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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정의와 사적제재에 대한 고찰 <국민사형투표>

2021-03-12 김경훈



사법정의와 사적제재에 대한 고찰 <국민사형투표>


최근 우리사회에서는 사법정의가 올바르게 실천되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늘어가고 있다. 돈과 권력을 이용해 법의 심판을 피해가거나, 흉악한 범죄자임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의 상식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형량으로 일찍 사회에 복귀하는 경우들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사법정의와 관련해서 국민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방법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 특히 형벌의 경우가 그러한데, 형벌은 언제나 사후적일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범죄의 양상과 형태는 끊임없이 변하고 있으며 같은 범죄라도 사회가 그 범죄를 어떻게 받아드리느냐에 따라 형벌에 대한 요구 기준이 변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술과 매체의 발달로 대중들의 범죄에 대한 인식이 빠르게 변화하는 반면 법은 단 한글자를 고치는데도 무수히 많은 논의와 연구가 필요하다. 따라서 대중들의 요구와 형벌 사이에 존재하는 괴리가 점점 더 커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최근 사적제재를 소재로한 웹툰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작품들의 특징은 흉악한 범죄자를 자신의 정의에 따라 처단하는 다크히어로를 통해 독자로 하여금 현실에서 느끼기 힘든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 보통 이들이 정의를 실현하는 방법은 자신이 가진 물리적 힘이나 폭력 따위인데 문제는 이러한 사적제재를 행하는데 있어 기존의 법체계를 전혀 쓸모없거나 무능한 것으로 치부해 버린다는데에 있다. 하지만 실상 법이란 느리지만 꾸준히 발전하고 있으며 사회에, 혹은 시대에 맞게 변화해가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국민사형투표는 유사한 소재의 다른 작품들과는 분명하게 차별되는데, 범죄자에 대한 형벌과 관련한 대중의 요구와 욕망, 사적제재, 그리고 사법정의란 무엇인지에 대해 입체적으로 질문을 던지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사형투표라는 도발적 상상 


국민사형투표의 시작은 여자친구가 핫도그를 먹다가 질식하여 숨진 것처럼 꾸며 살해한 뒤 보험을을 타낸 혐의로 기소되었던 박철순이 무죄를 받는 장면으로 사직된다. 오열하는 피해자 유족을 두고 유유히 대법원을 나선 범인이 보험금을 유흥비로 사용하며 비열하게 웃는 모습은 누구라도 분노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든다. 경찰 역시 박철순의 이러한 판결에 의문을 가지지만 주인공인 주혁은 "법이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우리가 잡는건 범인이 아니라 용의자다"라고 말을 하며 이 판결에 대한 가치판단을 하지 않는다. 그렇게 보는 이들로 하여금 답답함이 쌓여갈 때 한통의 문자메세지가 도착한다. 바로 발철순의 사형에 대한 국민들의 의사를 묻는 개탈의 투표 메시지가 도착한 것이다. 주인공인 주혁은 유치한 장난이라고 치부하지만 박철순이 실제로 투표 결과에 따라 사망하게 되면서 본격적인 이야기는 시작된다.


국민사형투표는 용서할 수 없는 범죄자가 정당한 법의 심판을 받지 않고 풀려났을 때 그들을 어떻게 벌할 수 있을까라는 상상에서 출발한다. 이 작품이 비슷한 소재의 다른 작품들과 차별되는 지점은 그/그녀(주인공)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가 아닌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투표라는 시스템을 통해 던진다는 것이다.


비슷한 장르의 다른 작품들이 다크히어로 개인에 의해 범죄자의 생사가 결정되는 반면 이 작품에서 범죄자의 처벌을 결정하는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국민(대중)이다. 이러한 장치를 통해 작품은 사적제재에 주체가 자신이 될 수 있도록 한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에서 생길 수 밖에 없는 자연스러운 질문들을 작품을 통해 끊임없이 독자들에게 전달한다.





사법절차와 원칙의 필요성

 

개탈이 국민정서에 의한 정의를 실천하는 다크히어로라면 주인공인 주혁은 사법정의를 대표하는 경찰의 역할을 수행한다. 그는 우직할 정도의 원칙주의자이며 법을 통해 범죄자를 심판받게 해야한다고 끊임없이 주장한다. 사실 주혁의 이러한 태도는 독자들로 하여금 답답한 사법현실을 떠올리게 하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주혁이 이런 태도를 가지게 된 이유가 회상으로 밝혀지면서 그 역시 현재의 사법체계에 대한 충분한 고민과 반성을 바탕으로 행동하고 있는 인물임이 드러난다.

 




주혁의 할아버지가 재판에서 사형을 언도 받는 장면은 우리 근현대사의 어두운 부분을 떠올리게 만드는 장면이다. 고문으로 피폐해진 모습, 국가 반역행위라는 이제는 낡아버린 죄목은 우리 사법 역사상 최악의 사건인 인혁당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인혁당 사건이란 중앙정보부의 조작에 의해 도예종 등의 인물들이 기소되어 무려 선고 18시간만에 사형이 집행된 날조 사건이다. 법의 원칙이 지켜지지 않았을 때, 대중의 정서나 감정, 특정인의 의사에 좌우되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최악의 사건이었던 이 사건이 발생한 것이 불과 40년전이다. 물론 작품에서는 주혁의 할아버지가 겪은 사건이 해당 사건이라고 나타나진 않았지만 작품내 묘사를 통해 주혁의 할아버지가 겪은 사건이 그와 유사한 사건임을 짐작하게 할 수 있으며, 주혁이 원칙과 절차를 추구하는 것이 단순히 자신의 신념뿐만 아니라 그가 사법정의를 관철하기 위해 노력해 왔음을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다. 


올바른 사법정의에 대한 고민


국민사형투표라는 시스템은 일견 합리적으로 보이지만 정황증거만을 가지고 사람에게 사형을 집행 할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인민재판 이상도 이하도 아닌 시스템이다. 이러한 부분은 작품 후반부에 여실히 드러나는데 김재식 회장이라는 인물이 국민투표시스템을 탈취 하면서 발생하는 일련의 사건들은 개탈이 실행한 방식이 결코 올바른 방법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준다, 국민정서, 혹은 여론이라는 것은 정보와 선동에 의해 왜곡될 수 있으며 이러한 왜곡으로 인해 억울한 피해자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작품이 스스로 보여준 것이다. 


이러한 지점도 국민사형투표의 특이한 점이라고 할 수 있는데, 작품 전반을 이끌었던 주요 장치의 허점을 스스로 밝히면서 국민사형투표는 올바른 방식이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 고백한다. 이는 작중 개탈을 역할했던 김지훈의 대사를 통해서도 드러나는데 많은 사람을 죽인 자신이 사법거래를 통해 벌을 경감받는다면 그것 또한 불의한 일이라고 그의 말을 통해 결국 사적제재란 어떠한 대의명분을 가지더라도 범죄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것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같은 결말은 이 작품이 사적제재의 통쾌함으로 시작했지만 종반에 가서는 올바른 사법시스템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음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사법정의의 올바른 실행에 대한 대중들의 요구가 높아지고 있지만 그 결과는 쉽게 보이지 않는다. 그렇기에 우리들은 통쾌한 방법으로 범죄자들을 벌할 수 있는 현실을 상상한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변화가 없는 것은 아니다. 작중 주혁이 수많은 외압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정의를 관철시키며 올바른 사법정의를 구현하려 했던 것처럼 지금도 수많은 이들이 이러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예상컨대 사법정의에 대한 대중들의 열망은 더욱 강력해 질것이고 그때마다 법적 절차나 원칙보다는 대중의 눈높이에 맞는 결과가 요구 될 것이다. 하지만 법이 원칙을 잃었을 때 발생하는 결과는 당장의 속시원함 보다 더 큰 부작용이 있음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알고 있다. 법은 언제나 현실의 뒤에서 따라온다. 하지만 그 속도가 더디다고 해서 그것을 포기한다는 것은 우리 사회의 근간을 송두리째 흔드는 결과가 될 것이다. 국민사형투표는 이러한 지점을 명확하게 직시하고 있으며 그렇기에 유사한 소재의 다른 작품들과는 다른 의미를 지닌다. 초반에는 분명히 통쾌함을 주는 방식으로 시작되었지만 작품이 진행될수록 사법정의와 사적제재에 대해서 독자들로 고민하도록 만드는 것이 이 작품이 가지는 진정한 의미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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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훈

만화평론가
2020 만화·웹툰 평론 공모전 신인부문 우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