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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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토의 여행자

“우리들의 산…우리들의 숲에 백인들이 늘어났다. 인간의 욕심 끝이 없다. 백인들한테 좋은 것, 우리한테는 좋지 않다. 노란 돌, 악마의 돌, 사람의 마음에 악마를 만든다. 우리 삶을 위협하는 불길한 돌, 산에서 짐승들이 조금씩 사라져 간다.” “개를 기르다”, “...

2009-09-02 석재정
“우리들의 산…우리들의 숲에 백인들이 늘어났다. 인간의 욕심 끝이 없다. 백인들한테 좋은 것, 우리한테는 좋지 않다. 노란 돌, 악마의 돌, 사람의 마음에 악마를 만든다. 우리 삶을 위협하는 불길한 돌, 산에서 짐승들이 조금씩 사라져 간다.” “개를 기르다”, “아버지”, “열 네 살”, “k” 등으로 우리들에게도 잘 알려진 다니구치 지로의 “동토의 여행자”가 한국어판으로 출간되었다. 예전 작품들에서 꾸준히 보여주었듯이, 다니구치 지로의 ‘자연과 환경’에 대한 깊은 고민과 인간의 삶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들이 아주 담담하고 서정적인 필체로 담겨있는 “동토의 여행자”는, 다니구치의 ‘자연’에 대한 생각이 담겨있는 단편들의 모음집이다. “아아...산신령님 감사합니다. 당신은 나한테 살라고 말씀하시는군요, 계속 살아남아서 이 산을 지키라고… 태어나는 새로운 생명을 기르라고 말씀해 주시는 겁니까…” 개인적으로 여섯 개의 단편 중 내 시선을 가장 끌었던 건 마지막 작품 “바다로 돌아가다” 였다. 이 작품은 인간과 고래의 교감을 통해 태고 적 자연의 신비를 찾아가는 환상적인 이야기로, 특히 고래가 죽음이 가까워오자 ‘고래의 무덤’에 찾아가는 여정이 신비롭고 몽환적으로 그려져 있어 마치 세상의 비밀 한 자락을 몰래 훔쳐본듯한 느낌을 주면서 잔잔한 여운을 남겨준다. 늙은 사냥꾼과 그가 기르는 사냥개 시로의 이야기 “산으로”도 아주 괜찮았다. 자신의 뒤를 이어 사냥꾼으로 키우려 했던 아들을 거대한 곰에게 잃고 실의에 빠진 늙은 사냥꾼이, 그 곰이 다시 나타났다는 말을 전해 듣고 자신의 마지막 산행이라 생각한 사냥 길에 오른다. 새끼를 밴 사냥개 시로를 일부러 묶어놓고 홀로 겨울의 산으로 들어간 늙은 사냥꾼은 곰과 사투를 벌이지만 생명의 위기에 처하고, 그 때 어디선가 시로가 나타나 그를 구해준 후 곰의 손에 의해 죽게 된다. 비록 숙적이던 곰은 죽였으나 아들에 이어 시로마저 잃고 슬퍼하던 노인의 손에는 마치 신의 계시처럼 갓 태어난 시로의 새끼가 들려있었다. “북극의 유빙아래….짙푸른 심해 밑바닥 어딘가에 고래의 무덤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것은 고대부터 전해 내려온 틸루크 이누이트의 서사시이다.” “동토의 여행자”는 총 여섯 편의 단편들로 이루어져 있다. 캐나다의 설산을 무대로 사금을 채취하는 백인들과 순록의 무리를 기다리는 늙은 인디언 사냥꾼의 이야기인 “동토의 여행자”, 이리떼와 사투를 벌이는 두 남자의 이야기 “하얀 황야”, 늙은 사냥꾼과 그가 기르는 사냥개의 이야기 “산으로”, 아름다운 섬에서 벌어지는 소년과 소녀의 이야기 “가이요세 섬”, 낡은 여관에서 살아가는 여러 인간군상들의 이야기 “송화루”, 고래의 무덤에 관한 문학적이고 철학적인 작품 “바다로 돌아가다”의 6편으로 이루어져 있는 단편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