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 인간의 탐욕으로 만들어진 생명체의 반격
2020년 유독 공휴일 수가 적은 한 해지만 추석 연휴만큼은 우리를 저버리지 않았지만, 코로나로 인해서 작년의 즐거운 명절이 될 수는 없었다. 주말 포함한 5일간의 연휴, 보통 같으면 부모님이 계신 고향으로 차편 예약을 일찍이 해서 내려갈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이것도 역시 작년의 상황이고, 올해 추석만큼은 귀향을 자제해달라는 정부의 입장이 연일 뉴스로 보도되고 있던 터라 홀로 서울에서 길고 긴 나날을 보냈다. 이 시기에 가장 든든한 친구가 있다면 바로 웹툰이었다.
마침 오랜만에 시간이 넘쳐흐르고 추석 연휴를 대비해서 집에 먹을 것을 축척해두니 홈 카페가 아닌 홈 웹툰방으로 만들어 버렸었다. 가끔 배달 음식까지 더해지니 더할 나위 없이 어릴 적 꿈이었던 만화방 주인이 된 것만 같았다. 최애 작품으로 3번 이상 읽었던 웹툰은 이제는 유료화가 되어 있어 유료 결제를 해서 완독으로 준비운동을 맞췄다. 필연인지 모르겠으나 때마침 추석 연휴에 연재의 끝을 마무리한 모아이 작가의 네이버 토요 웹툰 <거미>를 소개하고자 한다.
△ <그림 1> 강렬한 인상을 준 모아이 작가의 [거미]
웹툰 <거미>의 썸네일은 공포에 질린 얼굴 표정과 채도가 낮은 농색 계열로 그려져 있다. 섬네일은 일종의 책 표지와 같은 기능을 가지고 있어 작품의 장르나 분위기를 유추할 수 있는데 이 작품의 첫 인상은 공포 스릴러가 아닐까 싶었다.
웹툰의 타이틀인 <거미>만 봤을 때, 진화된 곤충과 인간과의 전쟁을 다룬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장편소설 [개미]나 정지훈의 웹툰 [모기전쟁]과 같은 SF 스릴러 작품이라 생각했지만 실제 이 작품은 생각 외로 현실에 있을 법한 사건사고가 집합된 작품이다.
참산도라는 시골 섬마을 배경으로 5년 전 친부가 실종된 후 마을을 떠나지 않고 기다리고 있는 21살 원재는 어느 날 소꿉친구인 희민이 사냥 동영상 촬영을 하기 위해 엽사꾼이자 원재의 보호자 역인 국원 삼촌과 함께 숲에 들어간다. 사냥할 짐승인 줄 알았으나 마치 지브리 스튜디오 장편 애니메이션 [원령공주]에 나오는 저주 받은 멧돼지 마냥 광기에 어린 기이한 형상을 한 노루가 이들에게 돌진하게 되어 위급한 상황이 되지만, 전문 엽사꾼인 원재 삼촌과 사냥개 덕분에 무사히 벗어난다. 하지만 국원 삼촌은 원재와 희민을 남기고 미친 사람 마냥 뛰쳐나가고 원재는 삼촌의 행방을 찾기 위해 마을에 수소문하게 된다. 원재는 마을 이장인 이송에게 삼촌의 이상 행동을 털어놓자, 생각지 못한 애기를 듣게 된다. 원재의 친부인 성찬이 뒷돈을 받고 구제역에 걸린 돼지 매장 장소를 제공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로 인해 충격을 받은 국원 삼촌이 스트레스를 받아서 헛것을 보게 되었다고 한다.
아버지의 실종과 불법 행위, 국원 삼촌의 강박증세로 인한 이상 행동, 마을의 비밀을 다 알고 있는 것 같은 이장 그리고 마을을 덮쳐오는 벌레들의 등장까지, 이 작품은 초반부터 사건의 주요 단서들을 풀어 놓는다. 사건의 인과관계가 전개되어 독자는 ‘진짜 진실’은 무엇인지 추리를 하게 만든다. 이장은 분석적이고 주도면밀한 캐릭터로 등장하며 원재 아버지의 실종 사고를 무마시키기 위해 관련 인물들에게 트랩을 놓는 사냥꾼의 역할로 등장한다. 모든 비밀을 알고 있는 이장은 원재 아버지의 실종을 우연한 사고를 사건으로 만들어 가고, 이어 만난 원재 삼촌을 피해자로 조작한다. 최고의 악인은 분명 이장이다. 하지만 아끼는 친구의 딸인 원재를 들먹이자 설득당한 원재 삼촌 그리고 이 사건의 진상을 목격한 마을 주민인 돼지영감과 덕수까지 이들 모두 악인의 공범이 되어버린다. 마치 폐쇄된 시골마을에서 마을 주민들 간의 위험한 공생 관계를 다룬 윤태호 작가의 [이끼] 속 이장처럼 말이다.
또 다른 중심 사건인 마을과 사람을 습격하는 벌레 떼도 또한 원재 아버지의 실종 사건처럼 이야기가 다층적으로 전개된다. 벌레떼가 일어난 원인이 처음에는 구제역에 걸린 돼지 매장지였다가 실제로는 제약회사의 동물실험으로 죽은 돼지 매장지로 밝혀진다. 구제역 돼지 매장은 실제 현실에서도 일어나는데, 그로 인한 이상 현상은 현재까지 밝혀진 바 없기에, SF적인 요소인 제약회사의 동물에 기생한 벌레를 등장시켜 있을 법한 이야기로 만들어 냈다. 이야기 소재의 독창성보다는 스토리의 스파크라 할 수 있는 ‘반전’을 병렬구조로 배치하여 보다 입체적인 스토리텔링을 보여준다.
웹툰 <거미>의 작화는 다양한 시점에서 그려냈다. 마치 RPG 게임처럼 마을의 배경인 참산도의 지도 컷에는 원재, 희민 그리고 이장집 집 위치가 있고 사건이 시작되는 산 중턱과 원재 아버지가 묻혀 있던 컨테이너의 위치가 표시되어 있다. 독자에게 사전에 주요 지역을 안내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벌레 떼에 먹혀 날뛰는 동물들에게 습격당하는 장면이나, 마을 사람에게 대피 명령을 내리기 위해 방송이 가능한 이장댁으로 다시 돌아가는 장면들이 나오는데 마을 전체가 무대인만큼 지도 컷을 두고 보면 공간 이동을 보다 쉽게 파악하기 쉽다. 공포를 표현하는 장면은 확장된 동공과 식은땀과 몸 떨림 펜선으로 표현하고 숨막히는 공간의 흐름을 거칠어진 숨소리 의성어 텍스트를 거친 이미지로 구현하여 패턴화 하였다. 특히 마을 전체가 포위되어 CCTV 또는 벌레 떼에게 감시당하고 있는 느낌을 자아내는 컷이 있는데, 마치 어안 렌즈로 본 것 마냥 왜곡되게 포현하였다. 벌레 떼의 습격을 보여주는 장면도 다양한 방법으로 연출되었다. 날아다니는 새가 벌레 떼로 인해서 공중에서 추락하거나, 집 안에 들어선 희민이 머리 뒤로 집 천장에 가득한 벌레 떼가 드러나는 장면 등이 등장한다.
△ <그림 2> 풍부한 연출 장면
이 작품에서는 실험적인 장면 컷 구성도 볼 수 있다. 누구든 이 장면에서는 화면을 가로세로로 돌려보면서 보게 만든다. 국원 삼촌이 벌레들을 따돌리기 위해 손전등을 던졌고, 그 손전등을 따라 벌레들이 모여드는 모습이 마침 밤 구름 사이로 비춘 밝은 달빛에 의해 확연하게 보이는 장면이다. 기본 세로 스크롤 시선으로 직사각형 컷 개념으로 전개되나 가로형의 넓은 이미지 영화로 보면 시네마스코프와 같은 표현을 연출하기 위해, 가로형 이미지를 90도 회전시켜 세로 스크롤 영역 안에 두었다. 독자의 능동적 선택에 따라 화면을 눕혀 가로형 화면인 채로도 볼 수도 있고 그대로 세로 스크롤을 내리면서 확장된 공간을 속도감 있게 즐길 수 있게 하였다.
작품 속 거미는 실체화된 인간의 죄이자, 죄 있는 자들을 징벌하는 집행자를 상징한다. 습격하는 벌레 떼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지만, 원재 아버지 죽음에 연루된 이장과 국원 삼촌 그리고 사건을 묵인한 돼지영감과 덕구는 거미 떼에 의해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거미 떼는 그들이 행한 업보임과 동시에 인과응보의 섭리를 보여주고 있다. 원재는 아버지를 죽음에 이르게 한 이장을 거미 떼에게 던진 뒤, 가장 행복했던 기억의 장소인 집으로 돌아온다. 아버지와 이장이 쓴 불법 동물 매장 계약서(이 비극의 시발점)에 불쏘시개로 삼아 집과 원재 그리고 불에 이끌린 거미 떼는 모두 타버리게 된다. 아버지의 복수를 행함과 동시에 원재도 또한 거미 떼의 벌을 받아야 하는 죄인이 되지만, 작품 속 죄인들과는 달리 스스로 재물이 되어 마을 섬에서 일어난 모든 비극의 끝을 낸다.
웹툰 <거미>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로 영상 제작 중인 김칸비와 황영찬 작가의 웹툰 [스위트 홈]이나 최규석 작가와 연상호 감독의 웹툰 [지옥]과 비교해 볼 때도 결코 뒤지지 않은 탄탄한 스토리와 인간의 이기심과 탐욕을 경고하는 확고한 메시지와 철학을 담고 있다. 이 작품의 다양한 화면 연출과 표현 기법이 애니메이션이나 영화로 영화화 되길 개인적으로 응원하며 본 리뷰를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