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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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이 춤추다

“나는 거북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10년 전 낯선 남자의 양말 속에 억지로 갇혀, 일본이란 이 조그만 섬나라로 왔다. 내가 공항에서 얼떨결에 양말 밖으로 굴러 떨어졌을 때, 남자는 그 사실을 모른 채 가버렸다. 귀여운 자식일수록 여행을 시키라고 하던가, 나는 뭔가가 시...

2009-09-21 김진수
“나는 거북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10년 전 낯선 남자의 양말 속에 억지로 갇혀, 일본이란 이 조그만 섬나라로 왔다. 내가 공항에서 얼떨결에 양말 밖으로 굴러 떨어졌을 때, 남자는 그 사실을 모른 채 가버렸다. 귀여운 자식일수록 여행을 시키라고 하던가, 나는 뭔가가 시작될 듯한 기대감에 부풀었다. 그 때였다. 지금의 주인과 만난 것은, 내 고향과 달리 습한 땅 냄새, 변해가는 사계절을 즐기는 민족성, 초롱초롱한 눈으로 한시도 내 곁을 떠나려 하지 않는 이 조그마한 소년을 주인으로 모시겠노라 맹세했다. 그리고 현재, 우리는 세월의 흐름을 즐기며 한가로이 살아가고 있다.” 무척 신기하고 참신한 만화를 하나 찾았다. 제목은 “거북이 춤추다”, 아프리카에 서식하는 설가타 거북이라는 육지거북이 우여곡절을 거쳐 일본에 밀입국하고 현재의 주인을 만나 일본의 산천에서 살아간다는, 조금은 억지스럽지만 충분히 그럴 법도 한, 일종의 매우 특이한 반려동물 만화랄까? “나는 거북이다. 실은 거북도 허물을 벗는다. 바움쿠헨처럼 등딱지 제일 뒤쪽 허물이 벗겨지는 것이다. 그런데 소라게처럼 등딱지 채로 떼는 거라고 오해한 주인이 허물 벗기를 돕는다며 나를 죽이려 했던 것도 어언 10년 전, 잊을 때도 됐지만, 거북답게 원한도 만 년” “거북이 춤추다”의 특징은 서사만화의 형식을 띠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4컷 만화나 카툰의 형식이라 말하기도 좀 그렇다. 굳이 형식을 분류하자면 4컷 만화에 가장 가깝겠지만, 이야기의 큰 흐름이 있고 속속들이 등장하는 캐릭터나 연속성이 있는 작은 사건들도 있어 어느 정도 서사만화의 형태도 띤다. 반려동물이라기엔 너무 크고 거친 아프리카 거북이와 도시적인 삶과는 전혀 관계없이 자연 속에서 차 밭을 일구며 살아가는 젊은 주인의 이야기는, 큰 재미가 있거나 극적인 긴장감이 존재하진 않는다. 자연의 일상 속에서 벌어지는 매우 짤막한 사건들이 소소하게 일어나고 가끔씩 정취 있는 일본식 하이쿠로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경우도 있다. 굳이 표현하자면 노자의 무위자연에 가까운 만화랄까? “나는 거북이다. 귤 같은 감귤류나 당분이 많은 과일은 영양과다에 빠지기 쉬워서 먹이를 잘 안 먹는 거북은 괜찮지만 식욕이 왕성한 거북에게는 주지 않는 게 좋다고 한다. 하지만 일본에 오래 살다 보면 곧 알게 된다. 화로에 구워먹는 귤 맛을, 추운 겨울에는 도저히 뿌리칠 수 없다.” “거북이 춤추다”를 읽다 보면, 각박한 도시를 떠나 대자연으로 돌아가 살고 싶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도시에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자연 속의 여유를 잔잔하게 설파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크게 재미는 없지만 이런 류의 만화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괜찮으리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