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초기화
글자확대
글자축소

사야와 함께

“저는 지난 달부터 그토록 동경하던 스즈란 여고의 교복을 입고 있습니다. 포석이 깔린 언덕 위의 오래된 석조 건물, 밝고 화사한 인사, 천장이 높은 도서관, 예배당, 커다란 창문 밖에서 바람에 흔들리며 반짝반짝 빛나는 나무들, 이 모든 것들이 참을 수 없이 기쁘고, 이...

2012-10-08 석재정
“저는 지난 달부터 그토록 동경하던 스즈란 여고의 교복을 입고 있습니다. 포석이 깔린 언덕 위의 오래된 석조 건물, 밝고 화사한 인사, 천장이 높은 도서관, 예배당, 커다란 창문 밖에서 바람에 흔들리며 반짝반짝 빛나는 나무들, 이 모든 것들이 참을 수 없이 기쁘고, 이제 막 시작된 고교 생활이 얼마나 멋지고 근사할지 정말정말 기대됩니다.” 삶의 온기가 느껴지는 스토리로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타니카와 후미코의 신작 “사야와 함께”가 한국어판으로 발행되었다. “사야와 함께”는 지역의 모든 여학생들에게 동경의 대상인 명문 여고 ‘스즈란 고등학교’에 입학한, 사야를 주인공으로 한 청춘이야기로, 읽고 있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 훈훈한 미소가 입가에 번지게 되는 따뜻한 작품이다. “저는 아무 것도 없어요. 그저 이 학교를 동경하고, 이 교복을 입어보고 싶어서 열심히 공부해 입학했을 때는 뛸 듯이 기뻤지만 그 이후의 꿈은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았어요. 다른 아이들은 열심히 장래에 대해 고민하고 노력하며, 계속 앞서 가버리는데 나 혼자 텅 빈 채 뒤쳐져 있고, 괜히 미야비한테 화풀이나 하고, 창피해요. 저는 정말 형편없는 아이예요...” 타니카와 후미코의 작품이 한국에 소개된 건, 단편집 “생활의 샘”과 이번에 이 작품과 함께 동시에 발행된 “편지”, “솔로이야기”가 있다. 이렇게 일관된 작품 톤을 갖고 있는 작가는 확실한 팬클럽을 구성하는 경향이 많은데, 이 작가 역시 ‘감성 스토리의 마법사’로 불리며 단단한 팬 층을 이루고 있는 것 같다. “괜찮아, 아무 것도 없다는 건 앞으로 찾으러 갈 수 있다는 뜻이니까, 내 눈에는 너희 모두가 희망으로 가득 차 보이는걸, 정말 기대돼, 앞으로 뭐든지 선택할 수 있잖아.” “사야와 함께”는, 주인공인 사야를 중심으로 다양한 등장인물들이 각자의 스토리를 펼쳐내는 스타일의 작품으로, 읽기가 매우 편안한 장점이 있다. 무겁고 심각한 이야기가 아닌 감성을 잔잔하게 풀어내는 방식으로 에피소드를 구성하기 때문에 ‘일상의 소중함’이나 ‘장래의 꿈’, ‘친구 사귀기’ 같은 소소한 소재만으로도 보는 이를 즐겁게 만든다. “선생님이 해주신 말도, 선생님의 꿈도, 웃는 얼굴이 제법 멋지다는 것도 나 혼자만의 비밀로 간직하고 싶었습니다.” 내 성별이 남자인 관계로, 이렇게 ‘여고’를 무대로 한 이야기는 사실 잘 모른다. 이 에피소드가 잘 만들어진 것인지, 이 이야기에 현실성이 있는 건지 같은 비평적인 판단을 내릴만한 경험치가, 솔직히 없다. 하지만 이것만큼은 확실하다. 이 작품에서 펼쳐지는 수많은 청춘들의 이야기가 읽는 이에게 무척이나 행복한 느낌을 전달해준다는 사실 말이다. 이 작품에는 악인이 등장하지 않는다. 요즘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교내폭력이라든가 왕따 같은 것도 없고 자식교육에 목을 맨 부모나 편견이 심한 교사 같은 짜증나는 인물들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래서 누군가는 이 작품이 비현실적이라고 말할지 모른다. 하지만 난 그렇기 때문에 이 작품이 무척이나 마음에 든다. 악인이 없는 세상이라니 얼마나 멋지고 행복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