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앰 어 히어로
모든 만화의 주인공이 영웅인 것은 아니다. 물론 주인공 자신이 영웅인 것을 인지하고 그 능력을 마음껏 펼치는 만화가 있다면, 대부분은 평범한 일상의 주인공이 그냥 그렇게 살아가다 우연한 기회에 자신에게 어떤 부분의 재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필살과 각고의 노력을 ...
2013-12-05
김형규
모든 만화의 주인공이 영웅인 것은 아니다. 물론 주인공 자신이 영웅인 것을 인지하고 그 능력을 마음껏 펼치는 만화가 있다면, 대부분은 평범한 일상의 주인공이 그냥 그렇게 살아가다 우연한 기회에 자신에게 어떤 부분의 재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필살과 각고의 노력을 더한 끝에 챔피언이 된다거나 영웅의 반열에 오르면서 작품을 끝마치는 경우가 많다하겠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이야기 전개에 흥미와 재미는 느낄지언정 공감하지는 못하는 듯하다. 왜냐하면 위의 두 경우 모두 주인공과 내가 너무나 큰 능력의 차이가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우리는 슬램덩크의 강백호가 될 수 없고, 아무리 더 챔피언의 일보가 겸손을 떤다고 하더라도 그의 템프시 롤을 구사하기는 커녕 흉내만 내다가 허리디스크로 병원에 입원할 지경이다. 홀리랜드의 카시미로 유우처럼 불량배 사냥꾼이 되는 일은 아마 지금 책상 서랍에서 도라에몽이 튀어나오는 것을 바라는 것과 같은 확률일 것이다. 바키? 한마 유지로? 루피? 이미 그들은 인간의 한계를 넘어 버렸다. 이런 영웅들이 판치는 주인공들의 세계에 영웅이 아닌 반영웅 혹은 비영웅(non hero)이라고 불리는 주인공이 등장하게 되는데 그들은 이야기의 주인공이지만, 끊임없이 주저하고 망설이며, 비열하고 혹은 소심하고 무기력한 모습을 보인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심지어 나 자신의 모습이기까지 한 주인공에게 우리는 공감과 박수와 응원을 보내는 것이다. 이번에 소개하는 아이 엠 어 히어로의 주인공 히데오가 바로 그런 영웅들의 세계에 등장하여 홀로 싸우는 반영웅이 아닐까 한다. 스즈키 히데오는 혼자만의 망상에 빠져 환각과 환시를 보기도 하며, 자기가 만들어 낸 망상과 혼잣말을 중얼거리고 사격연습용 총을 들고 밤을 지새우다가 텔레비전의 방송과 인사를 하고 그제서야 잠이 드는 겁 많고 찌질한?청년이다. 단행본 만화를 냈던 만화작가였지만, 주인공답지 않은 주인공을 내새웠기에 정기 연재에서 미끄러지고 편집자에게 콘티를 가져가도 항상 재미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만다. 지금은 다른 작가의 어시스트를 하고 있지만 유명작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과 아무도 자신의 진가를 몰라준다는 생각에 혼잣말과 망상 속에 빠져있으며, 자기위안과 변명 속에서 망상 속의 자신과 대화하는 히데오를 보면, 정도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한 번 쯤 누구나 경험해 본 일이 아닐까 싶다. 그런 히데오에게 텟코라는 여자 친구가 있다. 히데오는 텟코를 사랑하지만 그녀의 예전 남자친구이자 프로 만화작가인 나카타를 질투하면서도 만화가로서 존경하는 이율배반적인 감정에 빠져있다. 그녀와의 데이트가 마냥 행복하다가도 전 남자친구의 이야기가 나오면 바로 망상에 빠지는 히데오. 텟코가 자신과 나카타를 비교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망상 속에서 히데오는 점점 자신만의 장점을 몰라주는 세상이 원망스러울 뿐이다. 만화 원고 콘티를 모두 퇴짜 맞은 어느 날, 어시스트들과 미팅에 나가서 역시 퇴짜를 맞고 술에 만취한 히데오는 육교에 주저앉아 난간을 붙잡고 이렇게 외친다. 난 히어로가 아니어도 괜찮아. 최소한 내 인생 정도는 주인공이고 싶다구. 이렇게 1권을 보다보면 주인공 히데오의 성장만화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만화가가 주인공이기에 호에로펜, 바쿠만, 코믹마스터 j, 어린 아내가 떠오르며 만화가의 고충을 그린 작품인가하는 생각이 살짝 들 무렵, 1권의 마지막 부분에서 아이 엠 어 히어로가 어떤 만화이고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지 충격적인 반전을 보여주는데, 히데오의 여자친구 텟코가 좀비로 변해버리고 만다. 조금은 이색적인 좀비만화. 2권부터 본격적인 히데오의 모험담이 펼쳐진다. 다발성 장기부전 및 반사회성 인격 장애로 명명되어진 ? 한마디로 좀비가 되어 다른 사람을 공격하는 일이 만연하게 된 비상식적인 사회에서 우리의 주인공은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그에게 있는 무기는 그의 유일한 취미였던 산탄총과 총알 102발 그리고 소심함과 찌질함이다. 상식적인 세상에선 자신의 정체성을 찾지 못하고 이리저리 부유하다 비상식적인 세상에서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히데오의 모습이 안타까우면서도 응원을 보내게 된다. 이 작품은 대원 씨아이를 통해 12권까지 정식발매 되었다. 한 권을 잡고 보다보면 이야기에 몰입이 되어 다음 권을 읽을 수밖에 없는 흡입력을 가지며, 하나자와 켄고 작가의 연출력 또한 대단하다. 앞으로 어떤 일이 펼쳐질지, 과연 새로 등장한 여자 캐릭터가 주인공인지 아니면 조연인지 가늠을 하기 힘들며, 어떻게 진행이 되더라도 작가의 스토리전개에 수긍하고 공감하며 푹 빠져들게 하는 작품이다. 첫 권을 펼쳤을 때 문을 열고 들어가는 히데오의 모습에서 느껴지는 뎃생과 배경의 섬세함에서 작가의 꼼꼼함이 잘 드러나 보인다. 심지어 문을 열고 들어선 히데오의 책장에 간츠, 벡, 고릴라맨, 호문쿨루스 같은 작품들이 꼽혀있는 것이 세밀하게 표현되어 있는 것을 보면 작가의 성향이 어떤지 짐작할 수 있다. 그 외에도 살아있을 때의 습관을 가지고 있는 좀비에 대한 표현이라던가, 캐릭터가 살아 숨 쉬는 점, 스토리전개의 완급조절 등에서 매우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2010년 일본 만화 대상 4위, 2011년 3위, 2012년 8위, 이 만화가 대단하다 남자편 2011년 8위, 2012년 9위를 수상한 작품이다. 작가인 하나자와 켄고는 [현미선생의 도시락]의 작가인 오우토 오사무의 어시스턴트로 만화를 본격적으로 시작하여, 2004년 [르상티망]으로 데뷔해 센스 오브 젠더 상의 화제상을 수상하였는데, ""센스 오브 젠더""상(SOG상)은 2001년도부터 시작된 SF 관련 상으로, 전년도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1년 동안 간행된 SF 작품 중에서 ""성차""(性差)에 대한 깊은 고찰을 보여주는 작품을 ""당신의 SF적 젠더 고찰은 훌륭하다""고 칭찬하는 의미에서 주어지는 상이라고 한다. 이후 [보이즈 온 더 런]과 같은 현실 사회의 부조리한 틈바구니에 낀 청년을 주인공으로 한 작품을 매력적으로 그려냈고, 이 [보이즈 온 더 런]은 2010년 영화화, 2102년 일본 아사히 TV에서 9부작으로 드라마화 되었다. [르상티망]은 서울문화사 아이큐 점프코믹스로 2005년 정식 발매되어 4권으로 완결이 되었고, [보이즈 온 더 런]은 대원 씨아이에서 2007년 정식 발매 되었다. 하나자와 켄고 작가작품의 주인공들은 모두 하나같이 못생기고 소심하고 인기가 없다. 이런 친근하고 일상적인 그들이 자신만의 몸부림으로 작은 파문을 만들고 껍질을 깨고 나오는 모습을 보는 것이 즐겁고 감동스럽다. 물론 그들이 세상을 구하거나 변화시키지는 못하더라도 말이다. 아이 엠 어 히어로를 보시고 하나자와 켄고 작가가 마음에 든다면 다른 작품도 한 번 찾아보는 것을 강력 추천한다. [보이즈 온 더 런]은 상대적으로 구하기 쉽지만 마도서 [르상티망]은 매우 구하기 어려운 작품이니 전투력을 높이고 싶다면 구하는데 도전해보기를 권한다. 내 인생의 주인공은 누구인가? 하는 질문의 답은 주저할 것도 없이 바로 나!!가 답일 것이다. 우리는 모두 우리 인생의 주인공, 영웅들이지만 그런 사실을 우리 모두는 조금씩 망각하며 살아가고 있는 듯하다. 현실에 존재하는 모든 소심한 히데오들이 자심감을 회복하여 자신의 인생에서 주인공, 영웅이 되기를 기원하며, 또 아직 진행 중인 히데오의 모험이 어떤 결말로 달려갈지 손에 땀을 쥐고 숨죽이며 지켜보자. 히데오!! YOU ARE MY HER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