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현실적 교육과 현실적인 만화 <방과 후 전쟁활동>
공교롭게도 7년 전 오늘 이 만화의 연재가 끝났다고 한다. 7년 전 완결된 만화에 대한 기억을 새삼스레 이제 다시 불러오는 이유는 하나뿐이다. 우리 교육 현장이 그때에 비해 전혀 나아진 바가 없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이 만화는 너무 비현실적이라고. 느닷없이 나타난 외계 생명체에 대항해서 고등학생들이 예비군처럼 동원된다. 남녀를 막론하고 대학 입학에 가산점을 준다는 사실 때문에 대부분의 학생들은 사격 연습을 비롯한 각종 군사훈련을 받고 참전한다. 외계 생명체와의 전쟁 도중 부상을 당하거나 목숨을 잃는 학생들이 생기는가 하면 어떤 학생들은 자살을 하거나 친구를 살해하기도 한다. 결국 외계 생명체와의 전쟁은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되고 학생들은 다시 학교 현장으로 복귀한다. 이런 일련의 과정이나 세밀한 묘사에서 너무나 비현실적인 부분이 많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또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이 만화는 너무 잔인하다고. 한없이 부드럽고 달콤한 색깔의 외계 생명체가 사람을 공격해서 신체 일부가 무참하게 잘려나가는 장면도 있고, 학생들이 총기를 들고 싸우는 장면이나 서로를 향해 총질을 하는 장면들도 있다. 학생들이 죽고 다치는 장면들의 잔혹성으로 만화 연재 도중 19금으로 제한 연령이 바뀌기도 했으니 잔인한 만화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여기에서는 이 만화의 비현실성과 잔인성에 대한 변론을 진행해보고자 한다. 먼저 비현실성 논란이다. 어찌 보면 만화에 대해서 비현실적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만화는 그 자체로 이미 비현실적이기 때문이다. SF만화를 보면서 비현실적이라고 시비를 하는 일은 없다. 대체로 만화에 비현실성 논란이 일어나는 이유는 그 만화가 다루는 배경이나 사건 등이 지나치게 현실적인 경우이다. 만화가 우리의 일상을 그대로 그리고 있을 때 독자들은 자신의 현실과 만화와의 일체성을 경험한다. 그리고 은연중 만화에 자신의 현실을 동일시하는 경향을 보인다. 하지만 그 현실성에 지극히 커다란 괴리감이 발생하면 비현실적이라는 칼날을 들이대는 것이다.
<방과 후 전쟁활동>은 이미 현실 고등학교 교육과정에 있는 ‘방과 후 활동’에 ‘전쟁’이라는 단어만 끼워서 만든 제목이다. 등장하는 학교나 교실이나 학생들의 면면이나 심지어 선생님들의 대응조차도 실제 우리가 경험한 학교와 크게 다르지 않다. 게다가 이 만화는 중간에 학생들의 인터뷰 영상을 삽입하는 방식으로 구성하여 더욱 현실감을 높이고 있다. 남녀를 불문하고 학생들을 전쟁에 참전하도록 내몰아가는 힘은 ‘대학 입학 가산점’이다. 대학 입학에 대한 압박감을 현실에서 느껴본 독자들이라면 이 만화를 자신의 현실과 동일시할 가능성은 더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이미 만화가 현실 고교 생활을 중심 소재로 삼았으니 우리가 기억하는 교육현장을 돌아보자. 대부분의 평범한 학생들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고등학교를 배정받아 입학한다. 자신이 원하지 않은 디자인과 색상의 교복을 입고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교실에 앉아 3년 동안 등하교를 반복하며 공부한다. 지금은 ‘2015 개정 교육과정’이 적용되는 시기이니 학생들은 일정 부분 자신이 원하는 교과목을 선택해서 공부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 모든 교과를 자신이 원하는 것만 선택할 수는 없다. 대학입시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원치 않아도 일정 분량의 국어, 영어, 수학 교과목을 공부해야 한다. 대학 입시를 결정하는 대부분의 교과 성적이 그쪽에 편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학교 입학과 동시에 자신의 진로를 명쾌하게 확립해서 공부하는 학생들은 드물다. 대부분의 평범한 학생들은 고등학교 환경에 적응하느라 1학년 시기를 흘려보낸다. 2학년이 되어서야 겨우 자신의 진로를 확정할 수 있을 텐데 그런 학생은 굉장히 운이 좋은 경우이다. 상당수의 학생들은 3학년 1학기에 와서야 비로소 자신의 진로를 확정하게 된다.
자신의 진로에 맞는 학과를 선택하고 대학에 진학하려면 수시와 정시의 두 가지 길이 있다. 수시의 대표 전형인 학생부종합전형의 경우 1학년부터 체계적으로 진학 계획을 세워 활동한 학생들에게나 유리할 뿐 3학년에 와서야 진로를 발견한 학생들은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다. 내신 성적도 불안하고 모의고사 성적도 좋지 않은 학생들은 논술 우수자 전형을 고려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논술은 이미 사교육 시장에 점령되어 있으니 고등학교 과정만으로 준비하기엔 너무 거대한 벽처럼 느껴져 지레 겁이 난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것은 정시, 즉 수능시험이다. 고등학교 3년이라는 긴 시간의 운명이 오로지 하루에 치르는 시험 하나에 도박 판돈처럼 걸려있다. 지나치게 신경이 곤두서서 밤잠을 설치거나 긴장으로 인한 신경성 위경련이 발생하거나 느닷없는 교통 상황이 발생하지 않은 학생들에 한해서만 수능은 안전하게 치러질 것이다. 해마다 어떤 난이도의 수능 문제가 출제되느냐에 따라 학생들의 눈치작전은 치열하게 전개되고 결국 정보와 운명의 화려한 조화에 성공한 학생들만 자신이 원하는 대학에 겨우 들어갈 수 있게 될 것이다.
대략 정리해본 고등학교 교육 현장이다. 이 과정 어디에 학생들의 창의력과 개성과 미래를 보장하는 제도나 장치가 마련되어 있는지 발견할 수 없다. 이 나라 교육 현장은 과연 현실적인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학생들은 여전히 친구들과 경쟁해야만 하고 정보력이 있거나 사교육에 대한 부담이 없어야만 여유로운 진학의 기회를 얻을 수가 있다. 시장 경쟁의 논리가 악령처럼 지배하는 우리나라 교육현장의 어느 부분이 현실적이고 어느 부분이 비현실적인지 구분하는 일은 난이도 최상의 수능 문제를 해결하는 것보다 어렵다.
이런 살벌한 교육현장에 있는 학생들에게 자신의 꿈과 희망을 찾아서 진학을 하라고 권유하는 것과 총을 들고 나가서 외계 생명체를 죽이면 대학 입학 가산점을 주겠다고 회유하는 것 중 어느 편이 더 현실적인지 구분해보자.
만화의 잔인성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우리나라가 OECD 국가 중 청소년 자살률 1위라고 한다. 이 문장을 쓰고 한동안 글을 잇기 어려웠다. 아직 자신의 꿈이 뭔지도 정확하게 찾지 못한 앳된 청소년들이 스스로의 생을 마감하도록 떠밀리는 무시무시한 현실 앞에서 외계 생명체에게 목이 날아가는 장면이 더 잔인하다고 말할 명분이 없기 때문이었다. 친구와 협조해서 과제를 수행하고 거기에서 배움의 기쁨을 맛보는 것이 아니라 수행 과정에서 자신의 역할이 중요하게 강조되고 그 내용이 온전히 학교생활기록부에 기록되어야만 좋은 평가를 얻어 대학에 진학할 수 있는 지금의 교육 현실 앞에서 친구의 총에 맞아 죽는 만화의 장면이 더 잔인하다고 확언할 자신이 없기 때문이었다.
<방과 후 전쟁활동>은 지극히 현실적인 만화이다. 우리 학생들은 지금도 여전히 정체를 알 수 없는 대학, 목적을 알기 힘든 미래를 향해 화려하지만 무시무시한 외계 생명체를 정밀 사격하듯 비장한 각오로 전쟁을 치르고 있기 때문이다. 만화에 등장하는 학생들이 전쟁터에서조차 교복을 입고 있는 장면을 보는 일은 그래서 더욱 안타깝다. 그것이 우리 학생들의 실제 현장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독자들에게 가장 많은 욕을 얻어먹었을 것으로 보이는 등장인물 ‘국영수’는 우리 학생들이 가장 고통스럽게 전쟁을 치러야 하는 ‘국어, 영어, 수학’과 같은 이름을 가졌다. ‘국영수’는 마지막 부분에서 작가의 이름을 거꾸로 한 ‘권일하’를 죽인다. 만화가조차 국영수를 이기지 못한다는 상징처럼 보여 안쓰럽다. 그 ‘국영수’를 죽여서 문제를 해결하는 인물은 ‘이나라’이다. 이 나라 전부가 교육 문제에 현실적으로 덤벼들어야만 해결할 수 있다는 작가의 절규처럼 보인다.
이제 이 만화의 장르를 ‘SF’나 ‘스릴러’로 규정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만화는 그저 현실 만화이며 교육 만화이며 우리 교육 현장에 던지는 엄중한 질의서와도 같다. 그렇게 보고 그렇게 읽어야할 사람들만 이 만화를 보지 않는다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