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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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혹>에 현혹되는 이유

2021-02-25 한기호



<현혹>에 현혹되는 이유





만화가 도시의 불빛처럼 현란하게 출현하는 시대이다. 넘쳐나는 만화 중 끝까지 빛을 밝힐 수 있는 것은 독자들의 선택을 받은 작품이다. 독자들이 만화를 선택하는 기준은 개인적인 취향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장르, 서사, 채색이나 동작선의 특성에 따라 얼마든 다를 수 있다. 때로 어떤 작품은 작가의 의도와 상관없이 독자의 시선을 끌기도 한다. 홍작가의 <현혹>이 그렇다.

 

<현혹>의 배경은 1935년의 경성이다. 시기적으로 근대의 정점이면서 일제강점기이기도 한 때이다. 낡은 시대의 관습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겠다는 근대화의 물결이 넘치던 때. 하지만 식민지 근대의 색채는 칙칙하다. 불행히도 그 시절 경성은 세계의 중심이 아니라 변방의 식민지였다. 사건은 음습한 색채의 근대에, 어두운 변방 식민지 도시에서 일어난다.

 

주인공은 인간도 짐승도 아닌 흡혈귀이며 그를 상대하는 사람은 지극히 평범한 인간이다. 평범한 인간인 가난한 화가 윤 화백은 남문호텔 운영자인 송정화의 초상화를 그려달라는 제의를 받는다. 무릇 예술로서의 그림이란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선에 있는 것이다. 그림이란 비현실의 세계를 그려 현실을 새롭게 일깨우거나 현실의 세계를 그려 보는 이에게 비현실적 시공간을 열어주는 예술이다. 윤 화백이 의뢰받은 초상화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는 자신의 눈앞에 화려하게 서있는 젊은 여인의 초상이 아닌 그의 노년을 앞질러 그려야만 한다.

 

현실의 세계에 서서 비현실의 실존을 그려야만 하는 자신의 운명 앞에 절망하고 있는 윤 화백에게 송정화는 흡혈귀로서의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송정화가 들려주는 흡혈귀의 이력은 대체로 의도치 않게 흡혈귀가 된 그녀의 불우한 인생, 아버지와 대결해야만 하는 필사적인 운명, 사랑하는 남자를 보내야만 했던 비극 등으로 구성된다. 서사에서 ‘흡혈귀’라는 존재는 필연적인 소재로 ‘피’를 부르게 된다. 그로 인해 만화의 채색은 송정화의 등에 새겨진 선홍색의 매화로부터 그녀의 흡혈, 사랑하는 남자의 피, 아버지 K의 피, 윤 화백의 마지막 그림에 등장한 화려한 붉은 색 등으로 눈부시게 연결된다.

 

인류학적인 측면에서 경계선은 금기의 대상이다. 우리는 모두 문지방에 앉지 말라는 금기를 알고 있다. 문지방은 이편과 저편을 나누는 경계이기 때문에 금기시된다. 오랜 예전에는 마을과 마을의 경계에 장승이나 당산나무를 세웠다. 경계선은 금기시되기 때문이다. 경계선에 대해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근원적인 유혹과 불안감을 장승이나 당산나무로 달래주려 한 것이다. 또한 금기는 마땅히 지켜야할 원칙이면서 동시에 깨고 싶은 강렬한 호기심의 대상이기도 하다. 아담과 이브가 에덴동산의 모든 열매를 놔두고 야훼가 금기로 남겨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은 이야기로 알 수 있듯이 인간은 존재론적으로 금기를 넘어서려는 욕구를 가진 생물들이다. 금기는 거부와 매혹의 이중성을 가진다.

 

흡혈귀가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소재로 등장하는 이유도 근본적으로 그 지점에 있다. 흡혈귀는 경계선에 있는 존재이다. 살아있으나 살아있는 것이 아닌 금기의 존재. 그가 가진 속성으로서의 ‘불멸’이란 누구나 선뜻 가지고 싶은 ‘영생’과는 성격이 다르다. 흡혈귀의 불멸은 불온한 색깔을 하고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 서있다. 따라서 그 아슬아슬한 경계선에 선 존재를 이야기하거나 그리는 일은 곧 금기에 대한 인간 본연의 호기심을 극도로 자극하는 행위가 된다.

 

인간은 흡혈귀 이야기를 통해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된다. 죽지 않고 살 수 있다는 것은 제한된 삶을 사는 인간들의 영원한 소망이다. 불로불사, 무병장수의 소망을 마다할 인간은 없다. 하지만 그 불멸의 조건이 다른 사람의 피를 마셔야하는 것이라는 대목에서 거부감을 가져온다. 피는 곧 생명을 의미한다. 내 생명의 영속을 위해 다른 이의 생명을 빼앗아야 한다는 것은 반인륜적인 탐욕이다. 안에 숨겨진 흡혈귀의 외모가 흉물스러운 이유이기도 하다. 흡혈귀 이야기는 건전하고 이성적인 방법이 아닌 비윤리적 생명 유지 방식의 타당성에 대한 인간 자신의 답변을 요구한다.

 

다른 사람의 생명을 빼앗아 내 생명을 연장한다는 탐욕적 생존 방식에 기꺼이 동의할 사람은 없다. 인류가 흡혈귀의 생존 방식에 동의했다면 이미 스스로 멸절되었을 것이다. 모순적이게도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 세상은 흡혈귀의 탐욕적 생존 방식으로 가득한 곳이다. 이성과 윤리를 기반으로 한 인간들이 모여 살아가는 사회가 비이성적이고 반인륜적인 행태로 넘쳐난다는 사실은 아이러니하다. 사회는 생존경쟁과 약육강식의 논리가 무분별하게 적용되는 야생의 밀림과도 같다. 그곳을 힘겹게 살아가는 인간들은 자신도 모르게 흡혈귀의 욕망에 현혹된다. 다른 사람의 피를 마셔서라도 나만은 살아남아야겠다는 필사적인 생존 본능이 마치 흡혈귀의 그것처럼 저마다의 혈관 속에서 꿈틀거린다. 인간들은 저마다 자신의 욕망을 송곳니처럼 감춘 채 거짓된 웃음을 흘리며 세상을 살아가는 흡혈귀들인지도 모르겠다.

<현혹>은 근대 식민지 도시 경성을 배경으로 한 흡혈귀 이야기를 통해 독자들을 현혹한다. 아직 현대가 되지 않은 근대, 아직 중심에 서지 못한 변방의 식민 도시는 이쪽과 저쪽의 경계선에 존재하는 시공간이다. 경계선이 가진 음울한 배경색들은 오직 흡혈귀가 불러온 핏빛으로만 화려하게 채색된다. 독자들은 경계선의 시공간에 선 금기의 존재에 대한 이야기를 보면서 자신의 현재를 돌아본다. 내가 서있는 시공간은 지금 어디에 속해있는지를 살피게 된다. 내가 서있는 시공간에서 내 존재는 무엇인지를 돌아보게 된다. 자신이 이미 어느 편에 속해있다는 확신 속에서 살아가며 자신의 존재에 대해 근본적으로 고민하지 않는 사람들은 만화 따위 들춰보지 않는다. 만화를 보고 만화의 세계에 공감하는 독자들은 모두가 경계선에 선 자들이다. 그들은 자신이 선 자리를 끝없이 의심하고 자신의 존재를 끝없이 되돌아보는 사람들이다. <현혹>은 바로 그 자리로 독자들을 현혹하는 만화이다.

 

또한 <현혹>은 독자들에게 존재론적 질문을 던지며 현혹한다. ‘지금 여기’에 서있는 ‘나’란 존재의 실체는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묻는다. 이 모호한 시공간에서 도무지 확정할 수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나’는 과연 어떤 존재인지를 묻게 한다. 치열한 생존경쟁의 비정한 세계에서 남의 피를 빨아서라도 내 생명을 유지하는 존재로 살 것인지, 내 유한성과 한계를 인식하고 받아들이면서 다른 사람과 공존하며 살아가는 존재가 될 것인지를 묻게 한다. 내가 누구에게도 드러내지 않고 깊이 숨겨두고 있으나 위선과 허위로 꾸며둔 이 얼굴 이면에 감춰둔 송곳니는 어떤 종류의 것인지를 묻게 한다. 불현 듯 내가 송곳니를 드러내며 빨아댄 피는 누구의 생명이었는지를 되새기게 한다.

 

<현혹>의 마지막 부분에서 송정화는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묻는 윤 화백에게 ‘이야기 밖에 있는 사람’이라고 답한다. 흡혈귀 이야기의 주인공이 아닌 목격자, 흡혈귀의 이야기를 들어준 사람, 흡혈귀 이야기의 외부에 존재하는 인물인 윤 화백은 죽음을 앞두고 송정화를 주인공으로 한 놀라운 그림들을 남긴다. 결국 <현혹>이라는 만화의 주인공은 흡혈귀 송정화이지만 그 존재의 아름다움을 사람들에게 온전하게 알린 사람은 주인공이 아닌 윤 화백이라는 결말이다.

 

우리는 만화를 볼 때 주인공으로 등장하지 않는다. 그저 만화를 보는 독자로서, 그 만화의 바깥에 존재할 뿐이다. 하지만 그 만화를 화려한 도시의 불빛처럼 빛나게 만들 것인지, 꺼져버린 암흑의 바다에 던져버릴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만화의 바깥에 있는 독자들이다. 윤 화백이 송정화의 아름다움을 화려하게 그려냈듯이 독자들은 만화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눈부시게 알리는 사람들이 될 수 있다. 또한 윤 화백이 현존할 수 없는 송정화의 노년을 아름답게 완성했듯이 독자들은 우리 만화의 미래를 화려하게 완성할 수 있다. 이야기 밖에 존재하지만 이야기를 완성하는 목격자로서 윤 화백이 송정화에게 현혹되었듯이, 독자로서 <현혹>에 현혹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그러한 것이리라. 그런 작품들을 위해 독자들은 아낌없이 자신들의 피를 내어줄 준비가 되어있을 것이다. 쿠키든 캐시든 코인이든 상관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