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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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은 아름답지 않지만 : <기프트>

2021-10-18 김민서


재능은 아름답지 않지만 : <기프트>
<우리 생애 가장 행복한 순간>, <스토브리그> 등 스포츠를 소재로 한 콘텐츠는 꾸준히 인기가 있다. 영화나 드라마뿐만 아니라 배구 애니메이션 <하이큐!!>, 농구 만화 <슬램덩크> 등 만화•애니메이션 분야에서도 크게 성공한 스포츠물이 존재한다. 당연히 웹툰 중에서도 스포츠를 소재로 한 작품들이 꾸준히 만들어지고, 최상위 인기 웹툰이 되지는 않더라도 마니아층에게 사랑받고 있다. 카카오웹툰 <기프트>도 그중 하나다. 스포츠를 소재로 한 작품이 꾸준히 만들어지게끔 하는 그 요인, <기프트>의 인기의 원천은 무엇일까?
먼저 스포츠물의 기본적인 구성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스포츠물은 한두 명의 인물이 원탑 주인공이 되기보다는 한 팀 전체가 주인공이 되는 경우가 많다. 팀 내에는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선수와 재능이나 신체적 조건은 부족하지만 정말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선수가 등장하는 것이 흔히 사용되는 클리셰 중 하나다. <기프트>에도 테니스부였다가 정민용 감독의 제의로 처음 야구를 하게 된 천재 투수 태훈과, 언제나 누구보다 더 열심히 연습하지만 재능이 부족해 한계를 맞는 승일이 등장한다. 만화나 영화에서 태생적인 특별함을 가진 인물이 주인공이 되는 경우가 많지만, 스포츠물에서는 그와 더불어 노력파 주인공이 빠지는 일이 드물다. 우리 대부분은 보통의 사람이기 때문에 타고난 재능이 가득한 인물보다 그렇지 않은 인물에 더 이입하기 마련이다. 보통의 우리는 재능의 부족함이 후천적인 노력으로 채워질 수 있다는 것을 만화로나마 보고 싶어 한다. 즉 만화적으로, 타고나지 않은 주인공도 결과적으로는 ‘잘’해야 하지만, 그 과정에 설득력 있는 성장 서사가 부여되는 것을 보는 것이 스포츠물의 묘미라는 것이다.
<기프트>에서는 태훈과 승일의 대비가 그러한 성장 서사의 축을 이룬다. 스포츠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전형적인 구도이지만, <기프트>는 판타지적인 장치를 더해 이들의 대비를 더욱 명백하고 흥미롭게 만들었다. 감독 민용이 선수들을 보면 바로 제구, 구위, 체력 등 야구에 필요한 능력들을 수치로 확인하고 SS급부터 F급까지 등급을 매기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민용은 야구를 해본 적 없는 태훈을 보고도 SS급임을 알고 키워내려 마음먹고, 오랜 시간 많은 노력을 기울여 동료들과 선생님에게 인정받는 주장 승일이 투수로는 가망이 없다고 판단해버릴 수 있었다. 언뜻 재능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주장으로 보일 수 있으나, 각 항목의 게이지는 연습과 노력을 통해 채워지고, 등급도 선수의 컨디션과 정신 상태에 따라 달라진다는 설정을 통해 현실성을 더했다.

 


성장 서사는 인물과 인물의 대비뿐만 아니라 팀과 팀 사이의 대비를 통해서도 진행된다. <기프트>의 주인공들이 속한 동천고교는 야구 명문 학교가 아니다. 야구 명문으로 유명한 한성고교와의 연습 게임에서는 39 대 0으로 패배하기까지 한다. 감독 민용은 역량 등급을 볼 수 있는 능력을 활용해 다른 명문 학교에서 주목받지 못했지만 역량이 괜찮아 보이는 선수들을 영입하고, 선수들의 포지션을 과감하게 바꾸는 등의 전략으로 동천고교 야구부를 바꿔놓으려 한다. 지금은 약체인 동천고교가 주요 대립 팀일 것으로 생각되는 한성고교와 게임다운 게임을 해내게 되기까지의 과정이 또 하나의 성장 서사로 펼쳐질 것이다.

이처럼 <기프트>는 스포츠 웹툰의 기본적인 포맷을 따라가지만, 작화와 연출에 살펴볼 만한 특징들이 있다. 먼저 야구라는 종목의 특성상 중심인물이 많을 수밖에 없는데, 그림체가 단순한 편임에도 인물의 생김새를 특색 있게 그려내 캐릭터를 구분하기 쉽게 했다. 또한 투수, 타자 등 여러 포지션에서 보일 수 있는 다양한 자세를 세밀하게 그리고, 공을 던지고 받고 뛰는 역동적인 동작들을 실감나게 표현해 박진감을 조성했다. 연출 측면에서는 인물의 독백을 강렬하게 보여주는 것이 특징적이다. 내적 독백 대사를 말풍선에 넣거나 컷 안에 삽입하지 않고, 컷과 컷 사이의 빈 공간에 크고 명확한 글씨로 적어 중요도를 높였다. ‘노력은 나를 배신하지 않아야만 한다’라고 독백하는 승일이나, 스포츠는 과연 공정한지, 야구 경기를 결정짓는 것은 대체 무엇인지 생각하는 민용에서 작품의 주제 의식의 흐름을 느낄 수 있다.

 


13화에서 민용은 ‘야구는 철저히 결과의 스포츠다. 그 누구도 홈에 들어오지 못한 주자들에게 '2루, 3루까지 간 것도 충분히 잘 한 거야.'라고 하지 않는다.’라고 독백한다. 맞는 말이지만 독자들은 그것이 이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럴 수 없을 것 같던 사람들이 그 결과를 만들어내는 과정을 지켜보며 느낄 희열이, 바로 <기프트>를 보는 이유다.

결국 우리는 스포츠에서 삶을 본다. 자신의 한계를 넘으려는 한 인간의 노력과 투지, 그리고 공동의 목표를 바라보며 투혼을 불사르는 협동의 모양새는 삶의 중요한 면면이면서 스포츠에서 극대화되어 드러나는 부분이다. 타고난 역량은 매우 크지만 아직 게이지가 차 있지 않은 태훈과, 타고난 재능이 부족하지만 노력으로 자신이 할 수 있는 한의 게이지를 대부분 채운, 자신을 다잡고 노력하는 능력이 있는 승일. 두 사람이 어떤 선수로 성장하게 될지, 과연 승일은 노력에 배신당하지 않을 수 있을지. 작가가 스포츠와 삶에 대한 가치관을 어떻게 풀어나갈지 궁금해진다.

필진이미지

김민서

만화평론가
2020 만화·웹툰 평론 공모전 신인부문 우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