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부장제에서 비롯된 남성 지배 이데올로기에 대한 고발, AJS 작 <27-10>
“용기란 자신이 두려워하는 것을 하는 것이다. 즉, 두려움이 없으면 용기도 없다.”
- 에디 리켄배커
페미니스트는 한 순간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젠더 불평등에 대한 문제인식과 그것을 개선해 나가기 위한 운동(movement)의 참여로 외부 환경에 대항해야 할 힘을 서서히 길러내며 자라나는 것이다. AJS 작가의 <27-10>은 네이버 웹툰에서 2019년 3월부터 10월까지 연재된 작품이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가정 내 성폭력을 당해온 주인공이 겪은 심리적 극복의 기록으로 비로소 어떻게 주인공이 자기 정체성을 확립하고 극복했는지에 대한 내용을 담고있다.
부녀 간, 남매 지간의 근친상간과 남매혼은 그리스 로마 신화를 비롯하여 현대 문학작품에서도 종종 등장하는 작중 인물설정 유형의 하나이나, 이 작품은 서사를 위한 설정이라기 보다는 이를 통해 비롯된 피해자의 심리적 위축과 당시의 불안과 공포를 최대한 객관적으로 희석하여 연출하고자 노력한 점이 돋보인다.
주인공이 겪어야 했던 성폭력은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는 신체의 자기 결정권을 박탈한 인격의 심리적ㆍ물리적 폭력이었다. 주인공의 시점에서 심리치료를 통해 드러나는 그녀의 성장 과정과 에피소드를 통해 독자는 간접적인 경험을 하게 된다.
가정 내 성폭력은 도움을 청할 곳이 없는 외로운 자리로 빠뜨리는 고립화가 수반된다. 그저 방 안에서 숨죽여 밤새 방문이 열리지 않기를 바라는 주인공의 심정을 위로할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가장 안전해야할, 그리고 안정되어야할 가족이라는 사회적 울타리 속에서 그 관계가 가해자와 피해자로 재규정되어 겪는 괴로운 순간들을 작품을 통해 엿볼 수 있다.
불가항력의 성폭력
가부장제 남성의 성폭력은 가정이라는 곳에서 가장이 가진 사회적 권력에 의해 증폭된다. 남성 중심적 권력체계 하에서 성적으로 대상화된 자녀는 여성이 남성에게 종속된다는 그릇된 남성 지배 이데올로기에서 비롯되었다. 가장이 자기동일화와 위계논리에 의해 인격체인 자녀를 대상화 시키고 소유물로 귀속시킨 결과이다.
독자는 주인공 가족들의 침묵과 방관을 목격하게 된다. 한 개인이 살면서 겪게 되는 개인적인 성적피해 경험 중 친족, 또는 혈육에 의한 성폭력의 피해는 복잡한 혈연의 이해관계와 사회적 시선으로 인해 함구되는 사례가 많다. 때문에 소리 내지 못한 피해자의 경험은 한 개인이 오롯이 이겨내야 할 평생의 고난이자 외로운 심적 고립상태에 빠뜨리는 요인이 된다. 작품 속 주인공도 10살부터 시작된 부친의 성폭력이 그녀가 평범하게 학교를 다니는 청소년기까지 계속되었다. 그녀가 가까운 친구에게조차 어렵게 사실을 털어놓을 수 있었던 것은 피해를 받은 지 꼬박 10년의 세월이 지난 후였다.
페미니즘 관점에서의 캐릭터 분석
<27-10>은 가족이라는 사회구조와 여러 조건 속에서 속박되고 억압된 삶을 살아왔던 주인공이 이를 인식하고 환경과 조건을 변화시킴으로써 자신의 입장과 지위에 변화를 불러일으키는 캐릭터로 묘사되어 있다. 회복되고 있는 삶의 간증은 건강한 미래지향적인 삶으로의 확장을 의미한다.
작품은 가부장적 사회구조인 가정의 구조와 그 속에 감추어져 왔던 부녀 간의 성폭력을 폭로함으로써 이를 여성과 사회라는 개념으로 확장시켰다. 독자는 작품 속 여성캐릭터에게 어떤 도덕적 잣대와 기준을 들이대고 있는가를 스스로 반문할 필요가 있다. 개인적 고통을 숨기고 상처를 감추며 아픔을 삭인다는 것이 순종적인 여성의 미덕으로 여긴 것은 아닌지 재확인해봐야 한다.
독자는 피해자가 겪는 죄의식에 대해 환기할 필요가 있다. 가부장제의 피해를 고스란히 감내해야 했던 주인공에게 미성숙한 시기에 접한 성폭력은 성적 자기결정권의 강제적 침해로 남성을 불신의 존재로 만들었다. 한때 남자친구를 만나기도 해봤지만, 이성과의 적절한 교감과 정서적 유대를 갖기가 어려웠던 자신이 무성애자라는 성적 정체성을 인지하고 나서 자의식이 생성되었다.
AJS 작가의 작화 스타일 변화도 눈에 띈다. 작가의 전작이나 최근작과 비교하면, 절제된 선묘와 연출로 직접적인 성폭력은 생략되거나 은유적으로 묘사되었다. 불현 듯 찾아오는 우울감은 깊은 수심으로 빠져드는 주인공으로 표현되었으며, 물로 표현된 심리적 기저는 무기력한 존재인 인간이 디딜 수 없는 불안정한 상태를 상징한다. 비가 오거나 방 안의 공간이 물로 가득 채워져 작은 나룻배에 몸을 싣고 거친 풍랑에서 우울감이라는 물성과 사투를 벌이는 비현실적인 모습이 주인공의 감정을 드러내기 위한 비유적인 표현으로 등장한다.
아버지라는 남성 캐릭터 표현도 다른 캐릭터에 비해 외형적 특이점이 있다. 눈‧코‧입을 그리지 않은 아버지의 모습은 몰개성화된 실루엣으로 처리된다. 그는 주인공에게 인격체라기보다 괴물과 같은 존재로 덩치가 크고 근육질인 남성상(男性象) 만 남아있을 뿐이다.
치유의 과정
여성이 일반적으로 경험하는 성차별과 구분되는 성폭력과 강간 등 성적 학대는 물리적 힘에 의한 폭력으로 피해자에게 죄의식과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SD)를 남기는 경우가 많다. 그러한 사건들로 인해 겪어야 했던 이후의 감정들과 상처들은 가부장제 사회에서 발생하는 젠더 전쟁에서 철저하게 유린당한 피해자의 상처라고 말할 수 있다.
무력감에서 빠져나오기 전에는 자기 긍정에 도달하기가 어려웠을 텐데 다행히 주인공은 강한 긍정으로 상황을 이겨내고 힘찬 독립을 실현하였다. 인간의 존엄성과 주체성의 실현을 위하여 피해 받은 여성의 삶 전반을 작품을 통해 제시하고 인간성 회복의 차원에서 서사구조를 완성시켜 나아갔다.
작품을 통한 가족 내 성폭력에 대한 사회적 고발은 많은 독자가 이 작품을 읽고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게 만들었다. 주인공에게 감정을 이입하고 고통의 경험을 공유하며 공감적인 이해를 높였다. 많은 이들이 공감하며 용기를 얻었고, AJS 작가 또한 이 작품 이후로 여성연대의 입장에서 목소리를 높이는 활동들을 이어나가고 있다. 그녀의 트위터 계정에 따르면, 꾸준히 성폭력 피해 토론 행사에 참석하고 성폭력 피해자의 입장을 대변하는 오피니언으로 활동하고 있다.
“내가 만약 더 멀리 볼 수 있었다면, 그건 내가 거인들의 어깨위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 아이작 뉴턴 (1676)
AJS의 작품 <27-10>은 앞으로 진행될 여성서사와 담론에 거인의 어깨가 되어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우리가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젠더 감수성의 회복과 양성평등 의식의 함양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