넘어서며 ‘메가 히트’ 작품의 대열에 들어섰다.

애니메이션으로는, ‘아넥스1호 편’ 13부작(TV), ‘벅스2호 편’ 2부작(OVA)으로 제작되어 2014년 방영되었다. (한국에서는 방영은 물론 수입조차 되지 않았다. 작품의 과도한 폭력성으로 인해 심의 문제가 발생한 것으로 추측된다) 이 작품이 TV로 방영된다는 사실이 공개되면서, 원작의 전투 장면처럼 잔인한 묘사(사지절단은 기본에 내장과 뇌수가 튀어나가는 등의 무지막지한 장면들)를 어떻게 수정할 것인가에 대해 원작 팬들 사이에서 말들이 많았는데, TV 방영 분량은 ‘문제가 되는 장면’을 전부 검은색으로 ‘검열 삭제’하였고, 심한 경우는 화면 절반 이상이 ‘검은색’으로 가려져 있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그래서 원작을 안 본 시청자들이 내용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하는데, 원래의 장면이 그대로 보여지는 ‘복원판’은 오히려 너무 잔인해서 차라리 TV판이 더 나았다고 얘기하는 사람도 많았다고 한다) Blu-ray와 DVD로도 출시되었으나 판매량이 저조했다.(대부분의 원작 팬들은 흥행부진의 원인을 너무 잔인한 묘사와 과도한 폭력성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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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8월, 코믹스 단행본 14권 발매 및 실사 영화 제작 결정, 애니메이션 속편 제작 등을 기념하여, ‘테라포마스 생(生) 원화전’이 신주쿠 역에서 개최되었다.(8. 24. ~ 30.) 극장판 애니메이션과 실사영화는 2016년 공개된다고 하며, 워너브라더스 픽쳐 재팬이 제작, 감독은 ‘할복’, ‘13인의 자객’ 등으로 유명한 미이케 타카시(三池 崇史)가 맡는다고 한다. 3DS 게임으로도 ‘붉은 행성의 전투’라는 부제를 달고 2015년 4월에 발매되었는데 아카리, 쇼키치, 미셸 등 아넥스 호의 요원들과 벅스 2호의 승무원들이 등장해서, 만화와 동일하게 각자의 특수능력을 사용하여 ‘인간형 바퀴벌레’와 싸우는 스타일의 게임이라고 한다.

2. 작품 내용
서기 2099년, 인류는 화성(火星)을 ‘테라포밍(Terraforming)’한다는 계획을 세운다. 테라포밍의 어원은 ‘Terra(지구)’와 ‘Forming’(형상화)을 합친 것으로, 우주의 행성을 지구의 형상으로 만든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한마디로 지구 외의 행성을 ‘지구화’한다는 것인데, 지구 외의 다른 천체에 생물이 살 수 있는 환경과 생태계를 구축한다는 것이다. 

인류는 첫 번째 단계로 화성에 대량의 이끼와 바퀴벌레를 풀어놓는다. 이끼는 광합성을 통해 산소를 형성시키고, 바퀴벌레는 이끼를 먹고 자라면서 특유의 강력한 번식력을 발휘할 것이다. 바퀴벌레가 새로운 환경에 적응을 마치고 개체수가 순조롭게 늘어나면, 바퀴벌레의 ‘검은색’으로 태양열을 흡수, 화성의 기온을 상승시키고 지각에 있는 이산화탄소를 용출시켜 ‘온실효과’를 일으킨다는 장대한 계획이었다.

인류가 이끼와 바퀴벌레를 화성에 보낸 지 500년 후인 2577년, 테라포밍의 경과를 확인하기 위해 ‘유인탐사선 BUGS 1호’가 화성에 도착한다. 그러나 그들은 ‘인간형 외계생명체’에게 습격을 당해 전멸한다. 그들을 습격한 외계생명체는 500년 전 인간들이 화성에 풀어놓은 바퀴벌레였고, 500년 만에 진화를 거듭해 ‘인간형’으로 변화한 그들은 압도적인 신체능력과 엄청난 수로 화성의 새로운 지배자로 군림하고 있었다. ‘BUGS 1호’의 승무원들은 전멸 직전 그들이 죽인 ‘바퀴벌레의 샘플’을 캡슐에 실어 사???, 지구로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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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GS 1호의 희생으로 얻은 샘플을 다각도로 연구한 인류는 인간형 바퀴벌레에게 대항하기 위한 ‘벅스 수술’이라는 신기술을 개발하고, 이번엔 ‘탐사’가 아닌 ‘소탕’을 목적으로 한, ‘벅스 수술’을 받은 강력한 전사(戰士)들을 싣고 ‘BUGS 2호’가 2599년, 화성에 도착하면서 <테라포마스>의 본격적인 막이 오른다.

3. 작품분석
<테라포마스>의 스토리는 크게 3개의 범주로 나뉜다. ‘0화’라고 불리는 2577년 ‘벅스 1호’의 이야기, 단행본 1권의 내용인 2599년 ‘벅스 2호’의 이야기, 단행본 2권부터 현재까지 진행되고 있는 2620년의 ‘아넥스 1호(ANNEX 1)’의 이야기다.(팬들은 0화, 1부, 2부로 부르고 있다)

0화는 작품이 연재되고 있는 <주간 영 점프>의 작품 소개 페이지에 가면 특별한 절차 없이 무료로 볼 수 있다.(한국 팬들이 만든 한국어 번역본도 인터넷으로 쉽게 찾아서 볼 수 있다. 0화는 짧은 단편이기 때문에 단행본으로 출시되지도 않았고, 기존 단행본에 수록되지도 않아서, 일본어를 모르는 분들이 0화를 보려면 이 방법밖에 없다) 32페이지 정도의 짧은 단편이라 읽기도 편하다. 0화라는 제목처럼 작품 전체의 프롤로그에 해당하는 이야기다.   

인류가 이끼와 바퀴벌레를 화성에 보낸 지 500년 후인 2577년, 테라포밍의 경과를 확인하기 위해 ‘유인탐사선 BUGS 1호’가 화성에 도착하고, 여섯 명의 승무원으로 구성된 ‘인류’와 화성에서 진화한 바퀴벌레, 통칭 ‘테라포머’와의 첫 조우를 그렸다. 켄트 홀랜드, 리사 오카와, 조지 스마일즈 등의 인물이 등장하며, 그들은 인류 최초로 ‘테라포머’와 전투를 치르지만, 인간형 바퀴벌레들의 압도적인 무력 앞에 모두 처참한 최후를 맞이한다. 벅스 1호의 승무원들 중 가장 허약한 남성이었던 조지 스마일즈가 검을 사용해 유일하게 테라포머?? 죽이지만, 결국 그 자신도 큰 부상을 입고 쓰러진다. 조지는 새까맣게 몰려든 테라포머들에게 둘러싸이자 이미 죽어 있는 리사 오카와를 꼭 껴안고(둘은 연인이었다) 안타까운 최후를 맞이한다.

‘인간을 얕보지 마라!’고 외치며 조지가 검으로 바퀴벌레의 목을 자르는 것이 0화에서 가장 임팩트 넘치는 장면이며, 조지는 자신이 죽기 전에 최후의 힘을 발휘해 ‘죽인 바퀴벌레의 머리’만을 탈출포트에 넣어 지구로 보내고, 지구의 과학자들은 이 샘플에서 얻은 생체데이터로 연구를 시작, 마침내 테라포머와 싸울 수 있는 신기술을 개발하는 데 성공한다.  

필자에게 가장 강력한 인상을 준 단행본 제 1권, 2599년 ‘벅스 2호’의 이야기는 테라포머를 제압하기 위해 인류가 개발한 신기술, 일명 ‘벅스 수술’을 받은 15명의 승무원들이 화성에 도착, 테라포머 군단과 박진감 넘치는 처절한 전투를 벌이는 내용이다.  

<테??포마스>에는 작품의 근간이 되는 몇 가지 중요한 설정이 등장하는데, 그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일명 ‘벅스 수술’로 불리는 ‘M.O 수술(Mosaic Organ Operation)’이다. 이 수술은 BUGS 1호가 보낸 화성에서 진화한 인간형 바퀴벌레의 샘플을 다각도로 연구해 만들어낸 신기술로, 화성이라는 새로운 환경에서 500년 만에 급속도로 진화한 테라포머의 능력을 인간에게 적용한 것이다. 수술의 기본 개념은 ‘특정 생명체의 능력을 인간에게 이식한다.’는 것으로, 1부에서 ‘벅스(BUGS) 수술’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것처럼 대부분 곤충의 능력을 인간에게 이식하는 것을 주로 하고 있지만, 2부에 가면 동물계 능력자도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꼭 곤충의 능력만으로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M.O 수술’의 단점은 수술의 성공률과 수술 후 생존확률이 극히 낮은 것으로, 이 수술에 적합한 유전자를 지닌 인간을 찾는 것이 사실상 제일 중요하고 까다로운 일이다. 수술??? 성공한 생존자는 ‘능력을 발현할 수 있는 신체로 변화시켜주는 주사’를 자신의 몸에 투여하는 것으로 자신의 신체 일부 또는 전부를 특정 생물로 변이시켜 그 생물의 능력을 발휘, 초인적인 힘을 얻을 수 있다. (신체의 외형도 소재가 된 특정생물처럼 변한다. 기본적으로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팔이나 다리에 마치 갑옷처럼 갑각류의 외피가 생겨나거나, 주먹에서 장수말벌의 독침이 튀어나와 무기로 쓴다거나, 나비처럼 등에 날개가 돋아나는 경우도 있다) 단, 주사를 투약한 후에는 신체가 ‘소재 동물의 외형’으로 변이하는데, 일정량만을 투약하면 다시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으나, 과도하게 투약했을 경우 다시 인간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대부분 사망하게 되는 부작용이 있다.

이 수술은 생존율이 상당히 낮기 때문에(1권에선 30% 정도로 나온다) 이 수술을 받은 지원자들에게는 거액의 돈과 사회적 지위를 보상해주며, 그래서 작중의 등장인물들 대부분은 심각한 부채가 있거나 어쩔 수 없는 안타까운 사정(가족의 수술비를 위해서라거나 연인의 안위가 걸려있는 등등 매우 다양하다)을 지닌 인물들이다. 일단 화성으로 보내지는 탐사선의 승무원들은 전부 시술에 성공해 살아남고 적응훈련(변신 및 회복)까지 완벽히 마친 사람들이다.

2599년, 화성에 도착한 ‘벅스 2호’의 15명의 승무원들은 테라포머와의 첫 조우에서 갑작스런 습격을 받아 ‘누에나방’의 능력을 시술받은 아키타 나나오를 잃고 혼란에 빠진다. 얼마 후 벅스 2호의 주위로 새까맣게 몰려드는 테라포머들을 보며 그들은 임무보다는 생존을 위해 인간형 바퀴벌레들과 싸우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선수를 치기 위해 함 밖으로 나가 첫 전투를 치른 ‘이스라엘 무장세력 출신의 용병’ 고드 리는 머리가 날아가 버리며 허무하게 사망한다. 고드 리가 시술받은 곤충의 능력은 ‘폭탄먼지벌레’의 것으로 손에서 초고열의 가스를 쏠 수 있었지만, 진화한 바퀴벌레는 화염방사기 수준의 가스를 맞고도 끄떡없는 방어력과 무시무시한 힘을 선보인다. 고드 리의 잘린 머리를 들고 함 내로 진입한 테라포머를 보고, 러시아 출신의 마리아 빌렌은 재빨리 목에 주사를 꽂아 자신의 특수능력인 ‘뮤엘러리 사슴벌레’의 방어능력을 가동했으나, 테라포머의 주먹질 한 번에 변화된 신체마저도 위아래로 절단되어 사망한다. 그 모습을 본 함장 도나텔로 K 데이브스는, 다른 승무원들에게 ‘모두 물러???’라고 말한 뒤 자신의 특수능력인 ‘총알개미’를 발동한다. 곤충 중에서도 최강이라 불리는 ‘총알개미 파라포네라’의 힘으로 함 내로 모여든 바퀴벌레 수십 마리를 혼자서 때려죽인다. 
 
자신이 미끼가 되어 테라포머들을 유인할 테니 나머지 승무원들은 생존과 귀환을 최우선으로 두고 임무를 완수하라는 데이브스 함장의 지시에 따라 코마치 쇼키치를 비롯한 벅스 2호의 승무원들은 함 밖으로 나간다. 그러나 지구에서 모종의 지시를 받은 배신자가 승무원 중에 나타나고 그로 인해 데이브스 함장의 살신성인 계획은 실패, 대부분의 승무원들이 바퀴벌레들의 손에 잔인하게 목숨을 잃는다. 

그러나 1부의 주인공이자 2부에서는 ‘아넥스 1호의 함장’으로 등장하는 코마치 쇼키치는 자신의 능력인 ‘장수말벌’의 힘을 이용해 양손에 장비된 독침??로 테라포머들을 독살시키고, 태국 출신의 무에타이 복서 틴은 ‘사막메뚜기’의 능력을 발휘, 무에타이와 메뚜기의 각력을 접목시킨 초강력 발차기로 적들을 때려잡는다. 

하지만 쇼키치와 틴, 그리고 데이브스 함장의 투혼도 끊임없이 몰려드는 테라포머들을 모두 쓰러트리긴 무리였다. 더군다나 승무원 중의 배신자인 빅토리아 우드는 자신의 특수능력인 바퀴벌레를 조종하는 벌레인 ‘에메랄드 바퀴벌레 말벌’을 가동, 독침으로 테라포머들을 자신의 의지대로 조종하며 동료들을 공격하도록 지시하고, 그 자신도 테라포머의 모습으로 변장하여 데이브스 함장에게 치명타를 입히고 확인사살까지 한다. 배신자인 우드 외에 함 내에 남아 살아남은 유일한 승무원은 히루마 이치로라는 일본인 남자였다. 그의 특수능력은 유충 시기에 극한 상황(200도의 고열에도, 영하 270도의 추위에도, 108시간 동안의 에탄올처리에도, 7000그레이의 방사선에도, 심지어 진공상태에 놓여도)에 처해도 죽지 않는 ‘불사의 곤충’인 ‘아프리카 깔따구’였으며, 가사상태에 있다가도 물만 있으면 다시 부활한다.(다만 전투??은 낮다) 

빅토리아 우드와 히루마 이치로는, 사실 ‘벅스 수술???을 진행했던 혼다 박사의 지시에 따라 ‘테라포머의 알’을 가져오라는 비밀 임무를 별도로 수행하고 있었다. 그들은 혼다 박사가 내린 지령에 따라, 다른 동료들이 테라포머에게 죽음을 당하는 동안 테라포머의 알 샘플을 회수한 다음, 사망한 걸로 위장해 벅스 2호를 타고 자신들만 지구로 달아나려는 결정적인 배신행위를 벌였지만, 알이 갑자기 부화하면서 우드의 독침이 듣지 않는 신종 테라포머가 등장, 우드를 죽이고 날개가 달린 다른 테라포머들이 하늘에서 함선을 습격, 결국 벅스 2호가 지상으로 추락하며 그들의 배신행위와 별도의 임무는 실패한다.

이제 살아남은 벅스 2호의 승무원은 단 세 명, 쇼키치와 틴, 그리고 히루마 이치로였다. 그들은 쇼키치의 분노의 투혼과 틴의 ‘연속 주사로 인한 능력 증강’으로 인해 테라포머들의 습격을 물리치고 겨우 살아남지만, 탈출포드는 단 2명만이 탈 수 있었다. 그러나 틴은 ‘과다한 약물 투???’으로 인해 면역 부작용을 일으켜 신체가 인간도 아닌 메뚜기도 아닌 괴이한 모습으로 변해가며 죽어갔고, 결국 쇼키치와 히루마만이 지구로 돌아올 수 있었다. 

단행본 2권부터는, 1권의 결말로부터 21년 후인 2620년을 배경으로 새롭게 발동한 아넥스 계획과 그에 따라 화성으로 출발한 아넥스 1호의 이야기가 펼쳐진다.(많은 팬들은 사실 단순히 2부가 아니라, 2권부터가 <테라포마스>의 본편에 해당한다고 보고 있다)

2권부터의 스토리는, A.E 바이러스(Alien Engine Virus;외계 엔진 바이러스)를 치료할 백신을 개발하기 위한 목적으로 발족된 화성 유인탐사 계획인 ‘아넥스(ANNEX) 계획’을 실행하는 U-NASA의 모습으로부터 출발한다. 워싱턴 DC에 주재하는 UN 우주국인 U-NASA는 M.O 수술 기술을 독점하고 있으며 6대 강대국들(일본과 미국연합, 러시아 연방, 중국, 독일, 로마 연방)로 구성된 ‘아넥스 계획’의 주체다. 그들은 아주 오래 전, 벅스 1호에서 보내진 ‘테라포머의 머리 샘플’을 모체로 삼아 관련 기술들을 극비리에 연구, 발전시켜왔으며, 2619년엔 클로닝 기술로 테라포머를 복원해내는 데 성공, 아넥스 1호 승무원들의 전투 훈련과 연구 실험에 사용할 정도로 자본과 기술???이 집대성된 기관이다.  

A.E 바이러스(Alien Engine Virus;외계 엔진 바이러스)란, 2619년 화성에서 지구로 전파되어 치사율 100를 자랑하는 신종 DNA 바이러스다. 사망한 시신에서 바이러스를 배양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치료연구에 마땅한 샘플이 없어 결국 샘플을 얻기 위해 아넥스 계획이 입안되었다. 이 바이러스의 백신을 개발하기 위해선 ‘면역체계를 갖추고 있을 테라포머’들이 최우선적으로 고려되는 채집 대상이며, 죽은 자로부터 샘플을 얻을 수 없는 건 인간뿐만 아니라 테라포머도 예외가 아니기 때문에, ‘가능한 한 산 채로 포획하라’는 것이 상층부의 지시사항이자 권장사항이지만, 사실 이것이 극히 어렵다는 것을 상층부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아넥스 계획’은 결국 상상초월의 거대한 규모로 꾸려지게 된다.

아넥스 계획은 총 100명의 ‘M.O 수술 시술자’들을 승무원으로 태운 아넥스 1호가 2620년에 출항함으로써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M.A.R.S 랭킹’이라는 화성 환경에서의 바퀴벌레 제압 능??치 순위(Martian Atmosphere and Roach Suitability Ranking)를 바탕으로 전투원과 연구원으로 구성된 아넥스 1호에 탄 100명의 승무원들은, 바퀴벌레와의 전투와 포획 양쪽 모두를 고려한 랭킹에의 의해 수술의 모티브가 된 생물과 수술 대상자의 기본 신체능력을 바탕으로 각자 등급이 매겨져 있다. (최상위권인 6대 조장들 같은 경우는 엄청난 전투력을 자랑하는 변형 바퀴벌레들과도 싸워도 이길 수 있는 뛰어난 전투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특히 1위의 조셉은 자신의 무기인 검만으로 바퀴벌레들의 시체로 산을 쌓을 정도의 무시무시한 전투력을 자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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벅스 2호 이야기에서 보여주었던 <테라포마스> 특유의 전투장면과 스피디한 내러티브는 아넥스 1호의 이야기에서, 한 단계 더 진화한다. 단순히 바퀴벌레와 인간의 싸움만이 아닌, ‘아넥스 계획’을 둘러싼 강대국들의 외교전쟁과 치밀한 첩보전을 바탕으로 깔았고, 화성을 무대로 펼쳐지는 ‘매우 잔인하고 박진감 넘치는 전투장면’, ‘주인공 급’에 해당하는 메인 캐릭터들이 예상치 못하게 죽어나가는 ‘극한의 전개’ 역시 여전하다. 

아넥스 1호의 스토리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테라포머들이 신체적인 진화뿐만 아니라 상당한 수준의 학습능력을 가지게 되었단 설정이다. 지휘자 급의 바퀴벌레가 다른 개체들을 지휘하는 조직화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인간 수준의 상당한 지능을 가지고 자신들이 죽인 승무원들의 특수능력을 빼내어 시술을 통해 유전적으로 변화된 특이개체들을 만들기까지 한다. (아넥스 1호는 화성 대기권 근처에서 이런 변종 바퀴벌레들의 습격을 받아 추락하며, 1권에 등장했던, 화성에 남겨놓고 온 벅스 2호의 승무원들 시체에서 그들의 특수능력을 빼낸 변종 바퀴벌레들이 등장하기도 한다)

등장하는 캐릭터의 수가 방대해진 만큼, 그에 따른 드라마틱한 사연도 엄청나게 늘어났다. 가끔씩 눈물이 날 정도의 기구한 사연을 지닌 각국의 캐릭터들도 종종 등장하며, 벅스 2호에 탑승했던 승무원의 자식(데이비스 함장의 딸인 미셸 K 데이비스)도 등장하거나 마스 랭킹은 97위에 불과한 비전투원이었지만, 하늘을 가득 메운 바퀴벌레들을 몰살시킬 정도의 세균병기 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 중국 소녀 ‘홍’ 같은 매우 독특한 캐릭터도 등장한다. 
<테라포마스>의 스토리 전개 방식은, 우리가 그간 흔히 접해왔던 ‘능력자 배틀 만화’의 정석을 그대로 따르되, 예기치 못한 전개(갑작스런 죽음이나 깜짝 놀랄 만한 복선)로 독자들의‘혼’을 빼놓는다. ‘바퀴벌레 등장 - 인간과 전투 ? 특수능력을 지닌 변종 바퀴벌레 등장 - 인간 위기- 주인공 급 캐릭터가 ‘비장의 능력’을 발휘 -결국 인간이 승리’한다는 전투패턴의 반복성을 지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 작품이 가진 재미와 감동을 해칠 정도의 지루한 패턴은 절대 아니다.

이 작품의 특이한 점을 또 하나 꼽자면, 마치 생물 교과서나 과학 사전처럼 캐릭터의 능력 소개 및 모티브가 된 곤충의 소개를 상당한 분량을 들여 친절하게 설명해준다는 점이다. 아넥스 1호쯤 가면 M.O 수술을 받은 승무원들이 무려 100명에 달하기 때문에 이들이 가진 다양한 초능력들을 이해시키기 위해 엄청나게 많은 양의 생물 지식 및 다양한 과학지식 해설이 등장한다(작가와 편집부의 부단한 노고가 느껴질 정도다).

-末-
다른 장르의 문화산업과 경제적으로 비교했을 때, 만화의 장점은 ‘가장 적은 비용과 소수의 노동력을 투입하여 최대의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영화나 게임 같은 분야처럼 긴 시간동안 막대한 자본과 다수의 노동력을 투입하지 않아도 비용대비 좋은 경제적 효과를 짧은 시간에 누릴 수 있으며, 거기에 멈추지 않고 다른 문화산업장르들의 원작 콘텐츠로서까지 그 위상을 점하고 있는, 뛰어난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만화의 이러한 장점들은 사실 그 근본을 ‘인간의 상상력’에 두고 있다. 그리고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어느 순간 떠오른 ‘인??의 기발한 상상력’을 글과 그림으로 종이 위에 바로 구체화시킬 수 있다는 만화만의 경쟁력인 것이다. 

<테라포마스>를 보면서 필자가 놀랐던 점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감탄했던 것은 ‘화성을 무대로, 인간 형태로 진화한 바퀴벌레와 수술로 벌레의 능력을 지니게 된 인류가 처절한 전투를 벌인다’는, 이 작품의 모티브가 된 ‘아이디어’였다.  

물론 화성의 테라포밍에 관한 이야기는 오래 전부터 여러 매체에서 다양한 형태로 등장해 왔고, 이걸 소재로 만든 영화나 게임, 만화나 소설도 무척 많지만 이런 방향의 아이디어로 구체화시킨 콘텐츠는 <테라포마스>가 처음이었다. ‘진화한 바퀴벌레와 싸우는 인류 화성개척단’이라니, 이 얼마나 신선하고 독특한 상상력이란 말인가.

<테라포마스>는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만화라는 장르가 앞으로도 계속 ‘인류에게 유효한 콘텐츠로 남??? 것’이라는 확신을 주는 아주 잘 만든 작품이다. 인류가 지구에서 멸종하지 않는 한 만화도 계속 그려질 것이다. <테라포마스>가 보여준 것처럼, 인간의 상상력은 무한하니까 말이다. 정말 재미있다.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