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의 사생활99〉 : 대체 불가능한 발화의 공간들
2021년 올해에도 오늘의 우리만화 수상작이 발표되었다. 총 5개의 작품이 수상작으로 선정되었고, 삐약삐약북스의 〈지역의 사생활99〉시리즈 또한 수상작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지역의 사생활99〉는 제목 그대로 전국 각지의 삶과 이야기를 보여주는 독립만화 시리즈로서, 삐약삐약 출판사가 보여주는 의미와 포부가 잘 담겨있다. 텀블벅 펀딩 프로젝트를 통해 총 7개 지역의 이야기가 시즌 1로 제작되었으며, 각각의 지역 에피소드가 모두 다른 작가들의 손으로 탄생하여서 지역과 관련된 작가들의 삶과 가치를 함께 느껴볼 수 있다. 시리즈에 속하는 한 권 한 권이 모두 풍부한 의미를 지니고 있지만, 그중 특히 〈비와 유영〉과 〈1-41〉 편에는 깊은 감동과 재미를 전해주는 요소들이 있다.
△ 〈비와 유영〉 36페이지
〈비와 유영〉은 부산 출생인 산호 작가의 작품으로, 부산을 배경으로 하는 에피소드다. 작가가 오랜 시간 살아온 만큼 지역에 대한 애정이 작품에 듬뿍 담겨있다. 인어 ‘비’는 자매들이 모두 떠나간 바다에서 홀로 남아있는 인어이며, 그의 목소리는 인간들에게 들리지 않는다. 인간 ‘유영’은 부모의 다툼 속에 방치되어 마치 집안에서 보이지 않는 사람처럼 존재한다. 그리고 두 인물은 광안리 바다라는 가장자리에서 만나 부산 사투리로 대화하며 서로를 돌봐준다. 표준어가 아니어서 소외되었던 언어는 그들의 대화 속에서 깊은 연대를 만들어내는 중심축이 된다. 부산에서만 느낄 수 있는 장소, 언어, 연대의 감각에 대한 묘사에서 세심한 애정이 느껴진다.
한편, 〈1-41〉을 작업한 김래현 작가는 서울에서 나고 자랐다고 자신을 소개하는데, 이런 점이 오히려 또 다른 호기심을 자극한다. 김래현 작가에게 담양은 오랜 거주로 익숙해진 장소가 아니라, 오히려 갑작스럽고 낯선 공간에 속한다. 의지와 무관하게 제2의 고향이 되어버린 곳. 그래서 어떤 추억이 있지만 자주 갈 수는 없는 곳. 그런 담양이 작가에게 어떤 의미인지, 어떠한 매력과 애정을 담아낼 수 있을지 궁금해 더 빠르게 책장을 넘기게 된다.
△ 〈1-41〉 15페이지
〈1-41〉에서 키 번호 1번인 ‘송연’과 마지막 41번인 ‘유진’은 번호의 간격뿐만 아니라 모든 면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인물이다. 외모, 성격, 성향 등 비슷한 것이라곤 전혀 없어 보이는 그들은 우연한 계기로 절친이 되지만, 유진의 집안 사정으로 인해 오해와 함께 이별하게 된다. 담양의 대표적인 관광지 중 하나인 ‘죽녹원’은 그들의 이별과 재회가 모두 연리지처럼 엮여있는 장소인데, 그곳에서 두 사람은 서로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엮어가며 곧게 성장해간다.
〈비와 유영〉, 〈1-41〉 두 작품에서 광안리와 죽녹원은 구색을 맞추기 위해 어색하게 등장하는 배경이 아니다. 소외의 쓸쓸함만 보여주는 지역도, 지나치게 낭만이 덧발라진 소재도 아니다. 작품 내 등장인물들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곳이고, 그들의 삶 자체를 형상화하여 보여주는 공간이다. 서울에 미처 닿지 못한 주변이 아니라, 대체 불가능한 발화의 공간인 것이다.
〈지역의 사생활99〉의 세심한 매력은 작품뿐만 아니라 인터뷰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작품 뒷부분에 붙어있는 인터뷰에는 작품 내부 설정, 창작 뒷이야기, 작가 개인의 취향 등 다양한 이야기가 실려 있는데, 무겁고 진중한 주제만 다루는 것이 아니라 해당 지역과 관련된 가벼운 질문들이 중심적으로 담겨있다. 예를 들어, 담양 에피소드인 〈1-41〉에 대한 인터뷰에서는 ‘담양의 죽제품 중 마음에 들었던 상품’에 대한 질의응답이 있는데, 이처럼 소박하면서도 구체적인 질문들이 작품뿐만 아니라 담양이라는 지역 자체에 대한 호기심과 재미를 한층 더 이끌어낸다. 인터뷰까지 모두 읽고 나면 어느새 죽녹원을 걸으며 대나무 아이스크림을 먹기 위한 여행 루트를 계획하게 된다.
올해 10월 초에 펀딩을 마친 시즌 2는 양산, 울산, 대전, 정읍, 경주, 구미, 강릉, 동해, 옥천까지 시리즈를 확장하였으며, 이제 총 18개의 지역에 대한 이야기를 보여주게 되었다. 군산에서 시작된 이 기꺼운 흐름이 앞으로도 더 넓은 지역 곳곳으로 퍼져나가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