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 걸 MY GIRL
“우편함을 더 이상 보지 않기로 한 것은, 벌서 3년 전이다. 유채꽃이 흐드러지게 핀, 이런 시골 동네로 이사 온 의미도... 이제는 잊어버렸다.” “버스 달리다”, “별의 목소리” 등이 한국어판으로 출간되기 시작하며 서서히 한국 독자들에게도 자신의 이름을 알려가...
2010-01-13
김진수
“우편함을 더 이상 보지 않기로 한 것은, 벌서 3년 전이다. 유채꽃이 흐드러지게 핀, 이런 시골 동네로 이사 온 의미도... 이제는 잊어버렸다.” “버스 달리다”, “별의 목소리” 등이 한국어판으로 출간되기 시작하며 서서히 한국 독자들에게도 자신의 이름을 알려가고 있는 작가 사하라 미즈의 “MY GIRL”이 한국어판으로 출간되었다. 참으로 오랜만에 보는, 정통파 우완투수 같은, 직구승부를 할 줄 아는 순정만화 작가로, 잊고 있었던 예전의 감수성을 기분 좋게 떠올려 준다는 점이 무척이나 마음에 든다. “나 유학가게 됐어, 기다리지 않아도 괜찮아.” “MY GIRL”은 유학을 떠난 첫사랑이 갑작스러운 사고로 죽었다는 연락을 받은 한 젊은 남자가, 그 존재를 꿈에서 조차도 몰랐던 자신의 딸을 만나게 된다는 설정에서 출발하여, 초보 아빠와 귀여운 소녀가 가족으로 성장해 간다는 가슴 따뜻한 이야기다. 언제나 그렇듯, 이런 류의 이야기가 지향하는 점은 어디나 비슷한 구석이 있다는 약점이 있는데, 사하라 미즈는 그녀만의 연출력과 작화력으로 이런 약점을 커버하면서, 아주 감미롭고 따뜻한 이야기로 “MY GIRL”을 탄생시켰다. “나는... 요코 씨와 헤어져서도 살 수 있는 방법 같은 건... 몰라...그래도...네가 이제부터 살아가게 될 나날을...나는 알아... 같은 아픔을 갖고 있다면... 살아갈 방법을 찾는 걸 도울 수 있을지도 모르지...자...자신은 없지만...가...같이...살아볼래...?” 사하라 미즈의 장점은 무엇보다 일단 그림이다. 단순히 예쁜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그림에 생기가 있다. 캐릭터들의 얼굴이 생생하게 살아있고, 적절한 톤과 얇은 선으로 그려내 적합한 위치에 배치한 배경과 소품들도 아주 좋다. 무엇보다 닮은 사람이 한 명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런데 묘하게도, 어디선가 본 듯한 느낌이 드는 그림이다. 정통파 우완 투수 같다는 표현은 이래서 쓴 것이다. 아주 오래전부터 이어져 내려온 일본 순정만화의 대표적인 ‘그림체’를 선보이면서도, 세련되고 신선한 느낌이 나는 것이다. 그래서 일까? 사하라 미즈의 작품을 읽고 있노라면 아련한 그리움의 정서가 베어 나오는 것은, “5년 동안...혼자서 이 아이를 키워 온 요코 씨를 위해서라도, 함께 살고 싶다고 말해 준 이 아이를 위해서도, 나는...열심히 살아야겠다...” “MY GIRL”의 이야기는 무척이나 담담하고, 잔잔하며, 조용하다. 갑작스러운 엄마의 죽음으로 인해 처음으로 서로의 존재를 알게 된 5살 난 딸과 젊은 아빠는 서로가 서로에게 진정한 가족이 되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사하라 미즈의 다른 작품들에서도 느껴졌던 ‘일상을 소중히 관찰하고 풍경을 즐길 줄 아는’ 자연스러운 화풍이, “MY GIRL”에서도 아주 기분 좋게 느껴진다. 읽고 있으면 가슴 한 구석이 따뜻해지고, 창가 저 쪽에서 훈훈한 바람이 불어오는 평온한 느낌을 받는다. 초보 아빠와 귀여운 소녀의 ‘가족 되기’를 그려낸 “MY GIRL”은 동명의 드라마로도 제작되어 일본에서 10월부터 방영된다고 한다.(2009년 4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