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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하여 나를 <당신의 과녁>으로 삼으십니까!

2021-01-04 김민태



 
어찌하여 나를 <당신의 과녁>으로 삼으십니까!

‘까방권’이라는 말이 있다. 까임을 방지하는 권리의 준말로 까방권은 대중이 부여하고 대중은 까방권 소지자에게 비난의 수위를 낮추거나 정도를 조절한다. 대표사례로 군 복무를 성실하게 했거나, 국위를 선양한 자, 독립운동가 후손 등이 해당한다. 까방권은 대중들이 그 사람이 겪었을 인고의 생활에 대한 보상 또는 혜택의 개념으로 집단지성의 판단에 의해 생성된다. 즉 어떤 임의의 기준점에 의해 발생하는 것이고 우리가 모두 동의하는 수준에서 결정된다.

 

‘까방권’은 인터넷 문화 이전에 일반 사회규범에도 유사한 사례가 존재했다. 훈장이나 표창을 받으면 행정처분을 감경한다는 규정도 있고, 징계 요구를 받은 공무원이 훈·포장이나 표창 등을 받으면 징계 수위를 낮출 수 있다는 공무원 징계령 시행규칙도 존재한다.

 

웹툰에서 까방권을 획득한 캐릭터가 있다. 네이버웹툰 <당신의 과녁/고태호>의 주인공 ‘최엽’이다. 최엽에게 독자들은 007의 제임스 본드가 가지고 있다는 ‘살인 면허’까지 내어줄 기세다. 엽이에게 무슨 일이 있었을까? 22살 착한 청년 최엽은 행복하다. 사랑이 넘치는 화목한 가정과 천사 같은 애인 그리고 세 명의 든든한 친구가 있기 때문이다. 어느 날 최엽은 술에 취해 귀가하던 중 고된 일을 하는 노인을 돕게 되고 노인이 건네 음료수를 마신 후 정신을 잃는다. 노인은 연쇄 살인범이었고 자신의 참혹한 범죄를 계획적으로 최엽에게 덮어씌운 후 경찰에 고발한다. 최엽은 영문도 모른 체 조사를 받고 사형선고를 받아 수용된다. 그 사이 연쇄 살인범 노인은 여생을 편,안,히 즐기다가 노환으로 생을 마감한다.



 

억울하고 기약 없는 수감생활 중 최엽에게 기회가 찾아온다. 연쇄 살인범 노인의 딸 부부가 노인의 수첩에서 아버지가 연쇄 살인범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제라도 최엽에게 죄가 없고 아버지가 살인범이라고 밝히면 된다. 하지만 노인의 부인, 자신들의 안위, 자녀의 보호 목적으로 10년 후에 사실을 밝히기로 하고 함구해 버린다.

 

그렇게 10년이 다시 흘러 17년 횟수로 19년을 복역한 뒤 최엽은 노인의 딸 부부 덕분? 에 무죄를 인정받아 풀려나고 그때 나이 39세이다. 활기찼던 아버지는 고사 직전의 나무가 되었고, 어머니는 아들의 무죄를 주장하다 뇌졸중으로 식물인간이 된 후였다. 그사이 애인은 다른 남자의 부인이 되었고, 세 친구와는 인연이 끊겼다. 17년 전 자신이 하지 않은 일이 원인이 되어 그에게 행복을 주고 세상을 아름답게 바라보게 했던 모든 것이 사라졌다.



<당신의 과녁>이 만화 속 일로 치부되지 않는 것은 “20억을 준다면 당신은 감옥에서 20년을 살 수 있겠습니까?”를 말한 화성 연쇄살인의‘가짜 범인’윤성여 씨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이 밖에도 같은 하늘 아래 죄 없는 사람이 갇혀있다 풀려난 사례는 셀 수 없이 많다. 그래서 제2의 윤성여, 제3의 최엽이 없으리라 부정할 수 없고 현재의 사회 시스템 속에서 제발 되지 않을 것임을 확신할 수 없다.

 

우리는 최엽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도 없고, 최엽의 고통을 헤아릴 수도 없다. 지나간 세월과 마음, 그리고 고통에 무엇 하나 보상할 수 있는 길이 없다. 최엽 뿐 아니라 수감생활 중 가족들이 겪은 사건과 사고, 피해에도 무기력하다. 시간이 약이라고 하지만 그건 주변인들이 서로 마음 편해지자고 하는 말은 아니었을까? 오히려 당사자는 시간이 독이 된 상황이 무수히 많다. 더불어 독자들은 최엽의 오늘에 대한 부채 의식을 세 친구를 통해서 느끼게 된다. 첫째 어쩌면 죄인이었을지 모른다는 ‘불신(不信)’을 가졌던 점, 둘째 착한 사람에게 찾아온 이유 없는 ‘불행(不幸)’을 설명할 수 없는 점, 마지막으로 끝까지 함께 해 힘이 돼주지 못하고 자신이 힘들어지면 빠졌던 ‘불참(不參)’이다. 아무 잘못 없는 20대 청년의 청춘을 감옥에서 썩게 한 죄책감이 독자를 짓누른다.



만화란 무릇 주인공의 여정에 함께 참여하는 과정의 즐거움이다. 그런데 최엽의 행보에 즐거움을 담을 수 없다. 최엽이 지난 과거를 모두 잊고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최엽에게 남겨진 현실은 너무도 참혹해 잊을 수 없는 파탄적 상황임을 작품을 읽는 동안 절절하게 느끼게 된다. 그래서 잊어야 한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 <당신의 과녁>이 가진 문제의식이다. 최엽은 감옥에서 복수를 꿈꾸고 계획했다. 복수의 방법이 옳고 그름을 떠나, 복수를 해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의 논쟁은 당사자 앞에 서면 숙연해질 뿐이다. 최엽은 말한다. “너희도 괴로웠다 한들 길고 긴 일상에서의 찰나의 순간이었겠지, 100% 공감과 이해는 없어 괴로움은 오롯이 나의 몫인데 썩어 문드러져 가는 속은 그 누구도 이해 못 해 공감하는 시늉만 할 뿐이지 그러니 내게 정담함이니 사회니 운운한 거겠지 이제 내가 심판을 내리는 쪽이 될 거다.” 여기에 대고 독자들은 댓글에 ‘복수는 복수를 낳고, 너도 너의 인생을 살아야 하고, 앞으로 좋은 일 많을 거야’라고 남기지만 엽이가 17년간 감옥에서 보낸 짐작 할 수 없는 고통을 한회 한회 풀어낼 때마다 매회 무너지고 만다.

 

스토리텔링의 법칙에서 매력적인 악당의 등장과 활약은 극적인 재미를 주는 요인이다. <당신의 과녁>은 최엽이 17년 만에 출옥 후 자신에게 누명을 씌운 악당에게 통쾌한 복수를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서두에 말했듯이 그 연쇄 살인범은 천수를 누리고 죽었다. 작품 안에는 악당도 없고 복수의 대상자도 남아있지 않다. 죄 없는 최엽은 모든 것을 잃었지만 죄 많은 연쇄 살인범이 죗값을 받지 않고 모든 것을 풍족히 누린 후 죽은 사실 역시 우리 사회와 너무 일치해 할 말을 잃게 한다. 즉 이야기 속에서 악당을 거세해 버림으로써 최엽과 독자 모두 ‘방황하는 칼날’이 되고 말았다.

 

현대 법치주의 사회에서‘사적인 복수’는 허용되지 않는다. 최엽의 복수 방법은 작품 속에서 아직 구체화 되지 않았기에 기술을 미루겠으나 엽이의 고통을 해결 할 수 있는 수단이 이거 하나밖에 남지 않았음은 알 수 있다. <몽테크리스토 백작>의 에드몽 당테스는 14년을 감옥에서 보냈고, <올드보이>의 오대수는 15년 동안 감금됐다. 그들은 저마다 이유가 있었지만, 청소년티를 막 벗고 청년이 된 풋풋한 최엽을 17년이 지나 괴인이 돼서 돌아오게 만든 책임 앞에 누구도 자유롭지 못하다.

 

“세상은 결코 우리에게 사과하지 않아”“우리가 어떤 모진 풍파에 억울하게 상처 입고 다쳐도 결단코 하지 않아”“오히려 우리가 살기 위해선 사과를 받지도 못함에도 역으로 세상을 용서해야 할 테지” 엽이 아버지가 그동안 세상에 대해 깨달은 철학이다. 최엽은 아직 세상을 용서하기에 이르다고 항변하며 사적 제제를 실행에 옮기고 있는 복수의 화신이다. 앞으로 전개될 이야기는 아직 풀지 않은 문제집처럼 얽히고 얽혀있을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니체의 말“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싸움 중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네가 심연을 오랫동안 들여다본다면, 그 심연 또한 너를 들여다볼 것이기 때문이다.”처럼 자신 앞에 놓인 문제집을 오래 들여다볼수록 끝이 무엇일지 알 수 없게 될 것이다. <몽테크리스토 백작>은 인간의 지혜는‘기다려라, 그리고 희망을 가져라’라에 담겨있다고 했다. 수험생 같은 초조한 마음으로 최엽의 행보를 지켜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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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태

만화평론가 및 기획자, 씨엔씨레볼루션 이사
前 한국영상대학교 만화웹툰콘텐츠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