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거인의 별」 하나가타
“운명은 가장 합당한 자리로 그대의 영혼을 옮겨놓는다.” 스포츠를 소재로 한 일본의 소년만화에는 일정한 공식이 있다. 천재, 라이벌, 우정, 노력, 끈기 등 극의 흐름을 이끌어가는 적절한 요소가 적재적소에 배치되면서 이야기의 완성도를 높여간다. 독자들을 작품 속으...
2009-05-15
석재정
“운명은 가장 합당한 자리로 그대의 영혼을 옮겨놓는다.” 스포츠를 소재로 한 일본의 소년만화에는 일정한 공식이 있다. 천재, 라이벌, 우정, 노력, 끈기 등 극의 흐름을 이끌어가는 적절한 요소가 적재적소에 배치되면서 이야기의 완성도를 높여간다. 독자들을 작품 속으로 끌어들이는데 어느 정도 그 효과가 증명된 옵션들, 도대체 그건 어디서부터 누가 만들어낸 것일까? 그것에 대해 명확한 답을 내릴 수는 없지만 일본 만화사의 기원을 올라가 보면 두 작품이 눈에 들어온다. 첫째는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내일의 죠”, 한 때 “허리케인 죠”라는 애니메이션으로 국내에서도 방영되면서 많은 인기를 누렸던 권투만화다. 주인공인 죠는 말 그대로 헝그리 복서이며 인생의 밑바닥인 교도소에서부터 권투를 시작하여 세계챔피언의 자리에 도전하는 열혈남이다. 이 만화에는 스포츠만화가 어느 지점부터 독자들을 감동시키는지에 대해 아주 훌륭한 답변을 제시해주고 있다. 또 하나의 작품은 우리나라에는 정식으로 수입된 적이 없어 그 정보가 극히 적은 야구 만화 “거인의 별”이다. 1960년대 작품으로 읽어본 적은 없지만 야구만화의 기본 틀, 또는 스포츠만화의 공식을 만들어낸 기념비적인 작품이라고 한다. 애니메이션으로도 제작되어 시청률이 40%(민방위주인 일본에서 40%면 정말 대단한 수치다)에 육박했다고 하니 그 당시 인기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어릴 적부터 프로야구 선수가 되기 위해 아버지의 강압적인 지도 아래 말도 안 되는 특훈을 받아온 호시 히유마라는 소년이 갑자원에 진출하고 일본 프로야구 최고의 인기구단인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입단하여 자신의 라이벌들과 엄청난 사투를 벌이며 정상에 오르는 내용이라고 하는데, 정작 읽어본 적이 없으니 이 만화가 어떻게 현대의 만화들에게 영향을 끼쳤는지, 어떤 식으로 ‘스포츠 만화의 공식’을 만들었는지는 알 길이 없는 것이다. 그러던 차에 무척이나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으니 바로 이 “거인의 별”이 젊은 작가에 의해 리메이크 되며 그 제목은 “하나가타”고 우리 나라에도 번역되어 출판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내가 접해본 “하나가타”는 기대했던 “전설”의 위용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우라사와 나오키의 “플루토” 같은 수준을 원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우리 같은 70년대 생에게는 “스포츠 만화”의 최고봉 “슬램덩크”가 있기 때문일까? 정해진 답은 없지만 내가 읽은 “하나가타”는 크게 재미있지도, 크게 감동적이지도 않은, 그저 그런 야구 만화였다. 물론 리메이크라고 하는 것은 그 시대, 그 상황에 맞추어 다시금 재해석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겠지만 그래도 그토록 유명한 “전설”이라서 굉장한 기대를 했었는데, 조금 실망이었다. 인터넷을 통해 검색해보니 “하나가타”는 “거인의 별”의 원 주인공인 호시 히유마가 주연이 아니라 그의 최고 라이벌이었던 하나가타 미츠루라는 천재타자를 주인공으로 한 리메이크 판이라고 한다. 그래서일까? 왠지 오래되어 보이는 정서와 설정이 넘쳐나고, 결정적으로 작품의 흡입력이 떨어지면서 산만해진다. 현재 12권까지 나와있는데 그나마 조금 기대가 되는 것은 원작에 가까워질수록 극의 긴장감이 조금씩 살아난다는 것이다. 즉 본격적인 라이벌로서의 대결을 펼치는 호시 히유마와 하나가타 미츠루가 등장해야 재미가 있어진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