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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낭만을 쫓을 수 있는 용기를 <가슴털 로망스>

2021-03-02 김경훈




다시 낭만을 쫓을 수 있는 용기를 <가슴털 로망스>



낭만을 외칠 용기를 잃은 그대들에게


 낭만이란 무엇인가? 사랑, 꿈, 우정 등 눈에 보이지 않는 이상적 감성들의 총체가 바로 낭만이다. 과거 낭만은 세계가 만들어 놓은 벽을 뛰어넘을 수 있게 하는, 인간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만드는 원동력이었다.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자신만의 낭만을 쫓으며 세계를 조금씩 변화시켜 나갔고 그 결과가 바로 우리들이 살고 있는 현재 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 우리들이 누리고 있는 정신적, 물질적 풍요들은 무수히 많은 낭만주의자들이 세계를 변화시켜온 결과물이라는 것을 우리들은 기억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요사이 누군가에게 “나는 낭만을 쫓는다” 하면 돌아오는 반응은 “아직 어리다”, 혹은 “현실감각이 없다” 등의 냉소 혹은 조소들이다. 고도화된 사회일수록 물질적인 것들이 더 선명하기 마련이고, 그렇기에 눈에 보이지 않는 낭만을 추구하는 것보단 현실적인 것들을 가지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의미 있다고 생각되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름 모를 낭만주의자들의 작고 사소한 혁명을 통해 변화와 진보를 이룬 세계가 도리어 그 낭만을 억압하게 된 것이다.


 “참 낭만적이시네요.”라는, 어느 시절에는 분명 칭찬이었을 말이 지금은 그저 “세상 물정 모르시네요”와 동의어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이러한 분위기에 우리는 낭만적인 사람으로 보이는 것을 점차 부끄러워하게 되었으며 낭만이라는 단어를 나와는 관계없는 감정으로 치부해버리며 살아간다.


 그러나 여기서 한가지 질문을 해야할 것 같다. 우리의 가슴 속에 이제 낭만은 존재하지 않을까? 이 세상에 가슴속에 뜨거운 낭만을 가진 낭만주의자들은 이제 멸종해 버린 것일까?
 이러한 질문에 답은 정해져 있다. “결코 그렇지 않다.”
 여전히 우리들은 잠재적인 낭만주의자들이다. 누군가의 사랑을, 꿈을, 우정을 응원하는 우리들이 있다. 가슴 한 켠에 현실에 맞서 자신이 진정 원하는 삶을 살고 싶다고 갈망하는 자신이분명히 존재한다. 다만 부족한 것은 용기일 뿐이다.
 그리고 이렇게 용기를 상실해가고 있는, 혹은 상실한 이런 우리들에게, 낭만을, 가슴속의 이상을 뜨겁게 다시 마주하라고 외치는 작품이 있으니 바로 <가슴털 로망스>다.


B급 개그만화? 21세기 웹툰형 로맨스 사가


 가슴털 로망스의 첫 인상을 말하자면 B급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느낌이다. 허약했던 소년이 털복숭이의 반라가 되어 나타나 세기말의 풍경의 도시의 모히칸들과 싸우는 장면, “핑계로 성공한 건 김건ㅁ 밖에 없다!” 라는 아재개그를 펼치며 슬램덩크의 그 유명한 장면을 패러디한 도입부에서는 말 그대로 약을 거나하게 한 B급 개그물의 정서가 작품 전체를 지배한다.
 하지만 이러한 평가는 채 3화가 되기도 전에 수정 된다. 장호풍의 여정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2화의 에피소드에서부터 이 작품이 추구하는 지점이 단순한 B급 개그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2화에서 나오는 김남자의 에피소드는 이 글의 서두에서 언급했던 낭만을, 그 낭만으로 총체될 수 있는 인간 내면의 이상을 상실해가는 우리들의 폐부에 묵직한 바디블로를 꽂아넣는다. 그리고 이 바디블로 같은 묵직한 한방을 통해 우리들은 이 작품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돈다.


 상남자, 그리고 사나이를 말하는 장호풍의 앞을 막아선 조새벽. 조새벽은 상남자를 추구하며 추위에 아랗곳 하지 않는 김남자를 보며 상남자를 꿈꿌던 아이였다. 하지만 그해 겨울 결국 나체로 얼어죽은 김남자를 회상하며 상남자를 추구하는 일 따위는 어리석은 것이라며 장호풍을 비웃는다. 하지만 조새벽의 마을 들은 장호풍은 바야흐로 이 만화의 정체성의 포문을 여는 대사로 그의 내면에 존재하는 슬픔을 단숨에 표면 위로 이끌어낸다.


“크게 웃는 사람은 오래 울었던 사람이래”


 이 말을 들은 조새벽은 눈물을 흘리는데, 영하 22도의 날씨에서 추위에 떠는 부녀(?)에게 자신의 한 벌 뿐인 옷을 벗어주고 결국 싸늘하게 시신으로 발견되었던 김남자의 마지막을 말을 기억해내게 된다.





“새벽아 형은 옷이 없어도 돼. 뜨거운 심장이 있으니까”


 그리고 이 회상을 통해 빨갛게 달아오른 코를 훔치며 뜨거운 심장을 이야기하는 김남자의 모습은 이미 앞서 알몸으로 동사한 얼간이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이 정해놓은 상남자를 실현하기 위해 얼어죽을 줄 알면서도 자신의 옷을 흔쾌히 벗어줄 수 있었던 낭만주의자이자 한 명의 돈키호테였던 것이다. 이렇게 김남자에 대한 표현 방식은 이후 「가슴털 로망스」에서 끊임없이 변주되는데 이를 통해 우리는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 보여주는 외모적, 행동적 독특함이 단순히 개그를 위한 선정성이 아닌, 현재 우리가 낭만을 추구하는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에 대한 환기이자, 그들이 추구하는 낭만적 행위들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드는 역할을 수행한다. 그리고 이러한 지점에서 이 만화는 이미 B급 개그만화가 아닌 21세기 웹툰형 로맨스 사가를 추구하는 것임을 알 수 있게 된다.
 
이 세상 돈키호테들을 위하여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가슴털 로망스」는 21세기 웹툰형 로맨스 사가를 추구하는 작품인 만큼, 그 서사 구조가 명확하게 중세 로맨스의 그것과 일치한다. 익히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중세 로맨스의 주인공은 양식화된 인물로 인간 심리의 원형과 본질을 대표적으로 반영한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즉 중세 로맨스의 주인공은 인격이 아니라, 개성(individuality)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이는 프라이의 말을 빌리자면 “진공 속에 존재하며, 몽상에 의해서 이상화된”인물이라는 말이다. 
 때문에 로맨스는 독자들이 자신의 이상과 상상을 그 주인공들에게 투영할 수 있는 것인데 「가슴털 로망스」의 등장인물들은 이러한 중세 로맨스의 주인공인 이상적인 등장인물들의 개성을 그대로 내포하고 있다.


 다만 차이점이 있다면 「가슴털 로망스」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이 중세 로맨스 서사의 주인공들처럼 멋지지 않다는 것인데, 이는 독일의 낭만주의자들이 세르반테스의 소설 속 주인공인 돈 키호테에 대해 평가를 한 것을 빌려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독일 낭만주의자들은 돈키호테를 세상을 변화시키고 싶어했던 인물이자 구원의 메시지를 지닌 인물로 평가를 했는데, 시대를 막론하고 낭만을, 그리고 이상을 품고 세계를 바꿔보려 하는 이들은 평범한 이들에게는 조롱의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지점에서 앞서 언급한바와 같이 B급 만화의 전형으로 보일만큼 비범한 인물들의 이미지들은 로맨스 서사에서 찾아 볼 수 있는 전형성을 가진 인물의 개성과 낭만주의자들이 가지고 있었던 근대적인 사유가 복합되어 나타난 결과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러한 해석을 과대한 해석이라고 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이 작품이 전해주는 감동은 개그만화를 보면서 느끼는 희열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그리고 이러한 결과를 우리는 작품의 댓글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작품의 댓글에 달려 있는 대부분의 댓글들은 ‘내면에 있던 사나이성을 찾았다,“, ”나는 여자인데도 불구하고 가슴털(?)이 자라고 있다.“, ”사나이란 원래 저런 존재이다“등을 말하며 작품의 인물들이 보여주고 있는 행동에 지지와 공감을 보낸다. 행위에 대한 공감이란 결국 정서적 반향이라는 것을 생각했을 때 「가슴털 로망스」는 이미 그것을 본 독자들에게 단순한 개그물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다만 오해하지 말아야할 것이 하나 있다. 작품에서 끊임 없이 호명되는 사나이가 젠더적 의미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기서 사나이라는 단어는 본래의 의미를 너머 부성애,모성애, 사랑, 꿈, 이상 등을 추구하는 이간, 달리 말해 초인, 낭만주의자의 화신, 혹은 이 세계에서 낭만을 추구하는 모든 돈키호테들을 지칭하는 단어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B급 개그물의 표피를 가지고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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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훈

만화평론가
2020 만화·웹툰 평론 공모전 신인부문 우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