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어로 주식회사
“선량한 시민을 괴롭히고 사회의 불안을 야기시키는 저런 몬스터는! 수수료 포함 단돈 39,000원에 해결해 드립니다. 게다가 6개월 무이자 할부까지? 우대 고객에게는 5% 적립도 됩니다. 30년 전통의 믿을 수 있는 처리 능력! 게다가 10억원 손해보험에도 가입돼 있어...
2010-03-13
석재정
“선량한 시민을 괴롭히고 사회의 불안을 야기시키는 저런 몬스터는! 수수료 포함 단돈 39,000원에 해결해 드립니다. 게다가 6개월 무이자 할부까지? 우대 고객에게는 5% 적립도 됩니다. 30년 전통의 믿을 수 있는 처리 능력! 게다가 10억원 손해보험에도 가입돼 있어, 누구보다도 더 안심하고 맡길 수 있다구요, 항상 고객을 먼저 생각하는 ‘히어로 주식회사’입니다. 전국 어디서나 158x-0682로 전화주세요, 그럼 안녕!!” “삼봉 이발소”라는 독특한 웹툰으로 대한민국 만화계에 홀연히 나타난 신인작가 하일권, 1982년 생으로 세종대 만화애니메이션 과를 졸업한 그는 데뷔작에서부터 범상치 않은 재능을 선보이며 만화가로서 첫 발을 내딛었다. “삼봉 이발소” 이후 “보스의 순정”, “3단 합체 김창남”등의 작품을 연이어 선보이면서, 감수성 넘치는 작화와 인상적인 연출, 여운을 남기는 이야기를 균형감 있게 조화시키며 만만치 않은 조회수를 기록, 일약 웹툰계의 신성(新星)으로 떠올랐다. 여기에 소개하는 “히어로 주식회사”는, 하일권이 스토리를 쓰고 김진석이 작화를 맡은 “잡지연재 만화”로, “영챔프”에 연재되고 있는 작품이며 ‘웹툰’이 아니다. 이제는 당당히 만화산업의 한축으로 성장한 ‘온라인 연재만화’가 하일권의 주무대였다면, 비록 작화가 아닌 스토리로 참여했지만, ‘종이잡지’라는, 그에게는 생소할 새로운 무대에서 그간 보여주었던 역량을 얼마만큼 발휘할 수 있을지 기대하고 있다. “뭔가 착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이곳은 회사다. 그따위 정의감 운운하며 한가하게 자원봉사나 하는 곳이 아니란 말이다. 위험에 처한 두 사람이 있다. 한 사람은 가난하고 불쌍한 노인이고, 나머지 한 사람은 우리 회사 광고주다. 너라면 누구를 구해주겠는가? “히어로 주식회사”에서 빛을 발하는 건, 역시나 독특한 설정이라 할 수 있겠다. 우리의 머릿속에 각인된 “히어로”의 공통점은, 슈퍼맨이든, 배트맨이든, 스파이더맨이든 간에 그들의 특수한 힘으로 악의 존재로부터 선량한 시민들을 지켜주는 정의의 용사라는 점이다. 그러나 하일권은 이 기초적인 상식을 정면에서부터 뒤엎는다. “히어로 주식회사”에 등장하는 히어로들은, 정의감이나 의무감으로 도탄에 빠진 민중들을 구제해주지 않는다. “돈을 받아야” 움직인다. 이들은 몬스터들의 습격이 일반화 된 사회에서 “히어로 주식회사”라는 회사를 차려 자신들의 초능력을 이용, 영리추구를 하고 있다. 그럼 어떻게 되겠는가? ‘힘’이 상품이 된다면, 세계는 철저하게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로 양분될 수밖에 없다. 하일권이 스토리 외적인 문제로 주시하고 싶었던 문제는 바로 이 지점에 있는 것 같다. 또 하나 재미있는 설정은, 인간의 편에 서서 몬스터들을 막는 히어로들이나, 그들의 반대편에 서서 인간을 습격하는 몬스터들이나 그 원류는 같다는 것이다. 그들은 모두 평범한 인간들에게 ‘돌연변이’라 불리는 존재들이다. “엑스맨”과 아주 유사한 설정이긴 하지만, 하일권, 김진석 콤비의 ‘한국적인 정서’가 이야기 곳곳에서 느껴지고 있어서 재밌게 읽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