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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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취협기담 (翡翠峽奇譚)

“놈들은 히틀러의 명령에 따라 다가올 세계대전에 대비하고 있습니다. 최강의 힘을 갖추기 위해 온갖 노력을 아끼지 않죠, 알제리의 고대기계, 터키의 글라키 묵시록, 아랍에 전해지는 황금의 신수(神手), 그리고 쿠쿨칸의 신전에도 놈들은 손을 뻗친 것입니다.” 판타지의...

2009-05-19 김현수
“놈들은 히틀러의 명령에 따라 다가올 세계대전에 대비하고 있습니다. 최강의 힘을 갖추기 위해 온갖 노력을 아끼지 않죠, 알제리의 고대기계, 터키의 글라키 묵시록, 아랍에 전해지는 황금의 신수(神手), 그리고 쿠쿨칸의 신전에도 놈들은 손을 뻗친 것입니다.” 판타지의 단골 소재 중에 세계의 ‘오파츠’가 있다. 오파츠란, OOPARTS, out-of-place artifacts의 약자로 고고학이나 고생물학 등에서 그 시대에 나타날 수 없는 유물을 나타내는 말로 미국의 동물학자 이반.T.샌더슨이 제안한 단어이다. 대표적인 것으로 유카탄 반도의 수정해골, 남극대륙이 표시되어 있는 터키의 피리 레이스 제독의 지도, 팔렝케에서 발견된 우주선 그림이 새겨진 석관 등이 있다. “저는 당신들이 이 신전에 떨어졌을 때, 그 바깥 공기와 함께 모종의 힘을 느꼈답니다. 그래요, 인과율로 정해진 운명의 힘, 이 다섯 번째의 세계…즉 현대를 에워싼 싸움이 별자리에 의해 준비되고 있어요.” 이 세계의 오파츠를 가지고 최고의 흥행상품을 만들어 낸 사람은 스티븐 스필버그다. 그가 감독한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는 어드밴쳐 스펙타클을 꿈꾸는 전 세계의 영화 팬들에게 바이블과 같은 작품이다. 숨겨진 세계의 미스터리를 발굴하며 채찍을 휘두르고 위기에서 위트를 잃지 않는 매력적인 고고학자 인디아나 존스의 모습은 관객들에게 최고의 재미와 함께 잊혀지지 않는 어떤 강렬함을 각인시켰다. 이런 매력적인 캐릭터를 만화계에서 그냥 놔둘 리 없다. 인디아나 존스를 원형으로 한 수많은 캐릭터들이 만화로 창조되었고 이런 류의 판타지물은 흥행에서도 꽤나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나의 이름은 케찰코아틀 토필친. 톨텍 제국의 모든 신들을 통치하던 왕! 내가 바로 ‘날개 달린 뱀’ 쿠쿨칸이다! 싸움을 원한다면 맞붙어 주겠노라.” 여기에 소개하는 “비취협기담”은 전형적인 인디아나 존스 풍 판타지로서 시대배경도 비슷하며 상대하는 적도 나치라는 기괴한 우연(?)이 있다. 다만 나치가 쫓고 주인공이 보호하는 오파츠가 살아있는 톨텍제국의 현신이라는 것 빼고는 어디서 본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래서일까? 작가도 표절이라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실로 많은 것들을 준비한다. 흑마술사, 기계화 보병 등으로 이루어진 나치의 ‘갈고리십자 기사단’이라거나, 닌자나 음양술사들이 고용된 일본의 ‘혼고 기관’이라거나 하는 만화만의 특별한 설정을 가미한다. 주인공인 와키사카 이오리는 고고학자로 인디아나 존스의 일본판이지만 나머지는 거의 다 작가의 창작이라 할 만큼 특이한 설정들이 난무한다. 그러나, 작가는 아주 중요한 것을 간과했다.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가 힛트한 이유는 ‘아주 그럴듯한 현실감’에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